한 여름밤의 꿈

내가 나로 살아갈 용기

<어젯밤 꿈속에 나는나는>프로젝트 8월호

2026.08.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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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과 나는 연인 관계이다. M은 그것을 별로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나를 아주 좋아하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적극적이고 M은 깍쟁이 같은 스타일이라 내가 여러모로 설득을 많이 해야 한다. 나랑 M은 집을 합친다. 집들이를 하고 내 가까운 친구들이 모두 온다. 그중 나랑 M이 사귀는지 모르는 친구들도 많다. 나는 J언니에게 장식장을 보여준다. 온갖 잡다한 것이 모여 있고 그 중엔 J언니가 선물한 것도 있어서 보여줬는데 J언니는 어딘지 모르게 살짝 비판적이다. 옆에서 H가 우리를 미심쩍게 바라본다. M과 내가 너무 친하니 연인 관계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  M - 내가 자각하지 못했던 첫사랑, 내가 적극적으로 또 자발적으로 만든 최초의 친구 전교 1등에 전교 회장, 취미로는 클래식 피아노를 치던 모두가 우러러보던 친구, 나의 실수로 사이가 멀어졌다.
  • J - 사회적 시선에 묶여 자신을 찾지 못했고 현재 건강과 상황이 좋지 않다. 아버지 대신 집안을 부양하는 등 책임감이 대단하며 아주 창의적인 사람이라 여러모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 H - 아버지의 권유로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간 친구, 레즈비언에 대해 차별적인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지난 25일 밤, 독일 베를린 '프라이드(성소수자 축제)' 행사장에서 차량 한 대가 군중으로 돌진해 여성 1명이 사망하고 최소 29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용의자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연관된 압둘 발투르(21)이며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하였습니다. 프라이드는 6월, 7~9월에 걸쳐 진행되며, 1969년 6월 28일에 발생한 미국 뉴욕의 성소수자 술집 스톤월 인을 향한 경찰의 폭력적 단속에 맞서 일어난 자발적이고 역사적인 저항 시위를 기리는 행사입니다. 차별에 대항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행사에서 발생한 차별적인 테러 행위로 인해 고통받은 피해자와 참여자들에게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 <어젯밤 꿈속에 나는나는> 8월호를 시작합니다.

지난 꿈에서 죽음으로 떠나보냈던 M이 이번에는 연인으로 부활하였습니다. 저는 이번에 꿈 속에 등장한 상징적인 두 오브제인 '아주 새카만 나무관'과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 장식장'을 중심으로 서사를 해석해보려고 합니다.

1. 죽음과 애도: '변용(Transformation)'의 의식

융이 말하는 무의식의 논리에서, 상징이 한 번 죽고 다시 나타나면 그건 부활이 아니라 변용(transformation)이라고 합니다. 이전의 꿈에 등장한 M과 이 꿈의 M은 표면적으론 같은 이름, 같은 얼굴이지만 심리적으로는 다른 존재인 것입니다.

  • 죽은 M = 전교 1등, 전교 회장, 클래식 피아노, 모두가 우러러보던 존재
  • 동거인 M = 실제로 만지고, 부딪히고, 설득하고, 함께 집을 합치는 연인

즉 꿈이 보여주는 건 "옛사랑이 돌아왔다"가 아니라, 저의 아니마상이 이상화된 형태에서 관계 가능한 형태로 옮겨갔다는 겁니다. 이상화된 이미지는 애초에 함께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 이미지가 죽어야만, 비로소 동등하고 현실적인, 만져질 수 있는 관계가 들어설 자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애도가 곧 통합의 조건이었다

관에 담아 M을 떠나보내고 M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감정을 표현하는 완전한 애도가 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그다음 단계로 "진짜 관계가 들어설 심리적 공간"이 열렸습니다. 두 꿈이 시간 순서대로 이렇게 이어진다는 건, 무의식이 온전히 작업을 완료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2. 자아의 아카이브(Archive)이자 파편화된 정체성의 저장고

꿈속에서 J언니에게 장식장을 보여주고, H는 옆에서 나와 M을 관찰합니다.

  • J언니의 시선 : “당신이 무엇을 가지고 살아왔는가?” → 장식장(과거와 가치관)에 대한 평가
  • H의 시선 : “당신이 지금 누구와 어떤 관계로 살아가는가?” → M과의 관계(정체성)에 대한 의심

장식장은 "온갖 잡다한 것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융의 상징체계에서 이런 수납/보관의 가구는 흔히 자아가 지금까지 축적해온 정체성의 파편들을 뜻합니다. 옷장이나 서랍과 비슷한 계열이지만, 장식장은 특히 보여주기 위해 진열하는 가구라는 점이 다릅니다. 즉 숨기고 싶은 내가 아니라 전시된 자기(displayed self)인 것입니다.

집들이라는 맥락에서 이 장식장을 보여주는 행동은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초자아로 대표되는 책임감 강한 J언니에게 검증받고 싶어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유리 너머의 것들 —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과거

장식장은 유리문으로 되어있습니다. 안에 있는 것들은 보이지만 손으로 바로 만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제가 과거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 안의 물건들 — 특히 J언니가 선물한 것 — 은 이미 지나간 시간 속 초자아에게 받은 선물입니다. 한 때는 분명 피가 되고 살이 되었던, 나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현재와 대비되는, 정지되고 보존된 기억의 영역일 뿐인 것입니다.

J언니는 평생 사회적 기대와 책임(소녀 가장, 부양자)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한 안타까운 인물입니다. 그런 그녀가 저의 정체성을 전시한 진열장을 보면서 미묘하게 비판적이었다는 건, 어쩌면 그녀 자신의 결핍(자기 정체성을 진열할 기회가 없었던 삶)이 투사된 반응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저의 내면에서도 "내가 이렇게 나를 전시해도 되나, 이게 진짜 나인가"라는 자기 검열이 그녀의 얼굴을 빌려 나타난 것일 수 있고요. 

반면 M은 ‘내가 누구와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 더 나아가 ‘어떤 삶을 선택하고 싶은가'를 상징합니다. 그녀는 단순히 과거의 한 사람이 아니라 다시 살아난 사랑, 자발성, 친밀함, 그리고 잃어버렸던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이 꿈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삶이 충돌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과거를 품은 채 타인의 의심과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인정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 꿈입니다.

결국 이 꿈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나는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이제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는가?”


이번 호에서는 지난 꿈과의 연결성을 찾아 해석하는 제법 난이도가 있는 꿈풀이로 만나 뵈었습니다. 꿈을 꾼 시점으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꿈분석을 진행하는 데 있어 많은 공이 들었는데요. 더욱이 퀴어로서 정체성을 글로 실어 나르느라 많은 분투가 있었습니다. 

현재 뉴스레터를 작성하는 시점, 저로서도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는 영원히 분명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존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나로서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는 것, 벌어진 일에 모르는 척 눈을 감고 선명한 직감을 기우로 치부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조만간 새로운 꿈 이야기와 세상 살이로 다시 뵙기를 바라며, <어젯밤 꿈속에 나는나는>8월호를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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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꿈속에 나는나는>프로젝트는 경기문화재단의 k-art 청년 창작자 지원으로 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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