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6월의 마지막 주가 다가왔습니다.
6월이라 함은 한 해의 상반기 끝자락같은 느낌도 있지요. 2026년의 절반이 가버렸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이번 년도 절반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래서인지 많은 것들을 떠나보내는 꿈들을 꾸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소개드릴 꿈은 제 친구의 장례식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아주 가까웠던 지냈던 친구인데 연락이 끊어진지는 오래 되었구요. 그런데 생각도 못했던 그 친구가 느닷없이 꿈속에서 장례식을 치르게 됩니다. 6월 18일경 꾼 꿈과 그 꿈에 대해 제미나이와 대화를 통하여 풀어낸 해석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아주 친했던 M의 장례식에 갔다. 가족 식사로 가벼운 마음으로 언니와 나왔는데 알고보니 M의 장례식이었던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친해졌던 친구라 마지막으로 연락한지가 아주 오래되었지만 너무 슬퍼서 막 울었다. 언니랑 장례식장에서 춤을 추고 밥을 먹는 등 즐겁게 지내다가 흰 장갑 낀 정장 입은 사람들이 거대하고 새카만 관을 들고 가는 것을 보고 다시 슬퍼서 울었다. 언니랑 밖에 나와 초등학교 운동장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데 어느 순간 언니가 죽은 M으로 바뀌어있다. 나는 M이 죽었지만 마지막으로 나를 위해 인사를 하러 온 것이라 느끼고 진지한 대화를 하고 또 아이가 있는 M의 걱정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 진정한 이별을 약속 하고 진한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집에 와서는 방에 들어가 유리창문이 달린 천장 밑의 침대에 누워 흐린 하늘을 올려다 보며 울었다. 가족들은 내가 슬픈 것을 알아서 방해하지 않고 존중해준다. 그래서 자다가 울다가 깨다가 자다가를 반복했다.
1. M의 장례식: 과거의 자아와의 상징적 이별
꿈에서의 '죽음'과 '장례식'은 현실의 물리적 죽음이라기보다는 '상징적 죽음(Symbolic Death)'이자 '새로운 시작과 변형'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M는 초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친해진 친구입니다. 이는 부모나 외부 환경에 의해서가 아닌, 온전한 자신의 의지로 관계를 맺었던 내면의 순수하고 자율적인 어린 시절의 자아(Inner Child)를 상징할 수 있습니다. M의 장례식을 치른다는 것은, 그 시절의 나, 혹은 과거의 익숙했던 환경과 관계 맺는 방식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새로운 삶의 챕터로 넘어가기 위한 심리적 의례(Ritual)로 볼 수 있습니다.
2. 장례식장에서의 춤과 거대한 검은 관: 삶과 죽음의 수용
장례식장에서 언니와 춤을 추고 밥을 먹으며 즐겁게 지내는 장면은 매우 역설적이면서도 원초적인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죽음(끝)의 공간에서 삶(이어짐)을 축하하는 이 행위는 무의식이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거대하고 새카만 관'이 등장하는 순간 다시 슬픔이 밀려옵니다. 이 강렬한 시각적 상징은 과거와의 단절이 결코 가볍지 않으며, 한 시절이 완전히 끝났음을 시각적으로 묵직하게 선고하는 장치입니다. 빛을 모두 흡수하는 새카만 색은 무의식의 심연이자, 모든 것이 해체되고 새롭게 태어나는 융합의 공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3. 언니에서 M으로의 변환: 자아의 통합
운동장이라는 친숙한 공간에서 든든한 동성 가족인 언니와 대화를 나누다, 그 대상이 M으로 바뀌는 장면은 꿈에서 가장 신비롭고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두 인물이 겹쳐진 것은 과거의 자아(M)가 현재의 성숙한 자아 및 지지 체계(언니)와 안전하게 통합되고 있음을 뜻합니다. 마지막으로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그녀의 아이를 걱정해 주며(미래로 이어지는 생명력에 대한 축복), 포옹으로 진정한 이별을 약속한 것은 심리적으로 '자기 완결'과 '애도 작업'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4. 천장의 유리창문과 온전한 애도
집으로 돌아와 천장에 유리창(Skylight)이 있는 침대에 눕는 장면은 시각적으로 매우 아름답고 시적입니다. 방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공간에 누워 있지만, 천장의 창을 통해 '흐린 하늘'이라는 외부 세계, 혹은 더 거대한 우주(집단 무의식)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족들이 슬픔을 존중해 주고, 자다 깨다 울기를 반복하며 감정을 충분히 소화해 내는 이 마지막 과정은, 현재 내면의 심리적 토대가 이 거대한 변화와 상실감을 넉넉히 수용할 만큼 매우 안정적이고 건강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이 꿈은 단순히 슬픈 꿈이라기보다는, 새로운 환경과 완전히 새로운 삶의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 내면 깊은 곳에서 치러낸 숭고하고 아름다운 통과의례(Rite of Passage)에 가깝습니다.
여기에 꿈에 대한 해석 덧붙이자면 천장에 난 네모난 창문 그리고 사방이 꽉 막힌 관이라는 대극의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관을 지나지 않고서는 뻥 뚫린 창을 통해 외부 세계를 바라볼 수는 없게 되겠지요. 낮시간에 침대에 누워야할 만큼 슬프고 지치지 않는 이상 침대 위로 창문이 나있는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이렇듯 꿈에 나타나는 대극의 이미지는, 무언가의 시작과 끝처럼 서로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말하자면 양면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저는 현실에서도 정말 그 친구가 죽었다고 생각될 만큼 깊은 슬픔에 잠겼고 저만의 애도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어떤 행위를 하거나, 시를 쓰거나, 이야기를 만들어 보거나, 그림을 그릴 수도 있습니다. 제가 선택한 방식은 그녀에게 편지를 써보는 것이었습니다.
M에게
안녕 M, 정말 오랜만이네. H의 결혼식에서 볼 줄 알았는데 인연이 아니었는지 스쳐가지도 않았었지.
넌 내가 초등학교 시절 존경으로 우러러 보던 사람이었어. 전교 1등이고 피아노도 잘치고 눈처럼 하얗던 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아닌 나와 제일 친하게 지냈고 그것이 날 들뜨게 만들어 결국은 나의 실수로 우리 사이는 멀어졌지. 그 시절 나의 실수를 해명하고도 싶지만 너는 벌써 아이가 둘이나 있는 엄마가 되었고 나는 여전히 내 길을 헤매이고 있어.
얼마 전 너의 장례식에 갔어. 너의 죽음도 슬펐겠지만 네 두 아이가 엄청나게 걱정 되더라. 아주 슬퍼하는 나에게 네가 나타나 본인은 괜찮다며 위로해 주었지. 그게 이제 그만 타인을 걱정하고 나 자신을 돌보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어. 요즘 두 마리 고양이를 돌보고 있는데, 책임감이 막중하거든.
나는 가끔 너처럼 누구든지 우러러보는 삶을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나는 그 이상적인 삶, 흠결없는 삶이 더 이상 나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무심코 깨달았던걸까? 널 실은 관은 아주 새카맣고 거대했어.
침대에 누워 너의 죽음을 애도하며 하염없이 울었지. 침대 바로 위에 있는 천장에 네모난 창문을 통해 먹구름 가득한 흐린 하늘도 나와 함께 슬퍼하는 것 같았어. 나의 애도를 가족들도 조용히 존중해주었고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너와의 이별을 슬픔 속에서 받아들였어.
난 너처럼 완벽하고 똑똑하고 흠결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모두가 존경하고 우러러보고 사회적으로 우위에 위치한 삶, 지금 나는 지금까지 모아둔 돈을 끌어모아 외국에 나와 알바를 하고 다시 입시를 준비하고 있어. 한국에서 초라하게만 여겨졌던 나를 피해 도망을 갔어도 나는 여전히 초라한 것만 같아.
그래. 나도 너처럼 되고 싶었어. 그러나 내 삶은 그 시절로부터 이미 먼 거리를 떠나왔고 이제는 이것이 내 삶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거겠지. 그만 뒤돌아보고 내가 선택하고 후회했던 것들을 다시 살아내보는 삶을 말이야.
여전히 모두가 우월하게 바라봐주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살길 원해. 그러나 이 슬픔 속 애도가 모두 무사히 지나가고 나로서 살 수 있게 되길 바랄게.
혜린 씀.
꿈을 통해 그리고 의례를 통해 그 친구를 떠나보냈다고 해서 저의 삶이 갑작스럽게 변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무가 뿌리와 가지 하나하나를 뻗어내 수관을 이루듯이 사람의 무의식도 차츰차츰 자라나 마침내 하나의 모양을 이루는 것이라고 믿어요. 끝으로 저의 꿈 속 하늘을 향해 난 창을 연상시키는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작품 하나를 소개하며 이번호를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또 다른 꿈이 저에게 찾아온다면 보다 일찍 봽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견디기 힘들지 않은 여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 James Turrell Photo: Florian Holzher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