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
중 하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진흙탕 싸움'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에요. '이왕 끊어질 인연이라면 되도록 끝은 아름다운 것이 좋지' 정도가 아니라요, 지금까지 3n년 동안 거의 나쁘게 끝낸 인연이 없을 정도로 어떤 강박이 있었어요. 단 한 번도 누군가와 크게 소리치며 싸운 적도 없고, 이성을 잃고 할 말 하지 못할 말 다 쏟아내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관계를 끊을 때도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웃으면서 좋게 마무리했어요. 억울한 내 마음은 그냥 나 혼자 씹어 삼키더라도요.
참을성이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니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누군가가 나를 나쁘게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끝나고 나서라도 욕을 먹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좋게 말하면 '결벽'이고, 솔직히 말하면 '회피'예요. 지금까지 관계 안에서 어떤 문제를 인식했더라도, 그것에 대해 대화를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어요. 그렇다고 계속 참으며 인연을 계속 유지하기엔 너무 아프니까 내가 살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했죠. 결국 상대가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신뢰하고 기대했다가 실망하게 될까 봐 차라리 제가 먼저 도망치길 택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늘 그랬듯,
몇 년 전에 한 인연에도 그렇게 끝을 고했는데, 이번엔 쉽게 끊어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최근엔 기어이 '진흙탕'이 되고야 만 것 같아요. 새하얀 옷을 차려입고, 먼지조차 앉지 않게 조심하며, 순간순간을 즐기지도 못한 채 그 깔끔함을 유지하려고 애를 써왔는데...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와장창 진창에 처박힌 거죠. 그 과정 중에 상황을 잘 모르는 제삼자로부터 테러에 가까운 날 선 비난을 받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렇게 끔찍이 피하던 진창에 빠져 그것과 한 몸처럼 누워있는 지금 이 기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요 ㅎㅎㅎ
물론 이런 극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상담도 받고 약도 처방받고 내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건 다 했어요 ㅋㅋㅋ 그런데 웬 센 척이냐고요? 평생 그렇게 두려워서 벌벌 피해 다녔던 것 치고는 이상하게 견딜만 하다는 거죠 ㅎㅎㅎ 한숨 지나고 나니 오히려 이렇게 견딜만한 상황에, 견딜만한 수준으로 쏟아진 폭격에 고마운 마음도 들고요.
그리고 일단 일이 이렇게
돼 버리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어차피 한번은 이렇게 처박혔어야 했구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이렇게 바닥을 찍고 나서야, 최대한 나를 더럽히지 않으면서 내가 원하는 것만 쏙 얻으려던 그동안의 헛수고가 헛수고였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그로 인해 이제 새 국면이 펼쳐질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평생 꿈에서라도 마주칠까 두려웠던 진창이 사실은 이렇게 빠질만한 곳인 줄을, 그리고 여기에 다음 층으로 가기 위한 문이 있음을 여기 빠지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겠죠.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항상 즐겁지만은 않겠죠.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늘어날 테고요. 하지만 여기 누워있다 보니까요, 이번에 억지로 마주하고 사라져 버린 두려움의 빈자리에, 이런 생각이 들어왔어요. 앞으로 살면서 무언가가 내게 부딪칠 때, 이제 그것이 저를 그냥 통과하게 놔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요. 그로 인해 제가 크게 흔들릴지라도, 힘을 잔뜩 주고 버티기보다는요. 그게 오히려 덜 괴로울 것 같아요. 어차피 우주가 우리에게 던져 주는 것들 중에, 무엇을 얼마나 막을 수 있을까요? 우리 작은 몸으로, 손으로요. 그리고 우주가 늘 나쁜 것만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이걸로 배울 게 있으니 왔겠거니, 이게 지나가면 또 내가 그만큼 성장해 있겠거니 생각하면서 힘을 빼고 살아보면 어떨까 싶어졌어요.
구독자님은 두려워하는 게 있으세요? 여기 제 옆에 잠시 누워 보시는 건 어떠세요? 저기 연꽃도 피고🪷, 밤엔 별도 잘 보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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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니
'어차피 우주가 우리에게 던져 주는 것들 중에, 무엇을 얼마나 막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주가 늘 나쁜 것만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최근에 인생의 무작위함을 그냥 받아들여야겠다, 라고 생각을 했는데 비슷한 감정을 읽을 수 있어 더 와닿았던 ㅎㅎ 저 두려워하는 거 참 많은데, 일단 옆에 잠시 누워볼래요. 넘나들님의 세계 속에 있는 연꽃도 보고, 별도 보고 싶네요. :)
일상과 명상을 넘나들
왁! 무니님! 댓글 감사해용 ㅎㅎㅎㅎ 맞아요, 저는 운명론자이기도 하고, 자유의지를 믿기도 하는데요 ㅎㅎㅎ 우주가 던져주는 것을 골라서 받을 수 없다면(운명) 배달온 것들을 눈 앞에 두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는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힘을 잔뜩 쥐고 살 때보다는 바다의 물미역처럼 흐물텅흐물텅 사는 것이 덜 피곤할 것 같기도 하고요 ㅎㅎㅎ 무니님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셨다니 넘 신기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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