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제이에게

'힘내'라는 말이 무용할 때

2025.05.30 | 조회 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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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beat

남들이 다 가는 길은 지루하니까, 약간 어긋난 박자로 걷습니다.

5월의 마지막 금요일이야. 날씨가 점점 더워져서 나는 시원한 바람 아래서 편지를 쓰고 있어. 불과 지난주에는 뜨거운 바닐라라테를 마셨는데, 오늘은 차가운 바닐라라테를 마시고 있네.

 

날씨만 더워지는 게 아니야. 해도 점점 길어지고 있잖아.

제이, 너도 느껴져? 하루의 끝이 점점 더 길어지는 기분 말이야. 나는 이맘때가 늘 좋더라고. 아직 완전히 여름은 아닌, 아주 덥지도 않은 듯한 요즘의 날씨 말이야.

 

제이. 너는 힘내라는 말을 평소에 얼마나 자주 써?

나는 조금 습관적으로 힘내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지난주에는 오랜만에 동생을 만났어. 이런저런 이유로 몇 년간 못 만나다가 마침 동생이 서울에 출장을 왔다기에 만났지.

동생은 어느덧 어엿한 7년 차 직장인이 되었고, 적당히 둥글둥글해진 아저씨가 되어 있더라.

동생이 최근에 힘들어한다는 건, 마침 전해 들어서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애써 그 주제는 꺼내지 않는 동생에게 차마 힘내라는 말이 나오지 않더라.

 

그 말의 무게가 너무 가볍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사실 우리는 너무 쉽게 힘내라는 말을 쓰는 것 같아. 그렇게 느끼지 않니?

 

누군가 아플 때도, 직장에서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도, 심지어 약간 기운이 떨어져 보일 때도 그 말을 쓰지.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말은 아닐 걸 알면서도 말이야.

우리는 언제나 그런 약간의 어긋남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

 

왜냐하면, 그 말들에 일일이 대응되는 최선을 답을 해주기에는 나 또한 겨우 인간이니까. 그 모든 것을 당사자만큼 느낄 수 없고,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으니까.

게다가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어서, 어떤 날에는 완벽하게 이해하고 싶은 감각도 사라지잖아. 심지어는 힘든 얘기를 듣고 싶지 않은 날도 있고.

그러면 결국 우리는 대화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그저 힘내라는 말을 손 쉽게 뱉게 되는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위로하려고 했잖아, 라는 스스로에게 보내는 자기 위로랄까.

 

가끔은 힘내라는 말보다 그저 들어주는 것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고?

나도 결국 동생에게 힘내라고 말하지 않았거든. 대신 걔가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보고, 듣고, 또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했거든.

몇 년 만에 만난 동생에게 힘내라고 조언을 건네기에는 이제 나와 동생조차 너무 다른 인간이 되어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 이제 우리는 사는 세계가 완전히 달라졌구나. 그걸 직감적으로 느꼈어.

이렇게 친했던 사이를 하나둘 잃어버리는 걸지도 모르겠어.

 

제이. 너도 그런 과정을 지나왔어?

나도 알아. 우리가 영원히 천진난만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필연적으로 우리는 스스로 하나의 세계가 되잖아.

그래도 완전히 다른 세계에 진입했다는 걸 직면할 일은 없기를 바라고 있었어.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야.

 

나와 동생은 다시 또 서울에 출장 오면 만나자는 말로 황급히 헤어졌어. 동생이 집으로 가봐야만 했거든. 어쩌면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우리의 세계는 더욱 많이 달라져 있겠지. 어쩌면 평생 만날 일 없는 달의 뒷면같을지도.

제이. 우리의 세계가 완전히 다르더라도, 그저 옆에서 들어주었으면 해. 이해할 수 없더라도 말이야. 세상에는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게 더 많으니까.

 

힘내라는 말보다 어쩌면 그게 더 위로가 될 것 같아.

 

애나의 추천 목록

힘내대신 질문 1개 던지기

15초 침묵으로 끝까지 들어주기

 

P.S. . 답장은 고마웠어. 최근에 들었던 말 중 가장 위로가 됐던 말은 뭐였는지 답장 보내줄래?

 

Offbeat에서 5월의 마지막 금요일을 기다리며, 애나 씀.

 

이 편지는 애나가 제이에게 쓰는 레터입니다. 제이: 이 글을 읽는 모든 당신의 가명 애나: 글쓴이의 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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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0
    7 months 전

    애나, 너의 편지를 읽으면서, 그 말… “힘내”라는 말이 참 무심할 수도 있고, 어쩌면 애틋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 나도 꽤 자주 써. “힘내요.” “힘내라.” 가끔은 진심인데, 어떨 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꺼내는 말이기도 하지. 그러니까 어쩌면… 그 말은 상대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그 상황을 어떻게든 마무리하고 싶은 나 자신에게 던지는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더라고. 근데 너 말처럼, 그럴 때일수록 질문 하나, 그리고 끝까지 들어주는 침묵 15초. 그게 더 깊은 위로라는 거… 오늘 마음에 잘 새기고 간다. 나도 문장 하나 건네줄게. 최근 소중한 나의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너, 그냥 거기 있어줘서 고마워.” 그 말처럼, 나도 그렇게 있고 싶다.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옆에. – 제이.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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