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이에게

언제까지 성장해야 할까 묻는 너에게

2025.05.16 | 조회 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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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beat

남들이 다 가는 길은 지루하니까, 약간 어긋난 박자로 걷습니다.

5월의 한복판이다. 잘 지내고 있어?

처음 쓰는 편지라서 무척 긴장되고 떨린다. 너에게 어떤 말로 다가가야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 그러니까 조금 어색하고 서툴러도 이해해주길.

 

사실 언제까지 성장해야 하냐는 질문은 너의 물음이 아니야. 내 물음이었어.

결론부터 말할까?

나는 이제 성장에 지쳤어. 솔직히 말할게.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성장하라고 한다.

하지만 제이, 너도 알잖아. 우리는 계속 성장할 수 없어.

스물다섯쯤 되면 서서히 성장이 멈추고 그다음부터는 노화가 시작된대.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건, 성장이 아니라 필시 노화일 테지.

 

그런데도 다들 성장하라고 말하지.

근데 그 성장이 뭔지, 나도 잘 모르겠어.

그 말을 하는 사람들조차 그 뜻을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완전히 모르는 건 아니야.

실은, 그 말은 결국 하던 거 계속하라는 거잖아. 자전거 페달을 쉼 없이 밟는 것처럼.

 

제이, 너도 자전거 타는 법 잘 알지? 페달을 멈추면 자전거는 고꾸라지잖아.

그처럼 성장하라는 말은 멈추지 말라는 뜻인 거 같다.

직장을 관두지 말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뜻.

 

정말 그 말대로라면, 나는 성장한 걸까? 스스로에게 자꾸 그런 질문이 생긴다.

나는 부모님과 대화를 나눌 때 가끔 마음이 불편했어. 부모님의 말엔 늘 비교가 있었거든.

누구 아들, 누구 딸의 승진, 이직, 인상된 연봉…….

그런 얘기들에 나는 너무 쉽게 상처받았던 거 같아.

그런데 그 비교가 단지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거였다는 걸, 아주 늦게야 알게 됐어. 그 말들에 치이고 상처받고 나서야 말이지.

 

제이. 나는 12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건 번아웃이었어.

이른 아침, 출근 준비조차 힘들었고, 회사에 도착하면 무기력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어려웠어.

복사기까지 가는 것조차 벅찼으니, 말 다 한 거지.

그땐 그게 내가 게으른 탓인 줄 알았어. 일하기 싫어서 그런 줄만 알았지.

그게 번아웃의 증상이라는 걸, 퇴사를 결심하기 직전에서야 알게 됐어.

 

나는 왜 이럴까?’

끝없이 자책했어. 남들은 회사 다니며 대학원도 가고, 이직도 하고, 자격증도 따고, 부업까지 하더라고.

그런데 나는 겨우 회사 다니는 것도 너무 힘들었어.

 

다른 사람 좀 봐!’

나는 마치 부모님이 내게 하던 말을 내 자신에게 하고 있었어.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끝내 나는 회사를 그만두어야만 했어.

 

모든 게 멈췄다.

제이. 그다음에 내가 뭘 했는지 아니?

남들이 회사에 도착할 시간에 나는 일어나 공원에 갔어. 그리고 사람 구경을 했지.

놀랍게도 아무도 나에게 왜 회사 안 가요?’라고 묻지 않더라.

사람들은 그저 자기 속도로 걷고, 뛰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는 걸 그만두었어.

그 대신, 나는 나를 지키기로 했다.

충분히 햇볕을 쬐기, 많이 걷기, 푹 자기.

 

이건 성장도, 개선도 아니야. 그렇지?

남들이 보면 겨우 그런 거?’라고 할지도 몰라.

물 위의 오리는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 아래에선 쉼 없이 발을 움직이고 있잖아.

맞아. 제이. 나는 멈춰 있어. 하지만 나는 이 리듬대로 살아가기로 했다.

 

모두가 성장 중이라고 외치는 오늘, 나는 오히려 거꾸로 가보기로 했어.

연어처럼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기로. 그리고 잠시 멈춰 있기로.

그리고 내 멈춤이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언제까지 성장해야 하냐고 묻는 제이에게.

너에게도 부디 작은 멈춤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그래서 새로운 시작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P.S. 이렇게 써도 시건방지다고 속으로 욕하지는 않기를 바랄게!

 

Offbeat에서 너의 답장을 기다리며, 늦은 밤 애나 씀.

 

이 편지는 애나가 제이에게 쓰는 레터입니다. 제이: 이 글을 읽는 모든 당신의 가명 애나: 글쓴이의 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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