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제이.
언제나 오랜만인 것 같은 기분이야.
이제는 가을이 떠나가는 게 눈에 보여.
제이는 어때? 그동안 별일은 없었어?
나는 사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는데, 다 말할 수 없다는 게 조금 아쉬워.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많잖아.
당장은 얘기할 수 없는 일들.
누군가에게 공감받고 싶거나, 털어놓고 싶지만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이야기들 말이야.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일들이 점점 많아지는 걸 뜻하는 것 같아. 말하면 안 되는 일들이 늘어나는 것.
우리 집 아이는 네 살인데, 꽤 수다쟁이야. 쉴새 없이 조잘거리거든.
“나는 정말 힘이 세!”, “기차가 ‘부우웅’ 날아다녀!” 같은 가끔은 맥락을 이해할 수 없는 말들도 해. 그런데 또 그게 얼마나 귀엽고 생생한지.
이 모든 이야기도, 지금 내가 제이에게 편지를 쓰는 일도 결국은 손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
꽤 많은 일들이 손에서 시작되지.
편지는 쓰는 일, 누군가와 악수 하는 일, 그리고 핸드폰을 집고, 옷을 입는 일까지.
그 모든 일들이 손으로부터 시작되잖아.
그래서 이번에는 ‘손’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 사실 지난 편지에서도 말했지만, 이번 주제는 꽤 오래 고민했거든.
개인적으로는 ‘이불’ 이야기도 하고 싶었어. 왜냐면 나는 누워 있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
이불은 언제나 포근하게 감싸주잖아.
그런데 제이도 그런 이야기를 좋아할까? 잘 모르겠다.
그래서 결국엔 요즘 내 일상 속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것, 바로 손으로 정했어. 아주 단순한 이유야.
그런데 말이야.
왜 내 손이 일을 하는데, 어깨와 허리가 아픈 걸까?
아마도 몸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겠지.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리려면 팔이 움직여야 하고, 팔을 지탱하려면 어깨가 긴장해야 하고, 그 모든 무게는 결국 허리가 받아내니까.
손은 단지 시작점일 뿐, 결국 모든 일은 온몸으로 하는 거였어.
생각해보면 마음도 그런 것 같아.
기쁜 일이 생기면 손짓이 커지고, 슬픈 날엔 손을 꼭 쥐게 되잖아.
불안할 때는 손톱을 물어뜯기도 하고, 긴장하면 손에 땀이 나기도 하고.
손은 참 정직한 부위인 것 같아. 마음을 숨기지 못하거든.
얼굴은 웃고 있어도, 테이블 아래에서 꽉 쥔 주먹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가 있지.
그래서 누군가의 진심을 알고 싶다면, 얼굴보다 손을 보라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제이, 너의 손은 요즘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제이는 최근에 자신의 손을 자세히 본 적이 있을까?
손금을 볼 때가 아니라면, 아마 거의 없었을 것 같아.
나는 몇 해 전에 손금을 봤는데, 그때 사주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
“귀찮은 게 많네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 정말로 난 정말 귀찮은 게 많은 사람이거든.
손 이야기에서 이렇게 옆길로 샌 걸까? 아마도 그런 것 같아.
하지만 그것도 괜찮은 것 같아.
언제나 바른길로 간다면 새로움을 만날 수 없을 테니까.
제이가 잠시 옆길로 새더라도, 그 길 한복판에서 처음 보는 꽃을 만나길.
그리고 네잎클로버를 만나는 행운이 있기를 바랄게.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 계절에, 제이의 손에도, 마음에도 조금의 여유가 깃들기를 바라며.
애나의 추천목록
□ 건조하지 않도록 손에 핸드크림 듬뿍 바르기
□ 왼손으로 이름 써보기
P.S. 다음 편지에서는 ‘손을 잡는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 위로와 연결, 그리고 놓아주기까지.
Offbeat에서 손이 건조한, 애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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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애나! 이전의 편지는 읽지 않음으로 쌓여있어...미안해. 우선 메일함에 위에 있는 이 편지를 먼저 읽었어. 일하가다 집중력이 떨어져서 손이 딴짓을 하는데... 이 편지를 읽게 하네. 나도 최애의 거위털 이불을 덮고 자는데 커버를 씌우지 않고 이불집에서 산 그대로 포근함을 느끼면서 잠을 청해. 비뇨기과 의사가 커피와 술을 끊으라고 해서.. 우선 줄이는 것부터 실천하려고 해. 애나야, 나도 이렇게 저렇게 두서없이 이야기 하네. 다음엔 정신 차리고 회신할께. 제이가.
Offbeat
오랜만에 댓글 남겨줘서 고마워! 바쁘다보면 이전 편지를 못 읽을 수도 있지! 그래도 언젠가는, 어딘가에 닿을 거라는 마음으로 늘 쓰고 있어 :) 커피와 술을 끊으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갈까? 너무 어렵겠다. 차를 마시는 습관을 붙여봐야겠네. 원래 이런저런 두서없는 얘기하는 편지였으니까 괜찮아! 언제나 건강하길 바랄게. From 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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