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제이.
벌써 8월의 마지막 주가 됐네.
제이는 요즘 잘 지내고 있지?
늘 비슷한 말로 편지를 시작하는 것 같아. 그만큼 그동안 ‘잘 지냈을까?’라는 마음이 누적되어서 그런 것 같아.
나는 요즘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아마 다들 회사 말고는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사회 초년생 시절에 처음 얻었던 자취방이 떠올라.
4평도 안 되는 공간에 화장실과 싱크대, 냉장고가 옵션으로 있었지.
솔직히 그 공간은 ‘집’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곳이었어.
그 집에서 나는 자주 울었어. 왜냐면 너무 좁았거든. 30롤 휴지를 사서 둘 곳이 없어서 고민한 적도 있었어. 포기하는 것이 많아져서 쓸쓸했지.
그런데도 그곳에는 추억이 많았어.
밤늦게 혼자 영화를 틀어놓고 이불 속에 파고들어 보았던 기억, 행거에 걸린 옷에 냄새가 배도록 음식을 만들어 먹었던 기억도 있고.
그런 경험은 혼자 살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이야.
제이는 혼자 살아본 경험이 있어?
그 시간이 나중에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데에도 생각보다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아. 난 이런 게 싫은 사람이었구나.”하고 화장실을 바로 환기했던 날도 있고,
“이런 건 좋구나.”하며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를 마친 후 커피를 마시던 날도 있었다.
내 이름으로 주민세 고지서를 받았을 땐, 기분이 정말 묘했어. “내가 이 도시의 주민이구나. 나도 어른이 됐구나.” 하는 감각이 들더라고.
그 복잡하지만 미묘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
그래. 맞아. 오늘 나는 제이에게 ‘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우리가 집 대신 호텔에 머무는 이유가 있을까? 김영하 작가는 말했지. “거기엔 생활의 슬픔이 없기 때문”이라고.
맞아. 우리가 머문 집에는 생활이 있고, 슬픔이 있고, 기쁨도 있어.
그런데 집이 참 신기한 건,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드디어 집이구나.”하고 가슴이 놓이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이야.
우리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4평짜리 자취방이라 해도, 내가 살고 생활한 흔적이 남아 있다면, 그곳이 바로 나의 ‘집’이 되는 것 같아.
제이.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
사람이 떠난 집은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져도 금방 ‘폐가’가 되어 버리잖아.
어쩌면 사람과 집은 서로를 지켜주는 존재일지 모르겠다. 매일 창문 열고, 환기하고, 쓸고 닦고 하는 그 모든 일상들이 사실은 집과 나누는 ‘대화’같다는 생각.
4평이든, 40평이든, 그곳에 사람의 손길과 따뜻한 체온이 남아 있다면, 그곳은 바로 ‘집’이 되는 거야.
제이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 제이가 있는 그곳이 바로 충분한 ‘집’이 되어 주고 있기를 바라며.
애나의 추천목록
□ 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자리 찾아 10분 머물기
□ 창문 열고 집안의 공기 완전히 바꿔주기
P.S. 다음 편지에서는 ‘빈집의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게.
Offbeat에서 집의 온기를 느끼며, 애나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