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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세상이 끝난다 해도, 후회 없는 삶

3월 27일 :: 인터뷰_장재열의 사람책방

2026.03.27 | 조회 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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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장재열

오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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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단편적인 이력 몇 줄만으로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쉽게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미국 명문대 졸업', '뉴욕 사모펀드 출신', '스타트업 대표', '취미는 필라테스, 테니스, 성악, 기타, 오보에 연주'. 이런 키워드들을 쭉 모아 보면 어떠세요? 저는 솔직히 '있는 집 자녀'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사실 오늘의 인터뷰이 역시 겉보기엔 이런 이미지에 완벽히 부합합니다. 한국에 돌아온 지 이제 1년 남짓이라 영어 단어가 말투에 진하게 녹아든 청년. 고액 연봉이 보장된 뉴욕에서의 탄탄한 길을 훌쩍 버리고 한국에 돌아와, 누구보다 돈이 안 되는 일을 시작한 청년. 넘치는 에너지와 자신만만함으로 순식간에 기업과 국회, 거리를 누비며 정신건강 분야의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쉼 없이 만들어내고 있는 서른이 채 안 된 청년.

 

대체 그 엄청난 실행력의 바탕에는 무엇이 있었을지 궁금해 인터뷰를 시작했고, 눈부신 밝음이야말로 가장 깊은 어둠을 통과해 온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빛이라는 진리를 인터뷰 말미에 다시금 느꼈습니다. 내일 세상이 끝난다 해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 기어코 오늘을 사랑하기로 한 사람. 그녀의 이야기가 삶의 벼랑 끝에 선 누군가에게 다시 오늘을 살아낼 불씨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의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오프더모먼트

< 류혜원 (마인드풀커넥트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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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열(이하 장) : 안녕하세요. 독자분들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류혜원(이하 류) : 안녕하세요. 마인드풀커넥트의 파운더이자, 정신건강 생태계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은 '멘탈헬스 애드보케이트(Mental Health Advocate, 활동가)' 류혜원입니다. 우리나라 정신건강 분야에 없던 새로운 시도들을 해나가고 싶어요.

 

: 직함 빼고 '사람 류혜원'을 한 문장으로 소개한다면요?

: ... '행복을 좇는 사람', 혹은 '행복이 필요한 사람'이요.

 

: 의외네요. 이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분들은 이미 행복으로 꽉 차 있을 것 같거든요.

: 아뇨,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죠. 그런데 행복은 가만히 있는다고 유지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제게 행복의 동의어는 '감사함'이에요. 매일의 아주 작은 것들에 감사함을 느끼는 감각이 모여야 비로소 행복해지거든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그 감사함을 놓치지 않으려 쫓으며 살고 있어요.

 

: 처음 뵈었을 때 느꼈던 밝고 활기찬 에너지의 근간이 그 '감사'의 힘일까요? 취미도 굉장히 많다고 들었어요.

: 맞아요.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취미 활동을 많이 했네요. 발레, 피겨, 테니스, 농구, 풋살, 클라이밍, 수영, 그림에 악기도 기타, 피아노, 오보에, 바이올린, 성악까지... 혼자서 오케스트라를 할 수 있을걸요. (웃음)

 

: 그러네요. 호기심이랑 실행력이 둘 다 있어야 가능한 일일 거 같은데, 커리어에서도 그런 기질이 나타난 것 같아요. 경영학을 전공하다 의료경영학 석사로 훌쩍 점프하신 것도 독특했거든요.

: 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해봐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사실 경영학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하나를 못 고르겠어서 택한 가장 범용적이고 안전한 선택지였어요. 그러다 코로나 시기에 우연히 적십자 헌혈 센터에서 봉사를 하게 됐죠. 간단한 봉사이긴 했어도,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체감하는 게 참 큰 충만함을 주더라고요. 그러다 방학 때 한국에 와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를 뵈었는데, '가족이 아무도 곁에 없는데, 만약 주말에 할머니 댁 불이 나가면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월요일까지 어둠 속에 계셔야 하나?' 싶었어요. 미국엔 즉각적 케어가 가능한 시니어 리빙 커뮤니티가 보편화되어 있거든요. '내가 이걸 한국에 들여오고 싶다'는 생각에 그 길로 의료경영 석사를 결심했어요.

 

: 처음부터 정신건강 문제로 시작한 건 아니었네요? 그나저나 현상을 보고 의문이 들면 바로 직진하는 불도저 같네요. 리스크를 계산하거나 두렵다거나 하지는 않았나요?

: 저는 리스크보다는 제가 얻을 것, 하고 싶은 것에 시야가 맞춰져 있어요. 특히 제 인생관을 완전히 바꾼 계기가 이태원 참사였어요. 제가 많이 동경하던 언니가 그날 세상을 떠났거든요. 그때 가치관의 전복이 일어났죠. 죽음이 곁에 있다는 걸 느끼게 되고요. ', 내가 내일 죽더라도, 적어도 해보지 못한 도전 때문에 후회하며 눈을 감고 싶진 않다.' 그 생각 이후론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고,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재지 않고 바로 실행해요.

 

: 후회 없이 오늘을 태우는 불나방 같군요. 그런데 솔직히 독자들이 이쯤에서 약간의 괴리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게, 어릴 적 미국 유학을 가고, 다양한 도전을 하고,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드는 실행력. 뒤집어 보면 '실패해도 돌아갈 든든한 배경과 타고난 자존감이 있는 금수저의 도전기'처럼 읽히지 않을까 싶거든요.

: 겉모습이나 에너지만 보면 그렇게 보실 수 있죠. 환경적으로 아주 가난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제 내면은 단단함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오히려 정반대였죠. 오랜 시간 '내일 당장 차 사고가 나서 죽어도 상관없다', '오히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살았고, 극단적인 시도도 했어요. 제 내면은 완전히 부서져 있었고, 우울증도 심각했어요.

 

: 지금 모습을 보면 전혀 상상할 수 없거든요. 어린 시절에 어떤 아픔이 있었나요?

: 10살 때 뚜렛 증후군(틱장애)가 찾아왔어요. 제가 잘못한 게 아닌데 증상이 밖으로 드러나잖아요. 특히 중학교 시절에 친구들의 수군거림과 친했던 친구의 배신으로 겪은 고립감이 제 자존감을 팍팍 깎아내렸어요. '나는 왜 이럴까, 왜 티가 날까' 하며 스스로를 혐오하다 숨이 막혀 도망치듯 다시 미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 하지만 타국이라 더 힘들었을 것 같기도 한데요.

: 맞아요. 도피성으로 갔지만 막상 유학생들 사이의 미묘한 관계 속에서 제 치부와 우울을 털어놓을 '안전한 관계'는 없었어요. 부모님껜 걱정 끼치기 싫어 숨겼고요. 사실은 말할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어서 아까 말씀드린 음악이나 스포츠에 미친 듯이 집착했던 거예요. 몰입하는 그 순간만큼은 증상도, 우울한 생각도 잊을 수 있었으니까요. 취미가 아니라 '탈출구'였던 셈이죠.

 

: 그랬던 분이 어떻게 지금은 환하게 웃으며 정신건강을 외치는 활동가가 되었나요?

: 상담이었어요. 막상 가려니 낙인과 시선이 무서워서 당일 취소한 것만 10번이 넘어요. 11번째 예약을 앞두고 저처럼 우울증을 앓았던 친한 언니에게 또 취소할까 봐 겁난다고 했더니, 정색하며 "절대 안 돼. 내가 내일 아침에 널 끌고서라도 갈 거야" 하더라고요. 다음 날 진짜 언니에게 억지로 등 떠밀려 갔는데, 첫 세션에서 제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이 딱 한마디 하셨어요. "혜원 씨, 그동안 엄청 고생했어." 그 공감 한마디에 제 안에 쌓여있던 댐이 무너져 내리며 엉엉 울었죠. 그날을 계기로 삶이 방향을 틀기 시작했어요.

 

: 참 고마운 귀인이네요. 하지만 상담의 위로와 인사이트만으로 삶 전체가 마법처럼 바뀌진 않거든요. 당사자의 실천도 중요한데, 그 이후에 스스로 어떤 행동을 했길래 지금의 단단함을 얻었을까요?

: 저는 뭘 하든 일단 꾸준히실천했어요. 당시 페이스북에 유행하던 '거울 보며 자기 칭찬하기'를 했는데, 진짜 매일 아침 했어요. 매일. 스스로 안아주며 "혜원아, 넌 정말 귀한 사람이야. 오늘도 고생했어"라고 말해줬죠. 처음엔 미칠 듯이 수치스러웠는데, 매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 말이 제 안으로 스며들더라고요. 감사 일기도 꾸준히 썼어요. 그렇게 사소한 감사의 마일리지들이 쌓이다 보니 문득 '? 나 지금 좀 행복한가?' 싶었어요.

 

: 10대 내내 잊고 살았던 '행복'이라는 감각이 되살아난 거네요.

: 맞아요. 7살 이후로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다고 믿었는데, 내 안에 행복을 느낄 힘이 남아있다는 걸 깨달은 거죠. 이후 저를 아프게 했던 사람들을 '용서'하는 과정을 거치며 우울의 뿌리였던 미움을 내려놓자 비로소 자유로워졌어요. 앞으로 어떤 시련이 와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니까, 저를 도망치게 만들었던 한국의 '정신건강에 대한 부정적 낙인'을 제 손으로 바꿔보고 싶어졌어요. 그게 제가 모든 걸 뒤로하고 한국에 돌아올 만한, 가장 확실하고 가치 있는 이유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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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고액 연봉의 탄탄한 직장을 버리기가 쉽진 않았을 텐데요.

: 감사하게도 은인을 만났죠. 제가 일하던 뉴욕의 사모펀드 고문이셨던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님과 정신건강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었어요. 회사 업무 외의 일들도 자발적으로 총재님과 함께 기획해 보고, 그 과정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줬죠. 결정적으로 제가 기존에 입사하려 했던 미국의 대기업이나 컨설팅 회사에 대해서 "네가 실패할 일이 없는 곳이다. 실패하지 않는 환경보다, 실패할 수 있는 환경이 너에게 자산이 될 거다"라는 총재님의 말씀이 제게 확신을 주었어요.

 

: 한국에 와서 시작하셨던 '마음 온 스테이지(오픈 마이크)' 프로젝트는 저도 방문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정말 많은 청년들이 생각보다 아주 깊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10살 이전부터 자살 시도를 했다는 소아우울증 청년 등 깊은 이야기가 오가서 놀랐어요.

: 유학 시절 제게 가장 간절했던 게 '내 마음을 안전하게 털어놓을 곳'이었거든요. 아는 사람에겐 오히려 말하기 힘든 치부가 있잖아요. 익명의 누군가에게 내 상처를 꺼내놓고 공감받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사실 한국에 와서 첫 6개월은 눈에 띄는 성과가 없어 스스로 소진되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그 프로젝트 날 무대에 올라 떨리는 목소리로 상처를 고백하는 지체장애인 분, 가정폭력 피해자분, 자살시도에서 치열하게 살려고 애쓰는 청년분들을 보며 그 용기에 눈물이 났어요.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구나' 하는 엄청난 에너지가 충전됐고, 그 사실 하나가 제 모든 번아웃을 씻어내 주더라고요.

 

: 참 한국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시도이자 경험이었어요. 그나저나 저는 이것도 궁금해지네요. 양국의 문화를 다 겪어본 입장에서, 지금의 한국 사회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 사람들이 정말로 내게 무엇이 중요한지 찾을 '여유'가 없는 것 같아요. 무한 경쟁 속에서 남들과 비교하고, 타인의 승인(Approval)을 받아야 안심하는 분위기가 숨 막히게 하죠. 내 결정에 스스로 확신을 갖는 게 멋진 건데, 우리 사회가 그걸 허락하지 않는 느낌이에요.

 

: 그런 한국 사회에 앞으로 어떤 변화들을 만들고 싶나요?

: 가장 먼저, 정신건강에 대한 낙인을 줄이고 싶어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숨겨야 할 약점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삶의 한 과정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으면 하거든요. 감정을 자연스럽게 나누고,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지길 바라는데,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정책이나 의료 영역을 넘어, 문화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정신건강을 문화 예술의 언어로 풀어가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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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를테면 어떤 것들이 있나요?

: 지난해 11월에는 광화문에서 마음 온 스트리트멘탈헬스 팝업을 열었는데요. 조금 더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해볼 수 있는 심리 체험이라던가 마음 키링 만들기를 시민들과 함께했고요, 1MILLION 댄스 스튜디오의 리아킴, 하리무 댄서와 함께 우울증을 경험한 MINDSOS 커뮤니티 참여자들이 3주간 연습해 광장에서 댄스 공연을 함께 선보이기도 했어요.

 

: 우울증을 경험한 분들이 광장에서 춤을 춘다, 그분들께도 보는 분들께도 큰 체험이었을 거 같아요.

: 맞아요 정신건강이라는 단어를 무겁게 꺼내는 대신, 몸과 예술을 통해 자연스럽게 경험하고 회복과 연결을 만든 시도였고요. 올해는 9월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마라톤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 개인적으로는 청소년 정신건강에 더욱 집중해서, 제가 청소년이었을 때 누군가 만들어주길 바랐던 안전한 공간과 도움의 구조를 직접 만들어가고 싶다는 마음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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