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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남을 선택한 적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

4월 1일 :: 그럴 수도 있는 생각 일기

2026.04.01 | 조회 1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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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안단테

오늘의 편지

 

일교차가 큰 날들이 반복되니 잘 안 걸리던 감기에 걸려 며칠 고생을 했습니다. 구독자님은 아픈 곳 없이 지내고 계신지 모르겠어요. 이번 감기는 꽤 독하게 만나서 몇 년 만에 수액까지 맞으며 고생을 했는데요, 컨디션이 안 좋으니 '아니, 날씨가 왜 이래.', '기온이 이게 맞아?' 불평을 하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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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순간 '아... 이 시기가 지나야 봄이 오는 거였지. 그래서 환절기라고 하는 거지.'라는 당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겨울을 지나 봄을 만날 때도, 여름을 지나 가을을 만날 때도 환절기를 겪으면서도 매서운 추위를 녹여주고, 타는 더위를 잦아들게 해주는 그 고마움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저 환절기마다 찾아오는 알레르기나 옷차림 같은 작은 불편함에 타박만 늘어놓았더군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완연한 봄을 기다리며 실컷 설레보려고 합니다. 구독자님도 달라진 햇살을 만끽하며 따스한 환절기를 보내시기를 바라요.

 


 

안단테의 그럴 수도 있는 생각 일기

 

잔소리 메뉴판

 

십여 년 전 명절을 앞두고 ‘잔소리 메뉴판’이라는 것을 보며 감탄(?)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는 꽤 익숙한 이미지로 남은 것 같아요. 성적은 어떠한지, 대학은 어디에 지원하려는지, 취업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 연봉은 어떤지와 같은 생애 주기별 매우 촘촘하기까지 한 잔소리의 리스트에 한발 더 나아가 외모 지적이나 애정 문제까지 참 다양하기도 합니다.

 

일 년에 한두 번 명절이나 되어야 만날까 말까 한 [가족]들이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던지는 불편한 말들이지요. 그 스트레스가 사회 구성원 전반의 임계점을 넘겼던 것 같습니다. 잔소리할 거면 메뉴판 보고 정해진 값이라도 지불하라는 촌철살인의 아이디어였습니다. 물론, 일면 씁쓸하다는 인식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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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는 사회에서 그 질문들은 [완전한 타인]에게는 감히 던지기 어려운 무척 무례한 문장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쉽게 묻곤 했습니다. 정말 궁금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 한들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말이지요. 도대체 가족이 뭐길래 우리는 그 무례를 적당히 받아넘기거나 참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족이 뭐길래

 

가족이 뭘까요? 언제나 그렇듯 사전적인 의미를 찾습니다. 그리고 또 늘 그렇듯 사전의 정의는 의외의 지점을 보입니다. 국어사전에서 가족을 검색하면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부부는 [남편과 아내]를 이르는 말이라고 하고요. 우리나라에서 가족이란 전통적으로는 남편과 아내를 중심으로 파생되는 관계 집단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혈연은 그 뒤를 따릅니다. 선택하지 않았던 관계가 가족의 시작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관계가 내 가족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언제나 혈연이 최우선이었다고 할까요? 최소한 80년대 태어난 저는 그런 분위기 안에서 자라왔습니다.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자랐던 유년기를 지나 청소년기에는 분명 무언가 맞지 않음을 느끼며 안팎으로 많은 부침을 겪어왔고요. 모든 사람에게 각자가 가진 상황과 삶이 있으니 특별하지 않은 인생은 없겠지만, 저 역시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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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대 생인 양가 조부님들을 시작으로 제 부모 세대의 모든 일가친척이 인서울, 해외 대학을 졸업한 꽤 ‘엘리트’라고 부를 수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구성한 작은 사회에서 유년기부터 [잔소리 메뉴판]에 등장하는 질문들을 빠짐없이 받으며 자랐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정말 숨이 턱턱 막히는데 그때는 그저 당연한 것들이라 여기며 치열하게 스스로를 키운 거지요. 그분들은 내가 선택한 적 없는 가족인데 말입니다. 물론 단점이나 어려움만큼 혹은 더 많은 장점이 있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많은 것을 누렸다고 해서 과정의 모든 것이 좋을 수는 없다는 것을 공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태어남을 당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 내 가족

 

성인이 되면서부터 가족과 나를 점점 더 분명하게 구별하고 구분 지으며 살았지만,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내가 선택한 가족]에 대한 고민까지 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결혼과 출산을 지나며 [선택한 관계와 선택으로 인한 관계]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조금씩 더해간 것 같아요.

 

그 생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출산이었습니다. 인생 고난 TOP5에 꼽을 만큼 힘들었던 시절에 찾아온 임신과 출산은 저를 살게 하는 유일한 이유였습니다. 지금 당장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존재함에 어떤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던 시기에 만난 작고 힘없는 이 생명은 분명 나의 돌봄과 보호가 필요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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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감각적으로 느끼던 문제의식은 이 친구와 함께하며 정리가 되어갔습니다. 배우자는 내가 스스로 선택한 가족이었고, 그와 나는 임신과 출산도 선택했지만 이 아이는(결국 지금 우리 모두는) 탄생을 선택한 적이 없습니다. 탄생도 선택한 적이 없는데 가족을 선택할 수 있을 리가 없지요. 자칫하면 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행복을 내가 망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이 사람이 성인이 되어 억울함과 원망과 분노를 토해낼지도 모른다는, 감히 내가 그 단초를 줄 수도 있다는 큰 두려움이었습니다. 달리 생각하면 나와 나의 배우자가 어떤 태도로 이 아이와 살아가는지에 따라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갈 수도 있겠지요. 다만 저는 이 두려움을 잊지 않고 살기로 했습니다.

 

태어남을 당한 우리 모두는 첫 숨을 뱉은 순간부터 완벽하게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혈연], [가족]이라는 구분 단위는 사회문화적 상황과 교육에 의해서 그 테두리 바깥의 사람들보다 훨씬 크고 깊은 상처를 심지어 더 쉽고 반복적으로 낼 수 있는 존재들이기에 가장 보수적인 기준으로 최대한의 예의와 존중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미숙하고 언제나 흔들릴 수 있습니다. 설령 우리가 때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어느 날 무례했더라도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존중하고 나와 다른 인격체임을 철저하게 인식하며 공유하는 삶에 대한 예의를 찾아 돌아간다면, 어느날에는 수많은 에피소드를 담은 편안한 안식처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가족, 그 온전한 완결

 

선택할 수 있는 가족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법적 배우자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동반자로서의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해 공감하고 지지합니다. 다만 자녀로 태어남을 당한 우리들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법적 배우자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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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배우자를 선택해서 가족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선택한 관계이자 가족의 정의의 시작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저는 그 자체로 더 이상 확장될 이유가 없는 완결된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은, [내가 선택한 관계]에서 완결성을 가질 수 있어야 서로에게 사랑과 책임을 다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는 출산을 선택하지 않은 가족을 [딩크]라고 구분할 것이 아니라 출산을 선택한 가족에 대한 명칭을 찾는 것이 오히려 두 개념 모두에 대한 존중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얼마 전 대학시절의 친구를 무척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배우자의 직업 특성상 세계 어디든 정착해서 지낼 수 있는(혹은 그래야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어요. 곧 또 다른 나라로 간다는 그의 이야기에 무의식적으로 ‘아이코... 해외 이사라니 이것저것 정말 힘들겠다.’고 말한 저에게 가뜬한 표정으로 말하던 그의 말에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짐이랄 것은 별로 없어. 그게 어디든 그가 있는 곳이 내 집이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그래.'

 

얼마나 든든하고 따스하며 안정을 주는 [가족]인지 더 이상의 어떤 설명도 필요하지가 않았습니다. 어쩌면 [가족]이 닿아야 할 가장 이상적인 지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맞고 틀림이나 낫고 부족함은 없습니다. 모두의 삶이 다르고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니까요. 그러니 ‘세상에... 저게 맞지! 우리는 못 그러는데... 부럽네.’라고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아름다운 마음과 관계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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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감히 이 한 문장이 태어남을 선택한 적 없는 모든 생명이 다른 생명을 선택해서 만든 [가족]이라는 형태의 가장 온전한 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즌 2도 스핀 오프도 가능하겠지만 그 하나로 이미 완전한 이야기인 것이지요.

 

마치며

 

불편할 수 있는 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에도 내 것이 아닌 생각을 쓰거나, 아닌 척할 수 있는 사람은 못 되어서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게 이야기를 풀어보았습니다. 불편하더라도 불쾌하지는 않기를 바라고 혹여 누군가에게 작은 생채기라도 내지 않았기를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그저 안단테라는 한 사람의 그럴 수도 있는 생각 일기로서만 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각자의 일상에서 고된 일, 즐거운 기억, 아픈 관계, 치유의 순간들을 빠짐없이 살아내고 있는 우리 모두를 언제나 존중하고 응원합니다. 다만 가능하다면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더 행복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요.

 

언제 어디서 마주쳐도 우리가 서로에게 따뜻할 수 있기를, 그 마음 그대로 우리의 가족에게 오늘 이 순간 잠시라도 그럴 수 있기를 바라며 누군가의 노래처럼 다정하게 안녕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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