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의 말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그거면 돼요."
한번은 다니고 있는 회사의 직원이 물었습니다. 편선은 음악을 오래 만들어왔는데 지금은 만드는 일 말고 다른 것들 하니까 혼란이 있다거나, 힘들진 않아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혼란스럽던 적도 있고, 조금 힘들었던 적도 있는데, 그냥 지금은 이게 다 음악을 하는 일이라 생각해요. 음악을 넓게 하고 있는 것이고, 그 끝에는 어쨌건 음악이 있을 거라고 믿어요.
속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는 걸 친구들끼리 농담처럼 주고받곤 했는데 돌이켜보면 그 언덕은 누가 지어주는 것도,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그 자리를 직접 만들어보고자 했습니다.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 놀 수 있는 자리, 들려줄 수 있는 자리, 보고 싶은 자리.
이미 전에 다른 일로 메일링을 만들었다가 금세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잘 해보고 싶은 마음에, 오소리웍스를 함께 하고 있는 용성에게 편집인을 제안했습니다. 물론 그래도 흐지부지해질 수 있겠지만. 그런데 흐지부지해지는 모든 것들이 꼭 나쁜 건 아니니까요. 한 살 씩 먹을수록 큰 이야기는 하기 싫어져요. 그저 하는 동안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그거면 돼요.
어떻게 글을 마무리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올해 초에 만든 오소리웍스의 슬로건이라도 보실래요? 만들었는데 아무도 좋아하지 않아서 공식 슬로건이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한 대사를 따온 것이랍니다.
"전 국민의 가슴 속에 인디팝을 뼈저리게 심어줄 수만 있다면 내 한 몸 썩어 문드러져도 한이 없다."
제 마음이에요.
🍔단편선
편집인의 말
🐮오일링 어떤 거다 대강 쓸 예정
안녕하세요. "나의 서재필이 되어줄래?"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에 코가 꿰인 천용성입니다. 뭐, 이참에 인디 이모작에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요. 주말엔 가수로, 평일엔 편집인으로.
오소리웍스는 김일성이 죽던 해의 제작을 계기로 설립된 음악 프로덕션입니다. (자세한 소개는 여기) 음악가이자 프로듀서인 🍔단편선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는 음악을 만들자는 포부로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에이전시를 표방했고, 현재는 ― 레이블이라는 오해를 피해 ― 프로덕션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음악과 관련된 모든 일을 합니다.
🐮천용성, 🐚전복들, 🐤전유동, 😙후하, 🦋보일, 👴그들이 기획한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올 한해 많은 음악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천용성 정규 2집 《수몰》, 전유동의 싱글 〈디플로도쿠스〉 및 EP, 후하의 EP 《Spring》, 보일의 정규 1집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정식으로 사업자 등록도 할 예정이고요. 오소리 원년이라 불러도 가히 부족함이 없을 것 같네요.
오일링Oiling은 오소리웍스에서 제공하는 메일링 서비스입니다. 일단은 문예지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재주藝 부리는 사람들의 글文을 모았으니 크게 틀리지는 않겠지요. 실상은 동인지에 더 가깝습니다. 음악 동인이 모여 내는 글이니까요. 그렇지만 동인지에 으레 있기 마련인 💕격정 멜로 ― 천용성x단편선이라든가, 전유동x참새라든가 ― 를 연재하기에는 필력이 다소 부족한 전차로. 네, 일단은 문예지입니다.
매주 화요일 발행 됩니다. 🐤전유동의 동식물 탐구기 『새사람』을 시작으로 🐚전복들 👶고창일의 육아일기 『기타팝파』, 😙후하의 잡다한 일상 이야기 『클럽 후하우스』, 🐮천용성의 심층 인터뷰 『겉핥기』가 돌아가며 연재될 예정입니다. 매월 1회 부록으로 특별음원이 제공될 예정입니다. 가끔은 외부 필진의 원고도 실으려 합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과 저희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가능한 최선의 것을 담아보려 합니다.
이주의 코너는 🐤전유동의 『새사람』 1화 「어떤 이름」입니다. 유동 씨가 첫 순서인 것은 지난 세 달간 팔로워가 200% 증가한 오소리웍스의 라이징 스타, 오소리웍스의 미래 먹거리이기 때문입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자는 얄팍한 전략이지요. 인스타 라이브에서 다 하지 못한 유동 씨의 이야기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천용성
전유동의 동식물 탐구기 새사람#1
🐤어떤 이름
새의 이름은 새의 생김새와 새의 종이 대개 포함되어 불린다. 오색딱다구리, 회색기러기, 붉은배새매, 검은등뻐꾸기 등 익히 알고 있는 새들의 이름이 그렇다. 새를 동정(同定)하거나 관찰할 때 이러한 작명은 새를 쉽게 알아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렇기에 새의 이름을 짓는데 학술적으로 많은 고민이 담겼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새의 이름을 들으면 정이 없고 딱딱하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새로운 싱글의 앨범 표지를 그려주실 희박 작가님을 만났다. 내게 어떤 느낌의 그림을 원하는지, 노래가 담고 있는 이야기들과 경험을 질문하셨고 작가님의 그림들도 보여주셨다. 작가님의 그림에는 여러 가지 주제가 있었는데, 그중 식물과 새가 그려진 그림들이 인상적이었다. 새를 좋아하는 나는 티를 엄청나게 내며 “이 새는 어떤 새에요.”, “이 새는 실제 있는 새에요.”라고 조잘댔다. 그러다가 작가님이 다른 그림을 보여주시며 이 새는 멋쟁이새라고 말씀해주셨다. 새를 검색하니 제일 먼저 나왔다는 그 새는 참새목처럼 생기고 부리가 짧고 둥글어 되새나 콩새 같았다. 예쁜 새를 보시고 멋쟁이라고 하시다니 나도 내가 아는 새 중 멋쟁이 리스트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있는 새라고 말씀하셔서 화들짝 놀랐다. 스마트폰에 있는 새도감(한국의 새)을 검색해보니 실재하는 새였다. 작가님과의 미팅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멋쟁이새를 검색하고 눈에 담았다.
멋쟁이새는 참새목으로 참새목의 여느 새들처럼 크기가 비슷하다. 겨울 철새로 흔하게 볼 수 있는 새는 아니었다. 수컷은 턱밑에서부터 동그란 머리 뒤까지 검은색이고 멱과 뺨은 붉은색인데 마치 주황색과 분홍색을 합쳐놓은 색 같다. 꼬리와 날개는 검은색이고 날개에는 회색 띠가 있다. 허리는 흰색이다. 암컷은 붉은 색이 없고 배와 등이 갈색을 띈 회색이다.
성의 없어 보이는 안일한 작명과 귀엽고 아담한 외관의 멋쟁이새를 보며 이름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멋쟁이새의 영명 Bullfinch에서 Bull의 의미를 떠올렸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다트의 정중앙을 뜻하는 Bull이었다. 멋쟁이새의 멱에 있는 붉은 색깔이 마치 다트 정중앙에 새빨간 Bull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멋쟁이 새의 이름에 대해 지인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설은 누가 썼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전유동이 그랬다고 하시면 안 된다. 이건 엄연한 추측이다. 그럼 일반적인 새의 이름처럼 지어본다면 붉은목되새가 어울릴 것 같은데 어째서 멋쟁이새라는 이름을 지었을까? 멋쟁이새에게 미안하지만 멋쟁이새만큼 멋진 새들이 우리나라 텃새, 철새 중에서 많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원앙과 흰눈썹울새, 검은어깨매 등의 새들이 그렇다. 비교해 보면 그다지 멋지지 않은데 왜 멋쟁이새라는 이름이 학술적으로 지어지고 통용되었는지의 이유를 가늠해보고 싶다.
나 자신을 설득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멋쟁이새의 멱에 있는 색깔을 한국어로 옮기기 쉽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앞서 말했듯이 새의 생김새를 이름 안에 넣는데 멱에 있는 붉은빛이 무슨 색깔인지 어떤 색과의 조화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디자이너 또는 그림을 그리시는 분들은 저에게 알려주세요) 학자들은 간결하게 명명할 수 없는 색으로 혼란스러워하다가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수컷의 색이 아주 멋진 색이니 멋쟁이새로 합시다!”(박수갈채)
얼마 전 문래에 있는 재미공작소에서 공연을 하고 한 관객분이 선물을 준비하셨다면서 직접 만든 스티커를 주셨다. 8마리의 새가 그려져 있는 스티커들 사이에 멋쟁이새가 있었다. 나는 너무나 반갑게 멋쟁이새의 이름을 외쳤다. 이렇게 멋쟁이새를 만날지 예상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차근히 받았던 선물들을 정리하며 멋쟁이새를 다시 봤다. 멋쟁이, 멋쟁이 부르다 보니 문득 정말 멋져 보였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고 무채색의 몸 가운데 피어난 붉은 빛이 절제된 아름다움처럼 느껴졌다. 허세 없이 무뚝뚝하게 자신의 매력을 지나침 없이 표현하다니! 물론 우리 멋대로 멋쟁이새라고 부르고 있다는 맹점이 있다. 멋쟁이새는 자신 나름의 이름으로 야생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우리끼리 멋쟁이새 자신이 멋쟁이인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한들 아무 의미가 없지만, Bullfinch를 멋쟁이새라고 부르며 변화했던 나의 감정들은 큰 의미가 있었다.
멋이라는 단어가 미적인 관념이나 형태를 나타내는 만큼 포괄적인 개념이라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멋의 이유도 다양할 수 있다. 겸손한 멋, 잘생긴 멋, 절제하는 멋, 쾌활한 멋. 이렇게 긍정적인 이유가 멋에 포함된다면 나도 멋쟁이가 되고 싶다. 왜 멋이 있는지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지 못해도 멋쟁이라 불리니 멋있는(멋있어 보이는) 멋쟁이새처럼 타고난 멋쟁이는 될 수 없지만, 여전히 자존감이 부족한 나를 멋쟁이라고 부르면 나도 멋쟁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멋쟁이새가 만약에 붉은목되새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면 과연 어땠을지 궁금하다. 새를 좋아하는 나는 붉은목되새보다는 참새가 더 예쁘다고 말하겠지만 멋쟁이새를 처음 알게 된 사람이라면 어떨까?
조금 멍청하고 극단적인 이야기를 오래 했지만, 멋쟁이새가 붉은목되새가 된다 해도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아름답고 귀엽고 멋진 새로 기억에 남을 수 있다. 어떤 이름이든 스스로가 가진 멋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스스로가 인지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변수이지만 우리 개개인도 멋쟁이새처럼 불충분한 설명에도 충분히 멋쟁이라 불릴 수 있다고 믿는다.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멋쟁이라 불러드립니다. 왜 멋있는지 이유를 설명하라고 한다면 위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멋쟁이 짹!
🐤전유동
이달의 📺오소리뉴스📺
🐮천용성 @yongsung000
[공연] 4/17(토) 카페언플러그드 (with 복다진)
🐚전복들 @cosmic_abalone
[음반] 3/19(금) ~ 4/9(금) 전복들 EP 《전복코믹스》 발매 후원 텀블벅 (링크)
🐤전유동 @jeonyoodong
[음원] 4/14(수) 디지털 싱글 〈디플로도쿠스〉 발매
[공연] 4/18(일) 카페언플러그드 (with 예람)
🌟별책부록🌟
아래의 링크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s://soundcloud.com/osoriworks-production/cosmic-abalone-kouchaoji-2019-demo
댓글 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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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
고품격 문예지 창간특대호에 달만한 고품격 댓글이 떠오르지 않는것이 원통함.. 점심시간 읽기 가볍고 좋았음.. 부디 흐지부지해지지 않고 작은 이야기라도 계속 들려주시길 홍차왕자 대박나세요~
대구자전거동호회
홍차왕자는 딸애가 커서 홍차왕자랑 연애하는걸 상상하며 쓴 곡입니다. 이런 사연들도 아무 생각없이 하다보면 말과 글이 떨어지는 날은 안올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품격 높여 다음호에서 뵙겠습니다(는 부담이 어마하네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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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joara
제가 좋아합니다 오소리웍스 공식 슬로건, 동인지보다 문예지라니....(뭐지 나 왜 실망하지),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오소리의 미래 먹거리 전유동.. 새 이름 하나하나 검색하게 하는 그의 능력은 대체 어디까지인가, 저도 멋쟁이인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지 못해도 멋쟁이라 불려서 멋있어 보이는 멋쟁이새처럼 타고난 멋쟁이는 아니지만 멋쟁이라고 불려서 멋쟁이가 되고 싶은데 그것이 정말인지 믿지 못하겠으니 라방에서 왜 멋있는지 다시 장황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상, 이달의 오소리뉴스와 별책부록까지 깔끔하게 정돈된 오일링 서비스를 읽고 격하게 감동받아 내적 쌈바댄스를 추며 환호를 지르고 있는 구독자의 감상 댓글이었습니다. 결코 미약하지 않은 시작이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개개비오촌당숙
아름아름거리며 내 속을 게워내지 못하는 아름아름님 ! 왜 멋쟁이이신지 제가 곧 알려드릴게요 :)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도 기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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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년
멋쟁이가 되고 싶어요.
개개비오촌당숙
제가 멋쟁이라 불러 드릴게요! 멋쟁이 한소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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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육아일기 기대됩니다. 저는.. 돌지난 딸이 있는 metalhead 라서 ㅎㅎㅎ
대구자전거동호회
2호 재미있게 읽으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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