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한쪽에서는 AI 캐릭터의 움직임에 일부러 '노이즈'를 섞어 더 생동감 있게 만드는 연구, 이른바 펄린 노이즈(개발자 켄 펄린은 이 공로로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음)에 매료되어 작업을 해왔습니다. 피카드 교수에게는, 이건 더하면 좋은 불확실성인 겁니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들 대부분은 불확실성을 걷어내고자 하는 세계 위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경영을 하는 분들은 KPI, OKR, 대시보드, 리스크 매트릭스 등. 경영관리에 활용되는 거의 모든 시스템은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원하는 '새로운 아이디어', '차별화된 제품', '아무도 안 해본 결정'은, 다름 아닌 불확실성이 만드는 영역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질문은 이렇게 바꿔서 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불확실성을 없애야 하고, 언제 오히려 불확실성을 만들어내야 하는가. 그리고 그 둘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확실성과 불확실성 사이에서
피카드 교수는 그 경계선을 이렇게 말합니다. 스크래블(알파벳 타일로 단어를 만드는 보드게임)을 할 때 사람들은 손에 쥔 타일을 무작위로 이리저리 배열해 보며 점수 높은 단어를 찾습니다. 이 탐색 과정 자체는 순수한 불확실성입니다. 어떤 조합이 실제 단어가 될지 미리 알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찾아낸 조합이 진짜 '단어'인지 판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장치, 바로 사전입니다. 무작위로 만든 조합 하나가 실제로 사전에 오른 단어일 수도 있고, 비슷해 보여도 사전에 없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피카드 교수는 이 둘을 '불확실성 엔진'과 '확실성 엔진'이라고 부릅니다. 창의성은 이 두 엔진이 함께 돌아갈 때만 작동한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물론 스크래블은 틀려도 그만인 게임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오답이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훨씬 심각한 문제에서도, 이 '두 엔진' 구조가 똑같이 통할까요? 2024년 노벨화학상이 그 답을 보여줍니다.
단백질은 작은 아미노산이 사슬처럼 길게 이어진 물질입니다. 그런데 이 사슬은 일자로 뻗어 있지 않고, 실타래처럼 특정한 모양으로 복잡하게 접힙니다. 그리고 이 접힌 모양에 따라 그 단백질이 몸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문제는 아미노산 서열만 보고 이 접힌 모양을 알아내는 일이 과학자들에게 반세기 넘게 풀리지 않던 난제였다는 겁니다. 2024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AI 프로그램 알파폴드(AlphaFold)는 바로 이 문제를 풀었습니다. 아미노산 서열을 입력하면, 그 단백질이 실제로 어떤 3차원 모양으로 접힐지 예측해 준 겁니다.
알파폴드는 지난 수십 년간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직접 단백질을 분석해 쌓아온 방대한 데이터 위에서 훈련되었습니다. AI의 무작위적인 탐색을, 이미 정답이 확인된 수많은 실제 사례가 걸러주고 바로잡아 준 겁니다. 그래서 그해 노벨상은 AI 자체가 아니라, 이 시스템을 설계한 데미스 하사비스와 존 점퍼 두 사람에게 돌아갔습니다. 스크래블의 사전이 하던 역할을, 여기서는 수십 년치 실험 데이터가 대신한 셈입니다. 무작위 탐색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검증해 줄 기준이 이미 있어야 한다는 걸 보여준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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