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1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방문객이 반 고흐의 유명한 그림 《별이 빛나는 밤》 앞에 머물렀던 시간은 평균 27.2초입니다. 그런데 같은 로비에 걸린 리픽 아나돌(Refik Anadol)의 AI 설치작품 《Unsupervised》 앞에서는 평균 38분을 머물렀습니다. 80배가 넘는 차이입니다.

《Unsupervised》 작품은 MoMA가 소장한 근 20만 점의 작품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정해진 그림을 반복하는 대신 계속해서 무작위로, 새로운 영상을 흘려보내도록 설계돼 있었습니다. 관람객들은 그 작품 앞에 서서, 다음 순간 어떤 영상 작품이 나올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묘한 긴장감 앞에 계속 머물렀던 겁니다.
불확실성
MIT 미디어랩에서 정서 컴퓨팅을 이끄는 로절린드 피카드(Rosalind Picard) 교수는 이 현상을 두고 한 강연에서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불확실성은 정말 창의성을 돕는가?
피카드 교수의 이력 자체가 평범하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불확실성'이라는 재료를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오랫동안 다뤄온 전문가입니다. 한쪽에서는 뇌전증 환자의 발작을 예측하는 웨어러블(그가 공동창업한 엠퍼티카의 엠브레이스)을 만들어, 사람의 삶에서 불확실성을 최대한 걷어내려 애썼습니다. 언제 발작이 올지 모른다는 공포, 혼자 있을 때 쓰러지면 아무도 모른다는 공포. 이건 반드시 줄여야 하는 불확실성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AI 캐릭터의 움직임에 일부러 '노이즈'를 섞어 더 생동감 있게 만드는 연구, 이른바 펄린 노이즈(개발자 켄 펄린은 이 공로로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음)에 매료되어 작업을 해왔습니다. 피카드 교수에게는, 이건 더하면 좋은 불확실성인 겁니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들 대부분은 불확실성을 걷어내고자 하는 세계 위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경영을 하는 분들은 KPI, OKR, 대시보드, 리스크 매트릭스 등. 경영관리에 활용되는 거의 모든 시스템은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원하는 '새로운 아이디어', '차별화된 제품', '아무도 안 해본 결정'은, 다름 아닌 불확실성이 만드는 영역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질문은 이렇게 바꿔서 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불확실성을 없애야 하고, 언제 오히려 불확실성을 만들어내야 하는가. 그리고 그 둘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확실성과 불확실성 사이에서
피카드 교수는 그 경계선을 이렇게 말합니다. 스크래블(알파벳 타일로 단어를 만드는 보드게임)을 할 때 사람들은 손에 쥔 타일을 무작위로 이리저리 배열해 보며 점수 높은 단어를 찾습니다. 이 탐색 과정 자체는 순수한 불확실성입니다. 어떤 조합이 실제 단어가 될지 미리 알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찾아낸 조합이 진짜 '단어'인지 판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장치, 바로 사전입니다. 무작위로 만든 조합 하나가 실제로 사전에 오른 단어일 수도 있고, 비슷해 보여도 사전에 없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피카드 교수는 이 둘을 '불확실성 엔진'과 '확실성 엔진'이라고 부릅니다. 창의성은 이 두 엔진이 함께 돌아갈 때만 작동한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물론 스크래블은 틀려도 그만인 게임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오답이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훨씬 심각한 문제에서도, 이 '두 엔진' 구조가 똑같이 통할까요? 2024년 노벨화학상이 그 답을 보여줍니다.
단백질은 작은 아미노산이 사슬처럼 길게 이어진 물질입니다. 그런데 이 사슬은 일자로 뻗어 있지 않고, 실타래처럼 특정한 모양으로 복잡하게 접힙니다. 그리고 이 접힌 모양에 따라 그 단백질이 몸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문제는 아미노산 서열만 보고 이 접힌 모양을 알아내는 일이 과학자들에게 반세기 넘게 풀리지 않던 난제였다는 겁니다. 2024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AI 프로그램 알파폴드(AlphaFold)는 바로 이 문제를 풀었습니다. 아미노산 서열을 입력하면, 그 단백질이 실제로 어떤 3차원 모양으로 접힐지 예측해 준 겁니다.
알파폴드는 지난 수십 년간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직접 단백질을 분석해 쌓아온 방대한 데이터 위에서 훈련되었습니다. AI의 무작위적인 탐색을, 이미 정답이 확인된 수많은 실제 사례가 걸러주고 바로잡아 준 겁니다. 그래서 그해 노벨상은 AI 자체가 아니라, 이 시스템을 설계한 데미스 하사비스와 존 점퍼 두 사람에게 돌아갔습니다. 스크래블의 사전이 하던 역할을, 여기서는 수십 년치 실험 데이터가 대신한 셈입니다. 무작위 탐색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검증해 줄 기준이 이미 있어야 한다는 걸 보여준 사례입니다.
사전 (Dictionary)
영국의 인지과학자 마거릿 보든(Margaret Boden)은 저서 《The Creative Mind》에서 이를 좀 더 일반적인 언어로 정리합니다. 그는 창의성을 규칙 안에서 새 조합을 찾는 '탐색적 창의성'과, 규칙 자체를 바꿔버리는 '전복적 창의성'으로 나누는데, 어느 쪽이든 작동하려면 두 가지가 동시에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존 틀을 깨는 무작위적 탐색, 그리고 그 결과가 쓸 만한지 판단할 평가 기준. 규칙만 있으면 반복이고, 무작위성만 있으면 소음입니다.
이걸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브레인스토밍 시간에 나온 이상한 아이디어는, 스크래블에서 무작위로 늘어놓은 알파벳 타일이나 알파폴드가 시험 삼아 던져본 단백질 모양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아닌, 그냥 가능성의 후보일 뿐입니다. 문제는 많은 팀이 이 단계에 멈춘다는 겁니다. 회의실 화이트보드에 아이디어를 잔뜩 쏟아내고, 그중 목소리 큰 사람이 밀어붙인 것이나 가장 참신하게 들리는 것들이 채택됩니다. 이건 스크래블에서 타일을 늘어놓기만 하고 사전을 펼쳐보지 않은 채 이미 이겼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아이디어가 진짜 가치를 가지려면, "사전" 역할을 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사전은 한 가지 형태로 오지 않습니다. 작게 만들어서 실제 고객 열 명에게 먼저 보여주고 나온 반응일 수도 있고, 비슷한 제품이 이미 시장에서 얼마나 팔리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이터일 수도 있고, "우리는 이런 원칙에 어긋나는 아이디어는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선택하지 않는다"는 팀 스스로 세워둔 기준일 수도 있습니다. 알파폴드에게는 그것이 수십 년치 실험 데이터였고, 스크래블에는 그것이 사전 한 권이었습니다. 형태는 저마다 다르지만 하는 일은 같습니다. 그럴듯해 보이는 무작위한 결과물 중에서, 실제로 맞는 것과 그냥 그럴듯하기만 한 것을 갈라내는 일입니다.
이 사전이 없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를 쏟아내는데, 그중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판단할 근거가 없으니 결국 가장 크게 말하는 사람의 의견이나 가장 최근에 들은 이야기가 기준이 되어버립니다. 이건 창의적인 조직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냥 매번 다른 방향으로 흔들리는 조직일 뿐입니다. 무작위성 자체는 창의성이 아닙니다. 그 무작위성을 걸러낼 사전이 있을 때만, 비로소 창의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남습니다.
판독기
불확실성은 답답하고 두렵지만, 동시에 창의성이 태어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 불확실성이 진짜 좋은 아이디어로 자라나려면,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렸는지 가려줄 무언가, 어떤 기준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지금 당신이 마주한 불확실한 상황에서,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갈라주는 그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기준은 지금 정말로 좋은 생각을 가려내고 키워가고 있습니까.
그럼 다음 주 목요일에 다른 좋은 질문 하나로 찾아 뵙겠습니다. 주말 평안히 보내세요.
Editor H.
이번주 저널링 & 두들링 가이드 2가지
📝 최근 6개월 안에 데이터나 확신 없이 '일단 해보자'로 밀어붙인 결정을 하나 적어보세요. 그때 무엇을 근거로 멈추거나 계속 갈지 판단했는지 세 줄로 써보세요.
📝 종이에 원을 두 개 그려보세요. 왼쪽 원엔 '요즘 내가 불확실성을 무조건 없애려고 하는 일'을, 오른쪽 원엔 '불확실성을 오히려 더 열어둬야 하는 일'을 각각 세 가지씩 적어보세요.
이 주제와 함께 하면 좋을 책과 팟캐스트 3가지
📚 《The Creative Mind: Myths and Mechanisms》 '탐색과 평가' 창의성 이론의 원전입니다.
🎙️ 팟캐스트 "Rosalind Picard: Affective Computing, Emotion, Privacy, and Health" Lex Fridman Podcast #24 이번 편에서 잠시 다룬 뇌전증 웨어러블 이야기를 피카드 교수가 직접 들려줍니다.
📺 "Refik Anadol: Unsupervised" 27초와 38분의 차이를 만든 그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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