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비효율’을 선택, 이를 오히려 이용해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프로젝트 그룹 낙타의 수장으로 5년째 꾸준히 공연을 올리고 있고, 단 5일 간의 공연을 통해 바쁜 우리들이 놓치고 만 감정과 대면할 수 있게 비효율의 낭만을 선사하는 연출가, 김남언을 소개합니다.
💎 Highlights
“관성에 머무르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다 보면 곧 관성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지금까지 해 온 것이고, 앞으로도 별일 없이 해나갈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 그저 모든 게 당연해져 버리죠.”
“우리가 유튜브로도 충분히 옛날 노래들을 들을 수 있지만 굳이 LP 바에 가서 LP를 꺼내 듣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기어코 먼 길을 찾아가서 오래된 것을 끼워 넣는 그 순간의 낭만을 기대하는 거죠. 이 공연장, 이 관객,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존재했다가 금방 사라지고 말 이 하나뿐인 순간이 곧 연극의 미학인 것 같아요.”
“창작의 힘은 거창한 곳, 새로운 곳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보고 듣고 알고 있는 것에 깃들어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반드시 행복해지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타입은 아니에요. 오히려 평생 행복하기만 한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평생 행복만 하다면 그 사람은 그것을 행복이라고 느낄까 싶어요. 어둠이 있어 빛이 있듯이, 가끔은 고된 순간도 있어야 행복이 실감 나지 않을까요.”
👩🏻💼 오늘의 질문
Q. 프로젝트 그룹 낙타는 어떤 팀인가요. 또 ‘낙타’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프로젝트 그룹 낙타는 연극, 뮤지컬과 같은 공연을 만드는 창작 집단으로 2019년도에 만들어져 벌써 5년 정도 활동을 해오고 있어요. 저희 팀은 연출가이자 대표인 저를 비롯해, 무대 디자이너, 여러 분야의 감독과 PD, 세 명의 배우, 그리고 포토그래퍼 등으로 이뤄져 있어요. 100명 남짓의 다른 대규모 공연 팀에 비하면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에요.
낙타라는 이름은 어렸을 때 읽은 <아기 낙타와 초록빛 나라>라는 동화책에서 따왔는데요. 아기 낙타가 초록빛 나라를 찾아 떠난 엄마를 만나기 위해 사막에서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는 이야기예요. 가끔 연극계가 처한 환경이 꼭 사막 같다고 느껴요. 들이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수익과 보상을 얻을 수 없는 기형적 구조를 띠고 있죠. 이런 사막에서는 아무리 강한 육식 동물이라도 버티기 힘들어요. 오직 낙타처럼 묵묵하게 제 길을 걸어가는 동물만이 살아남을 수 있어요. 그래서 언젠가 도달할 초록빛 나라를 향해 척박한 연극계를 끝까지 헤쳐 나가보자는 각오로 짓게 된 이름입니다.
Q. 창작 연극부터 뮤지컬까지, 또 2024년에는 스페인의 극작가 팔로파 페드레로의 자전적 희곡을 번역해서 올리려고 준비 중이라고 들었어요. 이렇듯 다양한 작품과 활동을 기획하고 시작할 때 염두에 두는 기준이나 가치가 있다면요?
관성에 머무르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다 보면 곧 관성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지금까지 해 온 것이고, 앞으로도 별일 없이 해나갈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 그저 모든 게 당연해져 버리죠. 그런 안일함 속에서 작품을 하다 보면 결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할 거예요. 그렇기에 새로운 작품,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우리가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물어보고, 끊임없이 되뇌죠.
Q. 사막 같은 연극계를 묵묵히 버텨내게 해주는 힘은 무엇인가요. 끝내 초록빛 나라를 기대하게 되는 건 연극의 어떤 매력 때문일지요.
연극이란 참 비효율적이에요. 약 1년의 기획 과정을 거쳐 두, 세 달 매일 모여 연습하고 쏟아부은 시간들이 겨우 5회 남짓의 공연으로 휘발되어 버리죠. 공연장에 보통 150개의 객석이 있다고 생각하면 총 750명의 관객만을 만날 수 있어요. 이후에 이 작품은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리죠. 영화처럼 찍어 놓고 두고두고 볼 수도 없잖아요. 그런 점이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바보 같으면서도, 또 그래서 지극히 매력적이에요.
비효율의 낭만이랄까요.
우리가 유튜브로도 충분히 옛날 노래들을 들을 수 있지만 굳이 LP 바에 가서 LP를 꺼내 듣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기어코 먼 길을 찾아가서 오래된 것을 끼워 넣는 그 순간의 낭만을 기대하는 거죠. 이 공연장, 이 관객,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존재했다가 금방 사라지고 말 이 하나뿐인 순간이 곧 연극의 미학인 것 같아요.
Q. 더 새로운 것들, 더 다양한 것들을 연출하기 위한 고민이 끊이질 않으실 것 같아요. 창작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더 나은 창작자가 되기 위해 어떤 힘을 길러내고 싶으신가요?
창작의 힘은 거창한 곳, 새로운 곳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보고 듣고 알고 있는 것에 깃들어있다고 생각해요. 이미 마음 깊숙한 곳에 존재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거나 외면하던 것들을 새로운 관점과 진실한 시선으로 대면할 때 영감이 오지요. 당장 우주에 대한 시나리오를 써 내려간다고 생각해 봐요. 우주에 대해 아는 것도, 경험한 것도 없는 상태에서 써 내려갈 피상적인 상상의 이야기가 과연 사람들에게 진실로 다가올 수 있을까요. 먼 우주의 이야기가 와닿게 해주는 것은 오히려 그 안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 다름 아닌 사람의 감정과 깨달음이 울림을 주는 것이죠. 제가 자전적 이야기나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역시 그 이유예요. 부모님, 반려견, 친구 등 모든 일상적인 소재 안에 무한한 깊이가 있어요.
앞으로 진실한 얘기들을 더 많이 그려내려면 경험의 폭을 넓혀야 할 것 같아요. 다양한 작품을 기획해 보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며 그들의 관점과 생각을 넉넉히 품고 싶네요.
Q. 대표님에게 행복은 어떤 것인가요. 대표님을 행복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존재들에 대해서도 궁금해요. 어떤 상황 속에 있을 때 행복하다고 생각하시죠?
(...)
저는 반드시 행복해지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타입은 아니에요. 오히려 평생 행복하기만 한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평생 행복만 하다면 그 사람은 그것을 행복이라고 느낄까 싶어요. 어둠이 있어 빛이 있듯이, 가끔은 고된 순간도 있어야 행복이 실감 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바쁜 삶 안에서 소소하게 맛있는 음식과 맛있는 술로 생기를 더하는, 그런 시간이 행복으로 와닿아요.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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