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믿지 말고, 판을 읽어라
(판을 읽고 상황을 설계하는 법 — Machiavelli as Systems Engineer 001)
오늘의 한 문장
인격을 믿어 시스템을 비우면, 그 빈자리를 권력이 채운다.
“저 인간만 없으면…”이라는 말이 가장 위험하다
조직에서 가장 달콤한 주문이 있다.
“저 인간만 없으면 괜찮아.”
이 말은 마음을 잠깐 편하게 해준다. 원인을 한 사람에게 고정해버리면 세상이 단순해지니까.
하지만 이 주문이 위험한 이유는 따로 있다.
첫째, 문제 인물이 사라지고 잠깐 평화가 온다
둘째, 새 문제 인물이 생성된다
셋째, 사건은 거의 같은 형태로 반복된다.
여기서 깨달아야 한다.
사내정치는 “인성 게임”이 아니라 시스템 게임이라는 것.
사람이 나빠서만이 아니다. 사람이 나빠지기 쉬운 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이 현실을 “혐오”가 아니라 “기술”로 다룬다. 그는 “선한 인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전제로, 권력이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설계한다.
『군주론』이 잔인해 보이는 이유는, 인간을 낮게 봐서가 아니라 환상을 버리고 현실을 기준으로 규칙을 짜기 때문이다.
오늘 Part 1의 목표는 딱 하나다.
사람을 분석하는 버릇을 줄이고, 판을 읽는 감각을 장착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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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편은 “남을 이기는 잔꾀”가 아니라, 판을 읽고 설계하는 능력을 훈련하는 연재다. 오늘 Part 1은 그 출발점: “사람 중심”에서 “판 중심”으로 시선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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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키아벨리는 ‘악마의 교사’가 아니라 ‘시스템 엔지니어’다
마키아벨리를 오해하는 가장 흔한 방식이 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말라는 책”
“인간은 다 믿을 수 없다는 냉소”
“나쁜 놈이 이긴다는 정당화”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도덕 설교를 하려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정치의 세계를 작동하는 기계처럼 본다. 그리고 기계를 고치려면, “착하게 살자”가 아니라 부품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부터 봐야 한다.
그가 하는 질문은 이렇다.
- 사람들은 실제로 어떤 상황에서 배신하는가?
- 권력은 어떤 방식으로 무너지는가?
- 무엇이 사람을 복종하게 만들고, 무엇이 사람을 반란을 일으키게 하는가?
- 운(변수)이 와도 시스템이 버티게 하려면 무엇을 고정해야 하는가?
이건 회사에서도 똑같다.
-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말을 바꾸는가?
- 팀은 어떤 조건에서 서로 물어뜯는가?
- 무엇이 '정치질'을 합리적 선택으로 만드는가?
- 불확실성이 커질 때, 누가 권력을 지는가?
즉 마키아벨리의 핵심 메시지는 “악하게 살아라”가 아니다.
인간의 선의를 전제로 시스템을 설계하지 말라. 인간을 전제로, 시스템을 설계하라.
이 한 문장이 Part 1 전체를 관통한다.
2) 마키아벨리의 출발점: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가 아니라 “인간은 조건에 반응한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을 모형화한다.
정치공학자에게 인간은 “선한 존재/악한 존재”가 아니라, 특정 조건에서 특정 방식으로 움직이는 변수다.
그가 반복해서 전제하는 인간상은 대략 이런 형태다.
- 사람은 이익에 민감하다
- 사람은 손실(불이익)을 피하려 한다
- 사람은 불확실하면 강한 쪽에 붙는다
- 사람은 책임이 보이면 회피하고 공로가 보이면 달려든다
- 사람은 안전과 명분을 동시에 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결론이 나온다.
사람을 설득해서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데 기대면, 시스템은 약해진다.
시스템을 설계해서 “나쁜 선택이 손해”가 되게 만들면, 조직은 안정된다.
즉, 마키아벨리는 인간을 바꾸려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 판을 만들려는 사람이다.
3) 마키아벨리 핵심 도구 1: virtù와 fortuna — 실력과 운, 그리고 ‘운을 다루는 설계’
여기서 마키아벨리의 가장 유명한 개념이 나온다.
3-1) virtù(비르투)란 무엇인가
보통 virtù를 “덕”이라고 번역하면 오해가 생긴다. 마키아벨리의 virtù는 도덕적 착함이 아니다. 현대어로 바꾸면 이렇다.
virtù = 상황을 읽고, 결단하고, 실행하고, 통제하는 능력 (현실 감각 + 결단력 + 실행력 + 위험관리)
쉽게 말해, “판을 읽고 움직이는 실력”이다. 회사에서 virtù는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다.
- 불확실한 상황에서 결정을 미루지 않는 사람
- 기록과 증거를 남겨 책임을 설계하는 사람
- 인센티브가 어디에 붙는지 빨리 파악하는 사람
- ‘사람의 말’이 아니라 ‘시스템의 규칙’을 먼저 읽는 사람
3-2) fortuna(포르투나)란 무엇인가
fortuna는 운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운을 “그냥 어쩔 수 없음”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는 운을 변수로 본다. 그리고 변수는 “완전히 통제 불가”가 아니라, 완충 장치로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본다.
회사에서 fortuna는 이런 형태로 온다.
- 갑작스러운 인사 이동
- 상사 교체
- 예산 삭감
- 시장 변화
- 예상치 못한 사고/이슈
- 조직 개편, 평가 기준 변경
이걸 막을 수 있나? 완전히는 못 막는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식 질문은 이거다.
운이 와도 덜 망하게 하려면, 무엇을 구조로 고정해야 하는가?
예를 들어:
- 공로 귀속이 말이 아니라 문서로 남는 구조
- 결정이 회의록/요약으로 공식 채널에 남는 구조
- 책임과 범위가 사전에 정의되는 구조
- 성과가 특정 개인의 구두 설명이 아니라 데이터/산출물로 남는 구조
이게 곧 “운을 다루는 설계”다. virtù는 개인의 능력이지만, 마키아벨리의 결론은 개인 자랑이 아니다.
virtù를 가진 자는 fortuna를 ‘설계’로 길들인다.
이 시리즈의 목적—판을 읽고 상황을 설계하는 법—이 여기서 정확히 꽂힌다.
4) 마키아벨리 핵심 도구 2: 사랑받는 것 vs 두려움받는 것 — 감정이 아니라 ‘안정성의 기술’
『군주론』에서 가장 유명한 질문이 있다.
사랑받는 것이 좋은가, 두려움받는 것이 좋은가?
이 질문이 회사에서 자주 오해된다. “그럼 무섭게 굴라는 거야?” 아니다. 마키아벨리의 포인트는 잔혹함의 권장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통제다.
4-1) 현대어로 번역한 마키아벨리의 논리
사랑은 변한다. 사람들은 상황이 바뀌면 마음도 바꾼다. 반면 두려움(정확히는 ‘불이익의 확실성’)은 더 안정적으로 행동을 묶는다.
여기서 핵심은 “공포”가 아니라 “확실성”이다.
- 규칙이 명확하고
- 위반 시 결과가 예측 가능하고
- 누구에게나 일관되게 적용되면
사람들은 감정이 아니라 계산으로 움직인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두려움’은 사실 규칙의 신뢰도에 가깝다.
4-2) 회사로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리더십 실수가 있다.
- “좋은 사람”이 되려다가
- 규칙을 흐리고
- 예외를 남발하고
- 말로 덮고
- 결과적으로 정치질의 여지를 만든다
이때 팀은 어떤 상태가 되나?
- “누구는 봐주고 누구는 엄격”
- “기준이 없으니 눈치 게임”
- “상사의 기분이 룰”
즉, 사랑(호감)으로 운영하려다가 판이 흔들리고, 정치질이 강화된다.
마키아벨리식 설계는 반대다.
호감으로 통치하지 말고, 규칙의 일관성으로 안정시켜라.
이건 냉정한 게 아니라, 오히려 친절하다. 예측 가능성은 사람을 덜 불안하게 만든다. 그리고 불안이 줄면, 정치질도 줄어든다.
5) 마키아벨리 핵심 도구 3: 자기 군대 vs 보조군 — 외주/남의 힘에 기대면 판을 잃는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가 집요하게 강조하는 주제가 있다. 바로 군대(무력) 이야기다.
독자 입장에선 “왜 갑자기 군대?” 싶지만, 회사로 번역하면 엄청 현실적이다. 마키아벨리의 요지는 단순하다.
남의 무력(보조군/용병)에 기대면 위험하다. 위기 때 그들은 너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회사 버전으로 번역하면 이렇다.
- 핵심 역량을 외주에 맡기고, 내부는 껍데기만 남은 조직
- 성과의 핵심을 특정 개인에게만 의존하는 팀
- 문서/데이터/프로세스 없이 “저 사람이 알아서” 돌아가는 시스템
- 네트워크/정보를 ‘남의 친분’에 빌려 쓰는 상태
평소엔 굴러간다. 하지만 위기(인사 이동, 퇴사, 조직개편)가 오면?
- 보조군은 떠난다
- 지식은 증발한다
- 권력은 외부로 새나간다
- 내부는 무력해진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자기 군대”는 회사에서 이런 뜻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역량/정보/기록/루틴을 내부에 구축하라.
즉, 판을 설계한다는 건 핵심 파이프를 “남의 힘”에 의존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이게 왜 ‘사내 정치’랑 연결되나? 정치질은 보통 “의존 구조”에서 생긴다.
- 저 사람이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간다
- 저 사람이 정보를 쥐고 있다
- 저 사람이 상사와 직결돼 있다
이 상태가 바로 권력의 씨앗이다. 마키아벨리는 그 씨앗을 제거하라고 말한다.
핵심을 내부화하고, 파이프를 문서화하고, 권력을 특정 인물의 손에 몰아주지 말라.
6) 마키아벨리 핵심 도구 4: 약속과 필요 — 말의 윤리보다 ‘판의 강제력’이 먼저다
조직에서 신뢰가 깨질 때,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
“약속했잖아.”
“말을 바꾸면 안 되지.”
“인간적으로 그건 아니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그는 인간적 분노를 부정하지 않지만, 정치에서는 묻는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조건은 무엇인가?
마키아벨리의 냉정함은 여기 있다. 그는 “사람은 언제든 말 바꾼다”로 끝내지 않는다. 그는 “왜 말이 바뀌게 되는지”를 구조로 본다.
회사 버전으로 번역하면:
- 약속을 지키면 손해가 되는 인센티브 구조가 있다
- 약속을 어겨도 불이익이 없는 감시 부재가 있다
- 성과를 가로채도 들키지 않는 기록 부재가 있다
- 결정이 구두로만 이뤄져 책임 회피가 쉬운 구조가 있다
즉, 약속이 깨지는 건 도덕만의 문제가 아니다. 약속을 보호하는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식 해법은 간단하다.
말(약속)을 믿지 말고, 약속이 지켜지게 만드는 조건을 설계하라.
조건 설계의 대표는 이런 것들이다.
- 결정의 문서화(요약 공유)
- 공로의 증거화(산출물/로그/히스토리)
- 책임의 범위화(사전 합의)
- 평가 기준의 명문화(측정 가능하게)
이것들이 없으면, 인간적 분노만 남고 판은 계속 같은 비극을 찍어낸다.
7) 마키아벨리 핵심 도구 5: 겉모습과 실체 — 평판은 부수적이 아니라 ‘권력의 재료’다
마키아벨리의 또 다른 유명한 포인트는 “겉과 속”이다. 그는 “사람들은 본질을 잘 못 보고, 보이는 것에 반응한다”는 현실을 전제로 한다.
이게 회사에서 왜 중요하냐면, 평가는 대개 “실체 100%”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 상사는 네 모든 업무를 보지 못한다
- 동료는 네 전체 기여를 알지 못한다
- 조직의 기억은 짧고, 소문은 길다
- ‘이미지’가 ‘사실’보다 먼저 의사결정을 만든다
마키아벨리는 여기서 “이미지 조작”을 가르치려는 게 아니다. 그는 평판이 시스템의 일부라는 걸 말한다.
즉, 판을 설계한다는 건 “일을 잘하는 것”과 함께 “일이 잘 보이게 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건 교활함이 아니라 방어다.
- 산출물이 남는 구조
- 기여가 드러나는 구조
- 정보가 공식 채널로 공유되는 구조
- 중요한 순간에 ‘요약’이 올라가는 구조
이게 없으면, 실체가 있어도 평가가 흔들리고 그 틈으로 정치질이 들어온다.
8) Part 1 결론: 마키아벨리의 첫 수업은 ‘비정함’이 아니라 ‘정확함’이다
정리하자.
마키아벨리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 인간은 선의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 운(변수)은 언제든 온다
- 그러니 시스템은 인간과 운을 전제로 설계되어야 한다
- 사랑(호감)보다 규칙(예측 가능성)이 더 안정적일 때가 많다
- 남의 힘(보조군)에 의존하면 위기 때 판을 잃는다
- 약속은 도덕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조건이 필요하다
- 평판은 사치가 아니라 권력의 재료다
그래서 오늘 Part 1의 결론은 이 한 문장으로 닫는다.
사람을 믿지 말고, 판을 믿어라. 정확히는, 판을 읽고 설계하라.
이건 인간 혐오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인간이 덜 망가지게 하는 구조적 친절이다.
다음 편 예고 (Part 2)
Part 2에서는 본격적으로 “지도”를 그린다. 권력은 저장돼 있지 않고 흐른다. 자원·정보·평가가 어디로 흐르는지 파악하면, “누가 세냐”가 아니라 무엇이 세냐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너는 ‘인물평’이 아니라 배관도(파이프 지도)를 보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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