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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반려동물이 아프면 회사를 쉴 수 있다면

이탈리아가 세계 최초로 만든 '반려동물 병가'가 던지는 진짜 질문

2026.04.16 |
from.
Kwangseob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혹시, 반려동물을 키우시나요? 아니면 주변에 키우시는 분이 계신가요? 그렇다면 오늘의 뉴스레터를 공유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재밌게 읽어보실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만약 키우는 강아지가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회사에 "반려동물 때문에 휴가를 쓰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요?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연차를 쓰거나, 아예 말도 못 꺼내는 경우가 더 많을 거예요. 그런데 이탈리아에서는 이제 이게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가 됐어요.

오늘은 이 제도가 왜 지금 나왔는지, 그리고 한국에도 같은 흐름이 올 수 있는지 이야기해 볼게요.

들어가며

2026년 3월, 이탈리아는 세계 최초로 반려동물 돌봄을 사유로 한 유급휴가 제도를 공식화했어요. 직원은 연간 최대 3일까지, 수의사의 진단서를 제출하면 아픈 반려동물을 돌보기 위해 유급으로 쉴 수 있게 된 거예요. 반려동물은 마이크로칩으로 등록되어 있어야 하고, 수의사의 디지털 진단서가 필요해요.

이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반려동물한테 유급휴가라니, 좀 과한 거 아닌가?" 하는 반응이 떠오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제도의 배경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동물복지 이슈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이건 '가족'이라는 개념이 법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신호예요.

🐾 이탈리아는 왜 이 제도를 만들었을까

이 제도가 갑자기 나온 건 아니에요. 사건은 2017년의 한 사건에서 부터 시작되요. 로마의 라 사피엔자 대학교에서 일하던 한 사서가 자신의 늙은 잉글리시 세터 '쿠촐라(Cucciola)'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유급휴가를 신청했어요. 쿠촐라는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아야 했고, 이후에는 후두 마비 치료도 필요했어요. 혼자 사는 보호자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죠. 직장이었던 대학 측은 거부했지만, 이탈리아 반생체실험연맹(LAV)이 소송을 대리했고, 법원은 보호자의 손을 들어줬어요.

2017년 사건의 주인공인 쿠촐라(Cucciola)와 주인 안나
2017년 사건의 주인공인 쿠촐라(Cucciola)와 주인 안나

근거는 이탈리아 형법 제727조예요. 동물을 심각한 고통 상태에 방치하면 최대 1년 징역과 1만 유로(약 1,500만 원) 벌금에 처할 수 있다는 조항이에요. 법원의 논리는 명쾌했어요. 법이 동물 방치를 범죄로 규정하는데, 직장이 돌봄을 막는다면 고용주가 직원을 법적 의무와 고용 의무 사이의 불가능한 선택에 놓는 셈이라는 거예요. 이탈리아 공공부문 노동법에서는 '심각한 개인적·가족적 사유'를 유급휴가 사유로 인정하고 있는데, 법원은 반려동물 긴급 돌봄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거예요.

이 판결은 '쿠촐라 판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선례가 됐어요. 이후 동물보호 단체들이 본격적으로 입법을 추진했고, 약 9년의 논의 끝에 2026년 3월 노동법에 공식 편입된 거예요.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어요. 이탈리아 가구의 절반 이상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어요. 이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이탈리아 사회의 일상적 생활 구조예요. 법은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뒤늦게 따라간 것에 가까워요. 반대로 말하면, 현실이 충분히 무르익었기 때문에 법이 움직일 수 있었던 거예요.

📊 한국과 일본, 이미 같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탈리아만의 특수한 상황일까요? 데이터를 보면 한국과 일본도 구조적으로 매우 비슷한 위치에 있어요.

한국의 현황을 먼저 볼게요. KB경영연구소의 '2025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한국의 반려가구는 591만 가구, 전체 가구의 26.7%예요. 반려인구는 1,546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30%에 달해요. 반려동물 수는 개 546만 마리, 고양이 217만 마리로 총 763만 마리예요.

출처 : KB경영연구소 ‘2025 한국반려동물보고서
출처 : KB경영연구소 ‘2025 한국반려동물보고서

흥미로운 건 양적 성장만이 아니에요. 질적 변화도 뚜렷해요. '반려동물은 가족의 일원이다'라고 생각하는 비반려가구[1]​의 비율이 2018년 50.6%에서 2025년 68.2%로 꾸준히 올랐어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들조차 이제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쪽으로 인식이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반려견 수는 처음으로 감소(556만→546만)한 반면 반려묘는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이에요. 일본이 10년 넘게 겪고 있는 '반려견 감소, 반려묘 증가' 패턴이 한국에서도 시작된 거예요.

시장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어요.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연관산업은 2022년 기준 약 8.5조 원이었고, 2032년에는 21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돼요. 가구당 월평균 양육비도 2023년 15.4만 원에서 2024년 19.4만 원으로 뛰었어요. 최근 2년간 평균 의료비 지출은 102.7만 원으로 2023년의 거의 두 배예요.

일본은 이미 한 발 앞서 있어요. 일본에서는 반려동물이 15세 미만 아동 수를 넘어선 지 20년이 넘었어요. 2022년 기준 개와 고양이 사육 두수가 약 1,589만 마리인데, 15세 미만 어린이는 약 1,465만 명이에요. 일본 기업들은 이미 자체적으로 대응하고 있어요. IT기업 유레카는 반려동물 병원 방문을 위한 반일 휴가(연 3회)를 도입했고, 마스 재팬은 월 2회 반려동물 동반 출근을 허용하고 있어요. 인터넷 업체 파레이는 '고양이 수당'이라는 식비 지원 제도를 만들었더니 입사 지원자가 크게 늘었다고 해요.

세 나라의 공통점을 정리하면 이래요:

  • 저출산·고령화로 전통적 가족 구조가 변하고 있다
  • 1인 가구 증가로 반려동물이 정서적 유대의 핵심 대상이 되고 있다
  • 반려동물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며 경제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 '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혈연 중심에서 다종 가족[2]​으로 확장되고 있다

🔍 제도가 따라오지 못하는 이유

그런데 한국에서 이탈리아와 같은 제도가 바로 도입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쉽지 않아요. 몇 가지 구조적 허들이 있거든요.

첫째, 법적 지위의 문제예요. 한국 민법상 동물은 여전히 '물건'이에요. 이탈리아처럼 동물 방치를 형사 처벌하는 조항이 동물보호법에 있긴 하지만, 이를 노동법의 휴가 사유로 연결하는 법적 논리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동물의 법적 지위를 '물건이 아닌 존재'로 바꾸자는 민법 개정 논의가 있지만, 진전이 더딘 상황이에요.

둘째, 기업 문화의 문제예요. 한국은 법정 연차조차 소진율이 높지 않은 나라예요. "사람 간병 휴가도 눈치 보이는데, 동물 휴가라니"라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일본이 법 대신 기업 복지 차원에서 먼저 움직이고 있는 건 이런 현실적 장벽을 우회하는 전략이기도 해요.

셋째, 반려가구와 비반려가구 사이의 인식 격차예요. '반려동물은 가족'이라는 명제에 반려가구의 81.6%가 동의하지만, 비반려가구는 68.2%예요. 수치만 보면 격차가 줄고 있지만, '펫티켓을 잘 지킨다'는 질문에 반려가구 63.7%가 동의한 반면 비반려가구는 17.1%에 불과했어요. 반려동물에 대한 '공감'은 커지고 있지만, 반려인의 '책임 이행'에 대한 신뢰는 아직 낮은 거예요. 이 신뢰 격차가 좁혀지지 않으면 제도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워요.

오스왈드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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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이슈를 '동물 복지'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후행성'이라는 프레임으로 봐요. GTM 전략을 짤 때 항상 하는 질문이 있어요. "시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는데, 제품(제도)은 따라가고 있는가?" 한국의 반려동물 시장은 이미 수조 원 규모이고, 1,546만 명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어요. 그런데 이 1,546만 명이 반려동물의 응급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제도적 옵션은 사실상 '연차를 쓰거나, 참거나' 두 가지뿐이에요.

이탈리아의 사례에서 정말 주목할 건 '3일의 유급휴가' 자체가 아니에요. 동물 방치를 형사 처벌하는 법과, 직장이 돌봄을 막는 현실 사이의 모순을 제도적으로 해결했다는 점이에요. 법이 의무를 부과하면서 의무를 이행할 시간은 주지 않는다면, 그건 제도의 결함이에요.

한국도 동물보호법에서 동물 학대와 방치를 처벌하고 있어요. 반려동물 등록을 의무화하고, 제3차 동물복지종합계획(2025~2029)도 발표했어요. 그런데 이 모든 '의무'를 이행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현실은 노동 제도에 아직 반영되지 않았어요. 이 간극이 바로 이탈리아가 메운 것이고, 한국이 아직 메우지 못한 것이에요.

물론 당장 법제화가 이뤄지긴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일본처럼 기업이 먼저 움직이는 경로도 있어요.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한 IT업계나 스타트업에서 '반려동물 돌봄 휴가'를 복지 제도로 도입한다면, 그게 하나의 시그널이 될 수 있어요. 제도는 결국 현실을 추인하는 것이니까요.

마치며

오늘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주시면 좋겠어요. 오늘 뉴스레터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아요.

  1. 이탈리아의 반려동물 병가는 9년간의 법적 논의 끝에 나온 결과이며, '동물 방치 처벌'과 '노동권' 사이의 모순을 해결한 제도예요.
  2. 한국(591만 가구, 26.7%)과 일본은 이미 이탈리아와 유사한 인구·사회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노동 제도에는 이 현실이 반영되지 않았어요.
  3. '가족'의 정의는 이미 법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제도가 이 변화를 따라갈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예요.

혹시 지금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계신다면,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 반려동물이 아플 때, 나는 어떤 선택지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 선택지가 충분한지.

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배경 지식

 

각주

  1. [1] 비반려가구: 현재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가구를 뜻해요.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측정할 때, 이 그룹의 태도 변화가 제도적 합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돼요.
  2. [2] 다종 가족(multispecies family): 인간과 반려동물이 함께 구성하는 가족 형태를 지칭하는 개념이에요. 이탈리아에서 이번 법안을 설명할 때 공식적으로 사용한 표현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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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안광섭은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자 OBF(Oswarld Boutique Consulting Firm) 리드 컨설턴트이다. 대학에서 경영데이터 관리, 비즈니스 애널리틱스 등 데이터 분석을 가르치는 한편, 현장에서는 GTM 전략과 인공지능 전략 컨설팅을 이끌며 기술과 비즈니스의 접점을 설계하고 있다. AI 대화 시스템의 기억 아키텍처(HEMA) 연구로 학술 논문을 발표했으며, 매일 글로벌 AI 논문을 큐레이션하는 Daily Arxiv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KBMA와 기술경영전문대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생각을 맡기는 사람들: 호모 브레인리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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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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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ogi의 프로필 이미지

    yogi

    0
    약 22시간 전

    말씀하신 것처럼 가족이 아파도 연차 쓰기가 눈치보이는 사회에서 반려동물은 더 아득히 느껴집니다. 일본에선 기업이 먼저 움직이고 있다고 하셨는데 참 부럽네요. 기업 특성 차이가 그 원인일 수도 있을까요? 내실있는 중소/중견기업 비율이 일본이 더 높다고 해서요. 그리고 검색해보니 일본의 연차소진율이 개선된 것은 법적인 강제 때문이라고 하는데요.(19.4.1. 일본 노동기준법 - 5일 이상 강제 사용). 한국도 그런 법이 제정되면 좋겠습니다.. (반려묘의 수가 반려견의 대략 40% 정도 되는걸 보고 놀랐습니다. 엄청 많네요! 고양이들은 산책을 안시켜서 몰랐었나 봅니다...)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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