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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말을 멈춘 사람들, 대화를 시작한 AI

소셜미디어 이용자의 절반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그 침묵의 빈자리를 AI가 채우고 있다.

2026.04.17 |
from.
Kwangseob

들어가며

구독자님, 요즘 SNS에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게 언제인지 기억나시나요?

영국 통신규제기관 Ofcom이 올해 발표한 성인 미디어 이용 실태 보고서에 흥미로운 숫자가 하나 있어요. 영국 성인 소셜미디어 이용자 중 직접 글을 쓰거나, 공유하거나, 댓글을 다는 사람의 비율이 49%로 떨어졌어요. 불과 1년 전엔 61%였거든요. 12%포인트가 단 1년 만에 증발한 거예요.

그런데 소셜미디어를 떠난 걸까요? 아니에요. 영국 성인 인터넷 이용자의 89%는 여전히 최소 하나의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쓰고 있어요. 사람들은 떠나지 않았어요. 입을 다문 거예요. 오늘은 이 침묵이 어디서 왔고, 그 빈자리를 누가 채우고 있는지 이야기해 볼게요.

🔇 관객석으로 이동한 이용자들

Ofcom의 조사는 영국 전역 7,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어요. 단순히 포스팅이 줄어든 게 아니라, 새로운 웹사이트를 탐색하는 비율도 70%에서 56%로 떨어졌어요. 온라인에서의 능동적 행위 자체가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거예요.

이 현상을 만든 두 가지 구조적 원인이 있어요.

첫째, 플랫폼이 '무대'가 되었어요. TikTok과 인스타그램 릴스 같은 숏폼 영상 중심으로 플랫폼이 재편되면서, 이용자의 역할이 바뀌었어요. 예전 페이스북에서는 "오늘 점심 뭐 먹었다"고 쓰는 게 자연스러웠지만, 릴스가 지배하는 피드에서 텍스트 한 줄 올리는 건 무대 위에서 혼잣말하는 느낌이 되어버린 거예요. Ofcom의 시니어 리서치 매니저 조셉 옥슬레이드는 영상 중심 플랫폼에서는 예전 페이스북 시절만큼 글을 쓰거나 댓글을 달지 않게 된다고 설명해요.

둘째, 과거의 글이 미래의 폭탄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이에요. 과거 게시물이 나중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하는 성인의 비율이 43%(2024년)에서 49%(2025년)로 올랐어요. 오래전 올린 글이 발굴되어 직업적 평판이나 개인적 관계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두려움이에요. 실제로 2025년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였던 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의 캠페인이 과거 트윗으로 인해 좌초된 사례는, 이 불안이 근거 없는 걱정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어요.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영구적인 '그리드 포스트' 대신 24시간 뒤 사라지는 인스타그램 스토리 같은 휘발성 포맷으로 이동하고 있어요. 남기되, 남기지 않는 방식을 택한 거예요.

그
그 "럴커" 맞습니다. 정식명칭이 러커인거 첨 알았어요.

👻 '러커'의 시대가 온다

이 현상은 영국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노스이스턴대학교의 아니스 바키르 교수팀이 2025년 Nature Scientific Reports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X(구 트위터)에서 콘텐츠를 보기만 하고 어떤 반응도 하지 않는 '러커(lurker)'[1]​가 이용자의 약 90%를 차지해요. 좋아요, 리트윗 같은 능동적 행위는 조회수에 비해 극히 작은 비율이라는 거예요.

한국도 비슷한 흐름이에요. 한국갤럽이 2025년 실시한 조사에서 20~40대조차 사이버 공간에서 타인의 의견을 읽는 사람은 약 75%인 반면, 자기 생각을 직접 글로 남기는 사람은 20%를 넘지 않았어요. 오픈서베이의 2025년 소셜미디어 트렌드 리포트도 인스타그램의 접속 빈도와 시청 빈도가 전년 대비 감소했다고 보고하고 있어요.

닐슨 노먼 그룹이 정리한 '90-9-1 법칙'[1]​이 있어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90%는 보기만 하고, 9%는 가끔 참여하며, 1%만이 콘텐츠를 만든다는 거예요. 이 법칙이 처음 제안된 게 2006년인데, 20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이 비율이 더 극단적으로 변하고 있어요.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의 '인상 관리(impression management)' 이론[2]​으로 보면, 소셜미디어는 본질적으로 무대예요. 모든 게시물은 보이지 않는 관객을 위해 편집된 공연이에요. 그런데 그 공연의 비용—시간, 에너지, 그리고 미래의 리스크—이 너무 높아진 거예요. 합리적인 선택지는 관객석으로 내려가는 거예요.

첨부 이미지

🤖 침묵의 빈자리를 채운 것

여기서 이야기가 흥미로워져요. Ofcom의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성인의 54%가 ChatGPT 같은 AI 도구를 사용하고 있어요. 2024년의 31%에서 1년 만에 거의 두 배로 뛴 거예요. 그 중 약 12%는 AI를 대화 상대로 이용하고 있고, 25~34세로 좁히면 이 비율이 19%까지 올라가요.

Ofcom이 20년째 추적 인터뷰하고 있는 패널 멤버들 중 일부는 AI를 마치 사람처럼 대하고 있었어요. 재택근무 중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연애 상담을 받기 위해, 심지어 결혼식 축사를 함께 쓰기 위해 AI를 찾고 있었어요. 대부분 무의식적으로요.

퓨 리서치센터의 2025년 조사도 같은 방향을 가리켜요. 미국 10대의 약 64%가 AI 챗봇을 사용하고 있고, 그 중 30%는 매일 이용해요.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AI 동반자(AI Companions)를 2026년 10대 혁신 기술 중 하나로 선정하면서, 커먼센스미디어의 조사를 인용해 미국 10대의 72%가 AI를 동반자 용도로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어요.

한국의 ChatGPT 연간 이용률도 2023년 7%에서 2025년 34%로 급증했어요(한국갤럽, 2025).

구도가 보이시나요?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에서 말을 멈추고 있고, 동시에 AI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어요. 이건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 있어요.

오스왈드의 시선

저는 이 현상을 '소셜 미디어의 방송화'라고 부르고 싶어요. 초기 소셜미디어의 약속은 "모두가 말할 수 있는 광장"이었어요. 그런데 15년이 지나고 보니, 그 광장은 거대한 방송국이 되어 있어요. 소수의 크리에이터가 콘텐츠를 제작하고, 대다수는 시청하는 구조. TV 시절과 다른 게 뭘까요?

GTM 전략을 수립하는 관점에서 보면, 이건 플랫폼 기업들에게도 심각한 문제예요. 소셜미디어의 비즈니스 모델은 이용자가 만든 콘텐츠(UGC)를 연료로 돌아가거든요. 이용자가 글을 쓰지 않으면 피드를 채울 콘텐츠가 없고, 콘텐츠가 없으면 광고를 붙일 곳이 없어요. 이 위기를 플랫폼들이 알고리즘 추천과 AI 생성 콘텐츠로 메우려는 건 우연이 아니에요.

더 깊이 보면, 온라인에서 이익이 위험을 넘는다고 느끼는 영국 성인의 비율이 72%(2024년)에서 59%(2025년)로 떨어졌어요. 소셜미디어가 정신건강에 좋다고 생각하는 이용자도 42%에서 36%로 줄었고요. 사람들이 '디지털 공간은 나에게 이롭다'는 기본 전제를 의심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리고 그 의심의 빈자리를 AI가 채우고 있어요. Nature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Communications에 실린 2025년 논문은 AI 챗봇을 "감정적 패스트푸드"라고 표현했어요. 즉각적이고, 편리하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실질이 없는 대체물이라는 거예요. 로버트 퍼트넘이 Bowling Alone에서 경고했던 사회적 자본의 침식이, 20년 뒤 AI 동반자라는 형태로 가속되고 있는 셈이에요.

제가 우려하는 건 기술 자체가 아니에요. 저도 매일 AI를 사용하니까요. 우려되는 건 대체의 순서예요. 사람들이 인간 관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훈련을 충분히 한 뒤에 AI를 보조적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마찰 없는 AI 대화에 익숙해지면서 인간 관계의 복잡성을 회피하게 되는 경로. 이 경로가 한번 고착되면 되돌리기 어려워요.

마치며

지금의 변화하는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1.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떠나지 않았다. 다만 '관객'이 되었다. 영상 중심 전환과 디지털 영구성에 대한 불안이 능동적 참여를 위축시키고 있어요.
  2. 이 침묵은 글로벌 현상이다. 영국, 미국, 한국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온라인에서 자기 생각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행위 자체가 줄어들고 있어요.
  3. AI가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그것이 '연결'인지는 물어볼 필요가 있다. AI 대화는 마찰이 없어요. 하지만 인간 관계의 가치는 바로 그 마찰에서 나와요.

다음에 인스타그램 피드를 스크롤할 때, 한번 세어보세요. 내가 아는 사람이 직접 쓴 글이 몇 개나 되는지. 그리고 그 숫자가 1년 전과 같은지.

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배경 지식

각주

  1. [1] 90-9-1 법칙: 닐슨 노먼 그룹의 야콥 닐슨이 2006년 정리한 온라인 커뮤니티 참여 비율이에요. 90%는 보기만 하고(러커), 9%는 가끔 참여하고, 1%만이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만든다는 법칙이에요. 위키피디아 편집 비율 분석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관찰돼요.
  2. [2] 인상 관리(Impression Management):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이 1956년 제안한 개념이에요. 사람들이 타인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이미지를 의식적으로 통제하려 한다는 이론이에요. 소셜미디어에서 모든 게시물이 '편집된 자아'인 이유를 설명해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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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안광섭은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자 OBF(Oswarld Boutique Consulting Firm) 리드 컨설턴트이다. 대학에서 경영데이터 관리, 비즈니스 애널리틱스 등 데이터 분석을 가르치는 한편, 현장에서는 GTM 전략과 인공지능 전략 컨설팅을 이끌며 기술과 비즈니스의 접점을 설계하고 있다. AI 대화 시스템의 기억 아키텍처(HEMA) 연구로 학술 논문을 발표했으며, 매일 글로벌 AI 논문을 큐레이션하는 Daily Arxiv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KBMA와 기술경영전문대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생각을 맡기는 사람들: 호모 브레인리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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