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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당신이 보는 것으로 당신의 성격을 알 수 있어요.

독서 취향으로 당신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것은 당신이 보는 것으로 당신을 알 수 있다는 것

2026.04.07 |
from.
Kwangseob

들어가며

구독자님, 잠깐 책장을 떠올려 보세요. 판타지 소설이 가득한 사람도 있을 거고, 자기계발서가 쭉 꽂혀 있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만약 그 책장이 여러분의 성격 지문이라면 어떨까요?

실제로 6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이걸 과학적으로 증명한 연구가 있어요. 좋아하는 책의 장르와 태그가 성격을 최대 47%까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거든요. 그리고 이 원리는 지금 넷플릭스가 여러분에게 콘텐츠를 추천하는 바로 그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이에요.

오늘은 '취향'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있는 구조를 한번 풀어볼게요.

성격을 측정하는 두 개의 언어: MBTI와 Big Five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먼저 성격을 어떻게 측정하는지를 알아야 해요.

한국에서는 MBTI가 거의 공용어 수준이죠. "나는 INFP라서 판타지를 좋아해"라는 말, 주변에서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런데 정작 학계에서는 MBTI 대신 Big Five(OCEAN)[1]​라는 모델을 주로 써요.

차이를 쉽게 비유하면 이래요. MBTI가 16개의 방이라면, Big Five는 5개의 볼륨 다이얼이에요. MBTI는 "너는 외향적이야, 아니면 내향적이야"라고 칼로 자르는 반면, Big Five는 "네 외향성은 100점 만점에 72점이야"라고 연속적인 스펙트럼으로 봐요. 그래서 수십 년간 직업 성과, 건강, 대인관계 같은 것들을 예측하는 데 반복 검증된 모델이에요.

물론 MBTI가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사람들끼리 대화할 때 "나 ENFP야"가 "나 외향성 72, 개방성 85야"보다 훨씬 직관적이니까요. 다만 학술적 정밀도가 다른 도구라는 점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어요. MBTI는 16개인데 BIG5는 5개 니까 적은거 아니야? 라고 할 수 있는데... 뭐 숫자만 보면 BIG 5도 반대편과 중간값 등까지 합치면 최소 10~15개는 되니 비슷하면 비슷했지 적은것은 아니에요. 여튼 약간 열린? 마음으로 읽어보세요!

6만 명의 데이터가 말해주는 것

자, 이제 그럼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Ng Annalyn 연구팀이 IEEE Transactions on Affective Computing에 발표한 논문이 있어요. 이 연구는 Facebook의 myPersonality 앱을 통해 61,662명의 사용자 데이터를 모으고, 세계 최대 독서 커뮤니티인 Goodreads에서 24,091개의 태그와 479권의 책 데이터를 가져왔어요. 태그의 총 사용 횟수만 1억 9,300만 건이 넘어요.

기존 연구들은 최대 81개 장르 수준에서 분석했어요. "판타지"라는 큰 덩어리 안에 다크 판타지, 어반 판타지, 하이 판타지 같은 수십 가지 결이 있는데, 그걸 전부 하나로 뭉뚱그린 거죠. 반면 이 연구는 사용자들이 직접 붙인 2만 4천 개 태그를 활용해서, 훨씬 세밀한 취향의 결을 포착했어요.

성격 × 독서 취향: 다섯 가지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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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성격 차원별로 정리하면 이래요.

외향성: 외향적인 사람들은 인간관계, 치크릿[2]​, 회고록 같은 '사람 이야기'를 좋아했어요. 향적인 사람들은 판타지, SF, 만화 — 상상의 세계로 빠지는 장르를 선호했고요.

친화성: 친화성이 높은 사람들은 기독교 고전, 가족 이야기, 아동서를 좋아했어요. 반대로 친화성이 낮은 사람들은 심리 드라마나 컬트 클래식처럼 비틀어진 시선의 작품을 즐겼어요.

개방성: 이 연구에서 가장 강력한 예측력을 보인 차원이에요. R²가 0.47[3]​ — 독서 취향만으로 그 사람의 개방성 변동의 47%를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사회과학에서 이 정도면 상당히 높은 설명력이에요.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철학 소설, 대학 교양서를, 개방성이 낮은 사람은 라이트 판타지 같은 가벼운 장르를 선호했어요.

예민함: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편인 사람들은 슬픈 결말이 있는 책이나 정신건강 관련 서적을 좋아했어요. 그리고 흥미롭게도 "예쁜 표지" 태그와의 상관이 나타났는데, 이건 성별이라는 교란변수가 있어서 해석에 주의가 필요해요. 반대로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들은 자기계발서나 과학기술 서적을 선호했어요.

성실성: 성실한 사람들은 전문 독서, 비즈니스, 역사 서적을 좋아했고, 덜 성실한 사람들은 유머나 청소년 소설을 좋아했어요.

"나중에 읽을 책"이라는 행동적 태그

이 연구에서 특별히 주목할 발견이 하나 있어요. "back-burner"라는 태그 — '나중에 읽을 책'이라는 뜻인데요, 이 태그가 개방성과 상관계수 0.28로 가장 높은 상관을 보였어요. 개방성이 높은 사람들은 읽고 싶은 책을 엄청 많이 모아두는 경향이 있다는 거예요.

이건 장르 선호를 넘어 독서 '행동' 자체에도 성격이 반영된다는 걸 보여준 최초의 발견이에요. 기존 연구에서는 "뭘 읽느냐"만 봤지, "어떻게 읽느냐"까지는 포착하지 못했거든요.

이 발견이 중요한 이유: AI 추천의 작동 원리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볼게요. 넷플릭스가 콘텐츠를 분류하는 방식을 아세요? 단순히 '로맨스'나 '액션'으로 나누는 게 아니에요. 2014년 The Atlantic의 조사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76,897개의 마이크로 장르(altgenre)를 운용하고 있었어요. "비 오는 날 보기 좋은 영국 시대극 로맨스" 같은 수준으로 세분화하는 거예요.

이게 앞서 살펴본 연구에서 태그 2만 4천 개를 쓴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접근이에요. 장르 단위로 뭉뚱그리면 놓치는 취향의 결을 세밀한 태그로 포착하는 거죠. 그리고 넷플릭스에서 시청되는 콘텐츠의 80% 이상이 이런 추천 알고리즘에서 나온다고 해요.

넷플릭스가 공식적으로 "우리는 당신의 성격을 파악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진 않아요. 하지만 7만 개가 넘는 마이크로 장르로 취향을 분류한다는 건, 사실상 성격 프로파일을 구축하고 있는 것과 같은 구조예요.

이 점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연구가 있어요. 2015년 Cambridge 대학교의 Wu Youyou 연구팀이 PNAS에 발표한 논문인데요, Facebook 좋아요 데이터 86,220명을 분석한 결과, 컴퓨터가 70개의 좋아요만으로 그 사람의 친구보다, 150개로 가족보다, 300개로 배우자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성격을 예측할 수 있었어요.

한국 상황에서 이게 더 중요해지는 이유가 있어요.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를 보면, 성인 전체 종합독서율은 38.5%로 역대 최저예요. 그런데 20대만 유일하게 75.3%로 소폭 상승했어요. 더 주목할 점은 20대의 전자책 독서율이 59.4%로 종이책(45.1%)을 크게 앞질렀다는 거예요.

전자책 플랫폼에서는 뭘 읽었는지, 어디서 멈췄는지, 얼마나 빨리 읽었는지가 전부 데이터로 쌓여요. 종이책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죠. 디지털 독서로의 전환이 가속될수록, 이 알고리즘이 우리의 취향 — 결국 성격 — 을 읽는 정밀도는 점점 더 높아질 수밖에 없어요.

오스왈드의 시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저는 이 연구 결과를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교차했어요. 하나는 건강한 감탄이에요. "나중에 읽을 책"이라는 행동적 태그까지 성격을 반영한다는 건, 우리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 자체가 일종의 성격 서명(signature)이라는 뜻이거든요. 데이터 분석을 해온 경험에서 보면, R² 0.47이라는 건 단일 변수 모델치고는 꽤 인상적인 수치예요.

다른 하나는 구조적 우려예요. 경영 전략을 수립하면서 반복적으로 봐왔던 패턴이 있어요. 기업이 사용자를 "이해한다"고 말할 때, 그 이해의 목적은 거의 언제나 전환율(conversion)이에요. 넷플릭스의 76,897개 마이크로 장르는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탈률을 낮추기 위한 설계이기도 해요. 추천 엔진이 연간 10억 달러 이상의 구독 이탈을 방지한다는 넷플릭스의 추산이 이를 말해줘요.

문제는 이 구조에서 사용자가 자신이 프로파일링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에요. "취향 추천"이라는 친절한 이름 뒤에, 사실상 성격 데이터 수집이 진행되고 있는 거죠. 한국의 20대가 전자책 플랫폼으로 이동할수록, 이 비대칭은 더 커질 거예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국내의 각종 독서모임 서비스 트레바리, 힛치 등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 두 번 모임에 참석 한 사람이 아니라 그곳에는 수 많은 책과 각 사람별로 태그가 모여 있을 텐데 그것을 기반으로 성격 유형과 취향 더 나아가 광고, 콘텐츠, 상품 등을 추천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비지니스 기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마치며

이 연구가 말하는 것은, 독서 취향은 성격의 거울이에요. 특히 개방성 차원에서 R² 0.47이라는 건, 당신이 어떤 책에 끌리는지만 봐도 성격의 거의 절반을 읽을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태그는 장르보다 훨씬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어요 — 심지어 "나중에 읽을 책"이라는 행동적 태그까지 성격을 반영하고요. AI 추천 알고리즘은 이미 이 원리 위에서 작동하고 있어요. 넷플릭스의 7만 개 마이크로 장르가 바로 그 증거예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던져볼게요. 만약 독서 취향이 성격을 반영한다면, 반대로 평소 안 읽던 장르의 책을 읽으면 성격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까요? 실제로 Djikic 등의 연구(2009)에서 소설 읽기가 성격 특성의 자기 보고에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어요. 인과관계가 완전히 입증된 건 아니지만, 꽤 흥미로운 가능성이에요.

다음에 책을 고를 때, 한번 의식적으로 평소와 다른 선반에 손을 뻗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게 알고리즘의 추천 밖으로 나가는 첫걸음일 수도 있으니까요.

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배경 지식

 

 

각주

  1. [1] Big Five(OCEAN): 심리학에서 성격을 측정하는 5가지 축이에요. 개방성(Openness), 성실성(Conscientiousness), 외향성(Extraversion), 친화성(Agreeableness), 신경증(Neuroticism)의 앞글자를 따서 OCEAN이라고도 불러요. MBTI처럼 유형을 나누는 게 아니라, 각 축을 0~100 사이의 점수로 표현하는 연속형 모델이에요.
  2. [2] 치크릿(Chick Lit): 20~30대 여성의 일상, 연애, 커리어를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다루는 소설 장르예요.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대표작이에요.
  3. [3] R²(결정계수): 모델이 데이터의 변동을 얼마나 설명하는지 보여주는 값이에요. 0이면 전혀 설명 못하는 거고, 1이면 완벽하게 설명하는 거예요. 사회과학에서 R² 0.47이면 "상당히 높은 설명력"으로 봐요. 참고로 사회과학 연구에서 R² 0.1~0.2만 넘어도 의미 있는 결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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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안광섭은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자 OBF(Oswarld Boutique Consulting Firm) 리드 컨설턴트이다. 대학에서 경영데이터 관리, 비즈니스 애널리틱스 등 데이터 분석을 가르치는 한편, 현장에서는 GTM 전략과 인공지능 전략 컨설팅을 이끌며 기술과 비즈니스의 접점을 설계하고 있다. AI 대화 시스템의 기억 아키텍처(HEMA) 연구로 학술 논문을 발표했으며, 매일 글로벌 AI 논문을 큐레이션하는 Daily Arxiv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KBMA와 기술경영전문대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생각을 맡기는 사람들: 호모 브레인리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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