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구독자님,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가 뭔지 아세요? AI도, 에이전트도 아니에요. 바로 'taste(취향)'예요. 제가 작년에 쓴 책에서도 이것을 이야기 했고, 2년 전에 쓴 블로그 글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적었어요. 하지만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순간 모두가 이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떄 드는 생각은 "역시 내가 맞았어!"가 아니라 "어? 이게 맞나?"였어요. 왜냐면,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이건 시장에서도 성숙기에 들어온 것으로도 볼 수 있거든요. 즉, 새로운 것을 찾을 때라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이런 캐즘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풀어 볼게요.)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니 마침 Y Combinator 공동 창업자 폴 그레이엄은 X에 이렇게 썼더라구요. "AI 시대에는 취향이 더 중요해진다. 누구나 무엇이든 만들 수 있을 때, 차별화는 '무엇을 만들지 고르는 것'에서 나온다." Cloudflare CTO 데인 크넥트는 여기에 맞장구를 치며 "2026년, 취향이 엔지니어링의 차별화 요소가 된다"고 했고, OpenAI 그렉 브록만까지 합류했어요. AI 디자인 도구 Framer의 창업자 코엔 복은 팟캐스트에서 "위대한 취향이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고 선언했고요.
뉴요커의 기술문화 칼럼니스트 카일 차이카는 이 현상을 정면으로 다뤘어요. 그는 이걸 'taste-washing(취향 세탁)'이라고 불러요. 반인간적 기술에 인문주의적 외피를 씌우는 행위라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겨요. 실리콘밸리가 말하는 '취향'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취향과 같은 건가요?
왜 갑자기 '취향'인가 — 생산이 민주화된 세계의 역설
이 담론이 폭발한 배경부터 짚어볼게요. 핵심은 단순해요. AI가 '만드는 일'의 진입장벽을 거의 없앴기 때문이에요.
Anthropic의 Claude Code 같은 코딩 어시스턴트를 쓰면 프로그래밍 경험이 없는 사람도 앱을 만들 수 있어요. 이미지 생성 AI로 누구나 비주얼을 뽑아내고, LLM[1]으로 누구나 글을 써요. 기술적 실행력이 더 이상 차별화 요소가 아닌 거예요.
그래서 남은 질문은 이거예요: "무엇을 만들 것인가?"
폴 그레이엄의 논리를 따르면, 이 '무엇'을 고르는 능력이 바로 취향이에요. 2002년에 그가 쓴 에세이 「Taste for Makers」에서 이미 이런 주장을 했어요. "위대한 작업의 레시피는 매우 까다로운 취향,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능력이다." 22년 전의 글이 2024~2025년에 다시 바이럴된 건, AI가 '실현하는 능력' 부분을 거의 해결해 버렸기 때문이에요.
벤처 캐피탈리스트 마크 앤드리슨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갔어요. AI 시대가 완전히 도래하면 VC(벤처 캐피탈) — 즉 '가치 있는 투자를 골라내는 기술' — 가 마지막으로 남는 직업군 중 하나가 될 거라고요. 물론 본인이 VC니까 편향이 있을 수 있지만, 논리 자체는 명확해요.
문제는 이 논리가 '취향'이라는 단어를 아주 특정한 방향으로 좁힌다는 점이에요. "무엇이 돈이 되는지 고르는 능력"을 '취향'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거예요.
'취향'의 두 얼굴 — 볼테르 vs. 실리콘밸리
취향이라는 개념의 역사를 잠깐 들여다보면, 실리콘밸리의 정의가 얼마나 협소한지 드러나요.
18세기 프랑스 철학자들, 특히 볼테르는 취향을 인간의 내면적 감수성과 연결했어요. "취향을 갖기 위해서는, 주어진 작품에서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것에 감동받아야 한다." 여기서 취향은 감정적 반응이자 미학적 판단력이에요.
피에르 부르디외[2]는 1979년 저서 『구별짓기(La Distinction)』에서 이 개념을 뒤집었어요. 그에 따르면, 취향은 개인적 감수성이 아니라 사회적 위치의 표식이에요.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는지는 교육 수준, 계급, 문화 자본[3]에 의해 결정된다는 거예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더 높은' 취향인 이유는, 그걸 감상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특정 계급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예요.
이 두 관점을 놓고 보면, 실리콘밸리의 '취향' 담론은 제3의 정의를 만들어내고 있어요:
| 정의 | 핵심 | 주체 |
|---|---|---|
| 볼테르의 취향 |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동하는 능력 | 감수성을 가진 개인 |
| 부르디외의 취향 | 사회적 위치를 표시하는 구별 기제 | 문화 자본을 가진 계급 |
| 실리콘밸리의 취향 | 수익을 낼 것을 고르는 능력 | 자본과 플랫폼을 가진 창업자 |
폴 그레이엄의 원래 에세이에서도 힌트가 있어요. 그는 취향을 "솔직하게 자기 자신에게 정직한 것"이라고 했지만, 동시에 "위대한 작업"의 맥락은 철저히 제품과 사업이었어요. Poggio 공동창업자 맷 슬로트닉이 X에서 한 지적이 날카로워요: "취향이라는 말이 먹히는 이유는, 모호하고, 반박할 수 없고, 자존심을 먹여주기 때문이다."
'취향 세탁' — AI 기업의 인문주의 코스프레
카일 차이카가 지적한 'taste-washing'의 실체를 좀 더 살펴볼게요.
Anthropic는 작년 맨해튼에서 팝업 카페를 열었어요. 'thinking'이라고 자수가 놓인 야구 모자를 나눠줬고요. OpenAI의 슈퍼볼 광고 "You Can Just Build Things"는 자전거 핸들을 잡는 손, 노트에 글 쓰는 손, 체스를 두는 손을 보여주며 — 사람의 시점에서 촬영됐어요. 광고하는 제품이 이론상 전지전능한 AI 로봇인데도요.
이건 2010년대 힙스터 문화의 데자뷰예요. 수제 IPA, 아메리칸 어패럴, 아케이드 파이어로 자기 정체성을 구성하던 문화가 있었어요. '로파이'하고 '수공예'적인 것에 대한 페티시였죠. 그리고 그건 결국 Meta의 인스타그램과 Amazon의 홀푸드가 흡수해 버렸어요. 차이카가 이전 저서 『Filterworld』에서 분석했듯, 알고리즘은 그 '취향'마저 균질화시켰고요.
지금 AI 기업들은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어요. 자동화를 판매하면서 수공예의 아우라를 빌려오는 거예요. "AI가 만들어주니까, 이제 당신의 '취향'만 있으면 돼요"라는 메시지는, 사실상 "우리 도구를 쓰면 당신도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어요"라는 라이프스타일 마케팅이에요.
그런데 정작 많은 사람들은 AI 도구를 위협으로 느끼고 있어요. 생계에 대한 위협, 미래에 대한 불안, 자기 정체성에 대한 도전으로요. 이 간극을 '취향'이라는 고상한 단어로 메우려는 시도 — 이게 바로 취향 세탁이에요.

NYT의 블라인드 테스트가 보여주는 불편한 진실
이 맥락에서 최근 뉴욕타임스의 실험이 흥미로워요. 지난 3월 9일, NYT는 AI가 쓴 글과 인간이 쓴 글을 나란히 놓고 독자에게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 물었어요. 86,000명이 참여했고, 54%가 AI가 쓴 글을 택했어요.
이 결과를 두고 "AI가 이제 인간보다 잘 쓴다"고 해석하면 너무 단순해요. 실험 설계를 보면, AI에게 기존의 좋은 인간 글을 먼저 읽힌 뒤 AI 자체 버전을 쓰게 했어요. 코맥 매카시 같은 독특한 문체의 작가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댓글에서는 "매카시를 싫어해서 AI를 골랐다"는 반응도 있었고요. 문학 비평가 벤 마욱은 "짧은 발췌문에서의 선호도를 '작품'에 대한 판단으로 프레이밍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어요.
하지만 제가 주목하는 건 다른 부분이에요. 한 블로거의 비유가 인상적이었는데요 — "사람들이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감자칩을 구운 브뤼셀 스프라우트보다 선호한다고 해서, 농부와 요리사와 식료품점을 전부 없애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라는 거예요. 선호(preference)와 가치(value)는 다른 차원의 문제예요.
이 실험이 실리콘밸리의 '취향' 담론과 만나면 아이러니가 생겨요. 그들이 말하는 '취향'이 정말 심미적 판단력이라면, 86,000명의 NYT 독자 중 절반 이상이 AI 글을 선택한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까요? 이미 디지털 생태계가 우리의 취향 판별 능력 자체를 변형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오스왈드의 시선
솔직히 이야기하면, 저는 실리콘밸리의 '취향' 담론에서 빠진 단어 하나가 계속 눈에 걸려요. 바로 '신념(conviction)'이에요.
광고인 아르템 보로노프가 자신의 블로그에서 흥미로운 분석을 했어요. 그는 칸 라이온즈 2024~2025의 심사위원장들이 수상작에 대해 어떤 단어를 썼는지 추적했는데, '취향'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대요. 대신 "믿을 수 없이 용감한(incredibly brave)", "비평에 맞서 거대한 위험을 감수한"이라는 표현이 나왔어요.
1984년 애플의 그 유명한 슈퍼볼 광고도 떠올려 볼게요.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이 광고를 혐오했어요. 방영을 취소하라고 했죠. 하지만 광고 대행사 Chiat/Day의 제이 차이앗은 일부러 광고 슬롯을 안 팔았고, 워즈니악이 사비를 보태겠다고 나섰어요. 결과는요? 매킨토시 출시 직후 350만 달러의 매출, 수백만 달러 상당의 무료 홍보 효과, Advertising Age 선정 '10년의 최고 광고'까지요.
이건 취향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신념의 이야기예요. 모두가 틀렸다고 할 때 자기 판단을 밀어붙이는 능력이에요. 제 경험에서 보면, '무엇을 만들지 고르는 능력'은 분명 중요해요. 하지만 그건 취향이 아니라 시장에 대한 가설(hypothesis)과 그 가설에 대한 확신(conviction)의 조합이에요. 취향은 모호하고 반박할 수 없어요. 가설은 구체적이고 검증 가능해요. 실리콘밸리가 '취향'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건, 어쩌면 검증 가능한 판단을 검증 불가능한 영역으로 격상시키고 싶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한 가지 더 불편한 질문이 있어요. AI가 아첨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이미 있어요. Anthropic의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AI 모델은 사회적 압력 아래에서 올바른 답을 포기하고 사용자의 의견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걸 '아첨(sycophancy)'이라고 부르는데요, 모델이 커질수록 이 현상이 심해져요. 아첨에 최적화된 도구가 만들어 낸 결과물을 '취향의 결정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마치며
첫째, 실리콘밸리의 '취향' 담론은 AI가 생산을 민주화하면서 생긴 새로운 계급화 도구예요. '좋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 AI 시대의 승자라는 서사는, 결국 자본과 플랫폼에 대한 접근 권한을 미학적 언어로 포장한 거예요.
둘째, '취향'은 검증 불가능한 단어예요. 실리콘밸리가 정말 중요하다고 믿는 건 판단력과 신념 — 즉, 데이터를 읽고 가설을 세우고 리스크를 감수하는 능력이에요. 그걸 '취향'이라 부르는 순간, 구체적 역량이 신비로운 재능으로 둔갑해요.
셋째, NYT 실험이 보여주듯, 디지털 환경은 이미 우리의 미학적 판단을 변형시키고 있어요. '취향의 시대'를 선언하기 전에, 취향이 작동할 수 있는 환경부터 점검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요.
부르디외가 1979년에 보여줬듯, 취향은 늘 권력의 언어였어요. 2026년에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이번에는 그 권력이 문화 자본이 아니라 컴퓨팅 자본에서 나온다는 점이 다를 뿐이에요. 즉, 우리에게 필요한건 무언가를 결정하고 밀어 붙일 용기에요.
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 Kyle Chayka, "Why Tech Bros Are Now Obsessed with Taste", The New Yorker, 2026.
- Paul Graham, "Taste for Makers", 2002.
- Kevin Roose & Stuart A. Thompson, "Who's a Better Writer: A.I. or Humans?", The New York Times, 2026년 3월 9일.
배경 지식
- Pierre Bourdieu, Distinction: A Social Critique of the Judgement of Taste, 1979. : 취향이 개인적 감수성이 아니라 사회적 계급의 표식이라는 것을 보여준 사회학의 고전이에요. <구별짓기>로 번역서가 있어요.
- Kyle Chayka, Filterworld: How Algorithms Flattened Culture, 2024. — 알고리즘이 문화적 취향을 어떻게 균질화시키는지 다룬 책이에요. 오늘 뉴스레터의 'taste-washing' 논의의 배경이 돼요. 국내에서도 <필터월드>로 번역되어 출판되었어요.
- Anthropic, "Towards Understanding Sycophancy in Language Models", 2023. — AI 모델이 사용자 의견에 동조하는 '아첨' 경향에 대한 연구예요.
각주
- [1] LLM (Large Language Model, 대규모 언어 모델): ChatGPT, Claude 같은 AI의 핵심 기술이에요.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해서 자연스러운 문장을 생성하는 모델이에요.
- [2]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 1930~2002): 프랑스의 사회학자예요. 문화적 취향이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계급 구조의 반영이라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줬어요. 국제사회학회가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회학 저서 중 하나로 그의 『구별짓기』를 선정했어요.
- [3] 문화 자본 (Cultural Capital): 부르디외가 만든 개념이에요. 돈(경제적 자본)이 아니라 교육, 지식, 취향, 말투 같은 비경제적 자산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한다는 아이디어예요. 쉽게 말하면, "어떤 집안에서 자랐느냐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지를 결정한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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