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한 가지 질문으로 시작해볼게요. 1990년대에 국제전화를 걸어본 적 있으신가요? 분당 수백 원이 찍히는 요금 때문에, 할 말을 미리 메모해두고 전화기를 들었던 기억이요. 그때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에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고 있었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이메일 한 통 보내는 데 드는 비용은 사실상 0원이에요. 문자도, 메신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이 '공짜'가 만들어낸 풍경이 좀 기묘해요. 2025년 기준, 전 세계에서 하루에 약 3,760억 통의 이메일이 오가고, 그중 절반 가까이가 스팸이에요. 더 놀라운 건, 이 스팸의 과반이 이제 AI가 쓴다는 거예요.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이거예요. 메시지를 보내는 데 비용이 0원이면, 받는 사람의 '관심'도 0원짜리 자원이 된다. 그리고 이 구조를 되돌리는 데 필요한 건 놀랍도록 단순한 것일 수 있어요.
공짜 메시지가 만든 '디지털 공유지의 비극'
경제학에 '공유지의 비극'[1]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모두에게 열린 목초지에서 각자 소를 최대한 많이 방목하면, 결국 풀이 다 사라져서 아무도 쓸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예요.
이메일 받은편지함이 정확히 이 구조예요. 메시지를 보내는 쪽의 비용이 0원이니, 마케터든 스패머든 가능한 한 많이 보내는 게 합리적이에요. 그 결과 수신자의 받은편지함은 풀이 뜯긴 목초지가 되었고요.
한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아요. 방송통신위원회와 KISA의 조사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1인당 월평균 불법스팸 수신량은 16.34통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어요. 정부의 강력한 종합대책 이후 하반기에는 11.60통으로 줄었지만, 2025년 상반기 데이터를 보면 더 흥미로운 패턴이 나타나요. 문자스팸은 월 3.04통으로 58.5% 급감한 반면, 음성스팸은 월 2.13통으로 오히려 약 40% 증가했거든요.
문을 잠그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경제학에서는 이걸 '풍선효과'라고 부르는데, 발신 비용이 0원인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스팸은 채널만 바꿔가며 계속됩니다.

AI가 목초지를 '무한'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AI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한 단계 더 악화됐어요.
콜롬비아대학교, 시카고대학교, 바라쿠다가 공동으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2025년 4월 기준 스팸 이메일의 51%가 AI로 생성된 것으로 나타났어요. 연구팀은 ChatGPT 공개(2022년 11월) 이전에 발송된 이메일을 '인간 작성' 기준선으로 설정하고, 이후 데이터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AI 사용 비율을 추정했는데요. AI가 쓴 스팸의 특징이 재미있어요. 문법 오류가 적고, 격식을 잘 갖추고, 언어적으로 더 세련돼요. 즉, 스팸 필터를 우회하기가 더 쉬워진 거예요.
피싱[2] 쪽은 더 극적이에요. 사이버보안 기업 Hoxhunt의 실험 결과, AI 스피어피싱 에이전트[3]의 효과가 2023년에는 인간 전문가보다 31% 낮았는데, 2025년 3월에는 24% 더 높아졌어요. 불과 2년 만에 역전된 거예요. 결국 지금 벌어지고 있는 건 'AI 필터 vs AI 스팸'의 군비경쟁이에요. 방어 쪽도 AI를 쓰고, 공격 쪽도 AI를 쓰니까요. 그런데 이 군비경쟁에는 구조적 비대칭이 있어요. 공격자는 한 통만 성공하면 되지만, 방어자는 모든 통을 막아야 하거든요.
'디지털 우표' — 20년 된 아이디어가 실패한 이유
사실 이 문제의 해법은 이미 20년 전에 제안됐어요. "이메일에 아주 작은 비용을 부과하자"는 거예요.
2003년,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는 Penny Black 프로젝트를 발표했어요. 이름부터 의미심장한데, 1840년 영국에서 발행된 세계 최초의 우편 우표 '페니 블랙'에서 따왔거든요. 우편의 비용을 수신자가 아닌 발신자가 부담하도록 바꾼 그 우표요. Penny Black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는 간단했어요. 이메일을 보낼 때 발신자의 컴퓨터가 일정량의 연산 자원을 소비하게 만드는 거예요. 개인이 한두 통 보내는 데는 영향이 없지만, 수백만 통을 보내야 하는 스패머에게는 치명적 비용이 되는 구조예요.
비슷한 시도들이 뒤를 이었어요. 야후의 CentMail, 해시캐시(Hashcash) 기반의 여러 프로젝트들. 하지만 전부 실패했어요. MIT Technology Review가 2004년에 이미 핵심 문제를 지적했는데요. 결국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누가 이 시스템을 운영하는가, 법적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글로벌 표준은 어떻게 만드는가 — 이건 프로토콜이 아니라 제도와 인센티브의 문제였어요. 결국 이 프로젝트는 실패로 돌아갔죠.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무료'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이 어떤 형태의 비용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참고로 제 뉴스레터는 여러분들에게 양질의 콘텐츠와 좋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메일리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데 1년에 대략 100만원 정도 비용을 지출 하고 있어요. 많은 유료 맴버십을 부탁... (매우 적자 상태)

공작새 꼬리가 알려주는 것: 비용신호이론
여기서 한 발 물러나서, 왜 '공짜 신호'가 문제인지를 좀 더 근본적으로 살펴볼게요.
생물학에 자하비의 핸디캡 원리[4]라는 이론이 있어요. 공작새 수컷의 화려한 꼬리는 생존에 불리해요. 무겁고, 눈에 띄고, 도망치기 어렵게 만들거든요. 그런데 바로 그 '불리함'이 신호의 핵심이에요. "나는 이 핸디캡을 감당할 만큼 건강하다"는 걸 증명하는 거니까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직함의 증거인 셈이에요. 경제학에서는 마이클 스펜스의 신호이론[5]이 같은 구조예요. 대학 졸업장이 반드시 생산성을 높여주는 건 아니지만, "4년이라는 시간과 비용을 감당했다"는 신호는 고용주에게 가치가 있어요.
이걸 실험으로 증명한 연구도 있어요. 2019년 PNAS에 발표된 Tchernichovski 등의 연구에서, 온라인 평가 시스템에 아주 작은 시간 비용(슬라이더를 끝까지 드래그하려면 더 오래 걸리게 만드는 장치)을 부과했더니, 평가의 정확도가 유의미하게 향상됐어요. 비용이 없을 때는 아무렇게나 점수를 매기던 사람들이, 약간의 수고만 들어도 더 신중해진 거예요.
이메일 1원도 마찬가지예요. 그 1원은 돈이 아니라 예의의 문제예요. "나는 당신의 시간을 존중할 만큼, 이 메시지를 보내는 데 최소한의 비용을 감수했다"는 신호인 거죠. 한 통에 1원은 개인에게 아무 의미가 없지만, 하루 1,000만 통을 보내는 스패머에게는 1,000만 원이에요.
X(트위터)의 교훈: 설계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실제로 커뮤니케이션에 비용을 부과한 사례는 어떨까요?
일론 머스크의 X가 흥미로운 실험대예요. 유료 인증(월 8달러)으로 봇과 스팸을 줄이려 했는데, 결과는 복합적이었어요. 일부 봇은 줄었지만, 유료 인증 배지를 산 사칭 계정이 오히려 더 신뢰를 얻는 역설이 발생했거든요.
이 사례가 보여주는 핵심은 명확해요. '비용을 부과한다'는 원리는 맞지만,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가 설계의 전부예요. X는 발신자에게 비용을 부과한 게 아니라, 계정 유지 비용을 부과한 거예요. 스패머 입장에서 월 8달러는 사업 비용일 뿐이지, 메시지 하나하나에 대한 '예의의 신호'가 아니었던 거예요.
효과적인 '디지털 우표' 시스템이라면, 아는 사람이나 구독한 서비스에서 오는 메시지는 화이트리스트로 무료 처리하고, 모르는 발신자에게만 소액을 부과하는 구조여야 해요. 바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커피 한 잔 사주는 것과 같은 문화적 관행을 디지털로 옮기는 셈이죠.
또한, X의 새로운 시험이 시작되었는데 바로 주급 시스템이에요. X 포스팅의 조회수와 파급력에 따라 광고비를 지급하는 건데 기존의 유튜브, 틱톡 등의 플렛폼이 한달 단위로 지급했다면 X는 이것을 매주 결산해서 지급하며 모든 사람들이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게 하고 있어요. 물론... 이 덕분에 지금 X는 주급을 벌기 위해 다양한 어그로와 드립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어요.
오스왈드의 시선
솔직히 말하면, 저는 '디지털 우표'가 현실화되기 어렵다고 봐요. 20년간 실패한 데에는 이유가 있거든요.
하지만 이 아이디어가 계속 돌아오는 이유에는 주목할 가치가 있어요. GTM 전략을 수립하면서 늘 느끼는 건데, 가장 근본적인 문제일수록 가장 단순한 해법이 반복해서 제안돼요. 그리고 그 해법이 반복해서 실패하는 이유는 대부분 기술이 아니라 인센티브 구조 때문이에요.
지금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데이터로 정리해보면 이래요. 스팸의 과반이 AI로 만들어지고, AI 피싱은 인간 전문가를 넘어섰고, 한국에서는 문자를 막으면 음성으로, 음성을 막으면 또 다른 채널로 옮겨가요. 이건 '두더지 잡기'예요. 구멍을 하나 막으면 다른 데서 올라오는 구조.
제가 보기에 진짜 질문은 기술적 차단이 아니에요. "커뮤니케이션의 비용이 0원인 세상에서, '관심'이라는 자원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라는 제도 설계의 문제예요. 그리고 이 질문은 스팸을 넘어서 SNS의 알고리즘, 디지털 광고 산업, 나아가 민주주의의 정보 환경까지 연결돼요.
허버트 사이먼이 1971년에 이미 말했어요. 정보가 풍부해지면 다른 무언가가 희소해진다고. 그 '무언가'가 바로 관심(attention)이에요. 50년이 지났는데, 우리는 아직도 이 관심을 보호하는 제도를 갖추지 못했어요. 1원짜리 우표가 답은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아주 작은 마찰이 신호의 정직함을 보장한다'는 원리는, 앞으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설계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축이라고 생각해요.
마치며
오늘 이야기를 세 줄로 정리하면 이래요.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0원이 되면서 수신자의 관심도 0원짜리 자원이 됐어요. AI가 이 구조를 가속화하고 있고, 필터 기술만으로는 군비경쟁에서 이길 수 없어요. 해법의 방향은 기술적 차단이 아니라, 발신자에게 아주 작은 '마찰'을 되돌려주는 제도 설계에 있어요.
다음에 받은편지함을 열 때, 한번 세어보세요. 그중 몇 통이 당신의 시간을 존중하는 메시지인지. 그 비율이 지금 우리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예요.
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 Wei Hao et al., Barracuda/Columbia University/University of Chicago 공동연구, "AI-generated spam" 분석, 2025.06.18 발표. : 스팸 51%가 AI 생성이라는 오늘 뉴스레터의 핵심 데이터 출처예요.
- Hoxhunt, "AI-Powered Phishing Outperforms Elite Cybercriminals in 2025", 2025.03. : AI 피싱이 인간 전문가를 24% 앞서기 시작한 실험 결과를 담고 있어요.
- Ofer Tchernichovski, Lucas C. Parra, Daniel Fimiarz, Arnon Lotem, Dalton Conley, "Crowd wisdom enhanced by costly signaling in a virtual rating system", PNAS, 2019, 116(15), 7256-7265. : 온라인 평가에 시간 비용을 부과했을 때 정확도가 향상된다는 실험 결과예요. 비용신호이론의 디지털 적용을 실증한 핵심 논문이에요.
- 방송통신위원회·KISA, 「2024년 하반기 스팸 유통현황」, 2025.03.28 발표.: 한국 스팸 수신량 추이와 정부 대책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어요.
- 방송통신위원회·KISA, 「2025년 상반기 스팸 유통현황」. : 문자스팸 58.5% 감소 vs 음성스팸 40% 증가라는 풍선효과가 드러난 최신 보고서예요.
배경 지식
- Tim Wu, The Attention Merchants, Knopf, 2016. : '주의경제'의 역사를 19세기 신문부터 현대 디지털 광고까지 추적한 책이에요. 오늘 주제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어요. 국내에서는 <주목하지 않을 권리>로 번역 되었어요.
- Microsoft Research, Penny Black Project, 2003. : 디지털 우표의 원조 격 프로젝트예요. 기술적 접근이 왜 제도적 한계에 부딪혔는지 보여줘요.
각주
- [1] 공유지의 비극 (Tragedy of the Commons): 모두에게 열린 자원이 개인의 이익 추구로 결국 고갈되는 현상이에요. 경제학자 개럿 하딘이 1968년에 이름 붙였어요.
- [2] 피싱 (Phishing):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을 사칭해 개인정보나 금융정보를 탈취하는 사이버 사기 수법이에요.
- [3] 스피어피싱 에이전트 (Spear Phishing Agent): 특정 개인이나 조직을 겨냥해 맞춤형 피싱 공격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AI 시스템이에요. 일반 피싱보다 훨씬 정교해요.
- [4] 자하비의 핸디캡 원리 (Zahavi's Handicap Principle): 생물학자 아모츠 자하비가 제안한 이론으로, 신호가 비용이 클수록 더 정직한 정보를 전달한다는 원리예요. 공작새의 큰 꼬리가 대표적 사례예요.
- [5] 스펜스의 신호이론 (Spence Signaling Theory): 경제학자 마이클 스펜스의 이론으로,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 한쪽이 비용을 들여 자신의 특성을 증명하는 메커니즘이에요. 학력이 노동시장에서 '신호' 역할을 한다는 분석으로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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