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나면 눈으로 여러 번 읽고 소리내어 다시 한 번 읽는다. 그럼에도 '발행' 버튼을 누르는데 찜찜함을 느끼면 임시저장한 채로 두고 다음 날 다시 꺼내본다.
이렇게 고심 끝에 세상에 선보인 글일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반응이 시원찮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읽는 건 길어봐야 3~4분인데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글을 쓰는데 2~3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말이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서 쓴다고 한들 누가 알아봐주는 것도 아닌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한 것도 여러 번이다.
'너만큼만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종종 주변 사람들이 과거에 쓴 내 글을 읽고 부러움을 토로한다. 자그만치 10년이다. 그 시간을 투자해 겨우 남들이 읽을만한 수준의 글쓰기 실력을 얻었다. 만약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글쓰기가 아닌 다른 분야에 시간을 투자했다면 오히려 더 성과가 좋지 않았을까.
꾸준함은 재능 없는 이의 유일한 선택지라고 수없이 생각했다. 재능 있는 자들은 지름길을 통해 일찍 목적지에 도착해 또 다른 일을 도모하지만 지름길이 어딨는지 모르는 나는 먼 길을 에둘러 걸을 뿐이라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꾸준하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가끔 마감이 쫓기는 탓에, 더 쓰기 싫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고 발행버튼을 누른다. 보통은 글을 쓰고 나면 공감, 댓글과 같은 실시간 반응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편인데 이런 날에는 그냥 덮어둔다. 평소보다 형편 없는 글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쓰기 싫은 마음이 없었더라면 좀 더 잘 썼을텐데. 조급하게 발행버튼을 누른 건 아닌지. 발행한지 얼마 안 됐으니 어차피 몇 명 보지도 않았을텐데 다시 비공개로 돌려 완성도를 올려볼까.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에 아이러니하게 글은 터진다. 사실 여전히 이유는 잘 모르겠다. 공들여 쓴 글은 터지지 않고, 힘을 뺀 채로 쭉 내려 쓴 글이 터지는 것을.
어쩌면 그 동안 묵묵히 쌓아온 시간에 대한 결과물이라. 꾸준함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 밑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늘 발밑이 아닌 앞만 보고 살아온 탓에 그동안 쌓아온 것을 보지 못한 채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고.
글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지만, 그 글의 반응은 내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나를 믿는다는 건 반응을 섣불리 예측하지 않고 열심히 쓰고 대충 쓰기를 반복하면서 꾸준히 글을 꺼내놓는 것이다.
부족함을 많이 느껴도 세상에 내놓는 것.
썩 만족스럽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재능 없다는 생각에 쓰기를 게을리하는 행동을 멈추는 것.
불확실한 생각을 확실한 글로 탄생시켜주는 것.
지난 10년동안 글을 쓰면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배웠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쓰지 않을 이유보다 써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이번 주에 읽었던 책
이준익,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최동훈, 변영주 등.
지금은 누구나 알만큼 유명한 영화 감독들입니다.
그런데 그들도 한때는 아직 오지 않았던 순간들이 있었죠.
그런 영화 감독들의 데뷔의 순간을 모은 이야기입니다.
누구도 가지 않는 깜깜한 터널을 건너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이 책을 건네주세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