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전 6시 34분에 온 문자를 받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스는 오전 7시 30분, 한국은 오후 13시 30분이었다.
숙소는 괜찮아? 네가 보내준 주소 들어가서 보니까…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런데… 꼭 이상 성욕자들이, 그러니까 변태들이, 이상한 사람들이 와서 쓸 것 같은 방이야. 엄마가 너무 많이 걱정하는 거 아는데 집이… 좀…. 그래… 집주인도… 정신이… 좀 이상한 것 같아. 제정신인 사람이 숙소를 그렇게 해둘 리가 없어.
보니까 방 불빛도 빨갛고… 어어… 방 조명도 빨갛게 해뒀던데 그게 사람을 성적으로 흥분시키는 색깔이야… 보니까 벽도 빨갛고 침대랑 침구도 빨간색이던데… 꼭 변태들이 그… 모이는 그런 곳 같아. 다른 방도 있어? 집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만나봤어? 그렇구나… 그 관리자는 남자야? 무섭거나 위험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아? 그렇다면 다행이고… 아니, 사진을 봤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고 미친, 변태들이 모임을 하는 집 같더라니까… 숙소 주변은 어때? 치안 안 좋은 곳에 잡았지? 여행 경비 때문에 그런 거야?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면 언제든 옮겨. 돈은 엄마가 줄게… 필요하면 말해. 거기 있다가 아니다 싶으면 시내 중심가로 옮겨.
7분 51초 통화 내내 엄마의 목소리는 덜덜 떨렸다. 평소 목소리보다 높아져 있는 데다가 한 단어를 말하는 데 세 가지의 음정이 나왔다. 통화를 끊자마자 나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소리 내어 웃었다. 숙소 위치, 집주인의 성별까지는 예상했으나 침구의 색깔과 조명 색깔까지 염려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보낸 숙소의 링크를 오전에 열어보고 자기 딸이 위험에 처할지 걱정하고 있었다. 웃다가 강세가 낯선 노랫소리가 들려 웃음을 멈췄다. 옆집인지 윗집인지 아랫집인지 아니면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인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 심장이 묘하게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태네에 도착한 날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뒷문을 열기 전 기사는 말했다.
너 여기에 숙소 빌렸니?
응.
조심해. 특히 밤에 다닐 때.
여기 위험한 동네야?
엄청 위험한 건 아닌데 소매치기를 한다던가 가진 걸 빼앗는 경우가 있어서.
그렇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택시 창문 너머로 보이는 주택가의 건물은 비슷하게 생겼다. 베이지색에 집마다 베란다가 있었고 거기에는 이불 빨래를 널어두기도, 사람 몸통만 한 화분이 여러 개 놓여있기도 했다.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바닥이 무척 더러웠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을법한 넓이의 인도에는 말라붙은 개똥과 출처를 알 수 없는 물이 고여있거나 흐르고 있었으며 쓰레기가 발마다 차였다. 집마다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졌다. 인도를 보며 그 흔적을 발견하고 피해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찝찝한 물방울이 머리나 얼굴 위로 떨어져 스몄다. 다른 특징 하나는 벽처럼 보이는 모든 공간에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피티가 없다면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뜯다 실패한 포스터 위에는 또 다른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같은 포스터가 연속해서 세, 네 장씩 붙어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만큼 정신없는 동네였다.
택시 기사의 조언은 아테네 여행 안내서가 되었다. 아침 열 시에 일어나 오후 한 시에 숙소를 나서도 일곱 시 전에는 돌아왔다. 해 질 녘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만 봐도 무서웠다. 그들은 어딘가에서 나와 어딘가로 걸어가거나 현관문 앞에 앉아 있거나 벽에 기대어 서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앞을 지나갈 때면 자연스레 내게 시선이 따라붙었고, 그것을 느낄 때면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야외 테라스에 주르르 앉아서 기로스를 먹는 남성과 눈이 마주쳤을 때 땅바닥을 0.1초 만에 쳐다봤다. 무서웠다. 그들이 지나가는 나에게 보내는 시선에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해는 점점 더 가라앉기 시작했고, 길거리에는 현관 입구에, 도롯가에, 앉아 있고 서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힙색을 양팔로 껴안는 자세로 바꾸었고 밀착된 팔과 가방 사이에 땀이 고이기 시작했다.
이 동네에 적응하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 숙소 바로 앞에는 통창으로 된 헬스장이 있었고 퇴근한 직장인들이 저녁 시간에 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얼굴과 양팔 가득 문신을 한 담배 가게 사장님은 아침 여덟 시에 가게 문을 열고 담배 한 데를 가게 앞에서 피웠다. 숙소에서 세 블록 떨어진 곳에는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생활하는 긴 은발의 노숙자가 있었다. 박스를 깔고 담요를 여러 장 덮고 그곳에서 자고 일어나고 앉아있었다. 그 근방에는 작은 약국이 있었고 도로마다 쓰레기통의 뚜껑이 열려있었다. 까치발을 들고 안을 들여다봐야 하는 높이였다. 사람들은 아침에 출근하다가, 장 보러 나왔다가 개를 산책시키러 나오는 길에 쓰레기를 들고나와 그곳에 버렸다.
사람들은 종종 여행 소식에 대해 첨언을 했다. 어디 근처에 가면 총기 들고 돈 뺏는데요, 무슨 버스 타면 캐리어 훔쳐 간대요, 여기에는 소매치기가 많대요, 가족 단위로 접근해서 소매치기를 한대요, 이 주변에서 마약 거래한대요.
길거리에 노란 불빛의 가로등이 가득해지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길목에 있는 작은 카페테라스에 삼삼오오 모여서 간단한 식사를 했다. 두 블록 지나 피자가게에서는 피자를 굽는 냄새가 풍겨 나왔고, 식료품점 앞에서 만난 자기 연인의 볼 위에 입을 맞추는 이도 보였다. 길 건너편에는 하얀색 봉투에 담긴 음식을 건네고 받는 배달기사가 있었다. 한 손에는 지팡이를, 한 손에는 채소를 담은 봉투를 들고 하얀 대리석 계단을 오르는 노인도 보였다. 상의는 벗은 채 이어폰을 끼고 집 담벼락에서 누군가와 오래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