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시골 마을에 머무른 지 일주일이 지나간다. 해수욕장 끝에서 끝까지 걷는데 10분이면 충분한 곳이다. 10분짜리 해수욕장 건너편에 식당 6개와 작은 편의점 하나밖에 없다. 7개의 상점이 이곳의 전부다. 각종 생활시설이 있는 항구로 가려면 하루 스무번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타야 한다. 시간표는 있지만 예정 시간보다 5분에서 많게는 30분까지 늦게 오기도 한다. 시골 버스가 그러하듯 변수는 많고 이동시간과 출발 시간, 사이사이 정차 시간도 기사 재량껏 결정할 수 있다. 이곳도 비슷하다. 차이점은 버스가 관광버스에 가깝다는 점, 독일 회사의 차량을 쓴다는 점, 목적지를 말하면 기사가 영수증을 끊어서 건네준다는 점, 하차 지점에서 기사가 매번 동네 이름을 말한다는 점이 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북적이는 곳은 해변가다. 식당과 바다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해가 뜨는 아침 7시부터 자정까지도 수영복을 입은 여러 형태의 몸들이 움직인다. 라틴에서 파생된 다른 언어를 쓰며 걷고 앉고 눕고 떠들고 소리 지른다. 언어가 아니면 그들이 다른 나라에서 왔다는 걸, 관광객이라는 것을 알 수 없다.
도착 첫날 오후 다섯 시에 체크인하고 바닷가로 걸어갔다. 원피스를 한쪽에 벗어두고 수영복만 입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와중에 사람들의 시선이 오래 머무는 것 같다고 느꼈다. 물에서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다들 비슷한 곳을 보고 있었다. 그들을 지나쳐 공공 화장실에 가는 길에 어떤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너 어디서 왔니?
한국.
나 여수, 부산, 서울 여행을 했었어. 2주 정도.
와. 진짜? 좋았겠다.
누구랑 여행 온 거야?
혼자.
혼자? 하긴 여기는 물가도 싸고 오래 있기에 좋지. 너 이름이 뭐니? 난 000아. 지금 옆 동네에 가려고 하는데 내 오토바이에 타지 않을래?
아니. 나 지금 화장실 가는 중이야.
그 뒤로도 그는 아는 체를 했고, 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무수히 많은 백인 노인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닿는지 아닌지 의도가 있는지 없는지 구분이 어려워졌다. 중심지에서 2분 거리에 있는 바깥 해변으로 이동했다. 곧 바깥 해변에 있는 것조차 피곤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해변가를 찾아 30분가량 걸었다. 절벽에 로프가 걸려있었다. 손가락 한 개의 두께만한 로프는 지자체가 아닌 개인이 달아둔 듯 보였다. 구간 별로 나누어 있는 로프를 붙잡고 수직 낙하하듯이 내려갔다. 3개월 여행 동안 회색이 된 하얀색 러닝화는 황토색이 된 지 오래였고, 로프 사이마다 발이 미끄러져 뒤로 주저 앉았다. 팔뚝과 허벅지, 엉덩이에 흙이 쓸렸다. 땀을 뚝뚝 흘리며 사람이 아무도 없는 수평선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몸이 덜덜 떨렸다. 그 누구도 나를 볼 수 없는 곳에 있었다. 바닷속도 마찬가지였다. 바닷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투명한 물이었다. 맑아서 속이 들여다보이는 바다. 민트색 바다는 그 밑에 모래가 아닌 밝은색의 돌이 있었기 때문인데, 수면 위에서 볼 때는 알 수 없지만 잠수하면 각기 다른 돌들이 수평선만큼 멀리 뻗어져 있었다. 빈틈없이 세워진 무덤의 비석 같기도 했다. 물고기도 없었다. 물이 종아리까지 오는 곳에서 잠수하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혔다. 죽음의 바다에 온 것만 같았다. 살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숨쉬기가 힘들었다. 뒤돌아서 헤엄쳐 나올 때는 등골이 오싹오싹했다. 파도가 칠 때마다 자갈 사이로 물이 들어갔다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오른쪽 절벽에서 한 박자 느리게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잠수해도 들렸는데 스피커의 잡음이 크게 나는 소리 같았다.
30분도 지나지 않아 짐을 쌌다. 내려올 때 썼던 로프를 잡고 한쪽 팔에 쇼핑백을 걸었다. 절벽과 수직이 되게 몸을 눕혀 모래 암벽을 올랐다. 4개의 구간으로 나누어진 로프를 다시 타고 올랐다. 세 번째 로프를 잡을 때 자세히 보니 매듭 고리 쪽 줄이 삭아 있었다. 절반 정도는 뜯겨 있었다. 장시간 바닷바람과 햇살에 노출되어서인지 언제 끊겨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포세이돈에게 로프가 끊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빌며 네발로 기어 위로 올라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발시발을 외치며 숙소 근처의 해변으로 돌아갔다. 익숙한 곳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앉는 동안 해변가의 사람들은 나를 쳐다보았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걸어서 의자에 앉을 때까지도 사람들은 다를 쳐다봤다. 작은 불편함을 느끼며 바다에 뛰어들었다. 작은 만 안에서 헤엄치며 물고기들을 구경했다. 파도가 칠 때마다 작은 물고기들의 몸은 나와 함께 안쪽으로 밀려났다. 그들은 헤엄치고 돌아다니고 물속을 배회했는데 그들의 눈이 마치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수영을 끝내고 굳은 승모근을 누르며 맥주를 마셨다. 햇살의 온도는 찜질방 사우나였다. 시야에는 반바지를 입고 온 할아버지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가 통화를 하다가 햇볕을 쬐다가 바다에 들어갔다가 사다리를 짚고 나오는 모습이 걸렸다.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은 누워있다가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고 수영하고 태닝을 했다. 파도는 계속 부딪쳐와서 부셔졌고 소금기 바람에 머리가 엉키기 시작했다. 엎드려서 자고 일어나니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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