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를 굉장히 좋아하는 분들과 맛있는 파이를 파는 가게 앞을 지날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농담으로 "사실 파이도 피자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물었었습니다. 어쨌든 둥근 반죽 위에 이것저것 올려 구운 음식이니까요. 이건 단순한 농담이었지만, 어떤 음식들의 구분은 법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2024년 5월, 미국 인디애나주에서는 타코도 샌드위치라는 법적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The Famous Taco'라는 타코 매장의 주인이 2호점을 내려 했는데 그가 계약한 부지가 '샌드위치 바 스타일 레스토랑'을 운영하기로만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약 1년 반 동안 법적 다툼을 해야 했습니다. 결국 판사가 "타코와 부리토는 멕시코 스타일 샌드위치"라고 판단하여 겨우 2호 매장을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음식을 분류하는 것은 개인의 사업 성패를 좌우하는 수준이 아니라 한 산업의 흥망을 다룰 논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1인 당 연간 우유 소비량은 지난 40년 간 반으로 떨어졌습니다. 위기의 낙농업자들은 경쟁상품인 'Soy milk', 'Almond milk' 등 식물성 음료에 'Milk'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하게 법으로 막아줄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Milk'를 포유류의 젖으로 만든 식품에만 제한하고 'Soy drink', 'Almond drink' 등으로 불러야 맞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FDA는 그렇게 제한하지 않아도 두유가 우유가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며 그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식물성 음료 제조업자들은 'Soy milk'도 'Milk'이니 급식에 우유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법적으로 학교 점심 급식에 우유를 포함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만약 식물성 음료 또한 우유로 취급된다면 양쪽 업계에 큰 판도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학교 급식 정책 때문에 케첩이 야채냐는 논쟁이 일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1981년 미국레이건 정부는 학교 급식 예산을 줄이려 했습니다. 예산이 줄어드니 기존의 급식 영양 기준을 맞추기가 까다로워졌습니다. 이에 미국 농무부는 케첩과 렐리시도 '야채'로 간주하기로 하여 야채 요건을 충족하기 쉽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학교 급식 예산을 줄이는 것을 반대하던 측은 "케첩이 야채인가?"라며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케첩이 야채인가"라는 문장은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결국 엄청난 비난을 받아 정책은 철회되었습니다.
더 알아보기
AP News, Indiana judge opens door for new eatery, finding `tacos and burritos are Mexican-style sandwiches’
Wikipedia, Ketchup as a vegetable
슈카월드,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유전쟁
의견을 남겨주세요
페퍼노트
글에 등장하는 '피자를 굉장히 좋아하는 분'이 영국에서 케이크와 비스킷을 구분하는 게 법적으로 중요했던 사건이 소개된 영상을 보내주셔서 첨부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NsuEvORH1M 영상에 등장하는 자파케이크는 사실 페퍼노트를 작성하며 자료 조사 단계에서 접했지만, 자파케이크라는 게 한국인에게 익숙한 식품이 아니라는 판단에 지나갔었는데요, 이 영상에서는 자파케이크와 비슷한 영국의 여러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국에선 케이크에 붙는 세금과 비스킷에 붙는 세금이 다르기 때문에 케이크가 아닌 것을 케이크로 판다면 탈세의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