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를 지내며 무더위도 한풀 꺾였습니다. 구독자 님, 여름 평안하셨는가요? 여름의 끝자락에서 신간 안내를 보내드립니다.
이번 신간 안내는 ‘크로스오버’라는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 신간들이 모두, 서로 다른 철학적 전통 간의 접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철학적 크로스오버의 서로 다른 풍경들을 함께 만나보시죠 :)
74인 한국철학자들의 서로 다른 시선
《철학과 현실, 현실과 철학》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양에서 서양까지, 한국에서 인도까지, 미국에서 유럽까지, …. 정말 다양한 배경의 철학자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칸트 전집의 역자로도 잘 알려져 있는 백종현 서울대 명예교수의 기획 아래, 일흔 네 명의 저자들이 현실의 문제를 자신의 전공 분야를 렌즈 삼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각각 두꺼운 분량으로 총 네 권으로 구성되어 있어, 짧게 내용을 요약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기획만으로 상당한 흥미를 돋우지 않는가요? 저자들의 논의를 따라가며, 우리나라 철학의 수용과 재구성이 어느 수준까지 도달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독서의 묘미가 될 것 같습니다.
흥미로왔던 논문 중에는 김도식의 〈분석 철학은 꼭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가?〉가 있었습니다. 결론이 명쾌하지는 않지만, 여하간 분석철학 역시 사회/역사적 배경 하에서 등장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사회문화적 배경 하에서는 어떤 프로젝트가 등장해야 할 것인가, 묻게 되었네요.
그리고 이 질문은 바로 다음 책과 연관됩니다:
허구의 존재론에서 사회적 존재론까지
《허구의 철학》
늘 논쟁적인 주제를 갖고 나오는, 어느새 독일의 대표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번역 신간입니다. 가브리엘은 세 부에 걸쳐, 허구적 존재자들의 존재론을 구성한 뒤 이를 사회적 존재론에 적용하는 거대한 작업을 수행합니다.
가브리엘의 독특함은, 그가 매우 정교한 철학적 이중 언어 화자(bilingual)라는 데에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그가 속한 진영은 ‘유럽 철학’으로 분류되는 신실재론 진영이지만, 그와 대척점에 있다고 간주되는 현대분석철학의 연구들을 다수 녹여내고 있지요. 이번 저작에서도 그는 서얼, 러셀, 프리스트, 챠머스 등 현대 영미철학자들과 높은 차원의 대화를 합니다.
그러나 그 대화가 정말로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살짝 의심스럽습니다. 많은 분석철학자들은 그의 해석에 의문을 표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도로 이론화, 추상화된 현대 분석철학의 논의를 그의 독특한 변증론을 통해 현실적 문제로 끌어온다는 점에서 그의 시도는 눈여겨볼 만합니다.
현대 분석철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법과 역자의 용어법이 상당히 달라 살짝의 불편함은 있습니다만, 크게 거슬리는 정도는 아닙니다. 두꺼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읽히네요. 가브리엘 및 최근 신실재론의 동향에 관심이 있는 분들, 뿐만아니라 유럽 철학과 영미 철학의 미래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동서양, 태평양, 세대를 초월하는 크로스오버
《철학의 길》
마지막으로 소개드릴 것은, 아주 작은,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크로스오버’입니다. 지도교수와 지도학생이면서 철학적 동료이기도 한 이승종과 윤유석은, (메타)철학적 대화를 통해 그들의 ‘2인칭적 해석학’을 구축해 갑니다.
이승종은 그 자신이 다양한 철학적 ‘크로스오버’를 수행해 온 인물이기도 합니다. 일곱 권의 저작을 통해, 영미와 유럽, 동양과 서양, 한국과 세계 사이의 철학적 가교를 놓고자 시도해 왔죠. 그리고 그의 정신을 잇는(?) 제자와 함께, 세대 간의 철학적 가교를 놓는 것이 이번 신간의 기획으로 보입니다.
대강의 내용은 이승종 교수의 연구들에 관한 윤유석의 질의 응답, 그리고 이어지는 후속 토론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이승종 자신의 철학적 의도가 잘 설명될 뿐 아니라, 새롭게 제시되는 통찰들이 드러나고 있기도 합니다. 좋은 스승과 좋은 제자의 좋은 대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함께해 주시는 분들 (2024년 8월 29일 기준 멤버십 구독자 및 후원자)
《오늘의 철학》의 운영에 도움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모든 사진은 교보문고 책 정보 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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