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는 새해가 세 번 있다고 합니다. 신정, 설날, 삼일절. 그렇게 세 번의 기회를 모두 보내고 어느새 3월의 중간선이 넘어갔습니다. (으악!) 두 주만 지나면 올해의 2분기가 시작되겠네요.
한편 그 사이 꽤 많은 책들이 서가에 등장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진짜 철학책’들은 새로 나오더라도 신간 평대가 아닌 저 구석 서가에 꽂히는 경우가 많은데요. 여기 저기 숨어 있는 철학 신간, 그 중에서도 알짜배기만 추려 왔습니다. 월말에 다시 뵈어요!
마침내, 가장 완벽한 청소년 철학 입문서
《청소년이 반드시 알아야 할 철학 핵심 가이드》

작년 여름, 두 차례에 걸쳐 청소년 철학 입문서를 소개해드린 적이 있었는데요. 나름 추천드릴 만한 책이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았습니다. 《이런 철학이라면 방황하지 않을 텐데》는 읽기는 좋지만 철학자들을 가볍게 다루는 정도였고, 《안녕 필로》는 중요한 철학적 문제들을 다루지만 철학의 ‘정수’인 형이상학/인식론/논리학이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거든요.
그러던 중에 비로소 ‘가장 완벽한 (청소년) 철학 입문서’를 발견했습니다. 팟캐스터 마크 린슨메이어가 소개하는 철학 입문입니다. 전문 철학자가 아님에도, 메타철학,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논리학, 미학, 정치철학의 중심 문제들을 (네, 말 그대로 철학 전 분야를!) 아주 명료하고 쉽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신간,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이 생각나네요.)
‘아이들을 위한’ 내용(이라는 게 사실 어디 있겠냐마는 말이죠) 일변도의 그런 책이 아닙니다. 꼭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철학에 대한 짧고 간단한 개요를 얻고자 하는 분들께 추천할 만합니다. 철학 전문 역자가 아님에도 번역에 큰 흠이 없는 것도 눈에 띕니다.
(*다만 제5장에서는 (아마도 원어가 ‘argument’였을 단어에 대해) “논거”라는 부자연스러운 역어를 취하는데, 이를 “논증”으로 바꾸어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남의 학교 논술 교과서라지만 아무렴 어떻겠어요?
《비판적 사고와 토론》 (태학사)

대학 글쓰기 교재에 좋은 인상을 받기 힘듭니다. 표지는 딱딱하고, 두께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두껍고, 내용이 딱히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으니 말이죠. (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교재를 사놓기만 한 채 거의 쓰지 않는 글쓰기 수업도 여럿 있을 정도로요!)
그런데 이번에, 아무래도 제대로 작정한 글쓰기 교재가 나온 듯합니다. 성신여자대학교 (아마도 〈비판적 사고와 토론〉 과목의) 교과서로 출간된 (듯 보이는) 《비판적 사고와 토론》입니다. 여러 철학 전문서 및 논문으로 잘 알려진 배식한, 석기용 교수가 저자로 참여했습니다.
책에서는 논증을 위한 기술을 아주 체계적이면서도 알기 쉽게 설명해 줍니다. 논증 이론 교재가 때로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것들을 외우게 하는 것을 보곤 하는데요, 《비판적 사고와 토론》에서는 아주 필수적인 내용만을, 그럼에도 충실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신여대 학생들이 부러워지는군요!😉)
법학도와 철학도의 공용 둔기, 트롤리 딜레마도 간단 해결!
《권리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지 어느새 십 오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책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샌델의 책은 우리 교양 사회에 한 가지 사고실험을 깊이 남겼다는 것이지요. 바로 ‘트롤리 문제’(the trolley problem) 말입니다.
트롤리 문제는 샌델이 처음 제안한 것도, 샌델에 의해 주로 이야기되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두 윤리학자, 필리파 풋과 주디스 자비스 톰슨이 있었지요. 톰슨은 미국의 여자 철학자로, 남자들로 가득한 철학계(링크)에서도 윤리학, 형이상학, 법철학 분야에 대한 많은 주요한 기여를 남긴 유명 철학자입니다. 트롤리 문제는 그 가장 멋진 유품 중 하나이지요.
《권리란 무엇인가》에서 톰슨은 권리 개념을 매우 체계적으로 분석하며, 이와 연관된 철학적 문제들에 나름의 답을 주고자 합니다. 책의 내용은 (그 가격만큼이나) 매우 방대한데요, 주제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그 방대함만큼이나 가치있는 독서가 되리라고 기대합니다.
법철학 도서를 누가 번역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철학 개념은 철학자가, 법 개념은 법학자가 번역해야 하니 말이죠. 다행히 이미 다수의 저서와 역서를 낸 전문 법학자가 좋은 번역을 냈습니다. 적어도 철학 개념들에 대해서만큼은, 크게 흠잡을 부분은 없습니다. 읽기에도 큰 문제는 없는 문체입니다.
사법고시 시절, 법학도들은 대법전을 호신 무기로(?) 쓸 수 있었다고 하지요. 이제 철학도들과 공유할 무기가 생겼습니다. 책가방에 한 권 넣고 다녀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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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사진은 교보문고 책 정보 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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