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쓰지 못한 다이어리들
"몇 년 동안 하루를 회고하는 습관을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항상 다이어리 앞쪽만 빼곡하고, 뒤쪽은 쓰지 않은 채로 있었어요." 서희와의 첫 만남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익숙한 이야기였다. 예쁜 다이어리를 심사숙고 끝에 구매한 뒤, 앞 열 장 정도만 쓰고 결국 책장에 묵혀두었던 경험.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그녀가 덧붙였다. “사실 어떻게 회고를 해야 할지도 알고, 그렇게 어렵지도 않아요. 쓰고 나면 기분도 좋고요. 그런데 퇴근하고 집에 오면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잊고 잠들어버리곤 했어요.”
피곤함. 이것이 문제였다. 쉬고 싶은 마음이 머릿속을 채운 나머지, 회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나고 만 것이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고, 어쩌면 서희의 습관은 쉽게 정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습관이 되지 않았을까?
보통 언제 회고를 하세요? 서희에게 물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자기 전에요” 역시, 무릎을 탁 쳤다. 서희의 회고 습관은 행동 방식, 난이도, 만족감 모든 것이 완벽했지만 딱 하나가 없었다. 신호. 회고라는 행동을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할 신호가 없었다.
습관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하나같이 주장한다. “습관이 만들어지려면 행동을 이끌어낼 신호가 반드시 필요하다.” 전등 스위치를 누르면 불이 켜지듯이,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려면 행동을 이끌어낼 스위치, 곧 신호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기 전’이라는 상황은 행동의 신호가 될 만큼 구체적이지 않았다. 해결책은 명확했다. 서희의 저녁 루틴에서 신호를 찾아야 했다. 신호만 정하면 빠른 시일 내에 습관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신호를 찾다 - 우리가 놓치는 일상의 가장 좋은 신호
퇴근 후엔 주로 무엇을 하세요? 그녀의 퇴근 후 일과를 물었다. 그 일과 중에서 회고의 신호가 될 행동을 찾아야 했다. 서희는 잠시 말을 멈췄다. 까만 화면 너머의 그녀는 왠지 왼쪽 위를 쳐다보며 기억을 되짚어가고 있을 것 같았다. 과거를 기억할 때는 왼쪽 위를 본다고 하지 않던가. 잠깐의 침묵 뒤에 그녀가 오랜 침묵이 어색한 듯 말을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집에 오는 날에는 옷만 갈아입고 바로 쉬어요, 보고 싶었던 영상도 보고 글도 읽으면서요. 저녁을 안 먹은 날에는 저녁부터 먹고 쉬고요." 그녀의 이야기에서는 명확한 신호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적절한 신호를 찾기 위해 더 직접적인 질문을 던졌다. 퇴근 후 자기 전까지 하는 행동 중에 매일 반복하는 건 뭐가 있을까요?
조금은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그녀가 대답했다. “음… 매일 반복하는 행동이요? 갑자기 떠오르진 않네요.” 대답하기 쉬울 것 같지만, 어려운 질문이었다. 우리가 습관처럼 하는 행동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애써 기억해내려고 하지 않으면 생각이 잘 나지 않기 때문이다. 좀처럼 답을 떠올리지 못하는 그녀를 위해 힌트를 주었다. 저녁에 양치질은 언제 하세요? 그 순간, 그녀가 짧은 탄성을 질렀다. 이걸 어떻게 잊고 있었지하는 탄성이었다. “아! 양치질은 매일 하지요. 이걸 생각하지 못 했네요!”
양치질. 이 단순한 행동은 처음 습관을 들이기 시작할 때 정말 좋은 신호가 된다. 누구나 매일 습관처럼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녁 양치질을 신호로 정하고, 양치질을 하자마자 회고를 하는 습관을 만들기로 했다.
신호 하나가 강한 습관을 만들다
습관 디자인을 하고 몇 주 뒤, 서희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제 밤에는 술에 취했는데도 저도 모르게 양치질을 하고 책상에 앉아 회고를 하려고 하고 있더라고요! 너무 신기해서 연락드려요!”
나는 잠시 멍해졌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니. 서희의 회고는 이제 몸에 밴 강한 습관이 된 것이다. 신호 하나를 잘 정했을 뿐인데, 이런 결과를 얻다니. 한참을 그 메세지를 쳐다보았다. 습관 디자인을 다른 사람에게 처음 적용하자마자 얻은 결과였다. 괜시리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일을 계속 해야겠다, 다짐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서희는 두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한 장에는 듬성듬성 체크가 찍힌 해빗 트래커가, 다른 한 장에는 빼곡히 채워진 해빗트래커가 있었다. “왼쪽은 작년이에요. 오른쪽은 올해고요. 이렇게 꾸준히 한 적은 처음이에요. 너무 뿌듯해요. 감사해요!”
여러분이 지금 습관으로 만들고 싶은 행동에는 신호가 있나요?
신호 없는 반복은 습관을 만들지 못합니다. 매일 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의식 없이 자동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행동을 시작할 신호가 반드시 필요해요. 출발선에 서 있는 달리기 선수들이 총소리를 듣고 뛰기 시작하는 것처럼, 우리도 행동을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해 줄 총소리, 즉 신호를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습관으로 만들고 싶은 행동에는 신호가 있나요? 어쩌면 습관이 자리 잡지 못했던 이유는 신호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다음 뉴스레터에서는 우리의 하루를 결정하는 ‘첫 습관과 마지막 습관’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Bumjin
다이어리를 쓰기 위해 양치를 하겠어요!🪥
피렌의 습관레터
너무 좋은 생각이네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