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맛 팝콘] 악마는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액트 오브 킬링>

옥수수 여러분 잘 지내셨나요? 5월에 끝자락에서 인사드리는 초록입니다. 봄바람의 설렘은 어디 가고, 어느덧 찾아온 후덥지근한 날씨에 조금은 지치지 않으셨나요?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는 저에게는 야외촬영이 점점 두려워지는 요즘입니다. 벌써 손목에 짙은 경계가 드리웠지 뭡니까…! (부들) 그렇지만 저에겐 6월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한 가지 있는데요, 바로 초여름마다 열리는 영화제에 갈 계획이거든요~ 어떤 영화제냐구요? 그 소식은 팝콘레터에서 곧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후후

자, 이제 본격적으로 다큐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사실 그리 유쾌한 영화는 아닙니다. (미리 경고…) 5월 18일의 광주를 떠올리며 선택한 영화인데, 제가 아는 다큐멘터리 영화 중 가장 파격적인 영화입니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액트 오브 킬링>인데요.

개봉 2014.11.20.

등급 15세 관람가

국가 덴마크, 노르웨이, 영국

러닝타임 159분

배급 (주)엣나인필름

수상내역

2014 67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다큐멘터리상)

34회 런던 비평가 협회상(다큐멘터리 작품상)

48회 전미 비평가 협회상(다큐멘터리상)

2013 26회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외국어영화상, 다큐멘터리상)

7회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드(최우수 다큐멘터리상)

26회 유럽영화상(유러피안 다큐멘터리상)

13회 야마카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국제경쟁- 시장상)

[액트 오브 킬링] 보러가기

수많은 수상내역도 모자라, BBC 선정 100대 21세기 영화에서 14위를 차지하기도 한 <액트 오브 킬링>. 평점이 짜디짜기로 유명한 국내 영화평론가 박평식도 9점이라는 최고점을 준 것으로 유명합니다.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어떻게 이렇게 좋은 평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영화의 배경은 인도네시아로, 1965년 군에 의한 대규모 ‘반공’ 학살이 벌어진 후, 40년의 세월이 지난 현대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독재자 수하르토는 대학살 당시 각 마을의 불량배 등 ‘반공 민간 세력’을 선동했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손에 100만 명이 넘는 공산주의자, 지식인, 중국인들이 목숨을 빼앗겼죠. 이후 1998년까지도 대통령으로 재임한 수하르토는 대학살에 대해 ‘법적 제재가 부과되지 않는다’고 결정을 내렸고, 승자에 의한 학살은 그렇게 쉬쉬 되고 말았습니다. 역설적이게도 학살을 자행한 주범들이 ‘국민영웅’으로 추대받고 있는 상황. 미국인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그들 중 한 명인 ‘안와르 콩고’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당신이 저지른 학살을 다시 재연해 볼 것을요. 이에 안와르 콩고와 그의 친구들은 직접 시나리오도 쓰고, 연기도 하고, 카메라도 잡으면서 영화 속의 영화를 만들게 됩니다.

보통 국가 폭력을 주제로 하는 영화들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주로 담기 마련인데, 가해자의 기억을 재연하는 다큐라니 정말 특이하지 않나요? 가해자의 주장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 자체가 거북스럽기도 하구요. 아니나 다를까,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도 처음에는 피해자의 육성을 영화에 담으려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폭력의 주체가 아직 살아있는 권력이다 보니, 피해자들은 여전히 보복이 두려워 입도 뻥끗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반면 가해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일들을 태연하게 늘어놓으며 재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역발상으로 가해자들의 입을 통해 인도네시아의 가장 어두운 그늘을 기록하게 된 것이죠.

영화 속에서 안와르 콩고와 그의 과거 동료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너무 참담해서 말이 안 나오는데요. 피비린내를 방지하기 위해 칼을 쓰지 않고 철사로 목을 졸라 죽였다며 그것을 재연해 보이는가 하면, 전쟁 통에 14세 소녀를 겁탈했던 때가 누군가에겐 지옥일지 모르지만 자신에게는 지상천국이었다며 호탕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그게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요? 아닙니다, 분명 죄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에게 걸어놓은 강력한 ‘자기합리화’가 죄의식을 넘어서 버렸습니다. 안와르 콩고의 동료 아디 줄카드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범죄야. 그러니까 어떻게든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해. 적당한 구실을 찾아야지. 어차피 도덕관념은 상대적인 거거든.”

“전쟁 범죄는 승자들이 규정하는 거죠. 난 승자니까 스스로 규정할 수 있어요. 더 중요한 건 진실이 꼭 좋은 건 아니라는 거예요. 좋지 않은 진실도 있죠.”

안와르 콩고가 살인행위를 재연하며 만드는 영화 속 영화도 그저 유치한 영웅심리로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필사의 자기합리화가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업적을 찬양하고 명예를 드높이는 것을 넘어서, 끝에는 목에 철사를 걸고 있는 피해자들이 “일찍 죽여줘서 고맙다”며 가해자들에게 금메달을 걸어주는 황당한 장면까지 연출되죠. 왜 이렇게까지 말도 안 되는 자기합리화를 하는 걸까요? 이렇게 정신승리라도 하지 않으면, 그 거대한 죄의식을 감내할 수가 없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렌즈를 통해 과거를 보면서, 달콤한 주문은 서서히 깨지기 시작합니다. 안와르 콩고는 앞서 찍은 살인 재연 장면을 보다가 당혹감을 비추며 “저때 괜히 웃었나봐.” “실제로 사람을 죽일 때는 술을 마셨어”라며 변명하듯 말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처음으로 제3의 입장에서 보기 시작한 것이죠. 나아가 피해자 역할을 연기하면서, 자식이 제 눈 앞에서 찢기고 자신의 목이 올가미에 조이자 급기야 촬영 중단을 요청하기까지 합니다. 영화를 만들면서 더 이상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을 수가 없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동시에 절대 악과 선의 경계도 흔들립니다. 천하의 악마 같던 가해자의 참회를 마주하는 순간, 관객들은 그의 얼굴에서 순박하게 주름이 지고 왜소하기 짝이 없는 할아버지를 보게 되죠. 저 사람은 스스로 저지른 죄악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을까, 후손들이 써내려 갈 역사에서 용서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자신에게 죽임을 당한 피해자를 연기하는 안와르 콩고. 그 고통을 왜 이제야 알았니

이러한 시선은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이 철저한 외부인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싶기도 합니다. 지난번 소개해드린 <나의 집은 어디인가>라든지 그 전의 <나의 문어 선생님> 두 작품은 모두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가 되었죠.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감정에 관객이 이입하기 쉽도록 클로즈업을 많이 쓰고, 인터뷰샷도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방식으로 연출했습니다. 그와 반대로 이 작품은 대체로 안와르 콩고와 거리를 두며 차가운 시선으로 응시하다가, 후반부에 안와르 콩고의 죄의식이 깨어날 때부터 그의 표정을 가까이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는 안와르 콩고에 대한 동정심이 극대화되기도 해요. 만일 인도네시아 내부에서 피해자의 후손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이런 식의 접근은 쉽지 않겠죠. 정작 피해자는 사건을 언급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가해자의 입장을 고려해줄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5.18 다큐들도 피해서사 기록을 넘어서 가해자의 반성, 그리고 화해와 용서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2021년 KBS광주에서 5.18 특집으로 제작한 <나는 계엄군이었다>에서는 11공수특전여단 소속의 최병문 씨가 “당시 계엄군들은 우리가 정당한 줄 믿고 있었다” 말하며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참회하였습니다. 올해에도 KBS광주에서 <3공수 42년만의 증언록>이라는 다큐를 통해 3공수특전여단 소속 계엄군들의 증언을 담았다고 하는데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니, 공수부대원들의 증언이 역사의 진실에 다가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참회를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5.18 관련 논의가 많이 깊어지고 성숙해졌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대로 사과해야 할 사람은 어디 가고…;;)

KBS <나는 계엄군이었다>에서 서로를 껴안으며 위로하는 5.18 생존자와 공수부대원

‘절대 악’이 존재한다는 이분법적 생각이 전쟁, 대학살 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기에, 증오와 복수의 쳇바퀴를 멈추고 용서와 화해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길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용서를 하고 싶어도, 용서의 기회조차 빼앗긴 게 보통의 현실이기에… 씁쓸하네요. <액트 오브 킬링>은 그럼에도 최선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옥수수분들이라면 참회하는 가해자를 용서하실 수 있으신가요?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액트 오브 킬링> 이후, 인도네시아 대학살 피해자의 입장에서 <침묵의 시선>이라는 영화도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두 영화를 비교해서 함께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저는 이만, 또 다른 좋은 다큐멘터리로 찾아오겠습니다. 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