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맛 팝콘]기록을 넘어 표현하는 다큐멘터리 <위로공단>

By 초록🍀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다큐 특집 에디터로 팝콘레터에 합류하게 된 초록🍀입니다. 저는 다큐멘터리 연출가이고 앞으로도 좋은 다큐를 만들고 싶은데, 다큐라는 장르가 알면 알수록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분과 함께 좋은 다큐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럼, 앞으로 맛있는 다큐 따끈따끈하게 팝콘을 튀겨 보겠습니다!

다큐멘터리 소개 - <위로공단>

🍀영화소개

에디터 초록이 선정한 첫 번째 다큐는 바로,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2014)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포스터 때문에 선뜻 이 영화를 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기존에 보았던 다큐 포스터와는 많이 다른 느낌 아닌가요? 주제의식을 강하게 드러내는 기존의 다큐 영화 포스터와는 다르게, ‘어떤 다큐지?’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눈을 가리고 있는 여자분이 숨바꼭질을 하는듯 미스터리하게 보여요. 공단의 노동을 소재로 한 작품이기 때문에 실로 박은 듯한 타이틀 디자인과 네 글자의 배치도 신선하고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포스터처럼 영화의 본편에도 눈을 끄는 시각적 요소가 많더라구요.

개봉: 2015년 08월 13일

국가: 한국

러닝타임: 95분

배급: (주)엣나인필름

수상

2015 56회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2015 3회 무주산골영화제 무주관객상)

2014 40회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특별언급)

'위로공단' 시청하기

🍀다큐멘터리에서 '연출'은 가능한가?

영화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전에… 옥수수🌽 여러분께 넋두리를 조금 늘어놓으려고 합니다. 앞서 저를 다큐멘터리 연출가라고 소개했는데요, 실은 요즘 다큐멘터리 연출가의 역할이란 무엇일지 고민이 될 때가 많아요. 다큐멘터리의 본질을 하나만 꼽는다면 바로 ‘논픽션’ 아니겠어요? 사실과 진실을 목숨처럼 생각해야 하는 작업이다 보니, ‘연출해서 찍었다’는 말은 보통 나쁜 뉘앙스로 여겨져요. ‘다큐멘터리’와 ‘연출’은 어찌 보면 모순되는 단어가 아닐까요?

연출이 무리수였던 다큐, 작년 7월에 뉴욕타임스에서 보도한 적이 있는데요. 스타 셰프로 유명했던 앤서니 보데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로드러너>입니다. <로드러너>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 보데인의 생전 동영상과 지인의 인터뷰를 엮은 기록 영화였죠. 그러나 보데인이 친구에게 보낸 이메일을 읽는 음성이, 실제 보데인의 음성이 아니라 그의 음성을 분석한 AI 음성을 활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모건 네빌 감독은 “그가 왜 죽었는지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생한 기법을 사용했다”고 밝혔지만, 글쎄요… 많은 이들이 <로드러너>가 다큐멘터리 윤리를 어겼다고 이야기합니다

<로드러너>의 예고편

저는 이렇게까지 대담한 연출은 생각해본 적도 없지만, 촬영 현장에서 종종 연출의 유혹에 빠진답니다. 제일 흔한 경우는 상황을 제대로 촬영하지 못했을 때, 출연자에게 똑같은 행동을 다시 요구하는 경우인 것 같아요.

저의 경우, 주인공이 60년 넘게 만나지 못한 전우의 묘지를 찾아가 감정이 가장 북받친 순간에 그만 녹화(REC) 버튼이 반대로 눌린 적이 있었어요. 같은 이야기를 한번 더 해달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이미 그 감정은 다 지나가버려서 본의 아니게 담담한 장면으로 남았답니다. 이런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샷의 완성도를 위해 반복 촬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아주 엄격하게 따지면 이것도 위법이겠죠? 하하하…

하지만 요즘 세상에 사실과 진실을 그저 늘어놓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다큐멘터리를 봐주지는 않죠. 아무리 좋은 메시지와 좋은 소스를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라고 하더라도,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일까요? 그래서 다큐멘터리 연출에는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하겠죠. 어떤 연출을 통해 다큐멘터리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도, 사실과 진실을 더욱 선명하고 드라마틱하게 보여줄 수 있을지 말입니다.

🍀여성노동 잔혹사 연대기

제가 소개할 첫 번째 영화 <위로공단>은 이 줄타기를 용감하게 해낸 다큐입니다. 2014년에 나온 이 영화는 쉽게 말하자면 한국 근현대사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주목받아본 적 없는 ‘여성노동 잔혹사’를 보여주는 영화인데요. 70년대의 동일방직사건부터 청계천 가발공장, 대우 어패럴, 삼성반도체, 기륭전자, 한진중공업, 캄보디아 유혈 시위와 2014년의 감정노동자 시위에 이르기까지 수난의 연대기를 차곡차곡 기록했습니다. 대부분 과거의 일들인 만큼 인터뷰 분량이 러닝타임의 50% 이상 차지하는 작품이며, 출연한 인터뷰이만 총 22명입니다. 이 방대한 역사의 증언들을 어떻게 하나의 작품으로 엮었을까요?

🍀'병풍기법'을 통해 이미지를 제시하다

임흥순 감독은 스스로 말하길 ‘병풍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인터뷰와 인터뷰 사이에 추상적이고 회화적인, 조금은 알쏭달쏭한 이미지들이 삽입되는데요, 이들이 경첩이 되어 인터뷰를 엮어주는 거죠. 피사체의 말을 전달자로서 전하는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스트의 역할을 넘어서서, 감독 자신이 느끼고 감각하고 체험한 바를 표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감독은 또한 관객들이 이미지를 보는 동안 잠시 멈춰서 생각하는 것을 의도했다고 합니다. 확실히 왜 이런 씬이 삽입되었을지 추측하며, 몇 번씩 인터뷰 내용을 곱씹게 되었던 것 같아요.

얼굴 혹은 눈을 가린 두 명의 소녀가 자주 등장한다. 익명으로 남은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 서로 이름과 얼굴은 몰라도 같은 길을 걸어왔으며, 그들의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

기존 다큐의 틀을 깬 임흥순 다큐의 특색은 전작 <비념>에서부터 이어져왔습니다. <비념>은 4.3 사건을 다룬 다큐인데, 제주 사람들의 기록을 스산한 제주 풍경, 길거리에 버려진 귤 하나, 산 속을 헤집고 다니는 플래쉬 불빛 등의 추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했어요. 아주 실험적인 다큐멘터리였죠. 임흥순 감독이 미술을 전공했다는 점이 이러한 표현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 듯합니다. 1년 앞선 2013년에 발표되었던 정윤석 감독의 <논픽션 다이어리>와 박경근 감독의 <철의 꿈>이 다큐멘터리 영화와 미술의 경계에 질문을 던졌다면, <위로공단>은 그 경계를 본격적으로 허물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에서 은사자상 수상을 통해 경계를 허문 것을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겠죠?

🍀새로운 길에 서있다는 것은...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 역시 존재합니다. 제가 업계에서 느낀 바로는, 다큐멘터리를 오래 만들어온 분들 중에 이 다큐멘터리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분들이 왕왕 있는 것 같아요. 이미지가 자극적이고, 감독의 해석과 느낌을 주입당하는 느낌이라고요. 왓챠피디아에서도 이미지가 불필요하거나 과하게 느껴진다는 평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어요. 그리고 해당 다큐와는 무관한 이야기지만, 감독의 자유로운 예술적 표현을 사건의 당사자인 출연자가 불쾌하게 느낄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다큐멘터리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임흥순 감독은 다큐멘터리 연출의 새로운 길을 보여준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현 시대에는 사실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자신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수 있고, SNS를 통해 배급까지 할 수 있는 시스템이잖아요. 임흥순 감독은 ‘기록하는 사람’의 역할을 잃어가는 다큐멘터리스트들에게, 이제는 너의 생각과 감각을 좀 더 과감하게 내보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로공단> 출연자들이 인터뷰를 하며 내보이는 감정의 깊이에서 이 다큐멘터리의 무게감과 연출자의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화려한 외양뿐 아니라 내실까지 챙긴 다큐멘터리라고나 할까요.

저는 이 다큐를 보면서 이런 식으로도 관객과 소통할 수 있구나 처음 알았어요. 아니, 임흥순 감독은 이렇게’밖에’ 소통할 수 없는 사람일 거예요. 임흥순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활자나 음파로 대체될 수 없는, 오직 시각예술로만 표현할 수 있는 거니까요. 위로공단의 이미지들을 책으로 번역하려고 하면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아무 감흥도 없을걸요? 저는 제가 만들 다큐멘터리도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임흥순 감독의 방식으로 해야 된다는 뜻이 아니라, 영상매체가 아니면 아예 불가능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너무 당연한 소리지만, 현실은 too far…

영화
<위로공단> 프로모션 중, 임흥순
감독과 늘 함께하는 김민경 프로듀서, 은사자가 빛난다 빛나! — 영화 <위로공단> 프로모션 중, 임흥순 감독과 늘 함께하는 김민경 프로듀서, 은사자가 빛난다 빛나!

자신만의 지도를 찾은 임흥순 감독은 최근에도 영화관과 미술관 사이를 횡단하며, 평균적으로 1년에 1편의 다큐멘터리를 발표할 정도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김민경 프로듀서가 있는데요, 인터뷰에서 김민경 프로듀서가 없으면 영화가 안 된다고 이야기할 정도랍니다. 두 분이 작년 4월에 선보인 영화 <좋은 빛, 좋은 공기>는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두 도시의 놀랄 만큼 닮아 있는 학살의 고통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았다고 하는데요, 함께 감상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