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맛 팝콘] 이토록 친밀한 자연 다큐, <나의 문어 선생님>

By 초록🍀

안녕하세요, 옥수수🌽 여러분. 한 달 만에 인사 드리는 다큐 특집 에디터 초록🍀입니다. 모두들 잘 지내셨나요? 저는 그새 코로나19에 확진되는 바람에 일주일 동안 집에 갇히는 재미난 경험(…)을 했는데요. 몸이 아프니 기운도 없고 성격도 예민해지고,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괜히 생기는 게 아니더라구요. 많은 옥수수 여러분께서도 코로나19의 폭풍을 제대로 체감하고 계실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지치는 일상에 힐링과 감동을 주는 다큐멘터리를 들고 왔답니다.

본격적으로 다큐를 소개하기 전에, 재미있는 Meme 하나를 보여드릴게요. 전 가끔 스트레스 받을 때, 혹은 인류애를 상실할 때, 고양이가 사람의 아기를 돌봐주는 움짤을 찾아봐요. 태연하게 아기를 보살피는 고양이들이 정말 귀엽지 않나요? 실제로 고양이들은 사람의 아기를 아기로 인식할 줄 알며, 공동육아를 하는 고양이의 습성 때문에 사람의 아기를 돌봐줄 수 있다고 해요. 뉴스를 보면 종종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걸 보면 동물이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도 들어요. 동물과 사람의 따뜻한 관계는 마음의 안정을 주기도 하구요.

다큐멘터리 소개 - <나의 문어 선생님>

🍀영화소개

제가 이번에 소개할 다큐는 고양이 같은 포유류도 아니고, 앵무새 같은 조류도 아닌, 무려 무척추동물 문어와 사람이 우정을 쌓는 영화예요. 아니, 우정을 넘어서 문어에게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쓰는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입니다.

감독 피파 에리치, 제임스 리드

제작 크레이그 포스터

촬영 크레이그 포스터, 로저 호록스

개봉 2020년 9월 4일

국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러닝타임 85분

배급 넷플릭스

주요수상

2021 아카데미상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

2021 미국 영화 편집자 협회상 (최우수 다큐멘터리)

2021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최우수 다큐멘터리)

시놉시스

남아프리카의 바다, 해초 숲을 헤엄치던 영화감독이 특별한 문어를 만난다. 경계에서 교감, 우정으로 발전하는 두 생명의 관계. 세계의 숨은 신비가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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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동물이고! 난 사람이야!

<나의 문어 선생님>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최초 자연 다큐이며, 2010년부터 10년간 제작했다고 해요. 한국에서도 ‘인기 콘텐츠’에 항상 올라와 있길래, 언젠가 봐야지 마음만 먹고 있었는데, 주변에서도 추천을 많이 해주더라고요. 문어와 인간의 우정이라는 소재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 다큐멘터리는 어떻게 높은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요?

우선 동물과 사람의 우정이라는 소재가 일종의 치트키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 독립 다큐멘터리 중 이례적으로 약 300만의 관객을 끌어모은 <워낭소리>를 떠올려 보세요. 시골에서 노부부가 아직도 소로 농사를 짓는다는 어찌 보면 단순한 소재이지만, 평균수명의 2배인 40년을 산 누렁이와 할아버지의 이별 스토리가 정말 가슴을 찡하게 하죠. 저는 솔직히 티저만 봐도 눈물이 나오더라구요… 기본적으로 동물이 말을 못하는 존재이기도 하고, 대부분 인간에게 충성하거나 헌신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동물과 인간의 우정이 인간끼리의 우정보다도 절절함과 애틋함을 주는 것 같아요.

하지만 휴먼다큐에 속하는 <워낭소리>와 다르게, <나의 문어 선생님>은 문어가 인간의 세계에 편입된 게 아니라 인간이 문어의 세계를 관찰하기에 자연다큐에 더 가까운데요. 기존의 자연다큐와는 어떤 점이 다르길래 많은 사람들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을까요?

영화 제목에 힌트가 있습니다. 그냥 문어 선생님이 아니라 ‘나의’ 문어 선생님이기 때문이죠. 이 영화는 촬영감독의 1인칭, 즉 아주 개인적인 시선으로 전개되고 있어요. 촬영감독 크레이그 포스터가 우울증과 불면증을 계기로 고향인 남아공의 다시마숲으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며 영화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깊은 바다에서 잠수복과 산소통도 없이 헤엄치며, 크레이그는 아름다운 바다를 온몸으로 느끼게 되고 촬영에 대한 의지를 다잡아요. 그리고 우연히 다시마숲의 한 문어가 조개껍데기로 몸을 감싸는 신비로운 광경을 본 뒤, 문어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합니다. 아주 다정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문어 한 마리를 바라보게 되죠.

🍀조금 다른 자연다큐

여기서 한번 상상을 해봅시다. 종전에 우리가 아는 자연 다큐라면 이 문어를 어떻게 다루었을까요? 우선 자연 다큐의 기본적인 원칙은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섭리에 개입하면 안 되며, 객관적인 연구를 진행하듯이 가치 판단을 배제하고 동물의 생리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죠. 우리가 어릴 적 한 번씩은 본 다큐, <동물의 왕국>을 떠올려 보세요. 나레이션과 영상 문법이 전지적 시점에서 전개되며, 문어가 상어에게 잡아 먹히는 건 그저 약육강식, 자연의 법칙이라는 식으로 설명했을 겁니다.

MBC의 눈물 시리즈 중 하나인 <북극의 눈물> 형식이었다면 어땠을까요? 개체수가 줄어드는 문어떼와 오염되어 가는 다시마숲의 실태를 보여주며, 관객들의 인식 변화를 촉구했을 것 같아요. BBC <Our Planet> 같은 대작에서는 이 문어에게 할애해줄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을 거예요. 엑스트라1 정도로 출연했으려나요.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자연 다큐에서는 비교적으로 촘촘한 스토리라인보다는 경이로운 비주얼리티로 승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크레이그 감독의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은 오로지 이 작은 문어 한 마리에 길게 머물렀어요. 암컷인 문어를 그녀(she)라고 칭하면서, 감독은 그저 조심스럽게 문어에게 다가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기를 기다렸습니다. 문어와 카메라 사이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문어와 감독의 정서적 거리가 좁혀진다는 것을 관객도 느낄 수 있죠. 문어가 숨을 쉬러 올라가는 감독의 몸을 타고 가만히 있을 때는, 문어가 감독을 신뢰한다는 것을 볼 수 있었죠. 문어 입장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내건 일과도 같은데, 그렇게까지 누군가를 믿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개인적으로 문어에게 감탄하고 또 감동했어요. 거대한 해양생태계의 일원으로 문어를 보았을 때와 달리, 우리가 몰랐던 문어의 영리함을 볼 수 있었고 인간과 깊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동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영화를 보면서 크레이그 감독은 어떻게 저 문어를 계속해서 알아보고 찾아갈 수 있는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에게 문어는 말하자면 보통명사잖아요. 문어를 접시 위에서 만날 때를 제외하고는 만나볼 일이 없으니 이 문어와 저 문어의 돌기, 빨판의 차이점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죠. 크레이그에게는 문어라는 단어가 점차 고유명사처럼 되어가요. 그는 그 문어와 친해질수록 문어에 대해 강렬한 호기심을 느낀다며, 문어도 꿈을 꾼다면 어떤 꿈을 꾸는지 알고 싶어졌다고 말하죠. 문어의 외형이나 행동양상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서 내면의 자의식과 존재의 목적을 존중해준다는 뜻이죠. 정말 감동적인 멘트 아닌가요? 언젠가 고백할 때 써먹어야겠어요

영화의 중반부쯤 흥미로운 상황이 발생하는데요, 문어가 파자마상어에게 공격을 받을 때 감독은 고뇌합니다. 처음에는 상어를 그냥 내쫓아버리고 싶었다고 해요. 문어가 죽을지도 모르는 순간, 크레이그는 다큐멘터리 감독이고 뭐고 그저 문어를 살리고 싶은 문어친구1일 뿐인 거죠. 하지만 바다생태계에 개입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가만히 문어의 사투를 촬영합니다.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듯 떨림을 감추고 있지만, 문어를 천천히 쓸어내리는 듯한 앵글은 그의 애틋한 마음을 보여줘요. 그리고 그것을 보는 관객들 역시 진심으로 문어가 살아남기를 소원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결투를 보게 되죠. 그리고 문어는 자신의 온전한 힘으로 상어에게서 살아남아요. 감독이 처음 매료되었던 그 장면, 조개껍데기로 몸을 치장한듯한 문어의 모습은 사실 살아남기 위한 지략이었던 거죠. 이 장면은 크레이그가 섣불리 문어를 도왔더라면 얻지 못했을 장면이에요.

크레이그는 문어가 절망 속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삶에 대한 믿음을 느낍니다. 문어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도 달라졌다고 말하죠. 무엇보다 아들 톰에게 문어를 소개하고 함께 다이빙을 하면서 이전과 다른 깊은 유대감을 쌓게 돼요. 톰 역시 해양생태계를 관찰하면서 자신감도 높아지고, 자기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뚜렷해지며, 성격이 온화해지는 긍정적인 변화를 체험합니다. 크레이그와 톰이 함께 수영하는 장면을 보면, 문어가 크레이그에게 선물한 평온함이 파도를 따라 멀리멀리 퍼지는 느낌이에요.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시점으로 에세이처럼 전개되는 다큐이기에, 관객들은 크레이그에 쉽게 감정이입을 하게 됩니다. 거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가 아니지만, 다 보고 나면 저절로 “문어를 먹지 말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죠. 자연보호를 대단한 문제의식이나 환경운동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내 친구를 지키는 일’로 느껴지게 해요. 이런 점 때문에 이 다큐를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볼 수 있었을 거예요. 분노나 참담함, 불편한 감정을 촉발시키지 않는 ‘아름다운’ 다큐이기 때문이죠. 영화의 결말도 무척 감동적이고요.

🍀이 다큐, 보고나면 해산물 못 먹나요ㅠ

물론 한계는 있습니다. 사실 문어와 사람이 친구가 된 건 이 영화 속의 이야기일 뿐이죠. 모든 사람들이 크레이그 감독과 같은 환경에서 살지는 않으니까요. 다큐멘터리이지만 분명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동화적이고 판타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도 영화를 본 순간에는 동요했지만, 이후에 문어를 먹지 못하겠다거나 해산물 섭취를 줄인다거나 그런 변화까지는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그렇지만 이 영화를 통해 문어의 지능이 개와 고양이와 비슷하다는 점이 널리 알려지고, 마트에서 문어를 살 때 바닷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던 she를 떠올리는 사람이 생긴다면 인간과 문어는 확실히 전보다 가까워진 것 아닐까요? 실제로 영국 정부는 작년에 문어, 게, 랍스터 등을 동물복지법에 포함키로 하면서 문어를 산 채로 삶아 먹는 것이 금지되었다고 하는데요. 이 영화가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네요. (인당 해산물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라는 한국은 과연…?)

우울과 불안에 빠진 시기에 삶의 섭리와 인간과 자연의 회복적 관계를 일깨워준 문어이기에 크레이그 감독은 그녀를 선생님으로 모시는 듯해요. 나아가 크레이그는 이 문어를 만난 이후, 다시마숲을 지키기 위한 환경보호단체를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스로를 ‘자연주의자’라고 소개하기도 하고요. 그는 10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다이빙하며 해양 생물의 삶을 관찰한다고 하는데요, 그의 신념과 꾸준함에 경의를 표하며 다음 작품도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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