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맛 팝콘] 소비가 아닌 공감을, <나의 집은 어디인가>

By 초록🍀

안녕하세요, 옥수수 여러분. 밖에 안 나가면 손해인 요즘 날씨를 충분히 만끽하고 계신가요? 저는 최근 이사 문제로 골머리를 썩었는데요,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계약기간이 곧 끝나거든요. 혼자 이사할 집을 찾으러 다닌 게 이번이 처음이라, 10곳이 넘는 집들을 돌아다니며 비교하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그 안에서 어떤 부분은 반드시 포기를 해야 하잖아요. 예컨대 신축이고 볕이 잘 안 드는 곳을 택할 건지, 혹은 구옥이지만 남향인 집을 택할 것인지, 도심과 가까운 곳을 원하는지 자연과 가까운 곳을 원하는지, 아파트와 주택 중 어느 곳을 더 선호하는지 등등…

수많은 집을 구경하고 고르면서, 집만큼 그 사람을 잘 표현해줄 수 있는 곳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의 위치나 형태, 그리고 그 내부를 채운 물건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 사람의 정체성이잖아요. 이사 갈 집을 선택하는 건, 나는 어떤 사람인지 직면하는 일과 같더라구요. 이사 시즌이 되니 불현듯 깨닫게 된 집의 중요함과 소중함…

그런데, 갑자기 내 집이 사라지는 상상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어느 순간 집주인이 갑자기 방을 빼야 한다며 나를 내쫓는다면? 수해 피해로 인해 집이 물에 잠긴다면? 혹은 전쟁이 나서 집을 버리고 도망가야 하는 신세가 된다면…? 이번에 선정한 다큐멘터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집을 잃어버린 한 남성의 일대기를 담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소개 - <나의 집은 어디인가>

개봉 2022. 4. 7.

국가 덴마크/프랑스/스웨덴/노르웨이

러닝타임 89분

감독 요나스 포헤르 라스무센

수입 및 배급 왓챠

수상

2021 미국비평가협회상 표현의 자유상, 다큐멘터리 톱5

2021 LA비평가협회상 애니메이션상

2021 시카고비평가협회상 애니메이션상

2021 보스턴비평가협회상 애니메이션상

2021 유럽영화상 유러피안 애니메이션상, 유러피안 대학영화상,

유러피안 다큐멘터리상

2021 뉴욕비평가협회상 다큐멘터리상

2021 뉴포트비치영화제 관객상-애니메이션

2021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크리스탈 작품상-장편,

Gan Foundation상-장편, 사셈 음악상-장편

2021 예테보리국제영화제 북유럽다큐멘터리 드래곤상

2021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2022 애니마-브뤼셀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장편 관객상-국제경쟁,

장편상-국제경쟁

2022 전미비평가협회상 다큐멘터리상

2022 팜스프링스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상

★ 현재 극장 상영 중 ★

(넷플릭스의 <나의 집은 어디인가>와는 다른 다큐멘터리입니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봉준호 감독의 2021년 베스트 영화에 뽑히기도 했는데요. 원제 Flee는 ‘달아나다’라는 뜻으로, 영화는 아프가니스탄의 한 남성 ‘아민(가명)’의 유년시절부터 시작됩니다. 소련이 지원하던 사회주의 아프가니스탄 정권에서 가족들과 안락한 삶을 살던 소년 아민은, 정권에 비판적이던 아버지가 어느 날 비밀경찰에 끌려간 이후로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됩니다. 무장 게릴라 조직 무자헤딘이 정권을 잡게 되자 남은 어머니와 형제들마저 소련과 스웨덴 등지로 뿔뿔이 흩어지게 돼요. 카불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소년이 성인이 되기도 전에 이른바 ‘난민’이 되어버린 거죠. 영화는 이미 성인이 되어 덴마크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아민이 과거를 회고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관객들은 표류기의 결말을 알고 있지만 아민이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의 자리까지 왔는지 보게 됩니다.

또한 덴마크에 와서도 아민의 집을 찾는 과정은 끝나지 않아요. 아민은 어릴 때부터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죠. 어릴 적부터 누나들의 치마를 입고 춤추는 것을 좋아했던 아민은 동성애자라는 단어 자체가 없는 이슬람문화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외면하고 있었어요. 어른으로 성장해서도 동성애자 성향을 바꿔 보려 병원을 찾았을 정도였죠. 아민은 국가적 의미의 난민이기도 했지만, 이성애 중심의 젠더 관념 속에서도 난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민에게는 덴마크에 정착하고서도 자신의 또 다른 집을 찾아야 하는 숙제가 있었죠.

이 영화가 수많은 상을 수상하게 된 이유 중에는, 지금 가장 첨예한 국제이슈 중 하나인 난민이슈를 다루면서도 이들을 집단의 형태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중 한 명의 구체적인 삶에 집중하며 난민의 삶에 대한 상상의 지평을 넓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보통의 난민 다큐멘터리는 난민이 현재 겪고 있는 집단적 고통과 희생, 그리고 그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무자비한 폭력에 집중하죠. 이 잔혹한 현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성격이 강해요.

난민 다큐멘터리에서 우리가 떠올리는 그림은 대체로 이런 거? ©아이 웨이웨이 <유랑하는 사람들>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왜 생겼고, 이 사태의 엄중함이 얼마나 큰지 상세히 밝히는 것을 포기합니다. 그 빈자리를 아민이라는 한 개인의 감정과 고뇌들로 채우죠. 전쟁이라는 비극이 실제로 한 사람의 생을 어떻게 바꾸는지 느낄 수 있죠. 또한 아민이 동성애자라는 사실 역시 난민에 대한 전형성을 깨고, 우리 모두 어떤 면에 있어서는 집을 찾지 못한 난민이라는 공감대를 만들어 줍니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에 쭉 눈에 띄고 있는데요, 2020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사마에게> 역시 전쟁 중 아이 사마를 낳게 된 엄마 와드의 1인칭 시점으로 시리아내전 상황을 보여주며 관객과 소통의 거리를 좁혔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영화 <가버나움> 역시 베이루트 난민 출신의 한 소년이 자신의 부모를 고소하게 된다는 스토리로 전개되는데요, 한 사람이 맞닥뜨린 아이러니에 집중해 관객의 몰입도를 높입니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의 또 한 가지 특이점은 수상내역에서 볼 수 있듯 애니메이션을 통해 그의 생애를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보통 과거의 일이라 촬영이 불가능한 회상 부분에서 부분적으로 애니메이션을 사용하는 일은 흔하지만, 이 영화는 인터뷰와 현재의 모습을 포함해 거의 모든 것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습니다. 애니메이션 장치를 통해 본인을 아민이라는 가명으로 소개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의 신변을 감출 수 있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animated documentary)라고 일컬어지는 이 장르의 등장은 처음이 아니에요. 가장 유명한 작품은 ‘바시르와 왈츠를(2008)’로, 이스라엘 출신의 감독 아리 폴만(Ari Folman) 감독이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에 참전했던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아낸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칸영화제와 아카데미, 골든글러브 등 세계 유수 영화제들의 주목을 받았어요. 최초의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는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된 작품인 <루시타니아호의 침몰(1918)>로, 생각보다 깊은 역사를 가진 장르더라고요.

이 영화에서 애니메이션이라는 장치는 주인공의 신변을 보호하는 역할도 수행했지만, 보다 윤리적인 연출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기도 했어요. 전쟁 속 잔인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여과장치를 통해 우리 눈으로 들어오게 되죠. 기본적으로 피 흘리는 장면이나 노골적인 폭력 상황이 거의 묘사되지 않았어요. 아민과 가족들이 전쟁을 피해 도망치는 장면에서도 구체적 배경은 생략하고 아민이 느끼는 패닉과 공포감을 환상에 가깝게 그려냅니다

수전 손택이 <타인의 고통>을 통해 말하듯, 전쟁과 같은 폭력적인 상황을 면밀하게 보여줄 경우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연민과 무감각이 돌아오게 되죠. 예컨대 식용으로 개를 소비하지 말자고 개가 도살된 사진을 자세하게 전시할 경우, 처음에는 충격을 받아 주목하게 되겠지만 자꾸 볼수록 그 사진에 익숙해지며 개라는 존재를 연민하게 됩니다. 익숙해진 나머지 그 사진을 무분별하게 소비하게 되기도 하고요.

우크라이나 현지 생중계 모습, 전쟁의 참상을 관점 없이 보도하고 소비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 유튜브 채널 'MBCNEWS'

영화 속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꼬집고 있습니다. 난민들이 탄 작은 배가 큰 유람선을 마주하는 장면에서, 난민들이 도와 달라고 외치자 유람선 갑판 위 백인들은 핸드폰을 꺼내 플래쉬를 터트리기 바쁘죠. 더 큰 이목을 끌기 위해 몇몇 난민들은 바다로 뛰어들기까지 하고, 아민은 극한의 혼란을 느낍니다. 그 결과 난민들은 구조받지도 못하고, 경찰에 신고 당해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죠. 이 장면이 바로 그간 우리가 난민을 소비해온 방식이 아닐까요? 난민들 각각의 삶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성찰보다는 잔인한 현실에 놓인 집단에 대한 값싼 연민이 선행되었죠.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아민을 관습적인 이미지로 대상화하지 않고, 입체성을 가진 한 개인으로 보여주었어요. 자신의 생존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느끼며, 타국으로 도망치는 와중에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부패경찰에게 한마디도 못하는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끼기도 하는 평범한 소년이 자신의 집을 찾고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나아가 관객들에게도 ‘나의 집은 어디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예요. 우리 모두 어떤 정체성에 대해서는 포기하거나 도망치며 살고 있잖아요. 나를 찾는 과정은 험난하고 힘이 들지만, 나는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직면할수록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집을 찾을 수 있겠죠. 아민처럼 말이에요.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랍니다) 그럼, 여러분 모두의 집을 응원하며 글을 마쳐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