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1] 🌈 캐롤 추천은 뻔하잖아요

한 주도 잘 지내셨어요? 올해가 열흘도 남지 않은 시점, 특집으로 돌아온 PRIIISM입니다. 12월 23일쯤 나올 수 있는 특집이라면 역시 캐롤이지요? 하지만 최애 캐롤을 소개하는 건 조금 뻔하니까, '분명 캐롤은 아니지만 크리스마스에 듣기 좋은 노래'를 저희 세 명이 한 곡씩 뽑아봤습니다.

올해는 평소보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더욱 물씬 풍기는 것 같아요. 요즘 유행하는 '크리스마스 기대 하나도 안된다' 밈 때문일까요? 벌써 2년째 역병과 함께 맞는 연말, 그나마 희망적이고 행복한 이미지를 잔뜩 볼 수 있어 아무려면 반가운 현상 같습니다. 저(로 말하자면 숑콜로 셋 중 하나)는 이번 주말 좋아하는 동네의 식당과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예약했답니다. 한 해 동안 고마웠던 친구들에게 엽서를 쓰고 있고요. 정말이지 크리스마스 하나도 기대 안되네요!

노래를 소개하기 앞서 중요한 안내사항! 지난 주 2021년 연말 결산을 준비하며 'PRIIISM 베스트 투표 링크'를 드렸었죠. 그런데 아직 참여해주신 분이 몇 분 안 계시더라고요😭 주말에 해야겠다고 잠시 미뤘다가 잊으신 거죠?! 이유가 길지 않아도 좋으니 소중한 응답을 부탁드려요. 저희는 구독자님의 목소리가 늘 궁금합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고 올해 PRIIISM을 통해 소개된 노래 중 가장 좋았던 세 곡을 알려주세요. 투표를 통해 PRIIISM 구독자 분들이 뽑은 🌈올해의 노래를 선정해보려 해요. 덧붙여주신 의견과 함께 다음 주 레터에서 소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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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slie Cheung - A Thousand Dreams of You

레슬리 청(Leslie Cheung)이란 가수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장국영의 이름은 아마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홍콩 영화의 상징적 인물인 그는 영화배우이기 이전에 가수로 먼저 데뷔했다. 그의 노래를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영화 '풍월'의 엔딩으로 부른 이 곡은 계절을 불문하고 아껴 들었다. 우아하게 흐르는 피아노와 꿈결 같은 색소폰, 트럼펫 반주를 듣고 있자면 눈에 닿는 모든 광경이 노르스름한 노을에 물든 듯 황홀하게 느껴진다.

하물며 전구가 반짝이고 음식에서 김이 피어오르며 눈앞에 아끼는 사람이 있는 휴일이라면, 발음만으로 낭만을 가져오는 크리스마스라면 다른 수식을 보탤 필요가 없다. '수천 수백만 번이라도 그대 꿈을 꾸겠다'고, '함께한다는 건 정말 굉장한 일'이라고 감미롭게 건네는 노랫말만으로 한 줄기 남아있던 일상의 긴장이 탁 풀린다. 추운 날 노포에 들어서는 순간처럼 노곤한 감상에 빠져들게 된다.

이 노래의 원곡은 미국의 재즈 보컬 밀드레드 베일리(Mildred Bailey)가 1937년 발표한 동명의 노래다. 원곡의 고풍스럽고 풍부한 음율도 좋지만 좀더 현대적이고 담백하게 다듬은 듯한 장국영 버전을 자주 찾게 된다. 만우절에 소풍처럼 찾아온 이 세상을 거짓말처럼 떠난 그를, 거울 앞에서 불안한 듯 신나게 몸을 흔들던 영화 '아비정전' 속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어서일까. 반가운 뉴스는 여전히 요원하지만 연말의 하루만큼은 잔을 비우며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려보자. 비운 자리여야 새해의 기운이 찾아와 깃들 테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에는 장국영의 영화 한 편을 곁들여야겠다.

🥦 Ella Fitzgerald - Happy Talk

언젠가부터 길거리에서 캐롤 듣기가 어려워졌다. 우선 저작권 문제가 있을 테고 세상이 더욱 각박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캐롤이 길가에 울려 퍼질 때면 비로소 연말임을 실감했던 터라 내심 아쉽다. 요즘은 그 역할을 SNS가 대신하는 것 같다. 명동에 위치한 유명 백화점에서 꾸며놓은 크리스마스 장식을 거의 인스타그램에 접속할 때마다 보게 된다. 사진으로 봐도 워낙 휘황해서 실제로 보면 '신세계'에 온 듯한 분위기에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긴 하더라.

무릇 연말이면 여럿이 모여 한 해 동안 고생했다고 덕담을 나누며 맛있는 음식을 흐벅지게 먹고 마셔야 하거늘, 올해도 서로 거리를 둬야하는 형편이다. 가고 싶지 않은 회식이 취소되거나, 있더라도 합당하고 당당하게 불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안을 찾아야 하려나. 여하튼 이번 연말도 잘해야 삼삼'사사' 조촐하게 보내야 한다. 홈파티에 은근하게 틀어놓고 분위기를 연출하기 좋을 곡을 골라봤다. 재즈의 여왕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가 부른 <Happy Talk>다.

멜로디가 어딘가 귀에 익다면 제대로 들은 것이다. 신세계적인 모 대형마트에 가면 '난난나나나나난난난♬' 하고 들리는 그 곡 맞다. <Happy Talk>는 1949년 초연된 뮤지컬 <남태평양>에 실린 게 원곡이며 캡틴 센서블(Captain Sensible)을 비롯해 여러 뮤지션이 불렀다. 엘라 피츠제럴드의 <Happy Talk>는 눈 쌓인 겨울날 따뜻한 실내에서 서너 명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그려진다. 가사 내용도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기에 퍽 어울린다.

"Happy talk, keep talkin' happy talk / Talk about things you'd like to do (행복한 대화를 계속 나눠요 / 당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 해봐요)"  흔히 새해면 이런 저런 목표를 세운다. 목표는 연말이면 이룬 게 없다는 푸념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그러지 말자고 감히 주장해본다. 모두 지키지 못하면 어떤가. 각박한 일상에서 어떤 목표를 삼고 희망을 품고 사는 것과 어떤 목표도 기대도 없이 무미건조하게 살아지는 것 중에서 나는 전자를 택하련다, 적어도 연말 연시엔 말이다.

🍄 하림 - 위로

어린 시절 나에게 12월은 축제의 달이었다. 12월 말이 생일이었던 덕분에 연말에는 매일매일 파티가 이어졌다. 눈사람을 만들고 썰매를 타며 하얀 세상을 즐겼고 생일 선물에 이어질 산타 할아버지의 머리맡 선물을 기대하며 잠들었다. 교회는 온통 성탄의 찬양과 공연이 이어졌고 아이들을 위한 축복은 끊임이 없었다. 

언젠가부터 만들어진 '12월은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라는 법칙은 비로소 서른 줄이 넘어서야 깨졌다. 생각보다 생일은 그렇게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크리스마스는 나만의 행복을 위한 날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제서야 보이지 않았던 성냥팔이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화려하게 도심을 수놓은 형형색색의 조명, 그 옷을 입은 거대한 트리, 풍요로운 음식을 먹는 화목한 가족, 사랑스러운 연인들로 가득한 이 거리의 이면엔 고작 성냥 하나에 생명을 연명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문득 크리스마스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인 아기 예수도 이 땅의 권세를 누릴 왕이 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병든 자를 위해 낮은 곳의 왕으로 오지 않았던가. 산타클로스의 유래가 된 성 니콜라오 역시 불우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던 사람이었다.

언젠가부터 세상이 '나' 중심으로 돌아간다. 나의 자아를 실현하는 삶, 내 마음의 평화를 구현하는 삶. 내가 행복해야 남을 챙길 수 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부디 세상의 중심에 서 있더라도 주변을 돌아보는 우리가 되길, 긍휼한 마음, 애통하는 마음, 슬퍼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우리가 되길, 무엇보다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 내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우리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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