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7] 🥦 시작에 추진력을 더해줄 노래

반갑습니다, 콜리🥦입니다. 설 명절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몸 사리는 며칠을 보냈습니다. 연휴 직전에 몸살을 좀 앓았거든요. 그래도 금방 회복하면서 맛있는 음식들을 아예 못 먹지는 않았어요. 친지들과 만남은 또다시 코로나19 때문에 최소화 했는데요. 명절을 이렇게 보내는 게 몇 번째인지 가늠도 잘 되지 않네요. 그동안 조카들이 얼마나 자랐을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나중에 만나면 서로 엄청 낯설어 할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할 때가 참 많지 않나요? 저로선 삼십 년 조금 넘게 살아가면서 코로나19처럼 우리 일상을 크게 바꾼 게 있었나 싶습니다. 잠잠해지나 싶다가도 속수무책으로 늘어버리는 확진자 수를 볼 때면, 우주로 뭘 쏘아 올리고 가상 공간이 어떻고 하는 등 과학 기술적으로 높은 성취를 이룩했다지만 인간이란 이토록 무력하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별의별 변이 바이러스에도 끈질기게 대응해나가고 있으니 인간은 또한 얼마나 강인한가,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듭니다.​

설 이야기로 돌아오죠. 3주 전 뉴스레터에서 제가 "우리에겐 음력이 있습니다"라며, 설이 오기까진 작심삼일에 그치더라도 계속 작심하면 되지 않겠냐고 제안했었지요. 어느새 설이 지났네요. 오늘이 2022년의 34일째 되는 날이라고 하니 벌써 1년의 대략 10%가 지난 셈입니다. 좋든 싫든 준비가 되었든 되지 않았든 시간은 잘도 흐르네요. 그러니 이제 2022년을 정면으로 마주해볼까요. 이번 PRIIISM은 무언가 시작할 때 기운을 북돋아주는 느낌이 드는 곡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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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2 -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새해를 맞는 방식에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으로 보신각 종 울리는 순간을 챙기는 사람이 있을 테고, 산이나 바다로 가서 직접 일출을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은 마치 일출 같은 곡이다. 신시사이저는 새벽 안개 너머로 어렴풋이 비치는 빛 같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기타, 뒤따라 합류하는 드럼과 베이스는 태양이 솟아오르는 것 같다. 서서히 고조되더니 마침내 보노(Bono)가 노랠 시작할 때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은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밴드 유투(U2)의 전설적인 앨범 [The Joshua Tree]의 포문을 여는 곡이다. 요컨대 전설의 시작을 알리는 곡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기타리스트 디 에지(The Edge)가 집에서 혼자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의 데모 녹음을 마치고 "지금껏 만든 기타 리프 중 최고"라며 감격했다고 한다. 이 곡이 1987년에 발매된 후 3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유투의 공연에서 빠지지 않는 대표 곡 중 하나이니 충분히 그럴 만하겠다.

유투하면 라이브 공연이다. 최고의 무대를 위해 갖가지 장비를 운용하며, 이를 공수하기 위한 비행기까지 띄울 정도라고 하니 말 다했다. 멤버 모두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전 세계로 공연을 다니며 공연 수익으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저력을 보여준다. 물론 코로나19 이전 이야기다. 아, 그러고 보니 내게 마지막 콘서트 현장이 바로 2019년 12월에 있었던 유투의 첫 내한공연이다. 라이브 공연을 못 본 지 만 2년을 꼬박 채우고 3년째에 접어들었다. 올해는 볼 수 있겠지?

🥦 Arcade Fire - Everything Now

5분 내내 희망이 넘실거린다. 밝은 질감의 피아노 멜로디와 디스코 비트 드럼으로 문을 여는 시작부터 그렇다. "Everything now! everything now!"하는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 특유의 코러스가 시작될 때면 명백해진다. <Everything Now>는 라이브 공연에서 빛을 발할 곡이다. 두 팔을 넓게 펼치고 목청껏 떼창하는 관객들이 쉽게 연상된다. 사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곡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너무 뻔해서. 이렇게 대놓고 노린다고 '앤썸(Anthem)'이 나올까. 이미 아케이드 파이어에겐 <Wake Up>이라는 걸출한 '떼창곡'이 있잖은가.

한동안 나는 뻔한 것에 인색했다. 가령 전주부터 울 것 같은 이별 노래, 밑도 끝도 없이 잘 될 것이란 말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초장부터 희망찬 <Everything Now>도 같은 맥락에서 들렸다. 이 곡이 실린 동명의 앨범 [Everything Now]가 아케이드 파이어 최초로 인디를 벗어나 대형 레이블과 계약하고 나온 앨범이란 사실도 은근히 <Everything Now>를 저평가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했다. 대형 레이블로 가더니 상업적으로 나오는고만!

아마 2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왜 살지,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 하는 질문에 침잠한 시기가 있었다. 뻔하다고 등한시했던 것을 다시 보게 된 게 그때였다. 어떤 멋들어진 문장보다 단순한 한마디가 마음에 더 와 닿았다. 힘 내, 파이팅! 같은 흔한 말도 공허하게만 들리지는 않았다. 다시 들은 <Everything Now>도 예전과 달랐다. 노래에 가득찬 희망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Everything now! everything now!"가 이제 응원 구호처럼 들린다. 나만의 응원가 하나쯤은 좋지 아니한가, 새해를 맞아 무언가를 시작하는 시점에는 더더욱 말이다.

🥦 Manic Street Preachers - A Design For Life

인생 설계, 제목부터 건설적이다. 매닉 스트릿 프리처스(Manic Street Preachers, 이하 매닉스)의 <A Design For Life>는 제목에 걸맞게 진취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는 당연히 의도적인 것이다. 곡을 쓴 보컬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James Dean Bradfield)는 이 곡을 가리켜 "비탄에 잠긴 노래가 아니라 비장한 곡이다."고 말했다. 그 말마따나 곡을 듣다 보면 뭐든 해야할 것 같은 힘이 솟구친다. 삶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크든 작든 나름의 목표를 세우고 무언가를 바라며, 삶을 디자인하는 행위는 매우 건강한 삶의 자세일 것이다.

매닉스는 영국 웨일즈 출신 밴드이다. <A Design For Life> 가사를 혹시 보셨다면 얼핏 짐작할 수 있듯 이들은 주로 노동계층을 대변하는 사회참여적인 메세지를 노래한다. 따라서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나 클래시(The Clash) 같은 펑크(Punk) 냄새가 음악에 다분히 깔려있다. 거기다가 밴드 구성원 모두가 문화 예술 소양이 깊어서, 이들 음악에는 시인, 건축가, 미술가 등이 빈번하게 인용된다. 어지간한 영어 실력 아니고서는 매닉스를 가사로 즐기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다행히 이 곡은 소리만으로 훌륭하다.

<A Design For Life>는 1996년에 발매된 매닉스의 4집 [Everything Must Go]에 수록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1996년이면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ia)'로 일컬어지는 영국 문화의 융성기였다. 대중음악씬에서는 소위 브릿팝(Brit Pop)이 대세였을 때였다. 브릿팝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띈다는 점이다. 밝고 경쾌하며 진취적인 <A Design For Life>가 인기를 끈 것은 지당한 결과였다. 영국 싱글 차트 2위까지 올랐으며 지금까지도 1990년대 영국에서 나온 가장 중요한 곡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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