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6] 🌻 겨울 밤의 하얀 우울을 담은 세 곡

어느덧 2022년 첫 달의 마지막 주에 편지를 쓰고 있는 숑🌻입니다. 언젠가 마주친 책 속 문장 중에 '크리스마스와 정월 초하루 사이의 기이한 일주일은 시간의 밖에 있는 괄호 속 같다'는 표현이 있었어요. 제게는 1월까지가 꼭 그렇게 느껴집니다. 새로운 해가 열렸지만 여전히 내 몫은 아닌 것 같고, 마음을 다잡아볼래도 명절 연휴가 다시 다가오니 어딘가 부유하는 느낌이 들어요.

온전히 시간 안에 발을 딛지는 못했어도 나름대로 알찬 1월을 보냈습니다. 계획한 양만큼 매일 책장을 넘기고 운동을 했어요. 구독자님의 1월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호쾌한 흑호랑이 해의 첫 달 치고 영 아쉬웠더라도 괜찮습니다. 아직 시간의 밖에 있는 괄호 속이니까요. 작심한 바는 명절 푹 쉬고 돌아와서 시작해도 전혀 늦지 않습니다!

대한(大寒)이 지나선지 요즘 추위가 그리 매섭지는 않네요. 이대로 포근한 봄이 와 버릴까봐 저는 겨울다운 노래를 이것저것 챙겨 듣고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겨울다움'의 다양한 이미지 중 하나는 우울입니다. 아무리 하늘이 맑은들 앙상한 나뭇가지와 건조한 기후가 주는, 어디론가 파묻히고픈 무기력과 우울이 공기 중을 떠도는 것만 같아요. 오늘 골라본 세 곡은 바로 그런 느낌을 주는 노래들입니다.

📧 추신 (1), PRIIISM 뉴스레터는 상단의 '🌏웹에서 보기' 버튼을 누르면 보다 쾌적하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추신 (2), 지난 주 뉴스레터 발송 시간이 조금 늦어졌어요. 매주 목요일 오후 4시에 맞춰 PRIIISM을 보내드리기로 했던 약속 잊지 않고 지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로이🍄

🌻 사공 - 노스텔지아, 노스텔지아!

취향이 성글게 정립되어가던 무렵부터 나는 춥고 푸른 우울에 얼마간 동경을 품었던 것 같다. 가고 싶은 해외 여행지라고 하면 아이슬란드나 핀란드 같은 북유럽, 아니면 줄곧 비가 내려 땅이 축축한 영국과 흙마저 술에 젖어있을 것만 같은 스코틀랜드를 떠올렸다. 지극히 내가 이해하거나 오해한 진실일지언정 그런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간 자체가 좋았다. 자연히 비슷한 분위기를 품은 그림이나 음악에 애착이 향했다.

사공(Sagong)은 '컨트리, 락, 로우파이, 얼터너티브 등 다양한 장르를 추구하는 싱어송라이터'라고 본인을 소개한다. <노스텔지아, 노스텔지아!>가 수록된 싱글로 그의 노래를 처음 접했는데, 앨범 표지부터 노랫말과 멜로디까지 심상을 어쩌면 이렇게 탁월하게 담았을까 감탄했다. 정확히는 내가 유달리 좋아하는 우울의 이미지에 부합했기 때문이리라.

사실 앨범 표지부터 완벽히 내 취향을 난사한다. 저멀리 먹구름이 낀 수평선 주변으로 넉넉한 부피의 섬이 보이고, 거친 화질을 뚫고 보이는 파도가 심상찮은 분위기를 풍긴다. 제목과 같이 노스텔지아가 잔뜩 풍기는 노랫말도 마음에 쏙 든다. 왜인지 그가 그리는 '네버랜드'가 그저 포근한 곳만은 아닐 것 같다. 그럼에도 오로지 향수에 기대 녹록치 않은 그곳을 향하는 마음을 왜인지 이해할 수 있다.

'그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들을 난 알아, 숨기려 하지마 (...) 난 사실 돌아가고 싶어, 모든 걸 내려두고서'

🌻 Snow Patrol - Chasing Cars

스노우 패트롤(Snow Patrol)은 스코틀랜드에서 결성된 밴드다. 그들의 대표적 히트곡인 이 노래는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의 엔딩 곡으로 쓰이고 우리나라 CF에도 등장하는 등 인지도가 꽤 높은 편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곡을 주로 업무에 마음이 너덜너덜해질 적 들었다. 대체 왜 퇴근한 순간부터 스위치를 내리듯 암담한 기분을 off할 수는 없는 건지 궁금하고 답답할 때마다 이 노래를 떠올렸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도닥여주는 내용의 노랫말은 아니다. 되려 매우 순수한 사랑 노래다. 'Chasing Cars'의 의미는 개가 자동차를 쫓아가는 것과 같이 절대 잡을 수 없고, 잡는다 해도 어찌 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무엇 하나 확답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수습하기 힘든 당장의 마음을 투신하는 자의 이야기.

팝송을 들을 때 종종 누리는 특권이란 이런 것 아닐까? 한국어 가사라면 아무리 다르게 해석하고 싶어도 귀에 박히는 단어를 모른 체할 수 없지만 외국어일 경우는 다르다. 시적인 노랫말 중에서도 'Let's waste time'만을 건져내 귀에 담으며 오늘 하루 고생한 나를 담담히 도닥이는 노래로 뒤바꿔버릴 수 있다. 돌아오는 주말에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사건과 순간들로 채우리라 다짐하며 또 한 주를 버티는 힘으로 삼는 것이다. 음악의 역할이 뭐 거창한 것 있을까. 드넓은 해석의 자유를 만끽하며 원하는 모양으로 유연히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 Kent - Socker

재생목록을 통틀어 단 한 곡을 남길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를까. 10년 전부터 내 대답은 주저없이 이 곡을 가리켰다. 스웨덴 밴드 켄트(Kent)를 처음 알게 해준 곡. '이 노래를 듣고 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좁디좁은 생각마저 품게 한다. 나즈막한 드럼으로 시작해 청명한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오는 순간이, 그 뒤로 심장 박동처럼 정직하게 이어지는 드럼 비트가, 낯선 스웨덴어 발음마저 속절없이 매력적이다.

'닝겐~ 닝겐~'처럼 들리는 후렴구의 뜻은 'No one'이다.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 듣지 못해' 정도의 뜻. 한반도와 북유럽 땅의 거리만큼이나 이질적인 느낌, 찾아보면 다소 당혹스러워지는 퇴폐적인 노랫말이지만 나는 오래도록 이 노래에 마음 한켠을 내어줬다. <Socker> 뿐만 아니라 그들의 여러 노래가 겨울의 우울을 떠올리게 했다. 우울에 침잠하고 싶은 추운 날에도, 기분이 싱숭생숭한 봄 여름 가을에도 꾸준히 켄트의 음악을 들었다.

어느 날 하늘을 올려다봤다가, 당연히 새까말 줄 알았던 밤하늘이 아주 짙은 남색이라는 걸 알게 된 적이 있다. 켄트의 노래들은 언제고 그 순간을 눈앞에 재현한다. 한켠으로는 어둑한 새벽 낯선 지역의 공항이나 버스 정류장에 떨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언제까지고 생경한 감각을 건넬 것만 같던 그들은 아쉽게도 2016년 3월, 26년간의 활동을 마친다고 선언하며 해체했다.

한 시절과의 작별을 온몸으로 마주하는 일은 항상 쉽지 않다. 동시대를 살아가며 켄트의 새 앨범을 기다릴 수 없게 된 사실이 아쉽지만, 유한한 조각으로 남아버린 그들의 노래를 지금까지 그랬듯 꾸준히 곱씹으려 한다. 켄트의 분위기가 맘에 든 이들에게는 또다른 대표 곡 <747>를 추천하고 싶다. 앨범 커버가 보잉 747기를 연상시키는데 곡 길이마저 7분 47초인 점이 재미있다.

📬 PRIIISM은 3인의 발행자가 매주 순차적으로 발송합니다. (숑-콜리-로이 순)

📌 PRIIISM이 마음에 드셨나요? 그럼 수줍게 구독과 공유를 부탁드려요.

🎤 여러분의 자유로운 의견과 소감, 댓글로 남겨주시면 꼼꼼히 체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