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1] 🌻 연말에는 역시, 편지 쓰는 마음

한 주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올해의 마지막 달력을 넘긴 지도 벌써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연말에 휴가를 쓰는 분들이 많아선지 회식이며 송년회가 12월 초중순에 잡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덕분에 저는 한 달치 소셜 에너지를 일주일 만에 몽땅 소진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그래도 차츰 다가오는 성탄절의 설레는 분위기 때문인지, 부지런히 바깥으로 향하는 에너지가 아직은 반갑게 느껴집니다.

12월 1일이 되자마자 제가 무릎반사처럼 떠올린 생각이 있다면 '편지 쓰고 싶다!'였습니다. 저는 매일 밤 쓰는 일기처럼 누군가에게 손편지 쓰는 일을 좋아하는데요(물론 받는 일도!). 별 이벤트 없는 날 건네도 좋지만, 아무래도 편지에 성수기가 있다면 요즘 이 시기일 게 분명합니다. 묵혀둔 마음을 전하기에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만큼 적당한 핑계는 없잖아요.

『편지 쓰는 법』이라는 책에서는 이런 표현이 등장합니다. "편지가 좋은 이유는 편지를 건넨 바로 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올 한 해를 꽉 채워 PRIIISM을 적어 보내는 동안 3주에 한번씩 제가 좋아하는 '편지 쓰기'를 한 셈이었더라고요. 물론 힘겹게 마감을 마친 날도 적지 않지만 이렇게 돌아보니 그저 흐뭇한 마음입니다. 이른 인사지만, 이 레터를 읽는 구독자님! 올 한 해 저의 유일한 것을 드릴 수 있도록 기꺼이 수신인이 되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 PRIIISM은 극세사 이불 대신 덮고 자도 무방할 것처럼 폭닥하고 따스한 여성 보컬들의 노래를 모아봤습니다. 의도치 않았지만 요즘 같은 온도에 나도 모르게 핫팩을 찾듯 손이 가던 곡들인데 묘한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누군가에게도 온기가 되어 가 닿는 세 곡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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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인류 - 푸른 공상

밴드 신인류의 보컬 신온유의 목소리는 내게 있어 언제까지고 '안식처'의 이미지다. 언젠가부터 1월 1일이 되자마자 듣는 '첫 곡 인증'이 유행할 때 가장 먼저 그들의 곡을 고르기도 했고(7호 레터에서 소개했다), 그 이후 발매한 곡 하나하나 새해처럼 해사하고 봄볕처럼 포근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새해? 그러고 보니 올해 첫 레터(33호)에서도 신온유의 목소리를 소개했다.

그토록 아껴 들었던 그들이 돌연 활동 중단을 선언했을 때의 아쉬움이란. 이런 순간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신보를 동시대에 실시간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으로 새로운 소식을 포기해야 하나 싶던 차에, 올해 활동을 재개했다는 소식을 슬며시 전해 들었다. 그리고 11월에 이 앨범 [희망서]가 발매됐다. 잠시 느낀 아쉬움을 달래고도 흥건히 남을 만큼 '신인류스러움'이 가득했다.

어떤 가수의 앨범 소식을 접했을 때 좋아하는 순간 중 하나는, 그들의 정성과 감성이 듬뿍 묻은 '앨범 소개글'을 발견하는 일이다. 홍보 기사에 복붙한 듯한 소개글 말고, 건조하게 나열한 작곡가명 말고, 한 곡 한 곡 못다한 이야기가 넘치는 음악가가 직접 적어 내려간 수필 같은 소개글. 읽어 내려가는 동안 마치 오래 전 부친 편지에 답장을 받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원픽으로 <푸른 공상>을 꼽았지만 전체 네 곡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풍성하기에, 모든 노래를 추천하고 싶다!

🌻 최유리 - 노력

편지 얘기를 마저 해보자면, 편지지 한 장을 한번이라도 채워본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자판을 두드리는 시간에 비해 펜 끝을 꾹꾹 눌러 공백을 채우는 일에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용을 궁리하고 봉투를 봉하기까지 받는 이에 대한 생각으로 오롯이 꽉 찬다. 친구들 무리와 함께 보낸 덩어리진 추억 말고 오직 그 친구와 나 사이에 있었던 고유한 사건들. 난 특히 표현을 그때그때 잘 못 하는 편이라 '내가 삼킨 말이 뭐가 있더라?' 오래오래 고민하곤 한다.

싱어송라이터 최유리가 올해 발매한 앨범의 수록곡 <노력>을 듣는 동안 이러한 내향인으로서의 동질감(?)이 언뜻 스쳤다. '난 어떻게든 뭐라도 잘해보겠어, 그런 마음으로 하룰 시작해 (...) 나는 내일만을 보며 사는 걱정 많은 사람' 처럼 혼잣말처럼 담담하고 솔직하게 내뱉는 가사들. 두툼한 머플러처럼 폭닥한 목소리 덕에 비슷한 생각을 품었던 언젠가의 나를 위로하는 듯도 하다. 1998년생의 앳된 목소리인데 어딘지 서영은이 떠오르기도 하고, 몸과 마음을 기대놓고 싶어진다.

연말을 맞아 편지를 쓰고픈 이들의 얼굴을 그려보다 이 노래로 잔잔한 위로를 얻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음악으로부터 얻은 감상을 편지에 적용해본다면, 마음을 표현하는 법이란 생각보다 단순할지도 모르겠다. 혼잣말처럼 담담하지만 그에 대해 품었던 솔직한 생각을 적어놓는 것. 매년 조금 더 표현하자고 다짐한다면 편지부터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 편지는 누구에게나 유일하고 오롯한 것이면서도 표현을 곧잘 삼키는 이들에게 더없이 유용한 도구니까.

🌻 시와 - 새 이름을 갖고 싶어

시와는 지난 가을 통영 서피랑에서 공연으로 처음 만났다. '들여다보고 안아주는 노래'를 수식어로 하는데, 그의 목소리는 과연 가을 밤만큼 포근하고 품이 넓었다. 풀벌레가 울고 저멀리 잔물결이 스치던 야외 공연장에서 들었던 모든 노래가 인상적이었지만, 유독 자주 꺼내 듣게 되는 노래가 <새 이름을 갖고 싶어>였다.

이 곡은 그가 2019년 발매한 4집 [다녀왔습니다]에 실렸다. 음반 전체가 '진짜 나를 찾고 싶어하는 마음의 여러 면'을 담았다고 하니, 언뜻 제목만 보고 '개명 권장 노래인가' 싶었던 마음을 싹 잠재워준다. 가끔 나로 사는 게 너무 피곤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새 이름의 다른 이로 하루만 살 수 있다면,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산다면 어떤 느낌일까? 다른 서버에서 새로운 게임 캐릭터로 플레이하듯이.

비슷한 느낌을 친구의 편지로부터 받은 적이 있다. 나에 대해 '잔잔한 호수 같은가 하면 때로는 자기를 활활 태우는 모닥불 같은 사람'이라 묘사한 문장을 전해 받고, 힘들었던 며칠을 보상 받는 느낌을 받았다. 하루하루 쌓아 올리기 바쁜 나날에는 스스로를 관조하기 힘든 법이다. 사람을 이토록 일으키는 말과 글의 힘을 체감하기도 했다. 12월에는 나도 누군가에게 '새 이름을 주는 듯' 힘이 될 만한 글을 편지에 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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