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7] 🌻 내가 요즘 좋아하는 한국 밴드 노래

구독자님, 한 주도 잘 보내셨나요? 더 이상 초여름이라 우기기 힘든 계절에 인사 드리게 된 숑🌻입니다. 사실 저는 오랫동안 여름을 네 번째로 좋아하는 계절이라 생각해왔어요. 어떤 옷을 입어도 습한 데다 벌레가 많아 자주 기겁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내리는 장마는 지루하다고 느꼈거든요.

그랬던 여름의 위상이 음악을 열심히 듣던 어느 시기부터 차츰 높아졌습니다. 목구멍을 짜릿하게 타고 내려가는 라거 맥주가 여름에 제격이듯, 아무려면 여름의 풍경을 훨씬 멋들어지게 돕는 노래들을 만난 이후로요. 덕분에 서른 번 가까이 여름을 맞았지만 매년 새롭게 이 계절만의 장점을 발견하고 있어요.

청량한 보컬과 호쾌한 연주, 솔직한 가사가 빛나는 한국 밴드의 노래는 제게 그 무엇보다 한여름의 라거 맥주 같은 존재입니다.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 무더운 여름의 아스팔트 위에서 은행 ATM기로 들어가는 순간처럼 명치 어딘가를 환기시킨 듯 산뜻해지는 음악들!

사실 딱 세 곡만을 꼽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후보로 고민했던 SURL, 솔루션스, 새소년, 전기뱀장어, 9와 숫자들, 위아더나잇, 다섯, 너드커넥션... 등의 유수한 한국 밴드들은 다음번에 다시 소개할 기회가 있으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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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딕펑스 - 평행선

전주에 깔리는 베이스부터 가슴이 일렁인다. 나는 연주를 섬세하게 들을 줄 아는 귀는 아니지만, 이렇게 무릎 아래로 깔리는 베이스 소리를 아주 좋아해서 이어폰이나 스피커를 고를 때도 저음이 강한 것을 찾는다. 나른한 보컬 뒤로 낮게 춤을 추는 베이스가 줄곧 이어지니 어느 날의 산책이라도 발걸음에 흥겨운 리듬을 맞추게 된다.

지난 몇 주간 나는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눈앞의 신록에 어울리는 노래가 땡길 때, 유달리 걸음마다 물 먹은 솜처럼 느껴지던 순간마다 이 노래를 들었다. 보컬 김태현의 목소리는 세월이 흘러도 <VIVA 청춘>을 소리높여 부르던 시절만큼 청량하면서도 노련한 완급 조절이 돋보이고, 그 뒤로 흐르는 신디사이저와 플룻 소리는 도시의 소음을 남의 일처럼 멀게 만들어버린다. (피처링에 표시된 적재는 기타 세션으로 참여했다) 무엇보다도 어긋나버린 관계에 대한 노랫말을 웬만한 사랑 노래보다 더 산뜻하게 부르다니 반칙...

사실 무더운 한여름에 오장육부까지 시원해지는 종류의 록 음악은 아니다. 오래 전 딕펑스의 음악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꽤나 새로운 스타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는 어느 계절이라도 귀를 편안하게 감싸는 이 노래를 초가을까지 아껴 들으려 한다. 작년 11월에 발매된 딕펑스의 미니앨범에는 <평행선>을 포함한 여섯 곡이 고르게 실려있다. 오늘 소개한 노래가 맘에 드셨다면 앨범 전체를 차례로 들어보시길 추천!

🌻 차세대 - 춤의왕

안 그래도 눈 떠있는 모든 순간 생각이 많은 편이다. 저녁 어스름 속에 있자면 생각의 절대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오늘 내가 던진 실언과 대화한 사람의 눈빛과 크고 작은 비언어적 요소를 복기하다 보면 육체보다 정신의 피로가 버거워진다. 이럴 때 충만한 밴드 사운드와 터져 나오는 보컬, 쿨한 노랫말을 귀에 넣어주면 마음이 한결 가뿐해진다. 내게 록 밴드의 음악은 언제든 손 닿는 곳에 있는 신경안정제인 셈이다.

차세대는 내가 한국 밴드를 좋아하는 다양한 이유 중 하나를 극대화한 밴드다. 언뜻 건들거리는 음악을 일삼을 것 같지만 이들의 노래에선 솔직함과 건실함, 가끔 처연함마저 묻어난다. 밴드 이름은 '다음 세대'를 뜻하지만 앨범 표지에서도 느껴지듯 이들은 옛날 음악의 영향을 담뿍 받은 것 같다. 은근하게 고개를 까딱이며 뚱땅이는 베이스 연주를 안주 삼아 좋아하는 맥주를 들이켜고 싶어진다.

<춤의왕>을 듣고 있으면 좋아하는 친구들을 단골 엘피바에 잔뜩 초대해 술 마시고 흥얼거리는 장면이 떠오른다. 각자 뚜렷한 개성을 무람없이 드러내면서도 잔을 부딪칠 때만큼은 진심을 내놓고, 스미듯 어우러질 것만 같다.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딘가 헛헛하지만 꿍꿍대는 음악의 여흥이 사라질세라 장면장면을 마음 한켠에 현상하고 싶어지겠지.

내게 있어 여름은 낮이 길어 허무가 덜한 계절이다. 요즘은 오후 5시쯤, 아직 하늘이 밝지만 초목의 활력이 한풀 꺾인 시간마다 차세대의 노래를 듣는다. 잡념이 똬리를 틀 새 없이 적당히 흥겹고 적당히 센치한 기분으로 저녁을 맞이하면 깊어지는 밤도 두렵지 않다.

🌻 신인류 - 안식처

언젠가부터 1월 1일이 되자마자 듣는 첫 곡대로 그 해를 살게 된다는 풍문(?)이 돌았다. 처음엔 희망찬 기운이 넘쳐 흐르는 노래가 줄을 잇는 첫 곡 인증의 물결을 그저 관망했다. 하지만 내심 '나라면 어떤 곡?'을 상상하며 플레이리스트를 훑는 동안 연말이 주는 분주하고 달뜬 기분에 푹 잠기게 되었다.

그렇게 2019년 12월 31일 밤에 고심하여 고른 곡이 바로 신인류의 <안식처>였다. 그때의 내가 새로운 해에 원한 건 오직 안식이었다. 당시 직장에서는 바쁨과 고난이 매년 갱신되었고, 내가 자리를 비우면 큰일날 것만 같은 자의식 과잉이 더해져 입사 이래 긴 휴가 한번 다녀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과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아 전세계적인 역병이 발발했고, 2월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이 사라지니 육체에 물리적인 안식을 찾기도 했지만 업무적으로도 예년보다 비교적 평화로운 한 해를 보냈다. 비대한 자의식을 극복하고 처음으로 일주일이 넘는 휴가도 써봤다. 역시 나 하나 없어도 회사는, 세상은 지나치게 잘 돌아갔다. 어쩌다 보니 새해 첫 곡의 풍문이 들어맞은 것이다!

'파도가 흔들리는 건 바람 불어서가 아니고 내 맘을 들여다봐서 그래' / '조금씩 가라앉는 건 더 이상 쌓일 게 없다는 흐뭇한 밤이 되었고 그런 여행이었어'

2018년 데뷔한 밴드 신인류의 노래에는 따스하고 고운 우리말 가사가 빛난다. 그해에 떠나 온 여행지에서 <안식처>의 노랫말을 차곡차곡 새기는 동안 잔잔한 파도가 마음 속을 쉼없이 쓸었다. 충분히 휴식한 뒤 '이제는 집에 돌아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피어올리던 순간이 지금도 선연하다. 앨범 표지의 푸른 색감만큼 이들의 음악은 앞으로의 고난에도 화려하지 않은 위로가 되어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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