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3] 🌻 새해가 더 아름답게 느껴질 노래들

구독자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로운 해,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메일함에 찾아온 숑🌻입니다. 사실 2021년 13월이라고 쳐도 어색하지 않고 일주일 사이 허물을 벗은 것도 아닌데 괜히 더 희망찬 기세를 갖춰야 할 것만 같은 시기죠. 공기 중에 떠다니는 새해 버프를 등에 업고 이참에 새로운 마음가짐을 세팅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합니다.

저도 새해에는 한 꺼풀 더 부지런한 인간이 되어보고 싶어서 그저께부터 '일어나자마자 이불 정리'를 시도하고 있어요. 거창한 변화는 아니지만 눈 뜨자마자 체크리스트 하나를 지우고 시작한다는 사실이 하루의 소소한 불씨가 되어주더라고요. 구독자님도 새해 목표를 세우셨나요? 목표의 크기와 유무에 상관 없이 모쪼록 건강한 계절 나시기를 바랍니다. 게으름도, 부지런도 다 건강을 전제해야 피울 수 있으니까요.

겨울답게 춥지만 연초부터 하늘이 제법 깨끗한 나날입니다. 오늘은 시리도록 맑은 공기를 허파 끝까지 들이마시듯, 신선하고 긍정적인 감각을 채워줄 노래 세 곡을 골라봤습니다. 올해의 첫 프라이데이 이브에 담뿍 깃드는 배경음악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꾹꾹 채웠으니 즐겁게 읽고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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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지피피 - 낭만의 계절

'낭만'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라 한다. 염증과 갈등이 들끓는 현실에서 웬만하면 1mm라도 발을 띄워놓고픈 나로서는 맘에 쏙 드는 표현이다. 물결 랑(浪)에 흩어질 만(漫)으로 풀이되는 한자는 또 어떠한가. 프랑스어 로망(Roman)을 그대로 음차한 것이라지만 잔잔하게 몸을 뒤척이는 푸른 물결을 상상하는 자체로 낭만적인 기분이 된다.

2006년 데뷔한 싱어송라이터 로지피피(RossyPP)는 낭만이 가득한 계절로 주저없이 겨울을 지목한다. 노래의 도입부터 추위에 몸을 옹송그리고 해질녘 북촌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봄, 여름, 가을이라고 왜 낭만이 없겠는가. 그러나 <낭만의 계절>을 듣는 순간만큼은 난로의 훈기가 일렁이고 코끝 시린 겨울이야말로 낭만의 주인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고 싶어진다.

가사 중 내가 생각하는 백미는 후반부에 있다. '인후염 편도염 수족냉증 열감기 우울증 모두 나의 친구~♬' 아니, 뭇 환자들에게는 머리가 지끈거릴 병명마저 특유의 보사노바 풍으로 감미롭게 노래해버리는 태도라니! 실소가 터질 만큼 강경한 긍정이 아닐 수 없다.

가끔 나는 육두문자가 나오도록 추운 날이면 온몸으로 한기를 견디며 이 노래를 속으로 흥얼거리곤 한다. '땀이 삐질 흐르고 모기 물린 데 손톱 자국을 낼 즈음엔 이 순간을 낭만의 액자에 걸어 그리워 하겠지' 싶어서. 아무려면 낭만의 모양은 땀방울보다 전기장판과 따끈한 오뎅 국물에 가깝지 않을까?

🌻 SEKAI NO OWARI - Shuhasu

세카이노 오와리는 세상의 끝(世界の終わり)이라는 이름 뜻을 가진 일본의 4인조 밴드다. 이들의 노래를 꾸준히 들어왔음에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 감정을 접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귀로 듣는 지브리/디즈니'라고 표현해야 할까? 사실상 '세상의 끝' 아닌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노래하는 이들에게서는 멜로디와 무대, 가사까지 신비하고 동화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가장 최근 발매한 앨범의 수록곡 <Shuhasu>의 뜻은 주파수(周波數)다. 인디밴드 시절부터 지금까지 느낀 '눈에 보이지 않는 음악의 힘'을 테마로 만든 곡이라고 한다. 한동안 그저 멜로디에 빠져 듣다가 가사를 찾아보고 저항 없이 즐거운 기분이 되었다. 우리는 이어폰에 손을 뻗거나 재생 버튼을 누르는 행위만으로 언제든 음악과 만날 수 있다. 이제는 스트리밍으로 더욱 새삼스러울 게 없어진 그 접합의 순간을 더없이 아름답게 담은 노랫말이었다.

낭만을 애호하는 이유와 비슷하게,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나름의 기준으로 아름답게 채색하는 이들에 필연적인 매력을 느낀다. 불완전한 잔상에 형태를 입히는 모든 시도에서 대단히 용감하고 진취적인 인상을 받는다. 세카이노 오와리는 그런 이유로 나를 실망시킨 적 없는 밴드다. 아마 올해도 딱딱한 현실에 발끝이 닿으려 할 때, 무릎이 꺾이는 순간마다 이들의 노래는 나를 산뜻하게 부축해줄 것만 같다.

🌻 신온유와 김강 - 허밍버드

재작년 새해로 넘어가는 순간 첫 곡으로 골랐던 신인류의 <안식처>를 오래도록 아껴 들었다. 그들이 작년 여름 해체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아쉬웠는데, 보컬 신온유가 '신온유와 김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앨범을 냈다는 소식을 친구가 전해주었다. 인터뷰를 잠깐 찾아보니 '사계절 캐롤을 노래하고자 만들어진 프로젝트 팀'이라는 소개가 있다. 캐롤이란 단어가 주는 설레는 감상에 신온유의 단정한 목소리라니.

<허밍버드>에서는 신인류의 노래를 들을 때 느꼈던, 고운 우리말 가사의 무해한 아름다움이 넘치게 묻어난다. 있는 듯 없는 듯 잔잔한 파동 위로 여린 잎사귀와 꽃잎이 고요히 떠가는 풍경을 닮았다. 봄에 발표한 곡이지만 겨울에 만나서일까, 나는 이 노래가 한 해의 시작에 퍽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희붐하게 밝아오는 새해 첫 해돋이처럼 마음 어딘가에 밝은 빛이 켜지는 것 같다.

-우리는 말을 통해 서로 영혼의 잔상을 엿볼 수 있다. 오직 내 눈에만 보이는 세상을 당신과 나눌 수 있다. (...) 불투명한 우리는 말을 통해 겨우 투명해진다. (홍인혜, 『고르고 고른 말』, p.7)

요즘 읽는 에세이의 한 대목이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할 무렵 이 노래를 만나 한 겹 투명한 마음이 되었고, 노래 가득히 흐르는 사랑을 느끼며 올해의 목표를 처음으로 고민해봤다. 착실한 자기계발도 물론 좋지만 제1의 목표로 더 많은 사랑을 다짐하고 싶어졌다. 다름아닌 이 노래의 제목 '허밍버드(벌새)'는 삶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니까. 본래 불투명한 우리는 이 마음으로부터 시시때때로 멀어질 수 있으니, 그때마다 신온유의 목소리를 내게 처방해야겠다. 스스로와 타인에 건네는 말을 가다듬는 수고만으로 우리는 조금 더 투명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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