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08] 🌻 올해 봄은 이 노래들 덕에 행복했어요

한 주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며칠 날이 흐린가 싶더니 하루아침에 여름이 찾아왔네요. 어제는 관측 이래 가장 더운 5월 아침이었다고 하죠. 올해는 생각보다 봄이 길다는 생각에 기뻤는데 역시 기후위기는 우리와 한 뼘 거리에 바짝 다가 서 있었네요. 벌써 이렇게 후텁지근하면 한여름 무더위는 어떻게 보내나, 약간 아득해지지만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잠잠히 견디는 수밖엔 없을 거예요.

즐거운 행사가 많은 5월을 구독자 님은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저만의 빅 뉴스라면, 다음 달부터 통기타를 배우게 된 거예요. 콜리🥦와 로이🍄도 악기를 배우는 이야길 종종 나눴었죠. 어릴 때 잠깐 배운 피아노를 제외하면 저로서는 이십 년 만에 처음으로 악기를 배우게 된지라 너무 설렙니다. 주말에는 낙원상가에 가서 기타를 살 거예요. 연주해 보고 싶은 곡만큼이나 로망도 많답니다. 풀밭에서 기타 치기, 굳이 여행지에 짊어지고 가서 기타 치기, 워크샵 가서 기타 치기 등등.. 느리고 지난하더라도 즐겁게 익히는 이야길 차차 들려 드릴게요!

5월의 일상 풍경을 마저 이야기하자면, 평일은 여전히 바빠서 야근에 시달리다가도 기다리던 주말이 오면 득달같이 집 밖으로 나가 세상 구경을 하고 다녔습니다. 일단 지난 주말에는 좋아하는 밴드의 단독 공연을 보고 왔고요! 오늘 소개할 곡에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답니다. 살짝 더워진 5월의 산책길에 어울릴 노래들이라 믿으며 여러분께도 추천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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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동아시아타이거즈 - 비냄새

이 밴드와의 인연은 신박했다. 이번 달 초 놀러간 통영에서 섬에 들어가기 직전 택시를 탔는데 친절하신 기사님이 별안간 서울에서 합주실 운영하는 아들 자랑을 하셨다. 설마 하는 맘으로 밴드 이름을 여쭤 보니 극동아시아타이거즈(이하 극아타)라는 답이 돌아왔다. 워낙 특이한 그 이름을 들어 본 밴드라 일단 반가웠다. 이것도 인연인 김에 본격적으로 노래를 들어보니 내가 아주 좋아하는 올드스쿨 펑크락이었다! 단단히 꽂혀서 무한 재생을 하던 중 이들의 첫 전국투어 소식을 들었다. 마침 서울 공연이 있던 주말에 아무 일정이 없어서 별 고민 없이 공연까지 다녀왔다.

공연은 기대 이상으로 끝내줬다. 내가 생각하는 극아타의 매력은 일단 보컬 명지수의 목소리다. 뭐랄까 그의 목소리는 열라면 같다(난 라면 중에 열라면을 제일 좋아한다). 고춧가루 넉넉히 뿌린 열라면처럼 칼칼한 날것의 보컬. 뭘 불러도 진정성이 흘러 넘치고 가슴이 뜨거워지고 막 뛰어 놀아야 할 것 같은 모태펑크의 성대. 그런 목소리로 신나게 부르는 노랫말이 어딘지 축축하고 먼 곳의 추억이고... 이건 정말 사기적 조합이다.

2019년 활동을 시작한 극아타는 작년도 펜타포트 슈퍼루키 동상을 시작으로 심상치 않은 진전을 보이고 있다. 올해의 펜타포트와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은 물론 유수 페스티벌의 라인업에 이름을 쓱쓱 올리고 있는 것이다. 칼칼하고 시원시원한 이들의 연주를 조만간 뻥 뚫린 야외 무대에서 즐길 수 있다니 벌써 즐겁다. 확신컨대 나는 이 밴드가 '또 극아타야?' 할 만큼 페스티벌계 공무원이 될 거라 생각한다!

🌻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 Linda Linda

이 노래도 극아타의 공연에서 그들의 커버로 듣게 됐다(남성 보컬의 일본 원곡이 따로 있고 위 노래는 또 다른 우리나라 밴드의 커버 음원이다). 집에 와서도 계속 흥얼거리다 검색해 보니 2006년 개봉한 일본 영화 <린다 린다 린다>에 나온 노래라고 했다. 그 영화는 무려 스물 다섯 살의 배두나가 일본 진출 이후 찍은 독립 영화라고. 영화의 줄거리는 고등학생 소녀들이 학교 축제를 위해 3일 만에 급히 밴드를 꾸리게 되는, 스틸 컷만 봐도 클리셰 가득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분위기였다.

영화 속 <Linda Linda> 공연 장면은 정말, 어딘지 벅차오르는 데가 있다. 햇살 화창한 아침 출근길에도, 사람으로 빼곡한 퇴근길 지하철에서도 '린다 린다~'를 머릿속에 굴리면 일본 영화 속 클리셰처럼 조금은 씩씩한 기분이 됐다. 아니 그런데! 이 글을 적으면서 검색해 보니 올해 8월, 영화 <린다 린다 린다>가 4K로 극장에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여름의 한복판에서 '린다 린다~'를 또렷한 화질로 보고 듣게 된다니. 새로운 계절을 기다릴 이유를 마련해 두어서 든든하고 신이 난다.

🌻 신인류 - 정면돌파

올해 봄, 나를 행복하게 했던 앨범을 한 가지 더 꼽으라면 4월에 발매한 신인류의 정규 1집 [빛나는 스트라이크]를 빼 놓을 수 없다. 선공개한 몇 곡을 비롯해 언뜻 들었을 때까지도 보컬 신온유의 목소리가 워낙 감미로우니 '좋네~'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앨범 전곡을 순서대로 여러 번 듣다 보니 시나브로 빠져들고 여러 번 이마를 쳤다. 이거 그냥 '좋네' 수준이 아니잖아. 서사의 기승전결이 탁월하고 촘촘하다.

감수성이 충만하던 어떤 날은 타이틀 <정면돌파>의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눈물을 삐죽 흘리기도 했다. 사랑이 부족한 이 세상에 다른 무엇도 아닌 '우리들의 화음으로' 정면돌파를 하러 가겠다는 기개와 순수, 씩씩한 의지가 내 마음 어딘가를 쿡 찔렀다. 언뜻 낙관 없어 보이는 세계일지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작은 일상을 가꾸는 노력을 잃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을 품었던 것 같다. 신인류의 음악은 늘 그렇게 드문 희망과 낙관을 북돋는다. 긴 말과 설득 대신 그토록 아름다운 화음으로. 힘이 쭉 빠지는 순간마다 <정면돌파>를 다시 꺼내 들으면 허리를 꼿꼿이 펼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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