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1] 🌻 오월이 몇 살인지 아시는 분?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설레며 맞은 5월도 벌써 절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네요. 요즘 날씨는 그야말로 완벽한 것 같습니다. 긴 소매에 반바지 차림부터 맨투맨과 셔츠까지, 어떻게 걸쳐도 쾌적하고 산뜻해서 자주 행복한 기분이 들어요. 구독자님은 이번 레터의 제목을 보고 어떤 답을 떠올렸나요? 제가 준비한 답안은 피천득 시인의 시 <오월>로 대신하겠습니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언젠가의 오월에 라디오에서 우연히 한 구절을 듣고 부랴부랴 검색해 시를 알아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까지도 오월을 입 속으로 되뇌기만 해도 스물한 살 청년의 모습이 떠올라요.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지만―더군다나 새 정권에서는 두 살씩 어려진다는데― 아무려면 꼭 어울리는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저는 말이 잘 통하는 청년과 매일 대화하는 기분으로 부지런히 오월의 날씨를 만끽하고 있어요.

제가 주로 걷는 천변에는 샤스타데이지(이른바 계란후라이 꽃)와 금계국이 피어나 산들산들 흔들리고 있어요. 한낮이면 콧잔등이 촉촉해질 만큼 더워진 뒤엔 붉은 장미가, 그 다음엔 우아한 능소화가 피어나겠죠. 나를 둘러싼 자연을 일일이 호명하는 일은 계절을 즐기는 멋진 방법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또 다른 방법이라면, 날씨에 꼭 어울리는 음악을 듣는 일! 저의 계절을 더 풍성하게 채워주고 있는 세 곡을 소개해봅니다.

📧 추신 (1), PRIIISM 뉴스레터는 상단의 '🌏웹에서 보기' 버튼을 누르면 보다 쾌적하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추신 (2), 1년은 52주! 그러니까 다음 주에 발행될 52호는 바로 PRIIISM 1주년 특집호...! 기대되시죠? 그렇다고 해주세요. 엄청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답니다.

🌻 오장박 - 내일이 찾아오면

오장박 트리오는 1989년 오석준, 장필순, 박정운 세 사람의 성을 딴 일종의 프로젝트 그룹이다. 사실 90년대생으로서 장필순을 제외한 두 분의 성함은 좀 낯설다. 그러고 보니 작년 5월, 그러니까 무려 PRIIISM 1호에서 나는 장필순의 노래를 소개한 적 있다. 한 해를 꼬박 돌아 다시 5월이 돌아온 시점에 같은 가수의 목소리를 소개하니 감회가 새롭다. 내게 있어 장필순은 틀림없는 5월의 가수다!

사실 이 노래는 나의 사계절 올타임 최애 곡 중 하나지만, 꼭 5월의 레터에서 소개하고 싶어 아껴왔다. 거스름 없는 기분으로 봄날의 신작로를 걸을 때도, 그날따라 어깨가 무겁게 느껴지는 저녁에도 이 노래는 나의 든든한 벗이 되어줬다. 노래를 시작하기 전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부터 마음에 낀 먼지를 싹 씻어주는 듯하다. 기교 없이 맑은 목소리로 부르는 '해가 뜨면 불어오는 모래 바람에 / 이름 모를 물새들의 날갯짓 소리' 같은 가사를 듣고 있으면 도시의 소음에 절여진 뇌가 순결해지는 것만 같다.

일상이 한참 벅차게 느껴질 무렵엔 '행복이란 멀게만 느껴지지만 우리 마음속에 있는걸'이란 노랫말이 그리도 위안이 되었다. 아마 마음속 행복이 도무지 손끝에 닿질 않는 심정이라 그랬을 것이다.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그 단순한 명제가 진짜라 믿고 싶어서 주문처럼 그 구절을 따라 외우곤 했다. 가끔은 이토록 뻔한 말이 어떤 것보다 큰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소중히 여기면서.

🌻 강아솔 - 충무에서

제목과 앨범 커버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일년에 두 번씩 꼬박꼬박 통영을 찾는 사람으로서 통영의 옛 이름인 충무와 바다에 동동 뜬 섬의 풍경은 백발백중이었던 것이다. 찾아보니 강아솔에게 충무는 두 팔 벌려 안아주는 할머니가 있던 유년의 바다였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두고 떠올리는 상실과 기억, 그때만의 호흡과 공기가 오롯이 담겼다고 했다.

듣고 있으니 과연 제목을 통영이 아닌 '충무'라 붙일 만했다. 이제는 불리지 않는 옛 지명이라는 자못 쓸쓸한 사실과 그럼에도 변함없이 유유히 흐르는 물결, 바다를 담담히 둘러싼 섬의 군락이 안개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듯하다. 앨범 커버가 전체적인 감상과 기막히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강아솔의 아버지께서 92년에 그려 지금까지 집안 한쪽 벽에 걸어둔 그림이라고 한다. 어딘지 희붐하게 밝아오는 새벽의 서늘한 바다 같은 이 풍경이 내 마음에도 오래도록 남았다. 정말로 멋진 그림이다.

공교롭게도 돌아오는 주말, 나는 또 통영에 간다. 발매된 지 2주가 채 되지 않은 이 앨범을 그곳으로 떠나는 버스에서부터 기쁘게 꺼내 들으려 한다. 강아솔은 앨범 소개글에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을, 사라졌다 말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곁에 머무르는 것들을 말하고 싶었다'고 썼다. 그 짧은 한 문장만으로 밤새 나눌 수 있는 대화가 마음 속에 일렁이고 있다. 충무의 바다에서 새로 채운 에너지와 함께 어딘가 풀어놓을 날이 벌써 기다려진다.

🌻 잔나비 - 여름가을겨울 봄.

그저께였다. 고된 야근을 하고 털레털레 지하철 환승을 하는데 유튜브 뮤직의 팝업 알림이 떴다. 잔나비 소곡집이 발매되었으니 들어보지 않겠느냐는 그 상냥한 제안. 그건 마치 가쁜 숨을 몰아쉬는 마라토너에게 누군가 쥐여준 달콤한 생수 같았다. 일단 앨범 커버부터 100점 만점에 120점이잖아! 그러고 보니 지난 싱글은 <가을밤에 든 생각>이었는데 이번 신보에는 초여름 기운이 물씬 풍긴다. 잔나비 설마... 계절별 연금을 노리는 걸까? (뇌피셜임)

소담하게 실린 네 곡 중 가장 좋았던 노래를 꼽자면 <여름가을겨울 봄.>이다. 굳이 왜 단호한 온점을 찍었을까 싶었는데, '봄은 왜 계절의 처음이란 이유로 애써 피운 꽃을 떠나 보내고 현실을 직시해야 하나'라는 의문으로 시작한 노래라고 한다. 봄이 지나고 꽃이 지는 것이 숙명이라면 봄이 모든 여정의 마지막이길 바란다고. 관용적인 '봄 여름 가을 겨울' 대신 내가 태어난 계절을 맨 앞으로 두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있지만, 이런 발상은 또 신선하게 느껴져 이 곡이 더 좋아졌다.

자전거를 타고 상쾌하게 달리기 좋은 계절 내내 이들의 소곡집을 자주 꺼내 듣게 될 것 같다. 여담이지만, 나는 잔나비가 밴드 초반에 하던 하드락 내지는 짓궂은 악동 같은 분위기 역시 사랑했기에 그들이 신명나는 곡 작업을 지속하고 있기를 남몰래 바라고 있다. 감성을 적셔주는 노래도 너무 좋지만 그네들의 노래로 방방 뛰던 페스티벌의 기억이 아직 선연하니까! 잔나비 님들, 너무 멀지 않은 미래의 공연에서 뵙게 되기를 앙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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