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 🌻 기쁜 우리 '프라이데이 이브'

반갑습니다. 화제의 뮤직 큐레이션 뉴스레터(?) PRIIISM에서 첫 타석에 서게 된 숑입니다. 지난 주 보내드린 첫 레터는 다들 즐겁게 읽으셨나요?

전 그날 점심시간부터 굉장히 신나고 떨렸어요. 마치 4시에 오는 여우를 기다리며 2시부터 설레는 어린왕자가 된 기분이었고, 범상하게 지날 수 있는 평일 오후에 드리운 설렘이 낯설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비빔밥에 한 숟갈 두른 참기름 같은 감정이었지요. 지난 주는 여느 목요일보다 한층 더 꼬소하고 감칠맛나게 흘렀던 것 같아요. 일상에 작지만 빛나는 고명을 얹은 것처럼요.

PRIIISM의 레터를 읽는 매주 목요일의 여러분도 평소보다 더 충만하고 기쁜 기분이면 좋겠습니다. “일단 쓰는 우리가 즐겁자”는 저희 셋의 소기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것 같아요. 블로그 댓글로, 카톡으로, 사내 메신저로, 건너 건너 뉴스레터에 대해 다정한 감상을 건네준 친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맞는 것 같습니다. 공휴일 덕에 곧장 주 4일 근무에 적응했는데, 갑자기 5일씩이나 일하려니 수요일 오후부터 너무 고단하더라고요. 하지만 창문을 닫아도 계절은 오는 것처럼 어느덧 한 주의 봉우리를 무사히 넘었습니다.

이제 PRIIISM 뉴스레터를 느긋하게 읽으며 금요일과 주말의 계획을 행복하게 상상할 일만 남았지요. 오늘의 플레이리스트가 한 숟갈의 참기름처럼 목요일 퇴근길의 윤기를 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P.s. 첫 뉴스레터 하단에 ‘테스트입니다’ 문구가 그대로 들어가는 실수가 있었습니다. 뉴스레터 발송이 처음이라 조금 서툰 부분이 있지만 차차 보완하겠습니다! 뉴스레터에 대한 감상과 의견도 자유롭게 보내주시면 너무나 소중히 참고할게요. 📩

🌻 The Cure - Friday I’m in love

80년대 활동한 영국 밴드 The Cure는 약 30년 전부터 ‘금요일이면 난 사랑에 빠진다’고 노래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동서고금 수많은 예술가들이 금요일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에 대해 무수히 알려왔다.

내가 만약 시나 가사를 쓴다면 목요일의 근사함을 원껏 찬양하고 싶다. 언젠가부터 일주일 중 목요일 저녁을 가장 좋아하게 됐는데, 왜냐하면 다음날이 금요일이고 그 다음날은 주말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모두가 설레 마지않는 크리스마스 이브처럼 ‘프라이데이 이브’라고 해야 할까!

심한 날엔 목요일 점심시간만 지나도 이미 발끝이 통통 튀고 밥벌이의 엄중함이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 목요일 오후 4시쯤이면 이미 내 마음이 사무실 바깥에 있다. (비하인드: 뉴스레터 발송 시간을 목요일 오후 4시로 설정한 데는 이러한 나의 사심이 그득 작용했다) 사실 아무려면 소소한 이유지만, 나는 이렇게 소소하게 좋아하는 것이 삶에서 더 늘어가기를 바란다. 행복의 선택지가 만연한 일상은 마치 중복 정답이 많은 객관식 문제 같으니까.

아무튼 12월 내내 캐롤을 들으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목요일 오후부터 금요일에 대한 노래를 들어보자. The cure의 흥겨운 사운드보다 좀더 조근조근한 버전을 원한다면 미국의 인디밴드 Yo La Tengo가 부른 동명의 곡을 추천한다.

나로서는 목요일 오후를 좋아할 이유가 또 하나 추가됐으니(그건 바로 PRIIISM!) 기쁜 우리 프라이데이 이브에 뉴스레터 1호 발행을 기념하는 축배를 들 예정이다. 이 레터를 즐겁게 읽었다면 누구든 어디서든 이 기분을 함께해주시면 좋겠다.

🌻 PREP - On and on

멋진 앨범 커버에 멋진 노래가 깃든다. 런던 출신의 이 맵시나는 4인조 밴드 프렙(PREP)의 노래를 쭉 듣다 떠올린 생각이다. 어쩌면 이렇게 데뷔 이래 별다른 기복도 없이 줄줄이 힙한 디자인을 뽑아낼 수 있었을까?

껍데기만 그럴싸한 게 아니라 내용물은 더 기깔난다. 둥둥 때리는 저음이 너무 무겁지 않게 깔리면서 그 위를 거니는 중성적인 목소리와 멜로디는 이렇게 산뜻하고 경쾌할 수가 없다. 힙과 레트로를 반씩 섞은 게 꼭 을지로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청량한 커버만 보면 시티팝 장르만 일삼을 것 같은 이들은 꽤 다양한 장르를 소화한다. 2017년 발매한 데뷔 앨범의 타이틀 곡 <Cheapest Flight>는 새벽 드라이브에 꼭 어울리는 그루브가 마치 혼네(HONNE) 음악에 탄산수를 살짝 부은 것 같고, 딘(DEAN)이 피처링으로 참여한 <Cold fire>는 편하게 리듬 타기 좋은 신스팝이다. (이 노래의 가사엔 무려 'soju'도 등장한다)

사실 거의 모든 곡이 좋아서 하나를 꼽기가 곤란했지만, 나의 원픽은 <On and on>이다. 언뜻 경쾌하지만 회한이나 우울이 담긴 가사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 노래가 딱 그렇다. 요즘처럼 퇴근한 뒤 아직 주변이 환한 데서 오는 안도감, 귀갓길의 후련함, 어스름질 무렵이 주는 약간의 감성적인 기분에 이만한 BGM이 없다. 조금 더 신나는 느낌을 원한다면 <Pictures of you>, <Turn the music up>도 추천하고 싶다.

그룹명의 뜻은 영단어 ‘preparation’을 줄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과연 준비에 준비를 거듭해서 나온 그룹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수록곡 하나하나 타율이 훌륭할 수가.

🌻 장필순 - 방랑자

5월의 산책은 매번 눈이 바쁘다. 평소와 똑같은 길을 걸어도 담장을 화려하게 수놓은 장미, 맹렬한 생명력으로 자라난 수풀,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는 녹색의 행렬이 지루할 틈 없이 시선을 뺏기 때문이다. 한낮에 걷다 보면 땀이 살짝 솟지만 해가 기울고 나면 어딘가 노상 테이블에 걸터앉고픈 100%의 밤 공기가 찾아온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풍경은 잎새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의 그림자다. 다름아닌 장필순의 노래 <방랑자>의 도입부 가사이기도 하다. 고운 노랫말 곳곳에는 산책에서 마주칠 수 있는 순간들이 필름사진처럼 정갈하게 걸려있다. ‘저만치 나를 앞서가는 구름, 솔숲 시냇가에 내리는 찬비, 먹구름 지나간 텅빈 하늘’... 이런 표현들을 읽고 있자면 사소한 풍경을 포착하는 일의 위대함을 실감하게 된다.

-산책할 때 내가 기웃거리고 궁금해하는 것들도 모두 그렇게 하찮다. 그러나 내 마음에 거대한 것과 함께 그토록 소소한 것이 있어, 나는 덜 다치고 오래 아프지 않을 수 있다. 일상의 폭력과 구태의연에 함부로 물들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보는 것이 결국 나의 내면을 만든다. 내 몸, 내 걸음걸이, 내 눈빛을 빚는다. (한정원, 『시와 산책』, p.25)

최근 읽은 에세이의 한 구절이다. 장필순의 맑은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 마음에 소소한 것을 가득 채우는 어느 초여름의 골목 어귀가 떠오른다. 일상의 스트레스에 날카롭게 벼려졌던 마음 속에 목화씨를 가득 심어 송이송이 꽃을 피우는 것만 같다. 날씨가 너무 더워지기 전에 이 노래를 벗 삼아 더 자주 걸어야겠다. 일상의 폭력과 구태의연에 함부로 곁을 내어주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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