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05] 🌻 훌쩍 떠나기 좋은 봄에 챙기는 플레이리스트

한 주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촉촉한 빗소리로 문을 여는 5월이네요. 지난 4월 20일은 절기상 '곡우'였는데요. 뜻을 찾아 보니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의미가 있었어요. 이 시기에 비가 내리면 그 해 풍년이 든다고 하니, 곡우의 뜻을 알게 된 뒤로 봄에 내리는 비를 더 기껍게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모처럼의 휴일에 놀러 나가고픈 인간에겐 조금 아쉬워도 식물들은 기름진 비를 흠뻑 빨아들이며 기쁜 표정을 짓고 있을 테니까요!

그래도 대부분의 평일은 맑고 축복 같은 날씨였죠. 다들 어떤 봄을 보내셨나요. 저는 3주간 하루도 빠짐 없이 야근을 할 만큼 지독하게 바쁜 업무의 늪에 빠져 지냈습니다. 4월 마지막 주쯤, 드디어 바쁜 일이 조금은 잦아들었을 때 항상 배경음악처럼 흘러가던 노래가 처음으로 귀에 들어온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감격했어요. (슬프게도... 바쁜 나날엔 노래조차 귀로 걸어 들어오지 않더군요)

그럼에도 이따금 찾아오는 망중한에 챙겨 들었던 노래들을 소개해 봅니다. 듣는 자체로 봄의 기운을 훅 끌어올리는 음악과 함께 찰나의 봄을 더 만끽할 수 있었어요. 이 봄비가 그치고 나면 한 발 빠른 초여름이 올지 모르니, 이 시기만의 제철 음악을 만끽하는 연휴 보내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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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란다 프로젝트 - Bike Riding

야속하리만치 바빴던 4월을 위로한 것은 단연 자연이었다. 똑같은 출근길이지만 하루가 다르게 무성해지는 마로니에 나무, 매년 만나도 반가운 회사 앞 자목련 꽃, 어김없이 화려하게 피고 진 벚꽃, 분명 어제까진 없던 화분 속 새 잎을 발견한 순간 등... 찰나의 기쁨들이 점점이 모여 버거운 일상을 떠받쳤다. 손으로 만져보면 그렇게나 촉촉하고 연약한 존재들인데 어쩜 그리 굳센 위로를 줄 수 있었을까. 해가 갈수록 익숙해지기는커녕 새삼스레 놀란다.

그날도 어김없이 꽃을 보러 나선 4월 초의 주말이었다. 벚꽃이 만개했을 거라 기대했는데 아직 반의 반도 피어 있지 않았다. 기운이 쭉 빠졌지만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다시 올 이유가 생겼으니까. 김동률의 목소리를 들으며 덜 핀 꽃봉오리 사이를 걷는 기분이 싱그러웠다. 베란다 프로젝트는 2010년 김동률과 이상순이 합작한 프로젝트 그룹이다. '베란다에서 듣기 편한 음악'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어서일까, 그들이 네덜란드에서 짓고 불렀다는 음악들이 하나같이 듣기 편안하다. 꽃이 피어나길 기대하는 마음만큼이나 일상에 든든한 위안이 되어주었다.

🌻 권나무 - 여행

이 사람은 시를 쓰다가 우연히 그에 어울리는 음율이 떠올라서 그 둘을 붙였을 뿐이구나. 권나무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솔직하고 정갈한 단어로만 꾸려진 노래와 인공 감미료 없는 목소리가 온몸을, 고막을 해독해 주는 것만 같다. 달리는 열차에 올라 타 있는 듯 언제나 모든 풍경이 주마간산 같은 세상에 이토록 느리고 가만한 인풋이라니. 생활의 속도감을 조절하듯 차분하게 챙겨 듣게 된다.

권나무의 <여행>은 3년 전 홀로 다녀 온 통영 추봉도를 추억하며 자주 들었다. 그 시기도 5월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권나무의 많은 노래들 중에서도 유독 이 노래에 애착을 둘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장 그르니에의 <섬> 속 구절이 노랫말에 등장해서다. '고독한 삶이 아닌 비밀스러운 삶'이란 구절이 주문처럼 반복된다. <섬>을 읽으며 느꼈던, 점점이 떠 있는 저 섬들처럼 '혼자씩일 뿐인' 인간들을 인식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이번 연휴, 봄의 기운이 가장 왕성할 시기에 나는 다시 통영에 찾아갈 예정이다. 카페도 식당도 없는 호젓한 섬에서 알람 없이 일어나 자연 속을 거닐고, 가끔 달리거나 책장을 넘기고, 대부분의 시간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잔잔한 바다를 바라만 보며 시간을 쓰다 올 거다. 그 시간은 먼훗날의 내가 어떤 음악과 기분으로 추억하게 될까. 연휴뿐만 아니라 미래의 거대한 시간을 기대하는 지금이 더없이 설레고 즐겁다.

🌻 잔나비 - 아윌다이포유♥x3

바쁨이 어느 정도 물러간 주, 그러니까 이번 주 월요일 저녁이었다. 마침 오늘 잔나비의 새 앨범이 발매되었다기에 반갑고 느긋한 마음으로 찾아 들었다. 노래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타이밍이라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근 4년 만에 나온 정규 앨범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소곡집이 나왔던 3년 전의 5월에도 나는 야근에 지친 채 이들의 새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예나 지금이나 잔나비의 음악으로부터 일상의 힘을 얻는구나.

잔나비의 1집 앨범 수록곡 <The Secret Of Hard Rock>에서 이들은 비장하게 부르짖었다. '락윌 네버다이, 아윌 다이 포유!' 락은 죽지 않지만 나는 너를 위해 죽겠어.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다시 부르는 '아윌 다이 포유'는 한결 달콤하고 여유롭다. 소개글을 보니 이번 앨범 대부분의 곡이 자신의 음악을 사랑해주는 팬들을 위한 헌사라고 했다. 게임 속에서 주어지는 세 개의 목숨(♥) 중 하나가 남았을 때 그것을 기꺼이 바치고픈 마음이라고. 순수하고 기꺼운 음악은 언제나 듣는 이의 마음을 충만하게 한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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