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커리어를 가르는 인풋과 지속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단순히 HR 담당자로 오랜 기간 일을 하며 발견했다 하기엔 주변을 둘러보아도, 때론 나의 긍정적, 부정적 경험을 돌아보기만 해도 발견하기 어렵진 않은 얘기일 겁니다.
첫 직장이 중요하단 말을 많이 하지요.
하지만 첫 번째 직장이든 두 번째이든, 신입이든 10년 차이든 모든 시작은 중요합니다. 어디서든, 그게 언제든 결심보단 시작 자체가 어렵고 중요하죠. 하지만 그 결심과 시작은 실행이 중요하다 해서 어떤 아웃풋도 보장하진 않습니다. 뭔가를 결정하고, 계획해 실행한다. 우린 이 프로세스에 참 익숙합니다. 회사를 다니면 여기에서 더 나아가 실행의 과정을 트래킹하고 점검하며 목표를 달성했느냐가 당연한 일하는 방식이 되지요. 하는 일이 모여 내 커리어가 되고 그 커리어는 곧 내가 됩니다.
그럼 저런 프로세스가 하나의 당연한 틀이 되어 하는 일에 적용되고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커리어는 왜 누군가는 전문가로 누군가는 물경력 등으로 나뉘게 되는 걸까요.
저는 점-선-면이란 말을 자주 씁니다.
개별 업무를 커리어의 점이라고 봅시다. 우린 커리어라는 도화지에 무수한 점들을 찍어 나갑니다. 누구는 그냥 흩뿌려져 있기도 하고 누군가는 묘한 패턴을 그리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도화지에는 점이 먼지만하게 찍혀 있는가 하면 누군가의 점은 면인 것 처럼 크게 찍혀도 있겠죠. 누군가는 빼곡히 박힌 점으로 선으로 보이기도 하고 마찬가지로 면으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 점들을 이어 선을 만들기도 하고 면을 만들기도, 패턴을 만들기도 합니다. 바로 이 점이 커리어 질의 차이를 가르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아예 점을 압도적으로 많이 찍어 선이되고 패턴이 되고 면이 되게 하든가, 어떤 점을 집요히 찍어 점의 크기를 키우든가 혹은 점을 그룹핑하거나 연결해 나만의 모양을 드러내거나.
그럼 걸 가르는 건 또 무엇이냐.
누가 더 집요하게, 많이, 오래 무언가를 파보았느냐일 겁니다. 눈에 보일까 말까한 옅은 점만 찍어도 집요하게, 많이, 오랜 기간 찍어댄다면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력서를 볼 때 한 건 많은데 깊이가 없다, 하나하나 얕은 수준에서 가짓수만 많다 평가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양이 절대적으로 많다면 얘긴 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많이'이 기준이 절대적으로 많다는 전제하에서요.
유명한 조르주 쇠라의 작품은 점묘화입니다. 점묘화란 붓이나 브러시로 무수히 많은 점을 찍어 색의 혼합 없이 개별 점 고유의 색으로 색감을 풍부히 살리고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죠. 점묘법이 미술계에 끼친 영향은 선과 채색으로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데에 있습니다. 그냥 보시기에도 얼마나 많은 점이 찍혀 있을지, 그 과정이 얼마나 고되었을 것이고 인내가 필요했을 것이며 긴 시간이 걸렸을 지 대강으로나마 짐작이 되실 겁니다.
점묘법은 실제 미술치료 장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점 찍기에 집중하며 심리적 안정감과 이완, 집중력 강화와 인내심을 기르기 위함이죠.
다시 돌아와 커리어에 대입해도 다르진 않겠습니다. 각자의 정의는 다르겠지만 성공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결심과 계획, 실행보다 결과가 나와야 할텐데요. 그 결과 즉 끝맺음을 맺게 해주는 게 바로 인풋의 지속성인 것 같습니다.
힘들어 지칠 수도 지루해 관두고 싶을 수도 질려서 흥미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내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회의감이 들 수도 있고 이렇게 많이, 열심히 점을 찍었는데 이게 뭐지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패턴과 작품의 기미가 보이기까진 이런 허들을 수없이 넘어야 할 겁니다. 그래서 다양한 이유로 무의미한 점만 찍혀 있을 수 있고 찍다 만 채로 방치된 도화지가 남을 수도 있겠죠.
인풋의 양과 지속성은 + 가 아닌 X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속적으로 압도적으로 많은 점을 찍는 것.
같은 사이즈의 도화지에 누군가는 수만 개의 점을 찍는 반면 누군가는 페인트를 들이 부어 한 번에 파란색으로 물들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는 펜으로 콕콕 점을 찍지만 누군가는 커다란 브러시로 쓱쓱 몇 번의 칠만으로 파랗게 만들 수도 있죠. 점을 찍어 채워가는 사람들은 페인트를 붓고 브러시로 칠하는 이들을 보며 허탈감을 느끼거나 나와 다른 비범한 사람이라 감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점 찍기를 포기하기도 하겠죠.
하지만 각자의 꿈의 크기는 모두 다를 겁니다. 한 방에 도화지를 채운 이들도 거기에서 머무르면 한때 일을 빠르게 잘 했던 사람이지만 파란 그림 한 점이 커리어의 전부인 사람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이들보다 훨씬 많은 평범한 뚜벅이들은 저 사람들보다 더디지만 커리어를 하나의 도화지로 보며 오래, 끈기있게 점을 찍어 채워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커리어는 상대적이지만 지치지 않고 근성 있게 오래, 꾸준하다는 것의 힘은 그 스케일과 별개로 매우 소중하게 됩니다. 대신 X라 한 것처럼 그저 오래 버티기만 해서는 안 될 것이고 그 시간을 알차게 점을 찍는 인풋도 요구되지요.
누군가를 물경력이라 할 때는 시간 대비 점의 갯수, 완성한 도화지의 갯수가 기준이 됩니다. 얼마나 짙었느냐, 얼마나 많았느냐죠. 기간 대비로요.
어떨 때엔 완성의 갯수는 적지만 찐하게 뭘 채워 완성한 경험을 믿고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뭐라도 한 번 진하게 채워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몇 배 더 가능성 있다는 확률적이고 경험적인 기대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커리어에서 지속성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가 아니라 인풋을 많이, 지치지 않고 넣는다는 말과 동일하게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인풋을 많이 들였다는 많이 들이는 노력이 지속되었다는 전제로요.
X이기에 이 둘 모두가 충족되었을 때 우린 차별적 경쟁력을 갖고 전문가로 나아가게 되는 건 아닐지요.
여러분의 커리어는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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