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날이었습니다. 팀 전체가 오랜 만에 만난 옛 리더와 식사하던 자리였어요. 옛날 얘기며 근황이며 다들 반가워하고 신나게 웃으며 기분 좋게 술도 한 잔 걸친 날이었죠. 1차를 마치고 나와 길에서 2차를 가느냐 마느냐 하던 중에 술에 잔뜩 취한 A가 B게 육두문자를 날린 겁니다. 너무 많이 취해 옆에서 부축해야 할 정도라 다들 집에 보내려는데 2차 가야 한다고 길거리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었어요. 조용히 좀 말하라고, 너무 취했으니 집에 가자며 다들 진땀을 빼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이고, ~~님. 집에 가자! 우리도 갈 거야" 그 순간 날아온 욕이었어요. 뭐, 대략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은 일이었죠.
워낙에 팀원들 간 친밀감이 높았고 야근이든 아니든 자주 퇴근길 맥주 한 잔씩 걸치며 얘기 나누던 사이었어요. 그 중 A에겐 주사가 있었습니다. 술을 썩 잘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술자리를 좋아하고 사람을 참 좋아했죠. 가끔 짜증이 폭발하면 스스로 주체를 못하고 터질 때가 있긴 했지만 그 외엔 착하고 늘 오지랖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늘 주량 이상 마시며 취하고 블랙아웃 되곤 했으며 말 실수를 많이 해 회식 때면 늘 주변에서 음주를 자중시키곤 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술에 취하면 욕을 많이 하기 시작했어요. 한 번은 다른 팀 사람이 "A는 다 좋은데 술만 마시면 욕을 너무 많이 해요."라 했습니다. A와 B는 사이도 좋고 저런 면을 뭐라 하면서도 잘 지내는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몇 번 더 각기 다른 분들로부터 듣게 되었어요.
B는 A에게 여러 차례 피드백을 하며 주의를 시켰습니다. 그때마다 A는 죄송하다고, 조심하겠다 했어요. 그러다 또 어떤 직원으로부터 동일한 피드백을 받고 그날은 B가 단호히 불러 주의를 주었습니다. 마지막 말은 "한 번만 더 이런 얘기 들어오면 그 땐 그냥 안 넘어가. 이건 경고야!".
그 이후 한동안 A는 스스로 절주 하려 노력했습니다. 때론 회식 자리에서도 지나치게 조심하는 모습이 보이고 주눅도 들어 했어요. B와 오래 일하고 친밀감이 있으면서도 B를 어려워했구요. 같은 조직에서 일을 했지만 한 팀이어도 각자 업무가 분리되면 아무리 잘 안다 해도 어느 이상은 알기 어려워요. B와 A 역시 그랬죠. 장단점과 성향, 성격, 일하는 스타일을 속속들이 알긴 했지만 아예 페어로 일한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더구나 A는 저성과로 여러팀을 돌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A가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고 B가 사수가 되었어요. 팀장도 B에게 업무 관리와 육성을 맡기셨죠.
A의 스타일은 꽂히면 한도 끝도 없이 파고들고 그 외엔 무심했습니다. 어찌 보면 장점인데 문제는 할 필요 없는데도 지나치게 파고들고 그것만 붙들고 있을 때에요. 이로 인해 리소스 배분이 불필요한 일에 편중되고 해야 하는 대부분의 일을 꽂힌 하나의 일로 기한을 넘기거나 퀄리티가 낮을 때가 잦았습니다. B는 나이 차이가 적고 경력 연차로만 보면 오히려 자신보다 많은 후배였기에 조심하는 부분도 많았어요. 하지만 반복되는 업무 지연과 개선되지 않는 업무 수준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ㅠ가 마무리 하거나 대신 하는 일, 일은 일대로 하다 제가 불려가 팀장님에게 니가 선배인데 뭐했냔 질책이 쌓여갔으니까요.
그럼에도 일 년 가까이 같은 피드백을 해도 개선되지 않는 모습에 짜증 어린 감정이 담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음주에 대한 피드백도 있었고 그 전 주엔 다른 업무 실수 때문에 크게 혼을 냈어요. 거기에다 몇 달 째 어떤 일에 꽂혀 다른 일을 안 하는 지경에 이르며 A를 그 업무에서 빼버리기까지 했어요. 그런데도 그 일에서 맴돌며 다른 팀에 가 시간을 보내고 B는 그로 인해 밀린 대신 하고 있었습니다. 간신히 참고 있는데 다른 실수가 발견되며 팀장에게 크게 혼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늘 그렇듯 그날도 A는 "죄송합니다"라고 했어요. 풀이 확 죽은 모습으로요. 결국 B는 폭발해버렸습니다. "넌 왜 맨날 죄송해. 대체 언제까지 죄송할 예정이야?" 라구요. 그리고 팀장에게도 한 마디 했죠. 내가 책임져 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그런데 이젠 못하겠다, 되돌아 보면 모든 팀장들이 다 포기한 사람을, 당신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을 내게 던져 놓고 이러는 건 무슨 염치고 무슨 리더십이냐구요.
"미안하다, 너 고생하는 거 내가 모르겠니. 나도 알지, 근데 나도 사실 잘 모르겠어. 나도 저런 스타일은 처음이라. 이제 나도 같이 고민해 볼께."
"전 고생하는 거 안다는 말에 관심 없고, 무엇보다 고생하려고 회사 다니지 않아요. 지금 제가 화가 나는 거야 제 일하면 그만인데 이 정도 했으면 저 사람에 대해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 책임감 이용하는 건 그만 하시고 이젠 제가 팀원으로서 팀장의 역할과 책임을 묻겠습니다. 팀장님은 뭐 하시는 겁니까?"
A가 주니어 시절 어떤 프로젝트 중 일부에 A의 업무가 포함되어 있었어요. 아주 간단한 거였는데 하기 싫어하고 지지부진했죠. 그냥 전화 한 통 돌리고 체크하면 되는 일이었어요. 언제까지 어떤 걸 확인하고 체크하라 했죠. 하지만 서너 번을 확인해도 계속 그 상태. "이거 왜 안 하는 거에요?". "아, 바빠서 깜빡했어요." "다음 주인데 아직도 이게 체크 안 되어 있으면 어떡해요? 아주 간단한 체크인데 대체 왜 안 하는 거죠? 당신이 할 일은 간단한 거고 만약 펑크나면 전체 운영에 영향이 있는데?".
죄송하다 하면서도 뭐가 급하냐 내일 해도 되는 거 아니냐, 간단한 건데 하기만 하면 되지 않냐 등의 말을 하며 B에게 짜증을 내더군요. "그러니까.. 그 간단한 걸 왜 안 하고 있고, 내일 안 된다 하면 모든 게 급하게 준비되고 해야 하지 않느냐, 막판이라 정신 없는데 미리 하는 게 이상하냐? 내가 왜 미리 해야 하는지 얘길 몇 번 했냐"
이렇게 오가던 말은 점점 감정 싸움이 되고 그날 야근 중이던 사무실에 B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말았습니다. "일하기 싫어? 그렇게 일하기 싫으면 하지마! 나가!"라구요. A가 당황하며 사과했지만 "됐고 내가 내일 팀장님에게 말씀드릴테니 이 순간부터 당신 이 업무에서 손 떼고 사과도 하지마. 난 이제 당신하고 일 안 해"라 했어요. A가 다음날까지 말 그대로 싹싹 빌다시피 사과하고 B가 직접 일을 처리하고 나서야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 전에도 몇 번 이런 태도가 있었고 다른 동료와도 갈등이 있던 터라 진지하게 그럼 안 된다 타이르기도 했어요.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그 사이 A는 여러 팀을 돌고 돌았습니다. 같은 팀에서도 만났다 말다를 반복하면서요. A는 언제나 착하고 좋은 사람,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업무나 주사, 가끔씩 튀어나오는 감정적 폭발 상태에 대한 평판은 더 안 좋아진 채 굳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다 몇 년 만에 같은 팀이 되고 아예 B와 직접적으로 함께 일하고 B가 업무를 봐줘야 하는 입장으로 만나게 되었죠. 업무 퀄리티나 태도에 문제가 있으면 따끔히 피드백을 주기도 하지만 일상에서는 서로 챙기고 격려도 하는 그런 관계. 미운 정 고운 정 다든 관계랄까요.
다시 돌아가 서두의 상황으로 돌아 갑니다.
옆에서 부축하고 달래던 B와 다른 동료들이 일순간 얼어 붙었습니다. 서로 눈만 마주치며 뻐끔대는 격이었죠. 다른 동료가 결국 취한 A를 택시 태워 보내고서야 그날밤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리고 A는 집에 와 한참을 생각했죠.
자, 모든 상황을 디테일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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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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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슬기
누구나 삼세번의 기회는 있습니다. 삼세번이 넘어간다면, 같이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내 에너지가 무한하지 않다는 걸 알았거든요. 줄어든 에너지로 인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는 또 다른 이에게 해를 주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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