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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브톡 26화] 속상하냐? 난 속 터졌다 ②

당신도 힘들었군요

2023.11.29 | 조회 3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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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님, 시간 되세요? 저랑 잠깐 얘기할까요?"

******************

"죄송합니다. 제가 어젯밤에 많이 취했죠?"
"취한 거야 기분 좋은 날이고 모두들 많이 마셨으니까,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어제 저한테 한 말은 기억나요?"
"제가 말실수 했어요?"
"나한테 욕했어."
"제가요? 아이고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무슨 욕 했는지는 모르구요?"
"네, 앞으로 조심할께요. 죄송합니다."
"저한테 ~~~~~~~~~~~~~~~~~~~~~~~~~~~라고 했어요."
"제가요?"
................
"너무 죄송해요. 제가 미쳤네요"

다음날 아침 동료들은 B와 A를 흘깃대며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A는 눈치를 못챘고. 동료가 살짝 B에게 "괜찮아?"라고 물었습니다. B가 A에게 잠시 시간을 내달라 했어요. B의 질문은 이랬습니다. 

"C님 보기에 제가 평소에 A를 너무 몰아쳐요? 나 많이 심해? 어젯밤에 내가 실수한 거 있어요?"

"A가 원래 취하면 그러잖아. 일이야 뻔히 아는데. 너무 화내지 말고 내가 뭐라고 할께"

"아니, 나 화 안 났어요. 어젯밤에 생각을 해봤는데 A가 나 땜에 많이 힘들었나, 자기도 힘들었구나 싶더라고."


지난 에피소드가 있던 날 밤, B의 감정은 어땠을까요?

화가 나 씩씩거렸을까요? 저 자식 내가 이번엔 가만 안 둔다 했을까요? 

아니요. 오히려 차분히 생각과 고민만 깊어졌어요.

내가 이 사람을 얼마나 몰아친 걸까, 이 사람이 그동안 쌓인 게 많았구나 같은. 오랜 기간 A의 회사생활을 아는 입장에서 단순히 B에게 쌓인 것만이 아니라 그간의 묵혔던 서러움이나 열등감, 참았던 스트레스 등이 주사로 나오는구나 싶었죠. 이건 기분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병일 지 모른다는 걱정이 더 앞섰습니다. B도 업무 피드백을 따끔히 줄 때가 자주 있었지만 이 부분 때문에 격려와 달램을 많이 해주던 참이었으니까요. 그동안 철없다 뭐다 하면서도 애틋하고 본인의 스트레스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기에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다음날 대화해봐야겠다 했습니다. 먼저 밤에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동안 심하게 몰아댔거나 스트레스를 준 거 같아 미안하다 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당신이 걱정된다고. 그렇게 두 시간 넘게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상대로 저성과자로 분류되며 부서를 전전하고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도 잘 알고 있었어요. 눈치 없이 군다 하지만 알면서도 워낙에 사람을 좋아하고 애정받고 싶어하는 성격이라 주눅들고 때때로 무시에 화가 나도 꾹 참고 속 없는 것처럼 웃었죠. 가끔 사람들이 잘해주거나 뭔가 일하고 칭찬을 받으면 과도하게 오버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너무 인정받고 싶었고 너무나 사랑받고 싶어하며 소속감에 강한 욕구를 가진 성격, 칭찬받으면 남들보다 훨씬 기분 좋아하고 더 잘하려 애쓰는 성격요. 하지만 입사 초반부터 어긋나기 시작했고 일로도 관계로도 인정받지 못한 채 이리저리 치이니 행동은 더 과해졌죠.  

돌아보면 입사 초반부만 해도 주사라 해봐야 너무 취해 들뜨거나 목소리가 커지고 옆에서 부담스러울 정도로 신나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그는 취하면 밤 늦게 온 사방에 전화를 하고 더 후엔 욕을 하기 시작했죠. 

진심으로 안타까웠어요. 인간적으로 입장을 바꿔보면 어떤 마음이었을까.

A는 그동안 마음을 먹어도 잘 되지 않는 자신에 대한 한심함, 속상함과 같은 속내를 꺼내놓기 시작했어요. B에 대해서도 고마움도 미움도 있지만 미안함이 더 크다고도 했습니다. 그만 하라고 한 일도 너무 오랜 만에 위에서 주목하는 일을 맡고 다른 팀 사람들과 소통하며 칭찬도 받으니 더 집착하게 되었다고 했어요. 같은 직무에선 소외되지만 다른 조직에서는 본인을 좋아도 하고 칭찬도 한다구요. 그렇게 어울리다 보니 술자리도 많아지고 실수도 하게 되었다 했습니다. 자신도 조심해야 함을 잘 알고 노력도 해보지만 잘 되지 않아 속상하다고도 했어요. B도 좀 더 본인이 성과를 내도록 고민해 보고 지원도 하겠다. 그러려면 뭘 해야 하고 안 해야 하는지 알려주며 서로 협의를 했어요. 다만 앞으로도 업무 퀄리티나 납기에 대해서는 단호히 피드백할 것이고 그게 본인의 안일함 때문이라면 가차 없을 거라 했습니다. 

업무 상황에서의 갈등은 B의 성향이나 일하는 스타일, A의 개선이 필요한 부분 간 차이 때문이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A의 진급을 신경 썼기 때문이기도 했어요. 이미 누락된 경험이 있고 과거의 평가 결과도 누적된 데다 여전히 뭔가 한 방을 보이지 못하면 다음 진급도 가망 없다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더 일을 주려 하고, B가 수습하는 한이 있더라도 임원에게 노출되는 업무를 배정했으며 B의 업무 중에서도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A에게 맡기는 식으로 B 나름의 최선을 하고 있었거든요. 때문에 드러나는 일인 만큼 기회가 될 수도,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니 B가 더 꼼꼼히 체크하게 되고 실수할까 더 챙기고 보완하며 수습까지 하고 있었어요. 어떻게든 성과를 내게 해야 한다고도요. 

생각해 보면 그 과정에서 당시엔 인식하지 못했지만 B의 마음 한 켠엔 이런 게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내가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당신 왜 그래 같은. 

답답함과 짜증, 한심함도 컸겠죠. 하지만 B가 좀 더 신경 써야 했던 건 그의 오래된 좌절과 주눅, 학습된 무기력, 그로 인한 회피와 과한 '괜찮은 척'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소위 '징징대는' 사람을 보곤 합니다. 아이 같아 늘 달래줘야 하고 아이 가르치듯 일일이 챙겨야 하는 사람 말이에요. 칭찬을 갈구하고 조금만 혼나거나 자기가 원하는 만큼 칭찬받지 못해도 금새 삐지거나 주눅드는 유형. 

B는 뭔가 일이 잘 끝나도 그게 당연한 거라 생각하는 편이라 왜 칭찬받을 일이지 하는 게 많아요. 사람들에게 칭찬을 많이 하지만 업무 자체로는 별로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더구나 잘 하는 게 아닌데 칭찬하면 정말 자기가 잘하는 줄 알아서 문제란 생각도 강합니다.

시간이 훨씬 많이 지난 지금은 어떠냐. 

칭찬도 더 많이 하고 이전보다 넉넉해졌습니다. 실수 자체에는 관대해요. 다만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를 따져보고 태만함과 안일함 때문이면 지적한 후 주의를 주는 정도죠. 그럼에도 잘한 건 아닌데 동기를 위해 칭찬하는 데엔 박해요. 대신 다르게 한 것, 개선한 것, 먼저 말하는 것, 열심히 하는 것 같은 시도나 태도에 칭찬을 해요. 최대한 상대의 상황과 감정을 고려하고 이야기 합니다. 일부러 냉정하게 해야 할 때에나 단호할 뿐이죠.

하지만 저 당시엔 알아도 무시하는 게 일상이었어요. "칭찬 받고 싶으면 일을 잘해야지!"가 확고했거든요. 힘들겠다 말은 진심이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해야지! 하는 게 B의 방식이었습니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문제가 반복되는 사람들에겐 진심으로 걱정하며 심리상담을 받아 보든가 사내에서 부담이라면 병원도 다녀보라 했습니다. 지금도 마음의 병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태도로 나와 문제가 되면 이 방법을 적극 권해요. B가 본인의 스트레스나 심리 변화에 민감하고 적극적으로 극복하는 스타일인데다 실제로도 도움을 받은 경험까지 있어 추천하는 것도 있고,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며 공감해주고 질문을 던져줄 전문가의 힘이 더 유효할 때가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요즘엔 사내 상담실을 운영하는 기업도 많이 늘어나고 개인적으로도 찾아다니는 등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어요. 하지만 아직까지 끄덕이면서도 저런 조언을 받으면 한켠으로 기분 상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설사 저렇게 해 많은 도움을 받은 사람들도 나중에 와서는 처음엔 기분 나빴다 하기도 해요. 

B는 장점과 단점을 고루 언급하는데 대단히 비윤리적인 행동 같이 선을 넘는 게 아닌 이상은 말 그대로 이건 좋거나 강점이고 저건 단점으로 취약점이다를 말해요. 이건 평가가 아니라 판단일 뿐이죠. 온전히 한 사람의 특성을 인지하고 판단하는 B의 방식요. 

하지만 이런 방식은 사람들이 B의 스타일을 충분히 알고 이해하기 전에는 불편함을 유발하기 쉽습니다. 욕하는 건가, 뭐라고 하는 건가 하구요. 

A를 대하는 언행에서도 그랬을 겁니다. 

이미지 출처: https://t1.daumcdn.net/
이미지 출처: https://t1.daumcdn.net/

아무리 해야 할 피드백을 약하게 줬다 해도 이미 오랜 기간 누적된 무력감을 부채질하고 사람을 작아지게 만들었을 겁니다. B 말고도 A에게 뭐라 하는 사람은 수두룩한데 능력보단 감정에 좀 더 신경써야 했던 건 아니었을까. A의 무력감과 두려움, 공포를 경감시키는 방안을 함께 고민했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같이 할 거니까 걱정 하지마. 잘 할 건데 뭘 그리 미리 걱정해. 같이 해보자"  

후배들과 일할 때 B가 가장 많이 하는 말입니다. 다그쳐서라도 본인 손으로 뭔가를 작업하게 하되 옆에서 챙기고 뒤에서 지원하는 게 B가 역할을 하고 후배를 육성하는 방식이었으니까요. 

이 방식이 잘 맞는 분도 있었지만 아닌 경우가 더 많았던 거 같습니다. 걱정이 많고 전전긍긍하는 분에겐 효과가 있었어요. 경험은 부족하지만 잘하려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도요. 하지만 앞선 A처럼 이미 누적된 평가와 두려움, 무기력이 있는 사람들에겐 거의 효과가 없던 것 같아요. 

지난 레터에서 이야기 했던 아무리 대부분의 경우에 먹혀든 방식일 지 몰라도 사람과 상황에 따라서는 최악일 수도 있음을 저 당시엔 입으로만 말하고 마음으로는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죠.

공감해주고 다독인다고는 했지만 주로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솔루션을 주려고만 했습니다. 감정을 달래준다면서도 마음이 아닌 '일이 되려면' 뭘 해야 하는지. 마음은 알겠지만 그런다고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가장 효과적이고 해야 하는 건 일에서 성과를 내야 당신도 자신감을 얻을 수 있고 그 경험이 쌓여야 해결될 거라구요. 


저 역시 별반 다르진 않아요. 조직이란 일하는 곳이고 일하자 모인 사람들이기에 인성보다 우선은 실력과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컬쳐핏이니 인재상이니 경력직원을 평가하지만 실력과 성과가 낮을 때가 더 많다고도 생각하구요. 더구나 이 실력과 성과가 낮은데 다른 게 좋다고 평판이 좋아지는 걸 거의 보진 못했습니다. 사람은 좋지만 같이 일하긴 싫은 사람일 뿐일 때가 많아요. 그래서 자꾸만 성과를 내고 성공체험을 할 수 있는 솔루션을 주는 데에 집중하는 거죠. 제가 고수하고 믿는 방식으로요. 

그래도 지금은 할 말은 똑같이 하더라도 그 전에 상대의 감정에 더 주목합니다. 상대의 마음이 어떤지를 얼마나 생각해 봤는지, 그래서 나는 어떤지, 하지만 그로 인해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요. 하려는 말과 변화시키려는 방향은 정해져 있지만 대신 바로 솔루션 중심의 대화를 하던 예전과 달리 감정과 의욕을 살피며 이 부분을 더 많이 이야기 한 후 솔루션을 작게 하나씩 말합니다. 

이미지 출처: 유튜브, 유퀴즈 중
이미지 출처: 유튜브, 유퀴즈 중

저 당시의 A에게도 이 감정적 공감과 위로가 먼저였어야 했고 더 많이 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일하려 모인 사람들이 있는 조직이라지만 사람, 관계의 무게를 너무 간과했어요.

관계와 감정에 매몰되는 건 지양해야 하지만 서로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공감하고 격려하는 힘은 성과보다 강할 때가 있더군요. 

요즘 속된 말로 "너 T발 C야?"라던데, MBTI의 편견조장과 희화화를 경계하는 입장입니다만 찰떡처럼 흔한 상황을 정리하는 말 같아요. 

논리와 합리적인 것, 일과 성과라는 키워드들에 집착하는 이들이 흔히 놓치는 것들 말이죠.

 

**********************************************

일하는 사람과 조직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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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란슬기의 프로필 이미지

    파란슬기

    2
    2년 이상 전

    저에게 "극T냐"라고 제 두 딸들이 이야기 합니다. 아닌 것 같지만, 기준점들이 서로 크게 다를 수 있고, 감정이라는 게 참 중요한 출발점인 걸 알게되다 보니 진짜 요즘은 아주 조금 바뀐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ㄴ 답글
  • 이수진의 프로필 이미지

    이수진

    2
    2년 이상 전

    '괜찮니?'란 이미지에 울컥한 건.. 저 또한 그럼 맘이 있기 때문이겠죠?^^;; 상대의 감정에 비수를 꽂아보고 그것이 다시 나의 비수로 돌아오면 그때, 상대의 감정이 이랬겠구나라고 제대로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제가 고민하고 있는 것인데, 아마도 어떤 문제를 대할 때 해결하려는 태도가 모든 상황에 동일하게 적용되는거 같아요. 근데 문제는 늘 발생되는 것이라 A가 아녀도 비슷한 문제는 많거든요. 그럼 그걸 관리할 방법을 만들어 가야 하는 건데... 다른 문제를, 같은 방법으로 풀고 있단 느낌입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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