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낯선 얘기는 아닙니다.
한동안은 일의 의미와 재미, 적성, 하고 싶은 일, 갓생 등의 다양한 말로 회자되기도 했죠. 성과창출을 위해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웁니다. 이제부터 일이 시작되지요. 그다음부터는 의미, Why, 몰입, 피드백, 원온원, 재미, 흥미, 동기란 말들이 펼쳐집니다.
제가 주니어 시절 선배들은 이런 말을 해주곤 했습니다.
"프로는 그냥 한다"구요. 하기로 한 일이 있으면 그게 좋든 싫든, 몸이 좋지 않든 아니든 그냥 하는 거, 그렇게 결과를 맺고 해내는 게 프로라 했습니다. 정말 무섭게 일하던 그들에게 서서히 세뇌되기도 했어요.
한 번은 입사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팀 회식을 했습니다. 부서장은 술을 정말 많이 마시고 먹이는 스타일이었죠. 온갖 폭탄주를 만들어 새벽 2시 넘어서까지 마셔야 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저는 결국 일어나질 못했어요. (그로부터 하루 후 저는 위경련으로 고생해야 했습니다) 주니어 시절,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은 신참내기. 출근시간을 넘긴 시계를 보고 식은땀을 흘리며 부서장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싸늘한 그의 목소리를 듣고 헐레벌떡 준비해 튀어나갔죠. 얼굴은 허옇게 뜨고 속은 죽겠고.. 그렇게 회의실로 불려가 한 소리 들었습니다.
"죽더라도 회사에 와서 죽어"
덧붙여 직장인의 책임감에 대한 말씀을 10분 정도 하신 거 같아요.
벌써 15년 전 이야기임에도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에요.
그런데 말입니다. 회식과 근태로 시작된 저 말을 10년 가까이 '그렇지'라며 여기고 살아왔어요. 그러다 직장인이란 게 그런 거지, 어떻게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사나, 실제로는 하기 싫은 일의 비중이 더 높은 거 아닌가, 언제까지 징징댈 건가 하면서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싫어도 귀찮아도 모두 동의하진 않아도 일단 해내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고 그렇게 해왔습니다.
가끔 일이 재미가 없다, 의욕이 떨어진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동료나 후배를 대할 때면 같은 말을 해주곤 했습니다. 때로는 '애 같다' 치부도 하면서요.
이들에 대한 생각과 실제 하는 말이 달라진 건 몇 년 되지 않습니다. 이젠 같은 고민을 들으면 정 재미없고 의미를 못느끼겠다면 관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합니다. 대신 질문을 하나 해요. 그 일을 잘하긴 하는지, 재미없는 이유가 잘 못해서는 아니지를요. 그리고 정말 일이 불만인건지를 들여다 봅니다.
스타트업에 나와 한참 저보다 어린 직장인들과 부대끼며 이전보다 훨씬 많이 재미와 의미란 단어를 듣습니다. 시대가 바꼈다 느끼는 포인트 중 하나에요. 전에 있던 조직에서는 재미란 단어가 그리 빈번히 들리지 않았습니다. 재미없다고 퇴사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죠. 혹여 재미없다, 일하기 싫다 하면 그냥 하는 거다, 철없는 얘기처럼 치부되거나 잠시의 토닥거림으로 다시 일하자란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요즘엔 이런 워딩이 나오면 꽤나 진지한 고민상담으로 이어집니다. 과연 재미란 무엇일까요. 의미를 느끼면 재밌는 걸까요? 어떨 때 일이 재밌는 걸까요? 재미가 없다면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요? 책임감은 재미와 대치되는 걸까요? 재미 없어도 그냥 하는 게 전문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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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슬기
"왜 일하는가"를 지난 달 읽은 후,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각자가 여기서 일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같이 일하고 있는 이 시간만큼은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데. 재미가 없어도 해야 하니까 부양 책임도 있으니 싶은데 등등등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게 재미라면, 가끔씩 내게 다가와주는 게 의미네요. 내가 느낄 수 있었으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닐까 싶고. 강요하거나 추천하지는 못하겠지만 그걸 느끼는 사람이라면 함께 하기 좀 더 수월하다는 정도. 오늘의 레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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