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말로 일은 재미없기에 돈을 주고 시키는 것이란 표현도 있습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게 사람의 본성이란 말도 있어요. 몰입하면 일이 재밌어진다란 말도 있고 실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황농문 교수의 몰입이 대 히트를 치기도 했죠. 일을 잘해야 재밌단 말도 있고 일을 못하면 재미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자율성, 주도권, 권한이 없어 재미 없단 말도 있고 일의 의미를 말해줘야 일이 재밌다라든가 덕업일치가 되어 꿀잼이란 사례로 인터뷰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과장 시절, 한 팀장님께서 회의 중 제게 "~~과장은 일하고 결혼했어"란 말씀을 하셨어요. 새벽에 출근해 야근을 밥 먹듯 하며 워커홀릭처럼 일하던 때였죠. 이렇게 일하면 연애는 언제 하냐며 나온 얘기였습니다. 저 비슷한 말들을 이래저래 자주 들었어요. 그때마다 웃으며 말했죠. 설마 일하고 결혼하겠냐고. 일을 이리 많이 주면서, 제발 좀 일이랑 헤어지게 해달라 했었어요.
실제로 꽤 일을 많이 하는 직원이긴 했습니다. 그 당시 직원들이 대부분 그랬고, 특히나 저희 직군이 그랬기에 당연하다 생각했어요. 하루 12~15시간 일하는 게 일상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일하지 않는 회사를 다닌 적이 없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죠. 그러면서도 주말에도 또 일을 하고 늘 일생각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제게 이런 말도 가끔 있었어요. ~님은 일을 정말 좋아하는 거 같다, 일 참 재밌어 하는 거 같다구요.
그땐 저도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일을 좋아한다 믿었으니까요. 매순간 일을 빼면 딱히 하는 것 없이 단조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한참 지나 돌아보면 내가 정말 일을 좋아하고 재밌어 했던 걸까란 생각을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좋아했던 걸까, 일을 열심히 하는 나를 좋아한 걸까를요.
인사업무를 하며 HR이란 일 자체를 좋아한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 일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 일을 허투루 하고 싶진 않다는 자존심, 잘하고 싶단 마음이 컸던 거지 HR이란 일 자체를 좋아하고 재밌어 하진 않았습니다. 하나하나 분리해 보면 그렇더라구요.
예를 들어 제 일의 40%는 보고서를 쓰는 일이었습니다. 일의 기획부터 결과물까지 보고서로 표현되곤 했으니까요. 보고서 쓰는 일은 지긋지긋했지 좋아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교육과정을 개발할 때 교안을 만드는 일을 좋아했었나 하면 아니오. 몰입해 열심히 만들었지만 교안 개발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조직문화 담당자로 일할 땐 서베이, 진단을 많이 했는데 그것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휴가, 퇴근 문화를 개선한다 했을 때 3년 정도는 매주 전사 휴가사용률과 퇴근 시간체크를 하고 어디서 미흡한지를 찾아내 피드백하는 일도 했습니다. 전사 서베이를 하면 그걸 CEO에게 보고하기까지 수십 버전의 리포트를 쓰기도 했죠. 평가보상제도 개편 프로젝트를 할 때엔 6개월 가까이 오프잡으로 집중했어요. 매일 윗분들이 궁금해하는 다른 회사에 묻고 각종 자료를 찾으며 논리를 만들어야 했죠. 이 모든 과정에서 강하게 제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결국 윗분들의 의도대로 결과물이 나오곤 했습니다. 방향이 같다 해도 수없이 많은 보고서 작업을 해야 했구요. 이걸 재밌어서 한 적이 있을까 돌아보면 각각의 일과 그 과정이 모두 재밌고 즐거웠던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늘 일 좋아한다, 일 열심히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꽤 오랜 기간 그 집중력과 에너지를 유지했어요.
그러다 30대 후반에 크게 번아웃과 슬럼프를 맞게 되었습니다. 늘 하던 일이고 오히려 큰 과제를 맡았음에도 당시에 몸과 마음이 모두 나락으로 떨어져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더라구요. 그제서야 일이 너무 하기 싫다, 일이 너무 재미없단 생각에 하루하루 출근길이 지옥 같기만 했습니다.
그때 생각했죠. 전엔 일이 그렇게 재미났는데 지금 내가 왜 이러지..
이 모든 시기를 지나고도 한참 된 지금의 결론은 일하는 나를 좋아했다입니다. 열심히 사는 나를 좋아했고 일의 성과를 좋아했던 거였어요. 적어도 저는요.
성과를 내 인정받고 다음 기회를 얻고 또 그걸 열심히 해 성과를 내는 자잘한 성공체험들이 쌓이며 다음의 성과를 위한 과정에 몰입한 거지 어떤 일, 업무 자체를 좋아한 건 별로 없던 거 같아요.
대부분은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과정에서 느끼는 지루함, 권태, 불만, 지침 등을 기꺼이 감수하고 때론 개의치 않으며 진행했던 거 같구요.
번아웃이 왔던 시기를 돌아보면 그 성과와 결과를 맛보기 어려웠다는 점이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그 전까진 힘들어도 뭔가 아웃풋이 잘 나왔어요. 첫 사업이 그랬고 주니어 때는 한정적인 작은 업무를 조금만 잘 해내도 칭찬이 한아름이었죠. 사원, 대리, 과장까지 쭉 그렇게요.
그런데 차장 3년 차 쯤 되었을 때 이전처럼 일을 해도 모든 게 당연해졌습니다. 그 연차에 당연한 거 아니냐. 뒤처지는 저성과자들을 끌고 가며 사고를 막고 수습하는 데에도 많은 에너지가 쓰였습니다. 제 업무가 아닌 곳에서 일이 터져도 선배가 안 챙기고 뭐했냔 타박도 받았고 팀장이 이민으로 빠지게 되었을 땐 한창 바쁘고 갈 길 먼데 자리를 떠난다며 팀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어떤 임원의 욕받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기대하는 목표와 성과를 내기보다 다른 곳에 더 많은 소모를 감당해야 했던 시기를 1년 정도 겪으며 급격히 에너지 수준이 떨어지게 되었어요.
사람마다 무엇으로부터 동기를 얻고, 어디에 재미를 느끼느냐의 포인트는 각기 다를 겁니다. 저는 결과가 잘 나오는 거, 그 결과를 위해 앞을 보며 쭉쭉 나아가는 걸 재밌어 했어요. 개인적으로는 동기는 남이 부여할 수는 없고 깎아 먹긴 쉽다라고 생각합니다. 동기라는 걸 잘하고 싶은 마음, 잘하고 싶어 궁금해 하는 것, 궁금한 걸 공부하는 학습력으로 정의해요. 이 동기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구분하자 합니다. 그래서 애초에 타고나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뽑지 않는 게 최선이고, 타고난 사람의 동기를 꺾지는 말자는 게 제 생각이에요. (물론 정답은 아니구요)
전 동기는 타고났고 그걸 잘 유지할 수 있었던 환경에 있다가 막히는 곳에 와 꺾이면서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인 기대한 결과를 내지 못함에 꺾이기 시작했다고 정리했어요.
다시 돌아가 "일이 재미가 없어요"라는 사람이 있다면?
제가 절 관찰하고 생각의 개념들을 정의하며 정리한 원칙들이 몇 개 있어요. 금요일 레터에서 이 부분을 이야기 하려 해요.
과연 재미가 없다는 건 뭘까, 일터에서 사람들이 일이 재미없다 할 때 우린 어떤 얘기를 주로 할까, 뭘 간과할까, 뭘 짚어보면 좋을까 여러분도 미리 떠올려 보세요. 금요일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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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슬기
재미가 아니라 의미로 일하는 것 같습니다. 재미는 어찌보면 쾌락인데, 의미는 자기성장이지 않을까. 작가님 이야기처럼 동기부여는 스스로 할 수 밖에 없고 의미는 내가 찾아야만 하는 것일테니까요. 오늘은 하루종일 모눈종이가지고 씨름 중인데, 시계보니 오후 5시가 넘었네요. 그러다, 아. 수요일이네라고 해서 메일열고 읽어봤습니다.
프로브톡
재미가 있다면 일을 더 열심히 많이 할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그렇다고 내가 성장하거나 성과가 나는 건 아니라서.. 재미의 방향과 지점을 잘 관찰하는 게 필요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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