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지난 레터에서 주객전도 되기 쉽고 최근 퍼스널 브랜딩이란 키워드가 만연하며 빠지기 쉬운 외부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오늘은 그 정점에서 허우적 대던 제 얘길 좀 더 해보려 해요.
전 직장생활을 늦게 시작했어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서른에서야 취업이란 걸 했죠. 그 전에도 짧게 월급 받는 일을 하긴 했지만 일반적인 정규직으로 커리어라는 걸 쌓기 시작하는 걸 기준으로 한다면 서른에 시작했어요.
그래서 늘 마음이 바빴습니다. 만회하고 싶단 감정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거든요. 만회에 가장 효과적인 게 전문가가 되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전문가가 되려면 빨리,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더 좋은 회사로 이직 하려면 학위도 따고 자격증도 따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구요. 그래서 강의란 강의는 다 듣고 모임이란 모임은 다 따라다녔으며 HRD업무를 시작하면서는 DISC, MBTI 같은 각종 진단 자격과정을 수강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는 자격증 콜렉터라고도 했어요.
예전 레터에서 경고를 받았던 그 시기, 회사에서 자리 잡기 전의 저는 그 불만족을 해소하기 위해 더 밖으로 돌았던 거 같아요. 물론 성장과 자기계발이란 마음이 훨씬 크긴 했지만 언제부터였을까요.. 주객이 전도된 시점이.
스타트업에 합류하며 직접 채용을 하다 보니 여러가지 원칙이 생겼는데 그 중 하나가 인재수집에 대한 경계입니다. 워낙 인재 확보가 어려운 이 시장에서 좋은 인재는 드물고 그 드문 좋은 인재가 우리 회사에 올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역량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 일당백을 하는 게 아니라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여 으쌰으쌰 하다 보니 늘 인재에 목마를 수밖에 없죠. 그래서 좋은 인재 같단 생각만 들면 당장 무리수를 두더라도, 당장 필요는 없더라도 확보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 의도가 어떻고 인재의 수준이 어떻건 간에 이렇게 '일단 수집'으로 확보한 인재는 조직이 제대로 쓰지 못해 사장되고 별 거 없네라며 팽하는 걸 수도 없이 봅니다.
외부 활동이나 스터디도 비슷하단 생각이 들어요. 당장 내 업무는 아니지만, 당장 내가 저 일을 할 것도 아니지만 '언젠가' 혹은 '알아 두면' 그리고 '궁금해서' 기웃댑니다. 물론 두루 알고 융합시켜 내 일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하면 되고 뭐가 정답이란 건 존재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융합, 비판적 사고, 내것으로의 소화력이 관건이에요. 다만 내 시간과 에너지의 총량은 정해져 있으니 어떻게 해야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만드는 데에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몰입할까를 함께 고민해야 해요.
하고 싶은 사람=전문가, 잘 못하지만 강의=전문가, 열심히 공부=전문가, 잘 모르지만 출간-전문가.. 너무 많거든요. 뭐 하나 키워드가 유행하면 우후죽순 그 키워드로 강의, 책이 쏟아지구요. 내가 잘 모를 때 무분별하게 다 기웃대다 보면 정말 실력있는 전문가, 진짜 알짜 강의를 걸러내는 게 쉽지 않거든요.
주니어 수준의 잘 정리한 자료도 모르는 사람들에겐 일목요연하게 보이고 그냥 나 이런 거 잘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별로인 것도 벤치마킹 포인트처럼 여겨지기 쉬우니까요.
제가 그랬어요. 커리어 초기 시절 참여했던 스터디에서 많이 겪었죠. 지금 보면 그분들도 본인 공부가 중요하고 그러다 재밌고, 가르치고 싶고 아는 척 하고 싶었던 얕은 분들이 더 많았거든요. 하지만 당시엔 그분들이 대단해 보이고 부럽기도 했어요. 별 거 아닌 걸 강의하고 발표하는 사람들을 참 많이 무시했어요. 사실 지금도 그래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다시 돌아가도 전 열심히 따라다닐 거 같아요. 왜냐하면 그 수준에선 딱 그 눈으로밖에 볼 수 없으니까요. 결국 내 수준만큼 세상에 보이더라.. 이게 좀 더 시간이 흐르며 든 생각이에요.
다만 밖에서 보고 들은 걸 내 실력인 냥 안에 와서 원래 내가 아는 척, 가르치려 들지는 않을 거에요. 제가 경멸하던 그런 짓을 안에 와서 시치미 떼고 제가 그대로 했으니까요.
후배들에게도 이런 점들을 주의 주지만 그래도 다양하게 많이 경험하라 합니다. 이 시기에는 인풋을 많이 넣어야 보는 눈도 생긴다구요.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다구요. 이젠 대충 연사와 사례 발표면 어느 회사인지, 목차나 주관기관만 봐도 대충 감이 옵니다. 워낙 많이 보고 듣다 보니 쌓인 데이터랄까요. 그래서 조급함이나 노파심이 아니라 진짜 필요한 것, 정말 궁금한 것,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 것 등으로 뾰족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변별력 있게 참여할 수 있어요. 이게 가능한 건 많이 해봤고 많이 실패해 봐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외부 활동은 여전히 권장합니다. 줏대, 나만의 원칙, 또렷한 목표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접하되 그대로 받아 들이진 않는 비판적 사고를 늘상 염두에 두는 노력과 병행한다는 전제라면 많이 접하라고 합니다.
중간중간 일종의 휴지기도 가지라고 해요. 내것으로 소화해 내 일에 적용하는 노력의 시간이 필요한데 이 과정 없이 주구장창 인풋만 넣지 말라구요.
저는 이런 사람들을 습관적 스터디언이라 부릅니다. 온갖 북토크, 북 스터디, 직무 스터디, 직무 외 스터디나 강의 등 SNS에 뜨는 모임마다 껴 있는 사람들요. 때마다 유행하는 키워드는 기가 막히게 언급하지만 정작 현업에서 인정받진 못하는 사람들이요. 비슷한 사람들이 몰려 다니며 서로 칭찬하고 치켜세워주는 그런 사람들.
생각보다 내가 그 안에 속하면 나를 둘러싼 이들도 모두 그렇기에 보고 듣는 게 전부처럼 느껴지기 쉬워요. 현업에서 혹은 정말 실력 있다 하는 사람들은 열정은 칭찬하지만 비웃기도 하죠. 굳이 싫은 말 피드백을 안 하기에 객관적 평가와 애정 깃든 솔직한 피드백을 받기 어려워져 더 고립되며 그들만의 세상에 갇혀 버려요. 그래서 자기 객관화와 검열이 중요한 거구요.
하지만 한편으로 요즘 생각이 바뀐 건 있어요.
뒤로 숨어 뭐라 하고 나는 실력이 안 되어 그런 거 안 합니다란 말로 회피한 건 아닐까. 저들은 착각이든 뭐든 사람들에게 자기 콘텐츠를 오픈하고 칭찬 뿐만 아니라 비판도 받고 있지 않나,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은 예전보다 어찌 되었든 많이 성장해 있지 않나란 생각을 하거든요. 어쩌면 나는 저런 사람 아니야란 왜곡된 자부심으로 내 실력이 들통날까 두려워 숨은 건 아닌가 해요.
SNS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스타트업에 오면서부터였어요. 이전에도 가끔 일기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워낙 보수적인 회사를 다녔기에 친구도 거의 없고 보는 사람도 거의 없었어요. 하지만 초기 스타트업에 합류하며 회사를 알리고 채용을 하기 위해 열심히 뭐든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보고서만 쓰고 살다가 긴 글을 쓰지 못해 단락 글만 썼습니다. 조금씩 글의 길이가 늘어났고 제 생각과 이야기를 드러내며 비판도 많이 받았죠. 그러다 비판받던 뾰족함 가득한 글이 제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중간 중간 몇 번 안 되지만 강의나 패널토론에 참여도 했어요.
그렇게 4년 가까이 흘렀고 그 사이 많은 게 변했어요.
가장 크게 변한 건 무엇일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첫 번째는 노출을 하며 사람들이 제게 (비난이든 비판이든 칭찬이든 격려든) 피드백을 주기 시작했다는 거에요. 예전 레터에서도 언급했지만 전 사람들이 피드백 줘봐야 소용없는 사람으로 치부된 시절이 있거든요. 그런데 제 것을 드러내니 피드백이 옵니다.
두 번째는 글이 길어졌어요. 이전보단 훨씬 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작년엔 17,000자 넘는 글을 써 언론사에 기고도 했어요. 브런치도 시작했죠. 그 전까지 글보다 말이 훨씬 능숙하고 편하다 생각했는데 요즘은 글이 더 편해요. 잘하냐 못하냐와 별개로 내향형이고 샤이(shy)관종인 제게 훨씬 잘 맞는 수단 같거든요.
가장 놀라운 건 뭘까요.
바로 프로브톡을 시작한 거죠. 무려 유료레터로요. 엄청난 대작을 쓰진 못해도 레터를 발행하며 저는 작가가 되었고 적은 금액이지만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님들이 제 글에 기꺼이 지불을 하고 계시잖아요. 생각해보면 제 인생에 단 한 번도 제가 글을 쓸 거란 생각을, 심지어 글로 돈을 얼마라도 벌 거라곤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걸요.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놀랍고 신기하며 어떤 면에서는 벅차기도 해요)
동시에 두렵습니다. 매번 레터를 쓰면서도 내가 구독자라면 이걸 읽는 시간이 구독하는 구독료가 아깝지 않을까를 생각해요. 몇 번씩 고치고 다시 쓰기도 합니다. 툭툭 말로 던지던 것들이 텍스트와 영상으로 박제되는 것도 많이 두렵습니다. 그만큼 한 번 더 생각해요.
이 모든 게 다 저를 있는 그대로 노출해 가능해진 일들이에요. 혼자 꽁꽁 숨어 쌓기 보단 드러내 검증받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일이죠. 시도 자체도 더 조심하고, 할 지 말 지 결정하기 위해 저를 객관화 하게 되었어요.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일인지, 좋은 기회를 놓치기 싫은 마음이 더 큰 지, 잃을 건 뭔지, 이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은 뭔지, 뭘 더 해야 하고 뭘 버려야 하는지 등을요. 그렇게 신중함이 더해지고 피드백을 받으며 좀 더 성장합니다.
외부 활동에 대한 무비판적 활동만큼 외부 활동에 대한 무조건적 비판도 경계해야 합니다. 날 드러내는 걸 즐기고 취하는 게 아니라 나를 드러내 피드백을 받고 성장시키는 기회로 쓰는 건 적극 권장드려요. 후자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거든요.
모 기업의 인사담당자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어 있습니다. 스타트업에 와서 두 회사를 거치며 함께 일했던 주니어 인사담당자들을 모두 그 커뮤니티에 참여시켰어요. 행사 중 일부엔 협찬도 해주고 거기서 하는 행사에 적극 참여하라 독려도 했죠. 교육도 좋은 게 있으면 가서 들으라고 보내곤 했습니다. 그렇게 외부 활동 없던 후배들은 자극을 받고 또 노출되며 오퍼를 받아 모두 이직했어요.
스타트업 대표님을 만나다 보면 이런 분들을 비난하는 걸 종종 봅니다. 그리고 제게도 말씀하세요. 그렇게 키워줘 봐야 다른 데 가고 겉멋만 든다구요. 왜 그러냐, 해줄 필요 없다고도 하세요.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르다 합니다.
"앞으로도 제 팀원이 있다면 전 똑같이 보낼 겁니다. 공부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훨씬 낫고, 이탈이 두려워 육성을 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니까요"라구요.
저희 팀원들에게도 항상 얘기 했어요. 밖에서 자극도 받고 유혹도 받아 보고, 넘어도 가봐야 한다구요. 나와 같이 성장하고 일하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해서 육성하는 걸 주저하면 안 된다고. 당신들도 당신 후배들에게 그렇게 해주기 바란다 합니다. 대신 제안이 오면 내게 솔직히 얘기해 달라 해요. 내가 당신들보다는 좀 더 기업이나 사람에 대한 경험과 정보가 많으니 괜찮은 곳인지 조건 넘어의 것들을 같이 봐주겠다고. 이직을 하더라도 좋은 이직을 했으면 좋겠다구요.
경조사 챙기는 것과 비슷하단 생각을 합니다. 저는 경조사를 잘 챙기는 편인데 언젠가 지인이 물었어요. 그렇게 챙기는데 예전 사람들 연락하냐, 한 때 아니냐고. 그때도 얘기했어요. 그걸 바라고 챙기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 순간 내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에 마음을 담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냐고. 육성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지금 내 동료, 후배를 육성하는 건 지금 내 역할이자 책임인 거고 그 외에 더 뭐가 있겠냔 거요.
나 자신의 경계만큼 동료나 후배의 성장에서도 어떤 기여를 할 지, 나는 좋아하면서 남들에겐 엄격하진 않은지.. 내로남불 별거 없고 타산지석 멀리 있지 않더군요.
오늘 레터는 이렇게 요약 가능할 거 같습니다.
나만의 성장 원칙과 자기객관화 노력을 병행한다.
나의 성장만큼 타인의 성장에도 진심이어야 한다.
외부의 찬사보다 함께 일하는 내 동료에게 조소 받지 않아야 한다.
때로는 나를 노출해 평가받고 개선하는 일에 용기를 내야 한다.
이 모든 게 충족되면, 아직은 충족되지 않더라도 그러려 노력하고 있다면 나는 좋은 스터디언이다! 그리고 나는 성장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 없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내가 살게
끔찍하죠.. 안에서의 무시. 어쩌면 내부에서 인정받지 못해 생겨나는 공허함 때문에 더더욱 밖으로만 돌게 되는지도 모르겠군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