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대표님, 경영진들과 이야기를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이런저런 고민을 듣는데 공통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인사일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인사에 대한 건데요. 그 중 이번주 주제인 외부활동과 관련된 말도 많습니다.
오늘 레터에 써야지 하던 내용을 먼저 코멘트하게 된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모 인사담당자 커뮤니티에서 신입급 인사담당자가 스터디를 위해 설문을 실시한 게 리더급 인사담당자 커뮤니티에 공유되었습니다. 보통은 리더들이 내용이 아쉬워도 최대한 설문에 응해주고 격려를 해주었는데요 오늘은 이 설문으로 인해 몇 명이 쓴 쓴소리를 하는 일이 있었어요. 제가 오늘 레터에 쓰려던 내용과 사례를 어쩌다 보니 이 커뮤니티에 언급하게 되었네요.
아무리 주니어이고 지식과 경험이 미흡할 수 있다는 걸 백 번 감안한다 해도 오늘 설문은 귀엽게 봐주기도 어려운 수준이었거든요.
가장 기본인 설문의 목적이 무엇인지 찾을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질문이 구성도 엉망이었습니다. 다소 황당함까지 있었죠. 설문이라는 건 궁금한 걸 조사한다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보려 하는가가 명확히 정의된 후 그럼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가를 고민해 문항을 만드는 것이 기본인데요. 무엇 하나 신중히 고민했다 보기 어려웠거든요. 해당 주제의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없던 스터디라 설문을 통해 스터디 주제를 잡으려 했다는 의도도 있다 했습니다.
"인사가 주의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자기들 일한답시고 구성원 시간 소모하는 건데, 설문이라는 게 응답자의 시간을 쓰는 일인데 경험 미숙으로 미흡할 수는 있어도 기본적으로 문제 정의 정도는 하는 고민의 깊이는 필요하지 않나요?"란 피드백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거기에 더해 커뮤니티를 운영하느라 애쓰는 분들에게 마저 쓴소리를 더했습니다.
"멤버들을 이 정도 모았으면 다음 단계로 가면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목적성이 좀 더 명확해지면 어떨지. 더구나 주니어들은 회사에서 충족되지 않아 오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서도 자기들끼리 신나고 즐거운 거나 자기 것으로 소화 없이 인풋만 넣는 걸 업체나 선배들이 잡아 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라구요.
몇 년 전 이러닝 업체들이 급격히 성장하며 특히 스타트업씬의 실무자들의 노출이 급증했습니다. 누가 강의로 얼마 벌었다더라, 어디로 이직했다더라는 소식이 여기저기에서 언급될 정도로 유명세를 가지게 된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누군가는 SNS로, 누군가는 강의로, 누군가는 커뮤니티를 통해서요. 그러나 그 중 많은 사람이 실제 동료들로부터는 실력 없다, 거품이다, 심지어는 우리 회사에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인데 강의 찍었더라 그러고 입사하고 얼마 안 되어 이직했는데 어디 C레벨로 같다더라.. 회사들을 만나다 보면 공공연하게 이들이 언급되고 그런 사람들을 욕하는 분들도 많이 봅니다. 그러면서도 또 뽑아 가는 회사가 있고 그렇게 그런 사람들은 금새 이직하는 job hopper가 되어 입방아에 오르내리곤 했죠. 스타트업 활황기, 스타트업 개발자 전성시대, 1~2년 단위로 이직하며 몸값 올리는 게 똑똑하고 성장하는 거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기도 했구요.
하지만 그 때에도 비난은 있었고 요즘처럼 경기침체와 스타트업 혹한기라 불리는 시기가 오며 이전보다는 그들의 설자리, 채용에 급급해 우선 채용하던 경향이확연히 줄어든 거 같기는 합니다. 실제로 지난 3년 간 인사담당자 없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아왔지만 요즘엔 문의가 확 줄기도 했구요.
인사담당자들도 커뮤니티와 스터디가 유행하며 활동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주니어 인사담당자들은 더더욱. 각종 업체들을 통해 사례 발표부터 세미나, 강의 등에 발제자로도 많이 노출되었죠. 더구나 스타트업씬의 채용이 가장 화두이던 시기에 인사담당자의 링크드인 같은 SNS, 플랫폼 활동도 붐을 이루었구요.
열심히 하고 열정 넘치지만 수준이 높다 볼 수 없는 발제와 자료들이 넘칩니다. 작은 것을 개인적인 뿌듯함과 홍보를 위해 부풀려 알리기도 하고. 선배가 별로 없는 이 씬에서 피드백을 날카롭게 주는 사람도 별로 없죠. 대신 동병상련이 마음으로 서로 모여 성장하고 싶어 공부하고 격려하는 모임은 넘칩니다.
후자가 문제냐 하면 그렇진 않습니다. 하지만 설익은 상태에서 뭐가 옳고 그른지, 뭐는 기고 뭐는 아닌지에 대한 균형잡힌 피드백이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친 피드백에만 노출되는 게 문제인 거죠. 어느 선까지는 동기가 되고 성장을 만들기도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성장곡선이 정체되는데 스스로 잘한다는 근자감에 빠지는 걸 흔히 봅니다. 독자님들도 리더분들은 더더욱 이런 구성원을 많이 보실 거에요.실력이 열정과 자신감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사람 말이죠.
근자감과 자의식이 과잉된 상태.
이런 경우 동료, 상사와 갈등에 놓이곤 합니다. 성장이라는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한 일이고 성장하고 배워간다는 기쁨이 열정을 유지시킵니다. 하지만 기쁨이 자신감으로, 자신감이 오만함으로 변하기 쉬운데 스스로 자각을 못하는 때에요.
보고 들은 걸 실력인 냥 말하고 선배를 평가하기 시작하죠. 리더나 회사가 자신을 인정 안 한다 불만이고 내 실력에 너무 홀대 당한다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기회를 끊임없이 기웃대고 SNS나 외부활동으로 노출이 되면 이런저런 제안도 받게 되니 이직을 해요. 그렇게 한 두 번 옮기다 보면 어느 순간 이력서는 수직이 아닌 수평이동만을 반복하게 되는 겁니다.
이것도 했고 저것도 했고, 다 해봤단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납니다. 이력서엔 정말 안 해본 것 없이 다 적혀 있어요.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누가 해도 대체 가능한 업무를 나도 한 게 거의 대부분이고 얕은 수준에서 반복적으로 회사를 옮기며 수평이동만 하게 됩니다.
연차는 오르고 연봉도 포지션도 오르지만 고참 수준이 되면 더 이상 원하는 눈높이의 조직으로는 영 옮기기 쉽지 않아집니다. 나 정도 되면 갈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은데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죠. 수평이동만 반복된 채로 소위 가성비 나오지 않는 인력이 되어 버리니까요. 원하는 큰 조직은 기능이 세분화 되며 하나라도 깊게 해본 사람을 우선시 하기 때문입니다.
성장하고 싶고 잘하고 싶은데 유명세, 좋아요에 더 뿌듯해지고 정작 전문가가 되고 싶다 하지만 그래서 전문가란 무엇인가요, 그게 왜 중요한가요, 그래서 뭘 하고 싶은 건가요란 질문에 간략하고 명쾌히 답하는 분들은 흔치 않습니다. 뭐가 본질이었는지 주객전도가 되어 버리고 나조차 나는 뭘 원했고 뭘 이루고 싶었던 것인가가를 숙고하지 못한 채 막연한 '커리어' 고민만 남게 됩니다. 이런 경향은 내 조직에서 인정받지 못할 수록, 인정욕구가 강할 수록, 타인의 관심이 중요할 수록 강해지죠.
가장 좋은 건 좋은 선배, 동료들을 두는 겁니다. 객관적으로 때로는 냉정히 나를 위한 쓴소리를 해줄 사람이요. 같이 일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면 최고겠지만 보통 좋은 동료가 아쉬워 밖으로 돌 때가 많아요.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 한들 쓴소리'만' 하는 사람이 싫어 동기가 떨어질 때가 더 많구요.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건 근본적으로 내가 나를 객관화 해야 한다는 겁니다. 난 대체 어떤 욕구를 가진 사람인가, 만족이든 불만족이든, 기쁨이든 우울이든 뭐에 의해 반응하는가를 몇 단계씩 깊이 why, why, why를 파고 드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거에요.
내가 소중하고 날 인정하려는데 정작 내가 나를 가장 잘 알고 이해해야죠. 격려하고 서로 으쌰으쌰 하는 모임도 중요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그게 나쁜 게 아니라 한쪽으로만 치우친 불균형한 외부 자극이 문제인 거에요. 멋져 보이고 배울 게 많은 거 같은 '잘난(혹은 잘나 보이는)' 사람들을 동경하며 그들을 쫓는 것에, 그들과 네트웍을 가졌다는 것에 뿌듯해 하며 찾아 떠돌아 다니진 않나요? 내가 정말 찾아 다녀야 하는 건 내가 배울 수 있는 사람인데 그에게 내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 그 고민에 귀 기울이고 날 객관적인 시선으로 성장할 수 있는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사람, 내가 나를 인식하도록 좋은 질문을 던져주는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앞선 레터에서도 이야기 했던 내것으로 소화하는 시간이 정말 중요해요. 가끔 SNS를 보면 올해 몇 권 읽었다, 몇 권을 샀다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물론 그들 중엔 그래서 성장하고 인사이트 넘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보는 것보다 사는 게 월등히 많아 쌓아두는 사람도 많아요. 그런데 성장, 학습이란 데에 매몰되어 계속 찾아 다니며 쌓습니다. 지식은 쌓이는 거 아닌가요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몸에 좋은 음식이라며 계속 집어 넣기만 한다면?
똑같아요. 아무리 좋은 것도 적당량을 꼭꼭 씹어 먹어야 합니다. 그렇게 삼킨 음식을 일정 시간 소화시켜야 해요. 더부룩해서 혹은 먹었으니 잘 소화되라고 때론 걷기도 하고 운동도 하죠. 왜? 말 그대로 날 지탱하는 에너지를 만들고 그렇게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해주니까요.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정도, 성장도, 학습도, 자신감도 말 그대로 과유불급이에요. 꼭꼭 씹어 삼키며 그 맛을 충분히 느끼고 충분히 소화시켜야 해요. 간헐적 단식으로 일부러 위를 비우는 시간도 가지고 배출도 하며 때론 소화를 돕기 위해 약을 먹기도 하는 것처럼 소화의 방법도 내 상태에 따라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아 보는 겁니다.
대체 나는 왜 먹는가, 얼마나 먹는가, 과식은 아닌가, 먹는 양 대비 얼마나 움직이고 칼로리를 소비하는가, 내 체질엔 맞는가, 저 음식이 내 형편엔 맞는가 등.
그래서 슬기로운 외부 활동의 핵심은 요약하면 자기 인식의 선행과 끊임 없는 성찰에 있다 하겠습니다.
다음 레터에서는 외부활동을 포함한 후배, 팀원에 대한 시선과 피드백, 육성 방법, 관점에 대해 다루어 보려 해요.
이번주 레터는 어떠셨나요?
소감과 다음 레터에서 다루어졌으면 하는 생각거리가 있으시다면 댓글에 남겨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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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오늘 글도 뼈때리셨네요!! 프린트해서 밑줄 그어가며 읽어야겠습니다... 프로이직러 -수평이동에 대한 글 부분에서 완전 반성중입니다.
프로브톡
ㅋㅋㅋㅋㅋ 제 반성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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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되고 싶은 나'가 없으니 해야 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죠. 그래서 무작정 배우고 배운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겠죠;; 여전히 전문성은 저에게도 상당히 어려운 정의입니다.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작가님은, 나의 전문성을 무엇으로 정의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링크드인에서 본 작가님의 경력이 상당히 화려하여 놀랐답니다;;)
프로브톡
저만의 정의는 문제를 정의해 가진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최선의 해결안을 찾는 사람이에요. 좋은 거 말고 현 상황에서 실제 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최선요😊
이수진
와~. 사적이든 공적이든 여러 영역에서도 통용되는 정의이네요. 뭘 해야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가 상상이 되는 정의입니다. 멋지세요~~^^. 늘,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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