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이네요. 수요일을 서양에서는 'Hump Day'라 한다더군요. 낙타의 혹 사이처럼 월~금 중 중간에 끼어 가장 심신이 지치고 고달픈 날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이런 걸 모르고도 대학 때 수요일을 최대한 수업을 안 들으려 했던 것도, 지금 독립 후에 주말에 일할 때가 많긴 하지만 수요일을 블럭해 둔 것도 자연스러운 본능 아니었나 싶네요. ^^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고비만 지나면 목금주말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이 펼쳐지니 물 반잔을 어떻게 볼까처럼 마음 먹기 나름 아닐까 싶습니다. 모쪼록 여러분의 수요일은 드디어 내리막길이다란 마음으로 기운이 가득하시길 바라며 금일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월요일에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띄워드렸습니다. 수많은 인생의 선택 중 진로에 대한 이야기로 좀 좁혀 볼께요.
제게 물어봤던 질문들에 요즘 대응 방식이 좀 달라졌다고 말미에 언급했었는데요. 그 얘기입니다.
이런 질문을 들을 때 답변보다는 먼저 이런 질문을 드리곤 합니다. 현재의 A에서 B를 선택하려 할 때 A와 B를 비교하며 고민할 때죠.
이야기를 하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더 심화된 질문이 더해지지만 물꼬는 저렇게 트지요. 그런데 이번 주제 관련해서 떠오르는 분들의 공통점은 "당신은 어떻게 하겠느냐, 어떻게 했느냐?"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게 위해서, 도움 받기 위해서라지만 '나'가 아닌 '너'의 경험과 생각에 의존도가 높은 경우입니다. 그럼 신중함과 조언에 대한 겸손한 수용이라 자칫 합리화 하기 쉽습니다.
"애초에 질문이 잘못된 거 같습니다. 제가 어떤 선택을 할 지가 무슨 의미가 있나요?"
A에 근무 중인데 B회사에서 좋은 오퍼를 받았다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 입니다. 상당히 좋은 조건임에도 망설이며 여기저기 조언을 구합니다. B가 월등히 좋은 조건인데 A도 놓으려 하면 아쉬운 때입니다.
A가 B만큼 좋거나, B가 A보다 월등히 좋은 조건이면 망설이는 게 당연하겠지만 이 때의 전제는 A가 충분히 좋다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B가 훨씬 더 큰 기회인데도 망설일 때엔 그냥 저 이야기를 해요.
뭐가 옳고 그르다가 아니라 제게 물었으니 제 생각을 이야기 해야 하는데 저는 뭔가 다음을 선택할 때 A를 별로 고려하지 않거든요. B라는 넥스트로 뭘 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는지, B가 C라는 그 다음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 것인지만 보는 편입니다. A가 조건적으로 B와 별 차이 없거나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다 해도 다르지 않습니다. 때문에 A와 B를 두고 고민할 때 어떻게 했느냔 얘기가 그렇지 않은 상대에겐 별 의미 없다 생각해서 입니다.
그래서 애초에 당신과 나의 성향과 생각이 다르고 가려는 길도 다른데 나의 선택을 물을 게 아니라 당신 마음을 들여다 봐야 한다고 말씀드려요. 그동안 수없이 많은 질문을 받고 열심히 이야기 했지만 또 다른 곳에 가서 조언을 구하고 결국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결정한다는 걸 저 스스로도 타인에게도 매번 확인하는 건 저만 경험한 건 아닐 거에요. 때론 누군가에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며 설명과 조언을 넘어 설득하려는 분들을 봅니다. 자기 의견대로 않는 사람을 답답해 하고 한심해 하기도 하죠.
저도 그래요. 제가 답답해 하는 경우는 주로 행동하지 않음에 있더군요. 뻔히 어떻게 해야 할 지 알지만 행동하지 않는 거, 그러면서도 매번 같은 고민을 하고 한숨 쉴 때 제가 가장 답답해 하고 참다가 다시 나한테 말하지 말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요즘 마음을 달리 먹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못한다 하는 거, 왜 하지 않느냐 하는 게 아무리 도움이 될 말일지 몰라도 상대에겐 폭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말을 아끼는 게 저의 최선인 거 같아요. (그럼에도 제게 계속 같은 얘길 하면 여전히 짜증나고 답답합니다. 화내지 않으려 꾹 참는 길 뿐!)
ATD라는 세계 최대 HRD 컨퍼런스가 있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참여하는 글로벌 컨퍼런스죠. 이곳에 갔을 때 수백 명의 한국인은 죄다 사진만 찍는 듯 했습니다. 교안을 찍고 또 찍고. 그 모습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신기하게 보기도요.
국내 세미나나 강의를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교안을 열심히 찍어댑니다. 열심히 필기하고 찍고. 그런데 말이죠, 딱 그 때 뿐 두고두고 그 내용을 찾아 보느냐 하면 아니더라구요. 조언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면 여기저기 조언과 상담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모양은 다양하지만 일종의 우유부단함이죠. 우유부단함의 근저엔 불안과 욕심이 공존하구요.
이런 것들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록 주변을 찾아 다닙니다. 심하게는 조언 낭인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어떤 일에 대해 전문가의 지식과 경험을 찾으러 다니는 건 좀 다르긴 해요. 그렇다 해도 이 역시 충분히 들은 후 내 것으로 소화하며 내 생각을 담아 만드는 과정은 필수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전 레터에서 언급했듯 커뮤니티와 스터디 낭인이 되어 버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과 심리를 내 인생의 질문에도 그대로 두면 흔한 말인 '내 인생의 주인은 나'와 점점 더 멀어질 뿐인 것 같습니다. 업무나 지식에 대한 건 정보의 취합과 학습일 수 있지만 진로나 인생의 선택 순간들에서는 내가 내려야 하고 생각해야 할 결정과 질문을 타인에게 위탁하는 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너는 왜, 너는 어떻게, 무엇을"이란 질문을 받으면 그냥 제 경험은 이야기 하되 되묻습니다. "당신을 알고 싶다면서 왜 내 인생을 물으시죠?"라구요. 대부분은 이 질문에 당황하고 잠시 말씀이 없으세요. 어떤 분은 불쾌해 하기도 합니다. 기껏 정중히, 진지하게 용기내어 물었는데 오만하다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오랜 지인들에겐 덜 하지만 난생 처음 본 분들이 날 찾고 싶은데 너가 궁금해라고 할 땐 더더욱요.
A와 B를 두고 저울질 할 때 A와 B의 장단점을 두고 주로 고민합니다. 각자 장단점이 있고 다 좋고, 다 아쉬우니 결정 내리기 힘들죠. 이땐 A와 B를 면밀히 보기 보단 그만 두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세요. 난 뭘 원하는 거지, 뭘 두려워하지 같은.
여러분은 혹시 조언 낭인이신 적은 없나요? 주변엔 이런 분들이 계신가요? 선택 시 망설임이 있을 때 어떤 질문을 자기 자신과 주변에 던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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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게
"우유부단함의 근저엔 불안과 욕심이 공존하구요." --> 촌철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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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슬기
"우공이산"이 생각납니다. 저도 조금 바뀐 것 같습니다. 교안찍어대기보다 에버노트를 키고 세미나를 듣는 와중에서 한자락 생각이 잡히면 그걸 메모하는게 내 안에 쌓는 거라고.... 결국 답은 내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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