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이 맘 때 장장 한달 여에 걸친 집정리가 끝을 향해 가고 있었어요. 이사 한 지 10년이 넘으며 세월의 때가 벽지나 문에 많이 묻어난 상태였죠.
크지 않은 집이지만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물건들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맥시멀리스트였고 별명은 무려 소비요정이었어요. 세상 쓸 데 없는 소품도 좋아하고 귀여우면 일단 사는 부류였습니다. 옷도 좋아하고 물건도 좋아하고 사는 행위 자체도 좋아하면서 살았어요. 중간중간 이사 한 번씩 해줘야 크게 정리가 가능한 건데 10년을 한 집에 사니 엄청났습니다.
개인적 계기가 있어 안방부터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쌓아둔 각종 물건들을 하나씩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때 탄 방문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다음날 화이트 페인트를 사서 거슬린 면을 칠하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이게 무슨 일이죠? 너무 깨끗하더라 이겁니다. (당연한데 유난히 그렇더라구요) 그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냐구요?
한 달에 걸친 대청소와 대 정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안방부터 물건들을 버리기 시작하고 각 방문을 칠하기 시작했어요. 문제는 방문이 새하얘지니 벽지가 거슬리기 시작한 거죠. 테이블이나 수납장 위 오랜 기간 그 자리에 있던 물건들을 치우니 검게 경계선이 가있더군요. 어찌나 꼴보기 싫던지.
네.. 예상하셨겠지만 그렇게 벽에도 페인트칠이 시작되었습니다. 페인트칠을 하려다 보니 가구를 치워야 하고 가구를 치우려니 가구 속에 있는 물건을 또 정리해야 했죠. 온 집안의 물건을 바닥에 다 쏟아냈습니다. 한 2주 정도는 TV에 나올 법한 쓰레기 집 같은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그렇게 치우게 되면서 알게 된 게 분리수거는 까다롭구나, 버리는 데에도 돈이 많이 드는 구나.. 용달을 불러 큼직한 가구와 가전들을 한 번에 실어 보내고 거실부터 방까지 가득했던 책장의 책들을 중고서점에 보내버렸습니다. 20박스 정도 나왔고 중고서점에 못 팔 책들은 묶어 집 앞에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지옥 같은 분리배출이 시작되었죠. 당근도 처음으로 나눔 때문에 해보고 쓰레기 버리는 데에만 87만원이 들었으니 얼마나 엄청났는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그렇게 물건을 버리고 페인트칠을 끝낸 첫날 희한할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드디어 끝났다는 홀가분보다 너무 편안하고 좋단 느낌이었죠.
지금은 모니터암으로 바꾸고 키보드와 마우스도 바꿨으며 스피커와 화상 회의용 마이크가 새로 얹어졌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당시의 제 책상이에요. 집 전체적으로 이 보다 썰렁해졌다 보시면 되는데요. 10년 간 전 주말이면 꼭 집 근처 카페를 가든가 사람 없는 사무실에 나가곤 했어요. 가끔은 호캉스도 가곤 했죠. 집에선 집중하거나 일할 수 없다고 굳게 믿었구요.
그런데 신기한 건 거짓말처럼 집정리가 끝난 다음날부터 카페든 호캉스든 하는 욕구가 싹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뭘 딱히 하지 않아도 책상에 자꾸 앉아 있더라구요. 그리고 처음으로 재택이 집중이 이렇게 잘 되는 거였나를 느끼게 되기도 했죠. 지인이 병원같다 할 정도로 텅 비운 집에서 생전 느껴보지 못한 안정감을 몸소 체감하고 있던 겁니다.
이때 물건 버리다 질려 버린 기억이 너무 커 어쩌다 보니 미니멀리스트가 되었어요. 진저리 내며 치웠거든요. 2년이 지난 지금, 그래도 조금씩 물건이 늘긴 했지만 크게 어질러지진 않은 채로 얼추 유지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지키는 거라면 수납장을 새로 사지 않는다에요.
정리하던 당시 그렇게 많이 버리고도 필요한 물건을 넣을 곳은 필요했어요. 그래서 수납장을 검색하고 있었죠. 그러다 깨달았습니다. 수납장을 사는 순간 또 물건을 쟁기게 되겠다구요. 그래서 책꽂이도 수납장도 최대한 작은 사이즈로 한 개씩만 구매했어요. 그러곤 다시 '꼭 필요한 것만 남겨둔' 물건을 다시 버리기 시작했죠. 그래도 이건 언젠가 쓰게 되어 있는데.. 라며 남긴 것을 그 때 필요하면 그냥 다시 사잔 마음으로 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버린 것 중 지난 2년 간 다시 사야 했던 건 거의 없다는 겁니다. 정리할 때 플라스틱 바구니가 100개 넘게 나왔어요. 차곡차곡 어딘가에 잘 정리하기 위함이었죠. 그걸 버리면서도 생각했습니다. 수납할 곳 자체를 없애자구요.
지난 주 레터에서 잠시 언급되었던 제 정리 원칙과 연결되는데 애초에 사지 않는다와 어디에 뭘 둘 지 정하고 바로바로 거기에 쓰고 둔다를 지키려 노력합니다.
난데 없이 왜 청소 얘기냐구요?
개인적으로 시작한 정리인데 이게 그대로 제가 일하는 방식과 원칙에 적용되어서에요. 뭔가 체계를 잡아야 한다고 할 때, 시스템이 필요하다 할 때 우린 흔히 어떻게 프로세스를 잡고 정렬할 지를 고민합니다. 일이 많다고 하면 할일이 많으니 그 일을 할 사람을 더 뽑습니다. 자료가 많으니 서버를 늘려야 한다 해요. 또는 이 일들은 더는 효용이 없으니 새로운 일을 알아보자 합니다. 하지만 그 일은 중요하진 않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로 남아 어딘가에 떠돌죠.
마치 가득한 물건을 잘 정리해야 한다면서, 깔끔하게 보여야 한다면서 수납장을 사고 수납용 플라스틱 바구니를 자꾸만 사는 것처럼요. 물건은 버리기 보다 새로 사는 게 더 많고 점점 더 분류하고 정리하는 스킬만 늘어납니다. 가끔은 양념통을 이걸로 샀다가 저걸로 샀다가 회전 정리함을 샀다가 라벨링도 해가며 정리하듯요. 눈에 좀 지저분하지 않도록 수납장을 사서 그 안에 깔끔히(?) 수납한다고도 해요.
하지만 이 모든 행동엔 '버리기', '안 쓰기'는 별로 없습니다.
물건도 일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애초에 정말 사거나 해야 하는 건 별로 없을 때가 많더군요. 있으면 좋은 거, 더 있으면 좋은 게 대부분이죠.
이번주는 일의 체계를 잡는다 할 때 정말 중요한 게 뭘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건 뭘까를 주제로 프로브톡을 공유드리려 해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이럴 때 가장 먼저 어떤 걸 하세요? 여러분의 조직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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