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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 (23.10~24.05)

[프로브톡 56화] 정리가 아니라 버리기 ②

회고

2024.02.07 | 조회 3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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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건 누가 해요?"
"~~가 하면 되지 않을까?"
"그건 좀 그렇지 않아요? 그 사람 하던 일도 아니고, 그런데 그 일을 계속 해야 하나요?"

몇 년 전엔 팀에서 강조하던 업무 중 하나였지만 언젠가부터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업무가 있었습니다. 팀의 성과는 물론 성장에도 별 도움 안 되고 무엇보다 더이상 필요 없는 일이었죠. 하지만 어떻게 안 하냔 리더의 말에 한참을 이야기 했어요. 결국 그 해 팀 업무 리스트에서 빼는 데에 실패했습니다. 그러고 일 년을 내내 얘기하곤 했어요. 이듬해가 되어서야 팀 업무에서 완전히 빼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이런 일은 의외로 아주 많습니다.   

'원래'부터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안 할 수는 없어서, 필요하니까, 있으면 좋아서 등으로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니지만' 하고 있는 일들요. 이거 왜 하느냔 질문에 가장 싫어하는 답변이 원래 이렇게 했는데요란 말인데요. 대부분 들으면 끄덕거릴 이 상황이 현실에선 아주 흔하죠. 

"이제 우리도 체계를 잡아야 해요"라며 고민을 상담하시는 대표님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러면서 어떤 제도를 만들고 싶다라 해요. 지금까지 300여 분 가까이 스타트업 대표나 경영진을 만나면서 단 한 번도, 놀랍게도 단 한 번도 "저희는 이거 안 하고 싶어요"라고 하시는 분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늘 뭔가 이제는 해야 한다고, 뭘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죠. 

저는 이런 경우엔 거의 그대로 하진 않아요. 때론 "그거 지금 안 하셔도 되세요", "하지 마세요 지금은"이라고 말씀드릴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고 일을 하게 되면 최초 해달라던 ~~~ 제도가 아니라 각 구성원들의 세부 업무를 먼저 들여다 봅니다. 그리고 뭘 없애도 되는지, 뭐는 통합해도 되는지, 여긴 왜 비어 있는지 등을 확인하죠. 


전에 한 회사에서 1인 인사담당자가 주니어이고 선배 없이 일해 육성을 해달라 했습니다. 업무 미팅 후 말미에 질문을 하나 했어요.

"그게 시간을 얼마나 잡아 먹든 상관없이 그냥 내가 이런 걸 해야 하나, 시간 아깝다 하는 일이 있으세요?"
"시간이 되게 많이 든다거나 힘든 건 아닌데, 주 1회 간식을 주문하면 문서수발실로 택배가 오는데 그걸 가지고 올라와 세팅하는 거요. 세팅은 직원들이 같이 해줘서 일은 아니지만.."
"순수하게 월에 그 업무에만 들어가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 거 같으세요?"
"그게, 막상 시간으로 보면 크지 않아서 말씀드리는 게 맞나 싶었어요. 대략 일부일에 30분 정도?"
"주문은 어떻게 받으세요?"
"슬랙 채널에 먹고 싶은 간식을 신청 받아 주 1회 ~마트에 주문해요. 가끔은 마트에 없는 것도 있고."
"월에 평균적으로 인당 얼마 정도 간식비로 나가는 거 같아요?"
"0000원 정도에요"
"간식을 꼭 줘야 하나요?"
"원래부터 줬고 생각보다 많이들 먹기도 해요. 없애면 불만이 많을 거고 대표님이 간식은 주자 하셨어요"
"개인별 법인카드가 있다고 하셨죠?" "네"
"그럼 인당 월별 간식비 한도를 얼마로 주고 알아서 먹으라고 하면 되지 않나요?"
"......"
"

그 자리에서 대표님과 통화했고 의견을 드렸습니다. 간식은 그냥 주고 싶다고 하셔서 그럼 방식만 바꾸면 어떠냐구요. 바로 OK 했고 그 주부터 방식이 변경되었습니다. 그러고 그분께 설명드렸어요. 그게 비효율이라고 생각한다면 개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물론 그게 내 일이지 않냐 했을 거다. 그러나 내 업무는 업무고 방식이 비효율적인 건 다른 문제다. 

이 일의 전제는 어쨌든 회사는 구성원들에게 간식을 제공한다에서 출발한다. 그 전에 간식을 줘야 하느냐 마느냐는 질문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단 주기로 했으니 다음 단계는 그럼 어떻게 주면 좋으냐다. 난 이걸 방법론이라고 얘기한다. 방법론을 고민하는게 같은 일을 해도 성장의 차이를 가른다. 일을 한다는 건 주어진 업무 그대로 진행하는 것과 진행을 효율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 둘 다 포함이다. 여기에 그 효과까지 생각해야 한다.

마트 배송에서 예산을 주고 알아서 먹어라 하는 순간 구성원들은 간식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아이스크림이나 음료, 출근길 토스트 같은 건 이전에는 생각도 못했을 거다. 그 선택의 폭을 넓혔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없앴다. 먹고 싶다 느꼈을 때의 배송까지의 시간차도 없앴다. 구성원의 간식 선택의 자율권도 부여했다. 그리고 담당자인 당신은 주 1회 모아서 정리를 해도 수시로 울리는 슬랙 알람을 볼 필요 없고 그게 마트에 없을 때 설명하고 다시 받는 시간도 줄였다. 단 30분이어도 수발실을 오르내리며 세팅하는 시간도 없앨 수 있었다. 간식 제공의 취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구성원의 만족도는 높이고 일의 효율은 높이는 방법이다. 


한 번은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커머스를 하고 있는데 해외 수출을 하고 있었어요. 각 수출국의 언어를 하는 마케터들이 있었죠. 이들은 오전 한 시간을 CS 대응에 써야 한다 했습니다. 그러면서 늘 CS 담당자 한 명만 뽑아달라는 상황이었죠. 또 오전 두 시간 가까이 출고 업무에 소요된다고 SCM에서 받아주든 CS 직원이 뽑히면 그에게 넘기든 하고 싶어 했습니다. 

개인별 상세업무를 들여다 보며 대체 이 일에 왜 이리 시간이 든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더라구요. 루틴하고 간단한 작업 같은데 대체 왜?

각 담당자별로 면담을 해보면 다 이유가 있고 이래서저래서 시간이 든다는 얘기 뿐이었습니다. 분명 이유는 있는데 그 이유를 제가 완전히 이해하긴 어려웠죠. 그래서 택한 방법은 옆에 앉아 로그인부터 하면서 일하는 플로우와 양식을 다 뜯어보는 거였습니다. 결론은 CS는 시간이 그렇게 들어갈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고 출고 업무는 엑셀에 미숙해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후자는 엑셀 양식을 변경해 주고 일부는 IT쪽에 관리할 만한 툴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해 해결했습니다. 시간이 반으로 줄었죠. 

CS는 해당 국가의 언어를 할 줄 몰라도 상관 없고 한 사람을 그것 때문에 채용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었어요. 크롬과 번역기, 그리고 마케터들이 빈번한 FAQ 템플릿만 만들어 주면 copy+paste로 대부분 해결된 문제였거든요. 해당 국가의 언어를 하는 CS여야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 (그 언어는 하나도 못하는) 업무를 맡겼습니다. 프로세스나 업무 디테일에서 실수가 있긴 했지만 해당 업무 수행에 어떤 지장도 없었죠. 


두 사례는 제 경험이지만 다른 회사에서도 다를 바는 없습니다. 사람이 부족하다, 일이 많아진다, 체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하면서도 먼저 해야 하는 걸 간과한 채 +만 더해가거든요. 

가장 기본이자 최우선은 현재 일을 상세하게 파악하는 겁니다. 스타트업에서는 그 일 알아라고 할 만한 게 많습니다. 조직이 크지 않고 이것저것 하면서 일해가기에 대충 어떤 일이 있는지 알거든요.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에서 주의해 봐야 하는 단어는 '대충, 대략'이에요. 

알긴 아는데 정확히는 모르는 부분요. 제가 상기 사례에서 담당자 면담으로 상세히 질문하고 설명을 들었다 해도 정확히는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보통은 여기에서 멈추죠. 만약 의자를 끌고 옆에 앉아 실제 일하는 걸 쭉 들여다 보지 않았다면, 어떤 양식을 쓰고 있는지, 그 양식에서 어디에 뭐가 막히는지까지 확인하지 않았다면 엑셀에 미숙해 수작업을 하고 휴먼에러가 자꾸 나온다는 걸 아주 정확히는 알지 못했을 거에요. 

해외 CS도 마찬가지였겠죠. 각국의 CS 내용이 대동소이 하고 촘촘하게만 FAQ를 만들어 번역해 두면 되는 일이었어요. 이걸 정확히 파악 못하면 사람을 뽑아줘야 하는 겁니다. 담당자들도 당연히 해외수출이니 외국어 활용 가능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했겠죠. 본인들도 인턴을 뽑으면 하루치 일이 나오지 않으니 뭘 줄지 고민했습니다. 사람을 뽑아 일을 더 많이 하거나 줄이는 게 아니라 사람에 맞춰 일을 나누는 거요. 

때문에 체계를 잡을 필요가 있다거나 일이 너무 많아졌다 느낄 때엔 일을 정확히 들여다 봐야 합니다. 그러고 뭘 안 할 지, 뭐는 통합할 지, 뭐는 조정할 지를 먼저 결정해야 해요. 그게 아니면 그냥 사람을 뽑고 제도를 만드는 데에만 골몰하게 되거든요. 

일전에 모 스타트업 모임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현재 70명이다, 100명이다 치면 일을 들여다 보지 않아도 30명, 40명으로 충분히 현재 퍼포먼스는 가능할 거라구요. 그리고 실제 일했던 조직은 다 그랬습니다. 

10명이 숨이 턱에 찰만큼 일이 많다 칩시다. 그런데 어떤 일(A)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10명은 누구도 일을 더 받기 어려워요. 하지만 A는 0.3 맨먼스 정도죠. 하지만 그 일은 해야 하니 한 명을 채용합니다. 그 담당자는 0.3 맨먼스이고 1을 채우긴 어렵지만 1을 하는 것처럼 보이죠. 투자 활황기 시절 이렇게 인원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린 조직이 많습니다. 

하지만 일을 정확히 들여다 보고 안 할 것을 결정하는 것만으로도 인력의 룸이 꽤 생긴답니다. 

그래서 체계, 정리, 시스템, 제도의 필요성을 느꼈다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다 꺼내보는 겁니다. 정리전문가들이 정리해야 하는 과제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게 거실에 모든 물건을 꺼내 놓는 거에요. 단순히 정리할 게 너무 많다가 아니라 뭘 얼마나 쌓아두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시켜주는 작업이라 하더군요. 

저도 집정리를 할 때 옷이 참 많았는데요. 옷이 많은 건 알았지만 막상 방 하나에 모든 옷을 쏟아 놓고 보니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어요. 핑크색 바지는 언제 샀는지도 모르는데 같은 게 세 벌이나 있을 지경이었죠. 어딘가 예쁘게 정리는 해두었지만 미처 인식하지 못한 것들이 계속 터져 나왔습니다. 

그 전엔 옷장을 보며 한 번 한 벌 골라냈는데요. 옷을 쏟아 놓고 보니 한 번에 버릴 게 한가득이더라구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대체 어떤 일들까지 하고 있었는가, 이걸 앞으로도 할 것인가.. 이게 먼저입니다. 이게 안 된 상태에서 체계니 정리니 제도니 만들려 하면 지난 시간 제 케이스에서 말했던 잡동사니는 그대로 두고 수납장을 사고 정리 바구니만 계속 사는 게 되거든요. 나중엔 버리려고 해도 끝없어 포기하게 되는 짐덩이만 늘어가요. 


여러분은 혹은 여러분의 회사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요?

체계를 잡아가거나 변화를 모색하는 시점에서 가장 먼저 어떤 걸 고민하고 실행하나요? 안 해도 되는 걸 먼저 걷어낸 사례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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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과 조직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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