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뀐 게 엊그제 같은데 변덕스러운 기온을 몇 번 오가고 나니 벌써 1월의 마지막 금요일이 되었어요. 식상한 말이지만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게 갈 수록 더 와닿습니다. 이런 생각이 문득 들 때면 가끔 오싹할 때도 있고 그만큼 하루하루 잘 살자 다짐도 하게 되어요. 그 방법으로 제가 근래에 들어 가장 많이 다짐하는 건 과거를 후회하거나 아쉬워 말자는 건데요.
프로브톡을 쓰며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예전 일들을 많이 떠올리며 곱씹어 본다는 점이에요. 후회보다는 그땐 그랬고 이젠 이렇다, 앞으론 저렇게 해보자 하는 발전적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합니다. 읽어주시는 여러분들 덕이기도 해요. 늘 감사한 구독자님들이에요 ^^
저는 덕분에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모쪼록 여러분의 하루도 감사와 기쁨으로 채워지길 바라며 주제로 들어가 볼께요.
지난 시간 제가 슬럼프를 겪었던 시기를 언급드렸어요.
슬럼프를 살면서 두 번 겪었는데요(아마 다른 하나는 언젠가 레터에서 다루어질 거 같아요) 지난 시간의 슬럼프가 첫 경험이었어요. 그때 퇴사까지 심각하게 고려했는데 꾸역꾸역 버텨냈죠. 10년 간 최선을 다해 다닌 회사를 그런 마음으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다는 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덕에 잘 회복하고 일도 마무리 잘 하며 아쉬울 즈음 잘 떠날 수 있었어요. 당시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했지만 대체 내가 왜 이러는지를 알기 위한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회사 내/외 상담가의 도움도 적극적으로 구했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했던 시기에요.
수요일 레터 말미에 살짝 실었던 제 생각이 그 결과 중 일부였죠.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이건 제 생각일 뿐이고 정답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참고 정도는 되실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일이 재밌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요? 일은 절대적으로 즐겁고 행복해야 하는 걸까요? 세상에 덕업일치 되는 직업으로 먹고 사는 이는 얼마나 될까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정말 재밌고 즐거운 걸까요?
이런 말이 있어요. 어차피 결혼은 현실이고 닥치면 싸움도 빈번하기에 이왕이면 좋아하는 사람이랑 결혼하라구요. 또 이런 말도 있어요. 일은 하기 싫은 거고 이왕이면 좋아하는 일을 해야 그나마 좀 더 오래 할 수 있다구요.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단 말도 있죠. 또 다른 얘기도 있어요. 정말 어떤 일을 하고 싶고 좋아한다면 그 앞에 '가난해도'를 붙여 보라고. 가난해도 oo가 하고 싶어란 마음이 든다면 정말 좋아하는 거다라구요.
이 말들을 거꾸로 바꿔 볼께요.
좋아하고 재밌는 사람과 결혼해도 결혼생활은 재미없을 수 있어요. 좋아하는 일을 했는데도 재미 없을 수 있구요. 좋아하는 일을 해도 못할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지만 도무지 인정 못받고 돈이 벌리지 않아 포기도 많아요.
그렇다면 과연 일은 재미있는 걸까요?
이젠 나이가 들고 연차가 오르다 보니 주로 후배들이 "일이 재미없다"는 고민을 해옵니다. 회사에서는 팀원들에게 자주 불려 다니죠.
그럼 제가 가장 먼저 짚어 보는 부분은 그가 일을 가지고 얘기하는가, 감정을 가지고 얘기하는가입니다. 일이 문제가 아닌 경우도 많거든요. 개인적인 다른 사정이 일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관계가 틀어져 일도 하기 싫을 때도 많으니까요.
또 다른 부분은 현재 하고 있는 업무를 잘하는가입니다. 보통은 잘하지 못하면 재미 없어 하죠. 일본어를 처음 배우면 생각보다 한국어와 비슷하기도 하고 어렵지 않아 초급 과정 정도는 재밌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한자와 형용사 같은 문법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흥미가 떨어지기 쉽죠. 운동도 그렇고 악기연주도 그렇습니다. 갓 시작해 속도가 붙을 땐 재밌지만 어느 수준에서 다음 수준으로 넘어가는 순간에 정체기를 만나면 급격히 흥미가 떨어집니다. 일도 그래요.
면접을 보면 다들 자기가 지원한 업무에 관심있고 좋아하고 잘하고 싶다 해요. 하지만 들어와서 업무가 적성에 안 맞는다거나 재미없단 말을 심심찮게 합니다. 물론 해보기 전까지는 몰라서 환상이 더 많기에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말은 해보기 전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엔 업무 자체가 재밌기란 참 어렵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거 같습니다. 생각했던 것과 다른 현실, 더 잘해 다음으로 넘어가기까지의 지루한 연습 같은 과정은 낯설고 마음만큼 능숙하기 어려우니까요.
어쩌면 일이 재미없다가 아니라 일을 통해 얻는 재미가 없다란 말이 더 정확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럼 일이 재미없다는 팀원의 말에도 적용해 볼 수 있겠네요.
그 팀원이 요즘 일의 결과가 어떤지, 일의 결과가 재미있겠는지, 아니라면 왜 결과가 재미없는지, 재미없는 결과가 나오는 이유에 어떤 게 있는지를요. 그 이유에 관계나 연봉, 상사의 스타일, 그리고 본인의 능숙도가 있을 겁니다.
돌아보면 껄끄러운 관계가 있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도 겸험과 지식이 많아 일을 능숙히 해내는 이들은 재미란 말을 잘 꺼내지도 않지만 무엇보다 결과를 만들어냈던 거 같습니다. 그런 그들을 조직에서는 일을 해내는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란 표현으로 인정해 왔던 거 같구요. 이들은 재미나 적성, 즐거움과 무관히 해야 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잘 해낸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때론 스트레스가 엄청나도 오히려 일에 더 집중하고 어떻게든 잘 끝내려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했어요.
반면에 전부는 아니지만 "저는 이 일이 너무 좋아요"라고 하는 분들 중에는 오히려 그 일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꽤 있었어요. 본인은 일을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데 평가는 잘 못하는 사람인 경우요. 심지어 저성과자로 낙인 찍힌 이들 중에도 이런 분들이 있곤 합니다.
제 슬럼프의 원인과 타개책을 찾으면서, 그 와중에도 사람들의 면담을 하면서 제가 하나 내린 결론은 일이 즐겁다는 건 별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였어요.
성과나 결과가 만족감을 주는가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어떤 일 자체보다 그 일을 함으로써 얻는 결과가 흡족해야 다음 일도 기꺼이 해내게 되는 게 아닌지요.
일이 재밌고 즐겁다며 열심히 하는 분들 중에는 그래서 그 일만 죽어라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다른 더 중요한 일이 있는데 본인이 재밌는 일에만 매몰되어 있는 경우요. 그 일은 그 정도로 하고 다른 걸 하라든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는데 너무 에너지를 쏟는다는 지적을 받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지켜 보면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은 회피하거나 해야 하지만 잘하지 못하는 일을 회피한 채 본인이 하고 싶은 거, 잘하는 것만 하려고 할 때가 많았어요. 또는 어떤 일을 했는데 그 일로 칭찬을 많이 받을 때 계속 그 일만 하려는 경우도 있었죠.
그래서 저는 뭐든 우울한 것보다야 즐겁고 재밌게 하면 가장 좋겠지만 핵심은 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 그 일이 가져다 주는 아웃풋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일에 사명감이 높고 의미가 크고 좋아하고 재밌다 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면 참 어렵겠다 싶거든요.
최소한 취미나 자기 만족이 아닌 조직이란 내에서는 말이죠.
그래서 일이 재미없다는 직원이 있으면 그 일을 잘하고 있는지 봅니다.
그 다음으로 열심히 하든 안 하든 일로 인정받고 있는지를 보구요.
그런 다음 왜 그런가를 보고 그에 따라 피드백을 다르게 줍니다. 예를 들면 일을 잘하고 결과도 잘하는데 재미없다 하면 진급이나 주도성, 처우에 불만이 있는지, 관계가 틀어져 있는지 갈등 요인을 찾아보고 그 다음엔 그 일을 너무 오래 해서 질렸는지 봅니다. 일의 난이도와 인정 수준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어 지루한 것일 수도 있죠. 일을 못하는 거라면 일을 잘게 쪼개 주거나 밀착 마크를 합니다. 관계가 문제라면 갈등의 원인을 파보고 업무를 분리시키거나 조직을 바꾸거나 리더십을 교체하는 것도 고려합니다.
언젠가부터 구성원의 만족감, 행복감, 일의 재미와 의미가 중시되고 있습니다. 물론 중요한 개념들이에요. 하지만 이 자체가 지향점이 되고 목적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란, 조직이란 분명한 목표가 있는 곳이고 일로서 그 목표를 달성해 가야 하니까요. 일하려고 모인 곳에서 일이 즐거워야 한다 보다는 일의 성과가 나야 즐거울 수 있다는 게 맞지 않을까요? 일을 했을 때 기대하는 성과를 생각하면 가슴 뛰고 행복해 그 과정의 개별업무들은 지루하거나 하기 싫을 수 있어도 기꺼이 몰입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닐까요? 이 일을 해도 나중에 상상할 수 있는 결과가 별 거 없다 생각하면 그 과정이 과연 즐거울 수 있을까요?
이런 부분을 면밀히 짚지 않으면 말을 꺼낸 누군가는 애 같이 징징댄다 치부되기 쉽고 애꿎은 업무만 변경하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또는 원래 일은 재미 없는 거다, 어떻게 사람이 재밌는 일 하고 싶은 일만 하느냐 같은 피드백만 하게 되어요. 현실적으로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런 피드백을 주의해야 하는 건 본질적인 개선방안을 찾기 전 그저 일, 회사는 원래 재미없는 것을 심정적으로 전제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일이 재미없다 말할 때 나는 혹은 상대는 정확히 뭘 재미없어 하는 건지, 리더라면 이런 팀원을 대할 때 어떤 질문을 하고 무엇을 살펴볼 지 화두를 한 번 던져 드려 봅니다.
개인의 능력으로 볼 지, 조직 분위기로 볼 지, 그보다 더 본질적으로 의미있는(즐겁고 재미있을 법한) 결과를 내는 일을 하고 있는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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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게
이번주에 전체 구성원과 23년 평가 리뷰+연봉협상을 했는데요. 이번주 주제인 "지금 하는 일에서 재미(흥미)를 잃어버린 듯 한" 친구가 두 명 정도 발견이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비상이 걸렸죠) 다행인 건 두 친구 모두 "전사 목표를 달성하는데 기여하고 싶은데 내가 지금 하는 일이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고민이다."는 식이어서 함께 이야기 나눠보기로는 했습니다요. "부담을 좀 내려놓고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해봐라."고 잠깐 맡겨두고 시간을 줘야 할지,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요런요런 과제를 해 보자."라고 제가 내려줘야 할지 고민이네요.
프로브톡
워낙 재미라 말하지만 그 정의나 배경 경우의 수가 많아서.. 그런데 전사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기여도가 미미한 거 같다는 말은 크게 이런 경우가 많았어요. (어디까지나 제 경험 한정입니다) 1. 자신의 일이 회사에서 관심없는 일이라는 느낌(팀장이나 경영진이 딱히 KPI를 논하고 과정을 챙길 때 굳이 내 일까진 보지 않는다면 사실일 가능성, 자주 바뀌는 방향, 진행 중 드랍된 과제 담당), 2. 본인이 자신을 평가하는 만큼 조직이 나를 인정하지 않고 쓰지 않는다는 불만, 3. 본인의 일이 정확히 왜 해야 하는지, 어떤 가치가 있는지 충분히 납득되지 않는 경우(이 경우는 팀 자체가 조직에서 상대적으로 핵심 포지션이 아닌 경우, 팀 내에서 핵심 포지션이 아닌 경우, 팀장이 일을 주거나 챙기는 데에 정확한 디렉션을 못주는 경우). 부담을 내려 놓고 하고 싶은 걸 해보라 하셨다면 중요한 과제를 하는데 기대대로 진행되지 않아 본인이 디프레스드 된 걸까요? 그게 아니라면 원인이 더 중요할 거 같습니다.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해보라는 건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훨씬 높거든요. 좀 더 정보가 있다면 좋을 거 같아요 ^^
내가 살게
1번 같네요..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취지였는데 '무관심'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이번주엔 한 번 1:1 해 봐야겠어요.
프로브톡
정확한 디렉션과 성과 관리가 없는 자율성 부여는 그냥 방치가 될 경우가 더 많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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